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26장 1-12절. 바울이 아그립바 앞에서 변론 시작함
1절.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grippa said to Paul, "You are permitted to speak for yourself." Then Paul stretched out his hand and proceeded to make his defense: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Ἀγρίππας δὲ πρὸς τὸν Παῦλον ἔφη
Agrappa then to the Paul was saying
‘이르되’(ἔφη)는 미완료과거로서(was saying)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Ἐπιτρέπεταί σοι ὑπὲρ σεαυτοῦ λέγειν.
it is permitted you for yourself to speak
직역하면 ‘네가 너를 위하여 말하는 것이 허락되었다’는 뜻입니다.
‘네가’(σοι,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말하기를’(λέγει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speak), ‘허락하노라’(Ἐπιτρέπεταί)는 현재 수동태로서(it is permitted) ‘허락되고 있다’는 뜻이고, 한글 번역을 잘 된 번역입니다.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τότε ὁ Παῦλος ἐκτείνας τὴν χεῖρα, ἀπελογεῖτο
then the Paul having stretched out the hand, began to make his defense
‘손을 들어’에서 동사(ἐκτείν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tretched out) 단호하게 손을 든 모습을 가리킵니다.
‘변명하되’(ἀπελογεῖτο)는 미완료과거인데(began to make his defense), 이것은 ‘기동의 미완료’(inceptive impf)입니다.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변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1차 공판을 베스도 총독이 심리했지만, 2차 공판을 아그립바 왕이 심리한다는 말입니다.
1차 공판을 주재했던 베스도 총독은 유대교와 바울의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아는 아그립바 왕이 2차 심리를 통해서 바울의 죄목을 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 아그립바 왕에게 2차 공판을 주관하라는 것입니다.
2.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여기서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는 것은 맹세의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니고, 연설하는 제스춰입니다.
이런 제스춰는 바울이 변명하는데 여유가 있고, 친절하게 인사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치 법정에서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는 것은 유대교인의 고소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대한 간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 사도의 모습은 심문을 받는 죄수가 아니라, 생명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전도할 때도 안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전도하려면 힘이 드는데, 일단 전도의 말씀을 들으려고만 하면, 일사천리로 열정이 붙어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2절.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regard to all the things of which I am accused by the Jews, I consider myself fortunate, King Agrippa, that I am about to make my defense before you today;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Περὶ πάντων ὧν ἐγκαλοῦμαι ὑπὸ Ἰουδαίων, βασιλεῦ Ἀγρίππα,
concerning all of which I am accused by Jews, king Agrippa
직역하면 ‘아그립바 왕이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하고 있는 이 모든 일에 대하여’란 뜻입니다.
‘고발당하고 있는’(ἐγκαλοῦμαι)은 현재 수동태입니다(I am accused).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ἥγημαι ἐμαυτὸν μακάριον, ἐπὶ σοῦ μέλλων σήμερον ἀπολογεῖσθαι,
I have esteemed myself fortune, before you being about today to defend myself
‘변명하게 된 것을’(μέλλων ἀπολογεῖσθαι)은 직역하면 ‘내가 변명하려고 하는 것을’이란 뜻이고, 앞의 동사는 현재 분사로서(being about) ‘--하려고 한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는 현재 부정사형 중간태 동사로서(to defend myself) 내 자신을 위해서 변명한다는 뜻이고, 앞의 동사가 뒤의 부정사와 함께 쓰여서 ‘미래를 나타내기 때문에’(to express future) ‘변명하려고 하는 것을’이라는 뜻입니다.
‘다행으로 여기나이다’에서 동사(ἥγημαι)는 완료형 중간태로서(I have esteemed) ‘나를 위해서 다행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1. 바울은 유대인들이 고발한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베스도 총독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대교 안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차이점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아버지가 정통 유대인이고 자신도 유대인어서, 유대교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차이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그립바 왕은 아버지가 사도행전 12장 1절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1세였습니다.
그러므로 아그립바 2세는 아버지 때 뿐 아니라 증조부 헤롯 대왕 때부터 유대 나라 풍습을 잘 알고, 사두개파나 바리새파의 차이점에 대해서 잘 알고, 또한 기독교에 대해서도 피상적이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바울의 재판 건은 형사적인 내용이 아니고, 유대교와 기독교 차이점에 대한 전문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바울은 유대교에 대해서 전문지식이 있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 앞에서 재판받으면 베스도 총독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바울이 변명을 해도 유대교인이 틀렸는지 바울이 틀렸는지 판결할 전문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3절.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especially because you are an expert in all customs and questions among the Jews; therefore I beg you to listen to me patiently.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μάλιστα γνώστην ὄντα σε πάντων τῶν κατὰ Ἰουδαίους ἐθῶν τε καὶ ζητημάτων·
especially acquainted being you with all the of Jews custom and also controversies
‘아심이니이다’(γνώστην ὄντα)에서 동사(ὄντα)는 현재분사로서(being) 현재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 ζητημάτων)라는 단어는 문제를 뜻하기도 하지만, ‘논쟁들, 분쟁들’(disputes, controversies)을 가리킵니다.
즉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차이점이나 분쟁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과 분쟁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διὸ δέομαι μακροθύμως ἀκοῦσαί μου.
therefore I implore patiently to hear me
‘들으시기를’(ἀκοῦσαί)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ear) 확실히 잘 듣는 것을 가리키고, ‘바라나이다’(δέομαι)는 현재형입니다(I implore).
1.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 이유는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 자신이 과거에 바리새인으로 생활한 것을 말하면, 아그립바가 바리새파가 유대인의 종파 중에서 가장 엄한 파라는 것을 잘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바리새파가 엄한 종파라고 말하면, 아그립바 왕은 사두개파와 같은 다른 종파는 세속주의적인 종파인 것도 알고, 또 열심파는 종교적이기보다는 무력적인 혁명군들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늘 싸우는 것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리새파는 성경도 구약 전체를 다 믿고, 천사도 믿고 부활도 믿고, 메시아도 믿고, 하나님의 섭리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모세 오경만 믿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돈을 벌고, 세속 권력과 야합한 타락한 종파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그립바 왕은 예수님이 오셔서 팔레스틴 전체에서 얼마나 놀라운 기적 사건들을 많이 행하셨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기독교인들의 말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이처럼 아그립바 왕이 유대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으므로, 이제부터 바울이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서 전문적인 말을 할 때, 바울이 말을 많이 해도 너그럽게 들어주시라고 양해를 구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칭찬하면서, 아그립바 왕이 유대교의 경전인 성경과 유대교의 역사와 유대교의 분파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바울의 말을 잘 들어주라고 부탁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예의 바른 변론가였습니다.
대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거만하기 쉬운데 바울은 전문적으로 특출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가슴이 차가운 편인데, 바울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전도하려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신앙을 간증하고 전도하자,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지식이 너무 많아서 미친 것이라고 오해를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아그립바에 대한 예의를 갖춘 후에 본격적인 변론과 체험과 전도를 합니다.
4절.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all Jews know my manner of life from my youth up, which from the beginning was spent among my own nation and at Jerusalem;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Τὴν μὲν οὖν βίωσίν μου, ἐκ νεότητος τὴν ἀπ’ ἀρχῆς, γενομένην ἐν τῷ ἔθνει μου, ἔν τε Ἱεροσολύμοις
the indeed then manner of life of me, from youth, the from beginning, having been among the nations of me, in also Jerusalem
직역하면 ‘젊었을 때부터 처음부터, 예루살렘에서 내 민족 가운데서 있었던, 나의 생활을’이란 뜻입니다.
‘있었던’(γενομένην)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en) 과거에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ἴσασι πάντες Ἰουδαῖοι,
have known all Jews
직역하면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동사(ἴσασι)는 완료형으로서(have known)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1. 먼저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인으로 생활했던 때를 밝히고 있습니다.
즉 모든 유대인들과 심지어 아그립바 왕까지도 바울이 유대교인으로 생활했던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3-14절에서 말씀한 대로 자신이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 유대교인으로서 열심이 지나쳐 심지어 기독교를 박멸해야 할 줄로 알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는 사도행전 22장 3절 말씀처럼 가장 철저한 바리새파의 지도자인 가말리엘 선생님에게서 가장 우수한 제자로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교인들 중에 최연소로 약관 30세에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산헤드린 공회원인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의 전권을 위임받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고, 심지어 다메섹에까지 군대를 이끌고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를 몰라서 독선적으로 기독교인의 입장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절.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ince they have known about me for a long time, if they are willing to testify, that I lived as a Pharisee according to the strictest sect of our religion.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προγινώσκοντές με ἄνωθεν,
knowing me from the first
‘알았으니’(προγινώσκοντές)는 현재분사로서(knowing) 현재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ἐὰν θέλωσι μαρτυρεῖν,
if they would be willing to testify
직역하면 ‘만일 그들이 증언하기를 원한다면’이란 뜻입니다.
‘증언하려 하면’(θέλωσι μαρτυρεῖν)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they would be willing) ‘그들이 --하기를 원한다면’이란 뜻이고, 뒤의 동사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testify) ‘증언하기를’이란 뜻으로서 둘을 합하면 ‘증언하기를 그들이 원한다면’이란 뜻입니다.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ὅτι κατὰ τὴν ἀκριβεστάτην αἵρεσιν τῆς ἡμετέρας θρησκείας, ἔζησα Φαρισαῖος.
that according to the strictest sect of the ours religion, I lived (as) pharisee
‘내가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 (ἔζησα Φαρισαῖος)는 직역하면 ‘내가 바리새인으로 살았다’[ I lived (as) pharisee]는 뜻이고, 동사는 부정과거로서( I lived)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이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 아주 열심인 유대교인이었으므로, 지금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교인들도 바울이 가장 엄한 바리새파를 따라서 철저한 율법주의 생활한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한 유대교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즉 유대교인들이 다 알고 있듯이 과거에 바울은 유대교인들 중에서 가장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철저한 유대교 골수분자가 기독교인으로 변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뼛속까지 철저히 공산주의 사상으로 물든 사람이 목사로 변한 것(과거 대광고등학교 교목이신 김*수 목사)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180도 변한 것처럼, 평양에 유명한 깡패가 예수님 믿고 이기풍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 믿은 것도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령님께서 심령에 강력하게 역사하여, 회개와 중생과 믿음의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처럼 불신자가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6절.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now I am standing trial for the hope of the promise made by God to our fathers;
이제도--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καὶ νῦν ἐπ’ ἐλπίδι τῆς εἰς τοὺς πατέρας ἡμῶν ἐπαγγελίας γενομένη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and now for hope of the to the fathers of us promise having been made by the God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지금 바라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주신’(γενομένης)은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made)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주신 약속을 가리킵니다.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ἕστηκα κρινόμενος,
I have stood being judged
직역하면 ‘심문 받으면서 내가 서 있다’는 뜻인데,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심문 받으면서’(κρινόμενος)는 현재 분사 수동태이고(being judged), ‘내가 서 있다’(ἕστηκα)는 완료형입니다(I have stood).
1. 바울이 베스도 총독 재판정에 서서 심문을 받는 이유는 무슨 형사적인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울도 바라기 때문에 심문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이란 메시아와 부활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 하였음이니라.
그런데 이 씨에 대한 약속은 단수로서 한 자손을 가리키며,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조상 다윗에게도 자손에 대한 축복과 메시아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2-13.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시편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메시아와 부활에 대한 약속을 하셨는데, 바울은 이 약속을 믿은 것 때문에 베스도 총독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7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promise to which our twelve tribes hope to attain, as they earnestly serve God night and day. And for this hope, O King, I am being accused by Jews.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εἰς ἣν τὸ δωδεκάφυλον ἡμῶν, ἐν ἐκτενείᾳ νύκτα καὶ ἡμέραν λατρεῦον, ἐλπίζει καταντῆσαι·
to which the twelve tribes of us, in earnestness night and day serving, hope to attain
직역하면 ‘이것을 우리 열 두 지파들이, 간절히 밤낮으로 섬기면서, 얻기를 바라고 있다’란 뜻입니다.
‘간절히 밤낮으로 섬기면서’에서 동사(λατρεῦον)는 현재분사로서(serving) 현재도 계속 섬기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얻기를 바라는’(ἐλπίζει καταντῆσαι)은 주어가 ‘우리들의 열두 조상들’이고, 앞의 동사는 현재형으로서(hope) 현재도 바라고 있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attain) 단호하게 얻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περὶ ἧς ἐλπίδος ἐγκαλοῦμαι ὑπὸ Ἰουδαίων, βασιλεῦ.
concerning which hope I am accused by Jews, king
직역하면 ‘왕이여, 이 소망으로 인해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란 뜻입니다.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ἐγκαλοῦμαι)는 현재 수동태입니다(I am accused).
1.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이 약속이란 메시아와 부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약속을 잘 알고서 열두 지파 모든 유대인들이 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왕국에 참여하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소망하면서 살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신약시대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영생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처럼,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왕국에 참여할 것을 간절히 사모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메시아 왕국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얻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켜야 메시아 왕국에 들어갈 줄로 알지만, 실상 율법을 어긴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메시야 왕국이 지상에 설립될 것으로 믿었으나, 바울은 메시아 왕국이 부활 천국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점에서 유대교인들과 바울의 차이점이 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바울은 자신을 공판하고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자기가 무슨 형사적인 범죄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 왕국과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에 고소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바울이 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것과 ② 이 예수님이 부활하여 메시아임을 입증하신 것과 ③ 예수님 믿으면, 부활하여 영생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믿은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핵심적 차이점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y is it considered incredible among you people if God does raise the dead?
당신들은--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τί ἄπιστον κρίνεται παρ’ ὑμῖν,
why incredible is it judged by you,
직역하면 ‘그것이 당신들에게 못 믿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까’라는 뜻입니다.
‘판단되다’(κρίνεται)는 현재 수동태입니다(is it judged).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εἰ ὁ Θεὸς νεκροὺς ἐγείρει;
if the God dead raises?
‘살리심을’(ἐγείρει)은 현재형으로서(raises) 지금도 살리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맨 앞의 단어(εἰ)은 원래 ‘만일’(if)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접속사 (that)로 번역함이 좋습니다. Linguistic Key. 335.
1. 여기서 바울은 논쟁의 가장 핵심 사항인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의 조상인 다윗은 메시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부활에 대해서 말했는데, 왜 당신들 유대인들은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시에서 메시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했습니다.
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이 다윗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처럼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2년이 지난 AD 32년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그냥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약 성경에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부활에 대한 예표적인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렸고, 열왕기하 4장에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다시 살렸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37장에는 해골 떼가 다시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나 바울도 부활을 믿는데, 베스도 같은 이방인은 부활을 지독한 미신이라고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Corneliu Tacitus: 56-117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정확히 기록하면서도 부활에 대해서는 지독한 미신(deadly superstition)이라고 배척했습니다. (Annals, 15권 44)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사도 시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정통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부활하시고 성령으로 와 계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9절.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I thought to myself that I had to do many things hostile to the name of Jesus of Nazareth.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ἐγὼ μὲν οὖν ἔδοξα ἐμαυτῷ πρὸς τὸ ὄνομα Ἰησοῦ τοῦ Ναζωραίου, δεῖν πολλὰ ἐναντία πρᾶξαι·
I indeed therefore I thought in myself to the name of Jesus of Nazareth, to be necessary many things contrary to do
직역하면 ‘그러므로 나 자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것들을 행해야 마땅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나도’(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에서 동사(ἔδοξα)는 부정과거로서(thought) 확실하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행해야 마땅하다고’(δεῖν---πρᾶξ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necessary),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o) 확실하게 꼭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이제 바울은 과거에 자신이 유대교 지도자로 있을 때, 지독하게 기독교를 핍박하다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사건을 차례로 간증하면서 전도합니다.
즉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지독한 이단으로 생각해서, 무섭게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산헤드린 최연소 공회원으로서 산헤드린 공회의 전권을 의장인 대제사장에게서 위임받아서 예루살렘 교인들을 잡아다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교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군사들을 이끌고 이웃 나라의 수도인 다메섹에까지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려고 갔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과거에 유대교인 누구보다도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13절에는 바울 자신이 핍박자요 포행자요 훼방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독한 핍박자 바울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된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0절.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is is just what I did in Jerusalem; not only did I lock up many of the saints in prisons, having received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but also when they were being put to death I cast my vote against them.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ὃ καὶ ἐποίησα ἐν Ἱεροσολύμοις,
which also I did in Jerusalem
직역하면 ‘예루살렘에서도 이 일을 내가 행했고’란 뜻입니다.
‘행하여’(ἐποίησα)는 부정과거로서(I did) 단호하게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καὶ πολλούς τε τῶν ἁγίων ἐγὼ ἐν φυλακαῖς κατέκλεισα
and many also of the saints I in prison I locked up
직역하면 ‘또한 많은 성도들을 내가 옥에 가두었고’란 뜻이고,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두며’(κατέκλεισα)는 부정과거로서(I locked up) 철저하게 가둔 것을 가리킵니다.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τὴν παρὰ τῶν ἀρχιερέων ἐξουσίαν λαβών,
the from the chief priest authority having received
‘받아 가지고’(λαβώ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eceived) 단호하게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ἀναιρουμένων τε αὐτῶν, κατήνεγκα ψῆφον,
being put to death then they, I cast against (them) vote
직역하면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 내가 벌주는 투표를 했다’는 뜻인데,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서 동사(ἀναιρουμένων)는 현재분사 수동태이고(being put to death),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에서 동사(κατήνεγκα)는 부정과거입니다[I cast against (them)].
1.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는 일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대제사장에게서 기독교를 핍박하도록 산헤드린 공회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지독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자, 예루살렘 교인들은 사도 외에는 모든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예루살렘 교회는 문을 닫았습니다.
사도행전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뿐만 아니라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스데반을 유대교인들이 돌로 쳐 죽이는데 책임자 노릇을 하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공회원으로서 가편 투표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7:57.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이렇게 바울은 유대교의 지도자로서 기독교인을 무지막지하게 박해하는 핍박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독한 핍박자가 도리어 기독교인으로 변화된 것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교인들은 과거에 바울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바울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11절.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s I punished them often in all the synagogues, I tried to force them to blaspheme; and being furiously enraged at them, I kept pursuing them even to foreign cities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καὶ κατὰ πάσας τὰς συναγωγὰς πολλάκις τιμωρῶν αὐτοὺς,
and in all the synagogues often punishing them,
‘형벌하여’(τιμωρῶν αὐτοὺς)는 ‘그들을 형벌하여’란 뜻이고, 동사는 현재분사로서(punishing) 계속 형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ἠνάγκαζον βλασφημεῖν,
I was compelling to blaspheme
직역하면 ‘모독하도록 내가 계속 강요했다’는 뜻입니다.
‘모독하도록’(βλασφημεῖ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laspheme), ‘내가 계속 강요했다’(ἠνάγκαζον)는 미완료과거로서(I was compelling) 계속 강요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περισσῶς τε ἐμμαινόμενος αὐτοῖς
exceedingly then being furious against them
‘격분하여’(ἐμμαιν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being furious) 격분해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ἐδίωκον ἕως καὶ εἰς τὰς ἔξω πόλεις.
I kept persecuting as far as even to the foreign cities
‘박해하였고’(ἐδίωκον)는 미완료과거로서(I kept persecuting) 계속 박해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핍박하자 사도들 외에는 모든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다시 모여서 예배하고, 또 불신자들에게 전도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는 회당이 있었는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를 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회당 예배 때는 회당장이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할 사람이 있으면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기 때문입니다(눅 4:16, 행 13:15).
그럴 때 기독교인들은 나가서 구약 성경을 읽고 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예루살렘 밖에 있는 여러 회당에서 참석자들을 모아 놓고, 강제로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는 모독적인 말을 하게 해서, 이 말을 안 하면 기독교인이라고 단정하여 잡아갔습니다.
헬라의 황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유대교인들을 핍박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모독하는 말을 강제로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할 때, 예수님을 저주한 것은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말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처럼 베드로는 완전히 예수님을 부인한 자였으나, 다시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는 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고,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시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불신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 지독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여 예수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예루살렘 도성에서 기독교를 박멸했고, 유대 지방에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자 핍박을 받던 기독교인들이 유대 나라가 아닌 이웃 나라에까지 흩어졌습니다.
이 이웃 나라 중에 유대 나라 바로 북쪽으로 아람 나라가 있는데, 그 수도가 다메섹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까지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려고 군사를 이끌고 갔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기독교를 박멸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12절.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ile so engaged as I was journeying to Damascus with the authority and commission of the chief priests,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Ἐν οἷς πορευόμενος εἰς τὴν Δαμασκὸν μετ’ ἐξουσίας καὶ ἐπιτροπῆς τῆς τῶν ἀρχιερέων,
during which journeying to the Damascus with authority and commission of the chief priests
‘갔나이다’(πορευ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journeying) ‘가고 있었나이다’는 뜻입니다.
1.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저주하게 만들고, 기독교인들을 잡아가는 일을 위해서 외국 성인 다메섹에까지 갔습니다.
대제사장들의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은 산헤드린 공회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최고 재판기관인데,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권을 개인이 전권 위임받아서 바울이 재판도 하고 형벌도 주고 체포하고 죽이는 것까지 일체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군사들까지 이끌고 이웃 나라인 아람 나라의 수도인 다메섹에 가고 있었습니다.
이 다메섹은 구약시대에도 많이 나오는 성읍으로서 아람 나라 군대 장관인 나아만 장군이 다메섹의 강물들은 요단강물보다 더 맑지 않냐고 엘리사의 말에 대해 투정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 다메섹은 오늘날 ‘다마스쿠스’라고 하는 곳인데, 세계 최고 오래된 도성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 당시에 이 다메섹에는 수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어서, 바울의 핍박을 피해서 도망간 기독교인들이 다메섹에 가서 많이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대제사장들의 전권을 위임받아서 다메섹에까지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려고 했습니다.
원래 현직 대제사장은 한 사람인데, 이전에 대제사장을 했던 증경 대제사장들도 합세해서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그의 장인인 증경 대제사장 안나스가 먼저 예수님을 재판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기독교인을 핍박하는데, 유대 나라의 전권을 완벽하게 위임받아서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바울이 다메섹에까지 가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면, 기독교회가 완전히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펴져가기 이전이므로, 다메섹 교인들이 사라지면 이제 기독교는 힘을 잃고 파멸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독한 핍박자 사울(바울)이 변하여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된 것을 보고, 낙심말고 기도하며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불신자였으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복된 생활 하시고, 복된 가정과 자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