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6]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④
유진 벨 선교사가 재혼한 아내와 함께 광주에서 선교의 결실을 맺고 있었을 때 그곳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들이 세운 학교였던 수피아여학교에서 3월 10일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신자들과 그 지역 사람들에게 독립정신을 불어넣었던 노력이 결국 결실로 맺어졌지만 교회당은 몰수당했고 일본은 더욱 거세게 독립운동을 진압하고자 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되었던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3월말에는 경기도 화성(당시 수원군) 발안 장터에서 1000여 명이 만세운동을 했고, 일본군은 우리나라 사람을 앞세워 만세운동을 심하게 진압한 것을 사과하러 왔으니 제암리 교회당 안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날이 4월 15일이었고 일본군은 교회당 문을 닫은 후 모인 22명을 총칼로 학살했는데 극적으로 탈출한 1명을 제외한 21명 전원 사망하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까지 학살해서 총 29명이 학살당했고, 교회당을 포함한 마을 가옥 30여 채를 불태워버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언더우드를 포함한 많은 선교사들이 현장을 찾았고, 미국 선교사들은 참상을 사진으로 찍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해서 「수원에서의 잔악행위에 관한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미국으로 보냈으며, 일본의 만행을 미국과 세계에 알렸던 것입니다. 이 사건 외에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학살과 고문이 이어졌고 미국 선교사들은 사건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분주했는데, 당시 유진 벨 선교사의 아내 마가릿 역시 학살 사건 조사에 참여한 뒤 광주로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으나 3월 26일 수원 병점역 부근에서 열차와 충돌한 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