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싸전다리 걸인들의 친구 이거두리와 오사카 키타치모리의 노숙자의 친구 김종현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일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확실하게 청소하고 일본인들을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축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오사카에서 노숙자들의 친구인 김종현 목사를 만났다.
첫날 그를 따라서 하반신마비로 돌봄 쎈터로 떠나게 된 노숙자의 집에 갔다. 집에는 작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와 헌 가구들이 버려져 있었다. 그는 손수 남겨진 것들을 수거하여 두 차례에 걸쳐 트럭으로 날랐다. 쓰레기들은 교회 창고에서 재활용할 것과 폐기되는 것으로 분류된다고 하였다.
1997년 노숙자선교를 시작한 이래로 그는 노숙자들을 찾아다니며 먹이고 입히는 일을 계속하였다. 아픈 환자들은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의 노숙자정책의 변화로 노숙자들이 정부지원금으로 셋집을 얻을 수 있게 되자 그는 그들에게 셋집을 구해서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집 주인들이 노숙자들에게 집을 렌트하는 것을 꺼림으로
돈이 있어도 집을 임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는 난제를 안고 기도하는 중에 지혜를 얻어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10평 남짓한 작은 집을 사서 노숙자들에게 직접 대여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헌 집을 사서 수리하고 살림을 갖추어서 노숙자가 들어와 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배관, 전기에 관한 자격증을 땄으며 노숙자들의 집을 구하고 수리하기 위하여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수고와 헌신으로 50채의 집들이 노숙자들의 집으로 개축 되었다.
현재 그 사랑의 집에 50명의 노숙자가 입주해서 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자원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10여 분이 계시다.
그들은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고 캔을 모으고 박스를 수집한다.
함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패킹하고 나눔 봉사를 한다.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많을 때는 50여 명이었고 코로나 이후로 많이 줄었다고 한다.
현재 김종현 목사는 코로나 전에 계속하였던 전도집회를 7월 첫주 목요일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동안 노숙자들을 향한 사랑에 사로잡혀서 앞만 보고 달려온 김목사님의 나니와교회는 다음 주일에 26주년 기념예배와 행사를 가진다
김목사는 노숙자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남은 과제라고 하였다.
나는 김목사님 속에서 성 프랜시스와 이거두리를 보았고 자원봉사하는 분들 속에서 성프랜시스의 제자들과 이거두리의 제자들을 보았다.
전주시의 레전드의 주인공, 걸인들과 함께 날마다 천국의 축제를 벌인 이거두리의 히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거두리(이보한)는 1872년 전주 이씨 왕족, 양반인 이경호의 맏아들 그러나 서자로 태어났다. 그의 집에 테이트라는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러왔는데 이보한의 부친이 종을 시켜서 선교사를 구타하였다. 두들겨 맞은 테이트 선교사는 관가에 고발하지 않았는데 소문이 널리 퍼졌고 미국대사관에서 조선 정부에 사실 규명을 요청하였다. 조선 정부는 전라감사에게 수사를 명령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부친이 강도를 당하였는데 포사이드의료선교사가 와서 치료하고 그 날 밤에 그 집에서 머물렀다. 그날 밤,강도들이 이보한의 집을 다시 습격하여 포싸이드선교사를 칼로 찔러서 거반 죽게 만들었다.
포싸이드 선교사는 한국에서 치료가 불가능하여 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떠났다.
그러는 사이에 전라도 감사가 테이트 선교사를 구타한 사람이 왕족이고 지역의 최고의 유지인 이경호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게 되었다. 전라감사는 이경호를 감옥에 가두면 자기가 훗날에 화를 당할 것이고 해서 고민끝에 테이트 선교사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었다.
테이트 선교사는 흔쾌하게 그가 교회에 나오면 용서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이경호는 감옥에 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교회에 가기도 싫었다. 그래서 종들과 친척들을 다 불러 놓고 자기를 대신해서 교회에 갈 사람을 찾았다.
그 때 서자인 이보한이 가겠다고 하였다. 그는 테이트 선교사가 구타를 당하면서 함께 싸우지 않고, 포싸이드선교사가 자기 부친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강도를 당했지만 원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무엇이 있기에 자기들과 다른가에 대하여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보한은 바로 전주에 와서 서문밖 교회에 등록을 하고 테이트 선교사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신앙고백을 하였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 날부터 날마다 전주성내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496장(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을 부르면서 꽹과리를 치며 전주성을 돌며 복음 전도 시작하였다.
그는 비록 서자지만 왕족, 양반의 아들이고 일대에서 최고의 부자, 유지의 아들로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복음전도를 하였다. 그 때 그는 이미 결혼해서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다.
그는 496장을 찬양하면서 양반, 상민, 종, 나무꾼, 지게꾼 그리고 걸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이 교회에 나올 때 까지 끝까지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그에게 붙잡힌 사람들은 그를 피해 달아나지 못하고 모두 다 신앙인이 되었다. 그는 특별히 걸인들, 노숙자들을 사랑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전주시 싸전다리라는 다리 밑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다.
이보한은 창을 잘해서 잔치집에 가서 노래를 불렀고 노래비로 받은 돈을 노숙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마시는데 사용하였다.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이 없는 날에 그는 부자집에 들어가서 ”착한 일 하십시오“하면서 쌀을 거두었는데 사람들은 그가 사심이 없고 노숙자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노숙자들에게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노숙자들이 천국 백성의 자부심과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며 봉사를 하였다.
그는 걸인들의 아버지요, 스승이요, 친구요, 종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고 찬양하였으며 기도하였다. 그는 걸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돈을 벌거나 공부하거나 출세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고 서로 용서하라고, 서로 존중하라고, 서로 감사하라고, 서로 도우라고 서로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걸인들이 문제가 많지만 성숙한 사람으로 대하였고 최고로 존중하며 예우하였다. 그는 그들과 함께 거리 청소를 하였고, 장마 후에는 무너진 도로와 길을 보수하였고, 돈을 모아서 아버지 없는 아이들과 과부들을 도와주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이보한은 그들과 함께 전주 시내에서 만세 운동을 벌였으며 돈을 절약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양반, 왕족의 가문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파문을 개의치 않고 복음을 전하여 수백의 사람들이 그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
그가 죽었을 때 걸인들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대성통곡을 하였으며 근원 각지의 걸인들이 조문을 왔다. 가문에서 그의 장례를 거부하였으나 수백명의 걸인들이 돈을 내서 걸인장으로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루었다. 가문에서 쫓겨나서 장지가 없었지만 걸인들이 장지를 샀고 조문오는 모든 손님을 받아서 대접하였다. 그의 장례식 날 전주시내가 다 철시를 하였다. 걸인들이 서로 다투어 상여를 지었고 그들이 만든 만사가 십리길을 메웠다. 무덤을 파는 데 그의 제자들이 스승님의 무덤을 감히 삽이나 연장을 쓸 수 없다고 직접 손으로 흙을 팠다. 그리고 무덤 비석에 ”이공 거두리 애인비“라고 썼고 뒷면에는 ”한 평생 자비로운 성품, 굶주리고 헐벗은 자를 보면 옷을 벗어주고 밥을 먹여 주었네”라고 썼다.
이거두리가 걸인들과 함께 산 것은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읍해서 였고 김종현 목사가 일본에서 일본인들도 보살피지 않는 노숙자를 돌보며함께 사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시대에 이 거두리와 김종현 목사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심금을 울린다.
아래 사진은 목요일에 키타치모리 지하철 아래에서 있었던 도시락 나눔의 사진들이다.
2023년 6월 25일 주일.묘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