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7]
정대화 (鄭大和) - 내조자로서의 한평생
6. 3가정 축복을 받다
1 내가 자원하여 참아버님을 모시겠다고 청파동 부엌에 들어간 지 40일 되던 날에 참아버님께서 부르셔서 들어갔더니 김영휘씨와 약혼 축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참부모님 약혼식 석상에서 우리의 약혼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셨다.
2 참부모님 성혼식 후 5일째 되는 날 우리는 김원필(정달옥), 유효원(사길자)씨와 함께 참부모님의 믿음의 세 자녀로서 축복을 받았다. 참아버님께서는 우리 세 가정을 아담가정, 노아가정, 야곱가정의 대표형이라고도 하셨다.
3 또 정달옥 언니에 대해서는 ‘기도하는 사람’, 사길자 형님에 대해서는 ‘나가서 활동하는 사람’, 나에게는 ‘살림하는 사람’이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사실 나는 부엌에서 일을 하느라 참아버님 말씀을 많이 못 들었다.
4 부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제일 부러운 것이 마음 편히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안방에서 웃으시면서 말씀을 나누실 때는 문틈으로 들여다보면서 함께 듣기도 하였다. 또 귀중한 행사 때도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5 축복 당시 남편은 한국전력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교회 일을 하였다. 1년 정도 그런 생활을 한 뒤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교회일만 전념하였다. 축복식이 끝나자 참아버님께서 우리 가정에게는 교회 바로 앞의 이정옥 선생 집에서 생활하라고 하셨다.
6 그 집은 방이 두 개였는데 우리가 안방을 쓰고 이정옥 선생이 작은 방을 썼다. 우리는 그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뒤 1개월도 안 되어 청파시장이 있는 쪽으로 방을 얻어 이사를 하였다. 그때 나는 출퇴근을 하듯 하면서 참부모님 가정 일을 도와드렸다.
7 축복받고 3년간은 부부간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믿음과 인내와 슬기로 극복하다 보니 점차로 가정이 원만해져 갔고 화목한 가정이 되었다. 참아버님께서는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세 가정은 아브라함의 세 제물과 같다고 하셨다.
8 우리 가정은 소, 양, 비둘기 중 쪼개지 않은 비둘기 제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시련이 있었다고 원리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 이후로는 말할 것도 없이 이상적 상대를 갖춘 가정으로서 행복한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