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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에게 맡겨진 임무는 아주 중요하다. 문지기가 책임을 등한시하면 모든 침입자들에게 집을 열어 놓은 것이 된다. 만약에 보초가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린다면, 전 군대가 놀라거나 갑자기 죽게 된다. 만약에 문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이 충실하지 않으면, 요새는 전투 없이 빼앗김을 당하고 주둔군은 죽게 된다. 배를 다루는 일에 전혀 무지한 사람이 어떤 배의 선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하자. 그는 돛대 위에 기어 올라가는 사람, 돛을 달고 있는 사람, 그리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고 있는 사람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가 수로를 안내하는 키잡이를 보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키잡이를 게으른 선원으로 보기 쉬울 것이다. 그저 느긋하게 별들이나 응시하면서 나무 토막 하나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즐거워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은 수로 안내인의 임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임무보다 더욱 중요하며 그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그 배의 항해에 핵심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더 큰 위엄을 지닌 의무나 은사가 따로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의무는 바로 이 경계이다. 무선 교환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지원자들은 대기실의 전신 전달 소리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대기실에서 고용주의 사무실로 급히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웃으면서 돌아왔다. “내가 일자리를 얻었소”하고 소리 쳤다. “아마 당신들은 대기실에서 너무 떠들어 대고, 주의를 집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용주의 전신 전달문을 못 들었을게요. 그 전달문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암호문을 푸는 즉시 나의 사무실로 제일 먼저 오는 사람이 고용될 것입니다’ 라고 되어 있었소”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하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진실로 마음을 경계하고 준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당신의 영적 대적에 대한 영적 경계는 안전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마음의 준비와 경계는 잘 준비 되어 있으십니까? 벧전 5:8-9 8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목 : 마귀를 대적하라 성경 : 벧전 5:8-9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계 즉, 영적 세계라고 합니다. 영계는 인간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가리워져 있고 따라서 영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마귀에게 영적으로 도적질과 죽임을 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신의 환경과 조건에 비추어 이해하려고 하며 또 이해되지 않는 일은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이 있어서 조종하고 역사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우연한 일이고 또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처럼 보여지나 그것이 마귀의 짓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회인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 1805-1880)는 그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지역의 마을 처녀 ‘고트리빈 디투스’를 괴롭히는 악한 영과 4년에 걸쳐서 싸워서 (1840년 2월-1843년성탄절)이김으로 그의 신앙관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신앙각성운동” “성령의 역사하심” “기독교의 갱신”과 오늘날도 “예수님은 역사하신다”는 살아있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마귀는 시대를 초원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하여 마귀의 모든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얻아야 하며 그 행위를 분별하여 대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행위를 분별치 못하면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결국 실패자로 전락을 하고 마는 것 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어떻게 역사하며 우리는 어떻게 대적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마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고 대적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여러가지 생각을 주입시키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 들일 때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여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릇된 생각이 다가올 때 그 즉시로 그것을 물리치고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문득 문득 다가오는 그릇된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마귀의 유혹에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격언에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는 막을 수 없지만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그릇된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릇된 생각이 둥지를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생각을 조절하지 못하고 마귀의 올무에 걸려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롯 유다가 바로 자기의 생각을 조절하지 못하여 실패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3:2을 보면 "마귀가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롯 유다는 그릇된 생각이 다가올 때 이를 밀어내지 못하고 집착하여 스승 예수를 팔고 말았던 것입니다. 차원이 높은 세계의 존재는 자기보다 낮은 차원의 세계를 다스리는 법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 등등보다 한 단계 더 높기 때문에 그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립니다. 동물들도 한 차원 낮고 힘이 약한것들을 다스립니다. 거북이의 물고기 잡아 먹는 법을 아십니까? 거북이가 바다 밑에서 마치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혀끝에다 기어 다니는 벌레를 올려놓고 입을 벌리고 있다가 물고기가 영문도 모르고 벌레 잡아먹으로 왔다가 순간 낚워 채서 잡아 먹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한차원 높은 마귀도 우리에게 갖은 미끼를 던져놓고 미혹과 유혹의 수단을 부리며 할키고 상처내고 죽이는 작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단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시기를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그를 더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8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육적인 성품에서 비롯되는 생각들은 거짓되고, 경건하지 못하며, 미워하며, 시기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경건성, 옳은것, 정결성, 사랑할 만한 것, 칭찬할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3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근신하라" “주님이 오실때까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생각이 복잡해지거나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생각이들 때 그것을 집착하지 말고 즉시 그 악한 생각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악한 생각을 가져다 주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라고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때 마귀는 틈을 얻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고 대적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할 뿐 아니라 육체를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질병의 원인은 여러가지인데 그것을 성경적으로 분류하면 육신의 연약함과 실수로 오는 경우가 있고, 죄값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오는 경우가 있고, 겸손하게 하기 위한 채찍으로 오는 경우도 있으며,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질병은 마귀의 역사로 인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예로 누가복음 4:39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을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열병은 인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 인격체를 꾸짖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꾸짖으셨고 꾸짖은 결과 열병은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열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인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열병은 마귀의 역사였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책망하셨고 그로써 마귀는 떠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같은 예를 우리는 마가복음 9:25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어릴 때부터 벙어리되고 귀먹은 아이를 고친 일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예수님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정상아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병도 역시 악한 영 때문에 일어난 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질병에 대한 이해와 이를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면 약국으로 병원으로 갑니다. 물론 약국에도 병원도 가봐야 하지만 그것만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한번쯤은 질병의 원인에 대해 신앙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병도 무조건 육신의 연약함이나, 생리적 현상으로 일어난 불가피한 것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육신의 질병이 마귀(귀신)의 역사로 일어난 것 이라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며 따라서 약이나 의술로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을 때 병의 원인을 생각해 보아야 하며 만약 마귀의 역사로 판단되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꾸짖어야 합니다. "이 더러운 병마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몸에서 떠나갈지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마귀는 더 붙어 있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여 대적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과 육체를 괴롭힐 뿐 아니라 양심까지도 괴롭힙니다. 곧 마귀의 참소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마귀의 역사로 인한 양심의 괴로움을 대적하지 못하고 깊은 죄책감에에 사로 잡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양심을 공격하여 약화시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무력한 인간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참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성령의 책망이 우리의 양심을 두드리는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책망은 성도들의 죄를 깨닫게 하며 성도들의 인격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시켜 줍니다. 성령의 책망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 앞에 서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참소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의 참소는 성도들의 심령을 괴롭게만 하며 결국에는 불평으로 이끌고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회개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의 속삭임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너는 죄가 너무 많고 무익한 존재이며 회개해도 소용이 없다"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양심을 죄책감으로 약화시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은 우리의 죄책감에서 해방을 시켜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에 죄책감의 무력감을 주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라고 대적할 때 마귀의 역사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과 육체, 양심 뿐 아니라 환경을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마태복음 8:24이하를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다라 지방을 가시기 전 게네사렛 호수를 지나가실 때 호수에서 큰 놀이 일었습니다. 그때 심상치 않게 여긴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주게 되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쫓아 버려야 할 귀신들이 있으며 그 귀신들이 예수님을 바다에 침몰시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마8:26) 그러자 바람과 파도는 곧 아주 잔잔해졌습니다.(마8:26) 바람과 바다는 인격이 없기 때문에 책망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면에는 마귀가 있었고 또 마귀는 책망하면 듣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괴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혹시 나의 잘못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는 아닌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환경을 괴롭게 하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괴로움을 주던 환경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역사하고 있습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마음, 육체, 양심,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모든 활동을 분별해서 능히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고 물리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할때에 예수님의 은혜안에서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첫댓글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가을을 맞이하여 주안에서 성령의 은총이 넘치길 기원합니다 사랑해요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고은빛 회원님,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