나의 회고록 7막58장 (8부-4)
청평댐에서 남한강과 교차하는 양수리까지 가는 코스는 무척 낭만적이였다.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을 스쳐 지나갔고 자전거 전용으로 바뀐 터널을 지나가야 하였다.
수많은 산으로 에워쌓인 협곡처럼 북한강은 이여졌고 양수리에 도착하니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한핏줄이였다.
한 놈은 저멀리 충북의 충주댐에서 다른 놈은 강원도 춘천댐에서 달려온 의형제였던 것이다.
나는 양수리 버들나무 아래서 우리가 범접 할수 없는 크기로 변한 한강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몇일후 나는 양평으로 향하였다.
양평에서 출발한 남한강 종주는 양평 군립 미술관이 시발점이였다.
나는 1박 2일 코스로 남한강 종주에 나섰다.
부지런히 준비한 덕분에 나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여주로 향하였다.
잠시후 막국수로 유명한 천서리 이포나루를 지났고쉬엄쉬엄 가다 여주에 도착하였다.
어느덧 해는 중천을 지나 저녁으로 내달음 치고 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으나 잠시후 해가 져서 어눅해 졌다.
위치는 강천섬 근처 같았다.
나는 주위의 숙소에서 1박한후 아침 나절 다시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찬란한 금빛의 태양.
나는 지금도 생각난다.
남동쪽으로 향하는 나를 직시하던 태양.
내가 환하게 비춰 줄것이니 열심히 달려보시게..
하여 암시를 주던 태양.
끝이 없어 보이기만 하던 길은 어느덧 충주댐에 다가와 졌고 나는 지친줄도 모르고 충주댐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오후3시경.
나는 남한강의 종착지인 충주댐에 도달하게 되였다.
그리고 나는 가슴에서 벅차 오르는 감회를 느꼈다.
한강은 죽은 생명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 였다.
나처럼 숨을 쉬고 걷고 달리며 피로하면 쉬어가는 살아 있는 생명체 였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한강 보고 이야기하였다.
"내가 너희 고향 찾아 내느라 고생깨나 했단다"
그러자 한강은 답하였다.
"나 답답해 .
감옥 같은 충주댐에서 나를 구해줘"
하며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