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보리(須須保利) 빚은 술에 내가 취했네 마음을 달래주는 술 웃음을 불러 일으킨 술에 내가 취했네...
마구리에 기대앉은 오진텐노(應神天皇)가 바다건너 백제에서 건너온 주신(酒神) 수수보리가 빚은 술을 마시고 이에 취해 읊은 천육백년전의 시 한수다.
그 술이 누룩을 써서 곡물을 발효시킨 것이라 했으니 바로 오늘날의 막걸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소박하게 만들어진 술 막걸리는 고려 때 문헌에 등장한다.
이달충(李達衷)의 시에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
라는 대목이 있는것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 이미지가 불변이다.
곡주가 익어 청주와 술 지게미로 나누기 이전에 '막 걸른 술'이라 해서 이름도 막걸리다.
이때의 술 이름을, 누룩을 만드는 때가 배꽃이 필때쯤이라 해서《이화주(李花酒)》라고 불렀다니 선조들의 풍류도 이만하면 참으로 낭만적이다.
후세에 정승 신용개는 언젠가 술손님이 없는 한밤에 계집종 더러 손님이 아홉분 올것이니 아홉동이의 술상을 들이라고 시켰다.
나중 가보니 국화꽃 화분 아홉개를 들여놓고 꽃송이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혼자서 아홉동이 술을 다 비우고 있었다 하니 이 또한 대단한 풍류가 아닌가.
제주는 알다시피 고.량.부 삼 성씨의 집촌섬이므로 서로 이웃을 돕고 안부 묻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모두가 한 집안같은 친밀한 마을이다.
한 고씨가 양씨 이웃에게 묻는다.
"지냥 거둔 조 다 깜수꽈?" "안즉 못함수다" "무사 경 함수꽈?" "어멍 준 '좃깐술' 먹다가 시상 다 감수다"
『조깐술 』
조깐술은 고래로 제주도의 명산물로 제주수령이 퇴임후 육지로 전근갈때 필히 배안에실었다가 임금에 게 진상했다고 한다.
그때에는 쌀과 같은 곡물이 귀한 때이고 조 역시 알곡 은 양식으로 썼으며 그 껍질에 누룩을넣어 술로 빚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가루나 쌀 등으로 만든 술은 흰빛을 띄나 조껍질이나 수수등으로 만든 술은 그 빛깔이 누르스럼 했다.
비록 맛은 독하고 썼으나 백성의 고난을 함께 한다는 의미로 그날 조정에서는 만조백관이 함께 모여 이 좃깐술을 맛보며 위민치정을 다짐했다고 한다.
백제사람 수수보리가 일본에 전한 술이 바로 이 '좃깐술'이 였음이 야사에 적혀 있다. 응신천황이 술을 맛보고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니 수수보리가 답하기를,
"아국(我國)에서 제일 좋은 술로[좃깐오사케〕라 합니다" 라고 답하였다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한(漢)나라때 부터 '낭랑주(樂浪酒)'라는 술이 조선에서 들어왔고, 양(梁)나라때 기록에도 '곡아주(曲阿酒)'라는 술이 있었는데 그 빛이 누르고 맛이 쓰나 주향(酒香)이 그윽하고 한번 마시면 새벽까지 취흥이 도도했다고 하니 아마도 '좃깐술'이 그 원천이 아니었겠는가.
필자가 월남에서 귀국하여 여름 한철과 다음해 봄까지 제주에서 한증(汗症)을 다스린 적이 있었다. 제주에는 위에 언급한 좃깐술과 찰떡 궁합으로 '도새기 돔베고기'를 첫째로 꼽는다.
제주 도야지는 대부분 흑도야지였으며,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 당시만 해도 사람의 인분으 로 사육했다.
퉁새(화장실)가 두칸으로 되어 있는데 한칸에서 용변을 보고 나면 잇다아 있던 옆칸의 돼지 가 쪼르르 달려와 그 인분을 먹었다.
이렇게 인분으로 자란 돼지는 육질이 연하고 기름끼가 적어 맛과 건강에 최고였다. 포르르한 육질에 쫀득쫀득하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는 도새기고기 한점에 좃깐술 한잔을 쭈욱 들이키고 서귀포 녹옥(綠玉)같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서 이제 막 수평선을 넘어가는 불덩이 같은 노을을 바라 보노라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절로 요런 시 한수 나올법 할터.
「일배에 속진잊고 삼배에 석양속으로 빠지니 오호라 이백(李白)따라 내 오늘 신선되었구나 늙은 아내 솥에다 물꿇이고 있으니 엊그제 친 그물에 고기 걸린지 봐야겠는데 은은한 좃깐술 취향이 나를 잡고 놓지않네 」
이런 제주의 좃깐술이 육지로 판매가 늘어나면서 그 명칭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 술이름이 적힌 라밸을 부칠적에는 된 발음을 빼고 그냥 <조깐술>이라 했으나 이 역시 대중화 되는데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붙혀진 이름이 지금의 【조껍데기술】ㅡ '조껍질술'이라고 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원래 이 술의 특색있는 제주방언의 이미지를 가능한 살리자는 의미에서 '껍질'대신 '껍데기'라고 정했다 한다.
막걸리가 포도주나 맥주등을 제키고 소위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단백질이나 아미노산류가 풍부하고 유기산이 많으며 혈당치까지 조절해 주는 데다가 누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과연 대단하지 않는가.
이런 막걸리의 원조인 '좃껍데기술'을 사랑하자는 데는 아무도 이의 없을것.
더구나 지금까지는 그냥저냥 있으니 마셨지만 위의 글을 보고 그 진가를 익히 요량 했다면 앞으로는 <좃껍데기술> 다섯자만 보아도 깊은 존경심과 높은 찬사를 금치 못할 것이라.
그렇다면 이 가품(佳品)을 인연맺게 해준 某에게도 당연히 그에 합당한 예우가 있어야 할터. 어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ㅡ 어떤이가 왜 그냥 '조껍데기술'이라 하지 않고 꼭 'ㅅ'밭침을 붙혀 요상한 상상을 일으키는 젊잖치 못한 이름을 고집하느냐고 필자에게 물었으나 이는 위에서 설명한 이 술의 원전을 몰랐으니 한 말이고... 따라서 '좃껍데기술'이란 표음이 결코 비속적이거나 음흉한 냄새를 풍기기 위하여 의도적 으로 수작한 거이 아니라는거를 요 기회에 확실히 이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