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오늘
교직에 몸담았다가 정년을 맞아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온 지 3년째다. 지난날 교단생활 여러 학교를 옮겨 다녀 알게 된 동료나 선후배도 여럿이다. 밀양 산내면 얼음골 아래 초등교사로 출발해 도중에 중등으로 옮겨 창원과 김해를 거쳐 거제섬으로 건너가 정년을 맞아 뭍으로 돌아왔다. 근무지에서 인연이 닿은 분들 가운데 쉽게 잊은 이들이 다수고 기억에 남은 분은 많지 않다.
중년 이후 시내 학교 근무할 적이었다. 나는 학교를 옮기면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곤 만기를 채웠다. 거기는 주택지 학교라선지 아이들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어 동료들은 쉬 떠나도 나는 내리 5년을 다 채우고 떠나왔다. 그때 같은 교과를 가르친 동료가 나로 인해 학교 평판이 나아졌다고 했다. 누구든 부임하면 어서 떠날 궁리부터 하는데 미련스럽게도 꿋꿋하게 버텨주어서였다.
그 학교 5년을 근무할 때 관리자들도 얼굴이 자주 바뀌어 정년을 맞았거나 옮겨간 이도 다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 교감으로 연이 닿은 한 분은 이후 내가 옮겨간 학교 교장이 되어 와 다시 만났는데 지금도 연락이 오가는 사이다. 그는 승진해 양산과 김해를 거쳐 세 번째 학교였는데 나는 한 번만 옮겨 관내에 눌러 근무했다. 평교사와 관리자는 그 직이 맡은 역할이 같을 수 없다.
그 시절 주택지 학교 내 뒤를 이어 나이 차가 그리 나지 않던 교장이 부임해 왔다. 그는 교사 시절 물리를 가르쳤다고 들었는데 1년 만에 특목고인 과학고 교장으로 옮겨갔다. 그 교장과 짧게 스쳐 지난 인연이라 얼굴이 희미해 성만 기억에 남고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말수가 적은 그분이 어떤 기회 교직원들 앞에서 불쑥 한마디 던졌던 말로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자고 했다.
세월이 흘러 흘러 나도 교직에서 은퇴해 자연인이다. 올봄부터 시니어 봉사활동으로 평일 오후 근교 농촌 아동 안전지킴이 역을 맡고 있다. 봉사활동은 여가 활용에 지나지 않고 강둑이나 들녘 산책이 좋은 소일거리다. 그보다 더 유익한 시간 보내기는 지역 도서관에 머물며 책장을 넘김이다. 요즘처럼 장마철 소나기나 폭염을 피하기는 도서관 열람실만큼 좋은 곳이 없을 듯하다.
봉사활동 시간대가 오후인데 이번 주 아이들이 여름 방학에 들면 8월 한 달은 오전으로 근무 시간을 당겨준단다. 아동을 지켜줄 안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해 노인들이 폭염에 노출되는 건강을 염려해서인 듯하다. 봄부터 지금껏 5개월이 지나는데 근무는 오후여도 새벽같이 서둘러 길을 나선다. 그것도 한 번도 같은 동선으로는 다니질 않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내는 셈이다.
새벽에 장마 막바지 열대야를 식혀줄 세찬 소나기가 내리다 그친 칠월 하순 수요일이다. 여전히 이른 아침 길을 나서 소답동으로 나가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김해 외동으로 오가는 140번 버스를 탔다. 시외 구간으로 오가는 좌석버스는 근교 회사로 다니는 직장인들이 피곤한 기색으로 졸며 가기도 했다. 무점에서 창원 경계를 벗어난 좌곤리를 거쳐 진영 읍내에서 내렸다.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룬 진영 신도시에서 주호공원으로 나가 주천교를 건넜다. 주남저수지 물길이 진영을 거쳐 대산 들녘 유등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샛강이 주천강이다. 거제에서 시작된 14호 국도는 부산으로 향하고, 진해 기점 25호는 밀양으로 나뉘는 분기점 옛길 주천교를 건너 장구산배수장에서 국도 굴다리에서 대산 들녘으로 들었다. 우암리에 딸린 중포마을을 지났다.
냇바닥 노랑어리연과 둑길 가장자리는 무궁화가 피어 화사했다. 농수로 언저리에 콩과 들깨를 심어 가꾸는 한 농부가 낫으로 순을 잘라주었다. 콩잎처럼 웃자란 들깨 순도 멱을 날려 키를 낮추어 가을에 열매를 많이 맺게 하기 위함이었다. 지난번 밀포 천변을 지나다 외딴집 할머니로부터 구한 들깻잎이 있음에도 버려지는 깻잎이 아까워 봉지에 채워 담아 가술까지 걸어 잎을 가렸다. 24.07.24
첫댓글 잘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반복의 일상인 제게는 꼭 필요한 한 문장
<어제와 다른 오늘> 옮겨 심겠습니다.
더운 날 잘 지내시지요?
앞서 언급한 ‘어제와 다른 오늘’은
사실 옛글에 나온 ‘日新又日新’의 변주일 테죠.
오늘 뜨는 아침 해는
어제의 그 해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늘 건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