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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완전 폐쇄한다던 핵무기 연구소(Nuclear Weapons institute)는 무엇이었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지난달 18일 공개된 뒤 보수 언론의 비난 논평이 쏟아지는 중이다. 조선일보·중앙일보는 지난달 20일 사설에서 ‘객관적 사실보다 김정은 말을 더 믿는다는 전직 대통령’, ‘북 비핵화 실패를 동맹 탓으로 돌린 전직 대통령’이라며 각각 비판의 날을 세웠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동맹’인 미국에 돌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라는 지적이다.
언론이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무작정 ‘비난’하기 앞서 주장 그 자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 실패’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핵심 주장은 “영변 핵단지의 불가역적 폐기와 핵무기 연구소의 완전 폐쇄가 갖는 의미를 (미국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290쪽)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처음 내놓은 이는 문 전 대통령도 밝히듯 그 자신이 아닌 영변 핵시설을 여러차례 방문한 미국의 사실상 ‘유일한’ 핵 과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전 스탠퍼드대학교 국제안보협력센터장)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이 이뤄지기 몇달 전인 2018년 9월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우리가 앞서 취한 조치들에 더하여 핵무기 연구소나 위성발사장의 전면 가동 중단, 핵물질 생산시설의 불가역적 폐쇄 등 유의미한 조치들을 계속 취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친서를 보낸다. 헤커는 이 친서가 일반에게 공개된 뒤인 2023년 1월 펴낸 책 ‘핵의 변곡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언급을 한다. 김 위원장이 폐쇄를 언급한 “핵무기 연구소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두뇌”이며 이 시설의 “완전 폐쇄는 전에 등장한 적이 없었던 주목할 만한 제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연구소의 과학자·엔지니어 없이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결국 “핵 프로그램의 궁극적 종식을 뜻한다”는 결론을 낸다.
미국은 이 의미를 알았을까. 존 볼턴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2022년 2월 사실 확인을 한 뒤 헤커가 내리는 결론은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이 내민 카드를 진지하게 검토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신은 안타깝고 한스럽지 않은가.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