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 한복을 좋아 하던 아이

[조 미경]

색동 한복을 좋아하던 아이 /  이헌 조미경

 여고동창생이 한복 모델 대회에 출전한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 그녀는 한복 모델 대회에 출전
상을 받았고
앞으로 모델 활동을 할 것이라는
짧은 메시지에 친구들은 모두 연예인처럼
예쁜 친구에게 부럽다는 댓글을 올렸다.

화려한 조명 아래 풀 메이크업에 가발을 올린 친구는, 연예인처럼 예뻤다. 평상시 동창회에서 보는
평범한 얼굴이 아닌 정말 아름다웠다. 나중에 동창생에게 어떤 경로로 모델 대회에 출전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따라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외갓집에 입양되었다, 적응하지 못한 바로 아래 연년생 여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던 날. 여동생은 알록달록 예쁜 색동저고리에,
빨간 한복치마를 입고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 왔다. 색동한복을 입은 동생은 인형처럼 예뻤다.
한복을 입으면 텔레비전 속 아이들처럼 예쁘게 보일 것 같아, 동생이 입고 온 색동 한복이 너무 예뻐서
동생 한복을 뺐어 입었다.

 우리 집은 딸만 5명이다. 여기에 사촌동생은 나와 나이는 같은데 서울에 살았다.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친척들과 어른들은 나와 사촌동생 중 누가 더 예쁜지 자꾸 비교를 했다.
얼굴이 새까만 나는 시골계집애였고, 사촌 동생은 서울에 살아서 얼굴이 하얗고 예뻤다.
또한 그 애는 공부도 잘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예쁘게 보여야
어른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때 동생의 하얀 블라우스가 예뻐서 내 옷과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동네에서
나보다 예쁜 옷을 입은 친구가 있으면, 옷을 사달라고 떼를 쓰고 억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예쁜 옷에 대한 욕심과 남들 앞에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한 것은 여고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란이는 여고생 잡지 표지 모델이 되고 싶어 했고, 윤경이는 실제로 탤런트가 되기 위해 연예기획사를 직접 찾았다.
그러나 미란이는 잡지 모델이 되지 못하고 졸업을 했고 윤경이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돈이 많이 드는 학원에 다니지 못했다.
얼굴이 예쁜 미란이와 윤경이를 보면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 학교에 갈 때는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만졌다. 나중에 선도부 선배들에게 혼이 났다. 학생 답지 않아서
예쁜 옷을 입고 싶은 욕심은 계속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생활관에서 예절 교육과, 다과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 준비물이 한복이었다. 우리들은 각자 준비한 한복을 입고 가정선생님 지도 아래 큰절 하는 법과 다도를 배웠다. 당시 나는 고모를 졸라 어린 시절 동생이 서울에서 입고 왔던 색동 한복을 사달라 졸랐다.
고등학생 더구나 고 3이 색동 한복은 유치하다고 사촌 언니도 한사코 말렸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색동 한복을 챙겨서
생활관이 있는 청평으로 기차를 타고 떠났다. 드디어 예절 교육시간
강당에는 형형 색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들의 하하 호호 웃음소리와 함께 애 미경아 너는 애도 아닌데
웬 색동한복? 그래서 내가 말했다. 색동저고리 이쁘잖아
그날 나와 친구들은 생활관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다른 친구들의 한복은 사극에 등장하는
한복인데 내가 입은 한복은 어린애들이 입는 색동 한복이었다.

 또 한 번 색동 한복은 나를 독특한 사람으로 기억되게 한다.
고교 졸업식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정장이나 한복을 입고 와도 된다고 하셨다.
그때 졸업 기념으로 의상실을 하시는 고모가 정장 투피스를 만들어 주셨는데
정장보다는 예쁜 한복이 좋아서, 겨울인데도 굽 높은 여름샌들을 신고 학교에 갔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는 치렁치렁한 한복 끝단을 먼지투성이로 지저분하고 찢어지게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졸업식날 친구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지만, 크게 부끄럽지 않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연예인병은 결혼 후 다시 발병을 했다.

 30대 중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을 때 재즈 댄스 동아리반에서 재즈댄스를 배웠다.
연말에 구민회관에서 작품 발표회가 있었는데, 이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배우처럼 짙은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서 춤을 추었다. 무용을 전공한 동호인과
댄스를 가르치는 동호회 선생들은 나에게 몸치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춤동작을 배우기 위해 매일 밤마다 연습했다.
객석에 있는 관객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약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독도사랑 모델 선발대회에, 시니어 부문에 출전했다. 어린 시절 연예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12센티 아찔하고 반짝이는 킬 힐을 신고
런웨이를 우아하게 걸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잘 아는 사진작가님이, 독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는데
그 사진을 보면 어릴 적 품었던 연예인에 대한 동경과 꿈이 모두 이루어진 듯 한 착각에 빠졌다.
모델대회에 나가기 위해, 미스코리아가 입었다는 드레스를 비싸게
렌털하고 각종 액세서리에 스피치 강사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등, 짧은 시간 무대에
서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작가가 되어 문학 수업을 들을 때면 머릿속을 맴도는 은사님의 한마디
이제는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후손들에게 어떤 유흔을 남길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하라 하신다.
늦었지만 학교에서 문학 공부를 새롭게 이어 가면서 외면의 아름다움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일
친구들과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 등. 앞으로 나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품인생이 되기 위해, 좋은 글을 쓰는 작가도 되고 싶고
주위를 둘러보며,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주름은 하나둘 늘어가지만,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멋지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