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그리움 말고 외 1편
김인자
살에 닿았으면,
뼈에 닿았으면,
물컹물컹 사무치는 거 말고
닿을락 말락 그런 거 말고
보다 가까이 다가왔으면,
비로소 마침내 드디어 살을 뚫고
콕콕 뼈를 찔렀으면,
아주 끝장을 보았으면,
말했잖아,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거 말고,
거친 호흡과 눈을 부릅든 야생성
으르렁 이빨을 드러내며
으스러진 나의 관절 마디마디를
빠드득빠드득 씹는
하이에나를 보고 싶은 거지
명사도 동사도 형용사도 아냐
그리움은 날것이며 욕망적인 것
살과 뼈가 닿는 것
닿아 으스러지는 것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것
예배처럼 경건한 거 말고
아름다워서 눈부신 것도 말고
죽을 듯 처절했으나
감쪽같이 무해한,
고요가 슬픔에 이를 때
이제 막 도착한 슬픔은 풋자두처럼 시고 쓰다 나는 날마다 슬픔을 안고 잠이 들었으므로 뺨에는 눈물자국이 염전을 이루었다 그 무렵 수시로 나를 덮쳐오던 슬픔은 공용화장실에 걸린 대형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얇고 질겼다 고요가 슬픔에 닿을 때만 환영처럼 나타나는 사람, 그가 누군지 알고 싶었으나 인상착의나 어떤 심증조차 없으니 부를 이름 또한 있을 리 만무한, 분명 나를 보러 온 사람인데 아무리 소리쳐도 입술을 뚫지 못하는 말, 그는 내가 그를 부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성큼성큼 골목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를 볼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으리라 그냥 야윈 등을 쓰담쓰담해주고 싶을 뿐,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망치로 내리치듯 말했다 슬픔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니 끌어안으라고, 아비규환 속에서 비로소 나는 무엇도 거부하지 않고 때가 되면 밥 먹듯 주어진 슬픔을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러고 보니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식당이고 우리는 슬픔으로 지은 그 밥 먹으러 세상에 온 가엾은 짐승들
김인자
강원도 삼척 출생, 1989년 《경인일보》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겨울 판화. 나는 열고 싶다 상어 떼와 놀던 어린 시절 슬픈 농담
당신이라는 갸륵 우수아이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