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동호 | 날짜 : 09-12-11 15:36 조회 : 1724 |
| | | 놀부들 세상
정동호 제비가 사라져간다. 처마 끝에 둥지를 틀어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온 새. 선과 악을 가릴 줄 알고 착한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던 그 새가 점점 사라져간다. 지난 가을에 떠났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 우리는 그 새를 반갑게 맞아주고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던가. 정을 잊지 않고 사람의 품으로 찾아오기에 더 고마워하면서.
둥지를 틀 때 질흙과 지푸라기며 똥이 마루에 떨어지지 말라고, 새끼들이 떨어지면 다칠까 봐 둥지 밑에 받침대를 만들어 그들의 안전을 지켜 주기도 했었지. 참새나 까치처럼 농사에 피해도 주지 않고 작물에 해로운 벌레들만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로운 새가 아니던가. 맛있는 먹이를 부지런히 물어다 새끼들 입에 먹여주는 어미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운 가족 사랑도 배웠지. 수십 마리씩 빨래 줄에 나란히 앉아 ‘지지배배’ ‘지지배배’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아주던 그 제비들이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렸으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자주 만나던 친구가 어느 날 소식을 끊어버린 느낌이다. 친구를 내가 먼저 배신했거나 그가 나를 배신했거나 뒷맛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제비를 떠올리면 흥부전이 생각난다. 착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가치관과 동물도 은혜 갚을 줄 안다는 이야기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옛날 초등학교 책에서나 고전을 통해 수없이 배우고 익혀 왔던 그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 국민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왔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세계화와 함께 무한 경쟁사회에 들어 놀부 예찬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 했다. 세계화를 부르짖을 때 경제교육의 유명강사들이 특별한 진리라도 찾은 듯, 변화사회에 적응하려면 놀부와 같은 적극적인 사고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다. 교육의 효과일까. 경제가 최우선 가치관으로 자리잡아가면서 세상은 차츰 놀부세상이 되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착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흥부취급을 받고 놀부 같은 사람들이 쩡쩡거리며 잘사는 것만 같아서이다.
얼마 전 어느 분의 수필에서 ‘흥부를 심판하자’란 제하의 글을 읽고 나는 한없는 비애를 느낀 일이 있다. 아무리 경제제일주의 시대를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 민족의 보편적 가치관마저 깡그리 묵살시키는 것 같아서 말이다. 흥부전의 주제는 선악의 문제이지 어디 돈의 문제던가.
꼭 경제논리와 결부시킨다 해도 그렇다. 흥부전 어디에도 놀부가 부자 된 것이 그의 근면성이나 노력 때문이라 말한 곳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안다. 흥부의 가난 또한 게으름 때문이라 말하지 않았다. 욕심 많은 형이 부모유산을 독차지 하고 동생을 빈손으로 내쫓지 않았던가. 흥부가 처자식을 데리고 쫓겨나 언덕에 움막을 짓고 빌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멍청해서 그렇다고만 볼 것인가. 땅 한 평 없는 가난뱅이, 끼니를 굶는 처지에 일자리가 있었다면 왜 매품까지 들라 했겠는가.
재산문제로 형제와 싸우고 법정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면 멍청하단 말을 면하겠는가.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데모라도 한다면 ‘저들은 왜 항상 저 짓거리냐’고 말 할 사람들이 누구던가.
서민들은 세금 한두 푼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가는 거미줄도 걸릴까 두려워하면서 법망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때는 흥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까지 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면서 말이다. 욕심 많은 놀부들은 어떤가.
금이 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멀쩡한 제비 생 다리도 서슴없이 분지른다. 박 한 통 깨서 낭패를 봤으면 그만 둘 일을, 두 통 세 통 계속 톱질하다 패가망신 한다. 어려운 이웃은 안중에도 없고 배고픈 동생이 밥 한 술 달라 하면 뺨을 때려 내치고 있다. 이러한 놀부를 경쟁시대에 배워야 할 가치라 한다면 세상이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서울 한 복판에 살면서 물 좋은 곳 농토를 사기 위해 멀쩡한 주민등록을 째 농민으로 위장하고, 어려운 농민들이 논농사 직불금 달라하면 소작권도 뺏어 버린다. 법망 뚫기를 까마귀 거미줄 뚫듯 하고 세금 탈루를 식은 죽 먹듯 잘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잘 사는 세상이다. 인사청문회 나왔던 인사들 중에 놀부 아닌 사람이 있던가. 놀부들 만세다.
그러니 제비인들 제 다리가 걱정되지 않겠는가. |
| 임병식 | 09-12-11 16:17 | | 정동호선생님, 잘 계신지요?
평생을 농민과 함께 생활하신 분이라 글이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고향에는 마을 사람들의 산이 거의 없습니다. 땅투기 바람이 몰아칠때, 서울사람들이 전부 사버렸기 때문이지요. 어느 장관 후보자는 그랬지요. '땅을 사랑하기 때문에 샀다'고 그런데 직불금 문제는 요란하거니 삼베바지에 방구세듯 슬그머니 잦아들고 만것 같더군요. 사람들이 땅을 그만 저만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ㅎㅎ | |
| | 정진철 | 09-12-11 20:22 | | 수필가협회 송년회도 못가고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정선생님의 신놀부전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군요 놀부 만세!!! ㅎㅎㅎ 요즘 방송을 보니 또 놀부들의 쇼가 펼쳐지고 있는것 같습니다~하늘에 맹세코의 한푼도 안먹었다는 진실게임이 남자 놀부도 여자 놀부도 또 시작되더군요~ 정치적인 흑막이야 있건 없건 그들은 놀부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ㅎㅎ | |
| | 임재문 | 09-12-12 03:40 | | 처가에 가면 아직도 제비가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치는 모습을 해마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걸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제비의 그 날렵한 몸매때문에 춤잘추고 먹고 사는 사람도 제비라고 합니다. 저는 춤은 잘못추지만 사람들에게 그러지요. 흥부제비라고 ㅎㅎㅎㅎ박씨 물어다 주는 착한 제비 ㅎㅎ | |
| | 정동호 | 09-12-12 07:05 | | 두 분 임회장님! 변영희 선생님과 정진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놀부가 아니면 배겨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선행보다 악행이 판을 치고, 착한 사람보다 악질들이 잘 사는 것만 같아 서글퍼 집니다. | |
| | 최복희 | 09-12-12 11:53 | | 공감가는 글입니다. 요즘 현대인 들 중에 선악을 먼저 생각지 않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돈에만 욕심내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니 제비인들 제 다리가 걱정되지 않겠는가'
끝부분이 절묘합니다. | |
| | 정동호 | 09-12-13 07:53 | | 최복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경제보다 돈보다 인간성 회복, 도덕성 회복이 우선시 되는 정치와 사회가 아쉽습니다. | |
| | 일만성철용 | 09-12-14 06:02 | | 몇년 전 캄보디아에 갔더니 푸논펜에서 제비를 잡아 500원씩에 아이들이 팔고 있더군요. 그걸 사서 놓아주면 행운이 온다는 것이지요. 금년 마라도에 갔다가 가파도에서 일박을 했는데 거기 청보리 밭에서 제비가 날고 있었구요. 제비를 제비라 하는 것은 젭젭 운다 해서구요. 제비가 우리들 집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은 인간이 자기들의 천적인 뱀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군요. | |
| | 정동호 | 09-12-14 07:47 | | 일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캄보디아도, 가파도도 아직은 착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나봅니다. 그 이야기를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은 글감이 되었겠네요. | |
| | 박영보 | 09-12-14 17:30 | | 흥부가 되어 제비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부러진 다리로 흥부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는 어린 시절이 생각 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 |
| | 정동호 | 09-12-14 18:47 | | 박영보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부들이 멸시를 받는 세상인 것 같아 글을 써 보았습니다. | |
| | 이희순 | 09-12-16 09:24 | | 진정한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정직한 마음가짐,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도 정작 마음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흥부처럼 자녀를 양산했더라면 오늘처럼 낮은 출산율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 |
| | 정동호 | 09-12-16 16:12 | | 이희순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랜 만이네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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