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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칠 후 희상이 시간을 내어서 내려왔다.
수동이는 황골에 갔다 온 이야기를 제비처럼 조잘 거렸다.
그런 줄 알았으면 진즉에 시간을 내어서 하루나 이틀쯤 다녀올 걸 하는 생각이 가득했으나 마음 뿐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수동아”
“네.”
“수동이가 벌써 오 학년 이구나.”
“네.”
“공부는 잘 하니?”
네 하는 대답을 기다렸으나 대답이 없다.
애비란 사람이 아들이 제 멋대로 자라게 하고 맨날 애만 보게 하나 하니 얼른 일 년만 버티면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해서 가르쳐야지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입을 암 다물었다.
“엄마 이거 봐요 이거 황골서 잡아온 건데 봐요.”
하면서 선샘에 조개를 가리켰다.
그리고 수동이가 밖으로 나갔다 오더니
“엄마!”
하고 불렀다.
반가운 마음에 희상이 .
“응 왜?”
“엄마 말고, 엄마.”
이런 나 말고 정순을 찾은 것이었다.
순간 희상은 어처구니가 없고 참담했다.
그러나 어쩌랴 정순이 대답을 하고 수동이가
“외할머니가 엄마 불러 오래요.”
그래서 그랬구나. 용단이를 외할머니라고 부르고 정순을 엄마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희상은 쓴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이틀 후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석고개를 가는데 수동이가 석고개 차부까지 따라 왔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둘이서 서울로 가고 싶지만 차부가게에서 담배 껌과 빵을 사 주었는데 빵만 먹고 껌은 동생들과 나누어 먹겠다며 주머니에 넣었다.
버스가 시동을 걸고 부르릉 떠날 때 수동이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희상은 버스에 뽀얀 먼지에 보이지 수동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수동이는 버스가 사라진 잣나무 고개를 멍하니 보다가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다.
주머니를 뒤져서 담배 껌을 꺼내어 입에다 물었다.
봄 소풍 때 진승이가 어른처럼 담배를 피우는 폼을 하고 아이들 에게 나누어 주며
“자 한 대 피워.”
하면 입에다 물고 푸하고 제법 폼까지 잡다가 포장을 벗겨서 씹던 껌을 물었지만 보아주는 사람이 없자. 바로 포장을 벗겨서 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수업에 의욕적이던 신종희 선생은 여름방학 동안에 혼담이 오갔는지 개학을 해서도 바빠지자 교장 선생인 조원영 선생이 대리 수업을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원영 교장은 교장이라는 연역이 말해주듯 교육방법이 확 달랐다.
가끔 일본식으로 급장을 찾기도 해서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국어시간에는
“몇 페이지를 배울 차례죠”
“오십육 페이지요.”
“읽어 볼 사람.”
“저요, 저요, 저요.”
손을 안들은 사람을 가르치며.
“너 왜 손 안 들어, 넌 왜 손 안 들어.”
하면서 겁을 주어서 자신이 없는 학생도 억지로 손을 들게 하고 그중에 제일먼저 자신 있게 손을 든 학생에게 책을 읽게 했고 읽어가는 도중.
“그만 잘 읽었어요, 지금 읽은 내용 중 은혜의 낱말 뜻을 아는 사람.”
“저요, 저요,”
그리고 손을 안든 학생들을 지적하며 넌 왜 손을 안 드느냐고 겁을 준다.
그리고 제일먼저 자신 있게 손을 든 학생이나 손을 자신 없게 들던 학생이 자신 있게 손을 들면 빨리 간파를 해서 그 학생을 지적해서.
“파란 옷 입은 어린이.”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입니다.”
“잘 했어요. 자 박수.”
절대로 자신 없이 손을 드는 학생은 시키지 않았지만 어쩌다 자신 있게 손을 든 사람을 시켜서 공부에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산수도 나와서 풀 사람 해놓고 직접 푼 내용을 설명 하게 하고 꼭 칭찬을 해주었고, 손을 안 든 사람은 겁을 주어 나를 시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다른 곳에 정신을 두지 않게 했다.
새 옷을 입고 온 학생보다도 깨끗이 빨아서 잘 꿰매어 입고 온 길민이를 불러내어 이 어린이의 어머니는 참 근면하고 알뜰히 살림을 하시는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이다음에 과학이 발전하면 커다란 오목 거울을 만들어서 전쟁을 하면 대포알이 날아오다가 녹아 버리게 하고, 먹을 것이 많아지고 풍부해지면 운동선수들이 제일인 때가 와서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학교 짓는 일에 일손이 딸리는지 오 육학년 아이들이 모두 나와 벽돌을 모아놓는 일을 했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증산 녹화 정책에 부응하여 상급생들은 매일 학교 올 때에는 풀을 한 단씩 베어서 등에다 새끼로 멜빵을 지어서 지고 오게 하였는데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학교 뒤에는 제법 큰 퇴비더미가 쌓였다.
운동장이 좁아지자 명호할아버지가 새로 짓는 교실 폭 만큼 밭을 희사해 도자를 불러서 깎아서 정지 작업을 했는데 마당을 오 육학년을 동원해 대충 고르고 운동회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신종희 선생의 결혼식이 있어서 진승이와 복기가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왔는데 손에는 고무로 만든 물총을 들고 와서 쏘면서 자랑을 했는데 몇 칠 후 지둔리 성우가 비닐우산의 우산대를 잘라서 작은 구멍을 뚫고 나무에 헝겊을 돌돌 말아서 실로 묶어서 물총을 가지고 와서 쏘면서 가지고 놀았다.
몇 칠 후 거의 모든 애들이 물총을 하나씩 만들어 가지고 놓았지만 수동이는 그마져 없어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수동이네 집에는 우산은커녕 비가 오면 비닐을 쪼개어 쓰고 다니고, 건넌방 처마 끝 퇴 기둥에는 띠로 역어서 만든 띠 도롱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이 미국에서 원조해준 옥수수 가루에 우유가루를 넣고 명호내 사랑방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때서 죽을 쑤어 놓으면 종철이와 만기가 양동이를 가지고 가서 죽을 두 양동이를 가져다 점심시간에 나누워 주는데 최길림은 제일 먼저 도시락을 가지고 줄을 서서 받아가지고 도시락 모서리에 입을 대고 마셔 버리고 다시 줄을 서서 받아 가지고 들어갔는데, 누군가.
“선생님 최길림이 죽 두 번 탔어요.”
했지만 신종희는 무시해 버렸다. 오죽 배가 고프면 그러랴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 무렵 마을에는 트랜지스터가 3개 달린 라디오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들어 만식의 건넌방에 기거하게 되었다
1.5V 건전지 3개를 직렬로 연결하고 지대가 높은 언덕에 긴 장대에다 철사 줄로 안테나를 만들고 철사 줄을 집으로 끌고 와서 라디오에 연결하고 혹시나 모를 벼락 예방하기 위하여 땅에 구덩이를 파로 어스선을 묻고 천등치고 비오는 날에는 벼락을 맞을까봐 라디오도 못 켜게 했다.
정순이도 재덕을 졸라서 라디오를 사고 낙엽송을 벼다가 껍질을 벗기고 끝에는 열십자의 나무를 대고 못을 나란히 박아서 거미줄처럼 해서 밭을 가로 질러 밤나무에다 묵어 세우고 건넌방에다 설치를 했다.
그리고 가변스위치에 바리콘이 하나 달린 라디오를 들었는데 정순은 연속극을 좋아한 반면 수동이는 어린이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콩쿨대회와 이광재 아나운서 체치 문답 시간을 좋아했고 퀴즈프로그램도 즐겨들었다.
병숙이내가 물막골로 이사를 가고 그 집에는 서울서 덕순이네가 이사를 왔다.
그리고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다.
선샘에 놓아두었던 조개는 가을에 선샘이 말라서 나오지 않게 되자 수동이는 생각 끝에 우물에다 조개를 넣었다.
새 교실 두 개가 완공되어 오학년과 육학년이 쓰게 되었다.
그리고 영세의 형 영철이가 주선을 해서 동내 청년들이 모여서 연극연습을 해서 추석날 저녁에 반공연극을 했는데, 영철이는 국군 장교 동생 성환이는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전투 중 육박전에서 형이 검을 꺼내어 찌르려는 순간 동생이 형 하고 부르면서 살아서 교향에 여동생 과 어머니를 찾아가 만나는 연극이었다.
그리고 막간에 중학교 1학년인 영세와 종찬이가 나와서 한참 유행하던 마포종점을 불렀다.
그런가 하면 진각이와 병만이는 그리고 운산이는 곱사등이를 해가지고 나와서 키타부기라는 노래를 하며 탭댄스를 추었다.
다음 날 진승이 태희 수동이는 점심시간에 교단에서 기타부기를 불러가며 탭댄스를 추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육학년 담임 김영학이 들어왔다.
태희는 눈치 빠르게 도망을 쳤는데 수동이와 진승이는 붙잡혀서 볼을 잡아당긴 후 ‘찰싹’ 찰싹‘ 불이 번쩍 나게 따귀를 맞았다.
진승이가 얼굴을 문지르며.
“야 수동아 내 얼굴 곰보 됐다.”
“응 나도.
하면서 수동이도 얼굴을 문질렀다.
김영학 선생을 당시 총각으로 진성이네 건넌방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봐주지 않았다.
물막골에는 박장노교라는 게 들어와 동내 입구에 있는 서동학 씨 사랑방에 기거를 하면서 손뼉을 치면서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면서 신온 신앙촌을 자랑하면서 선교 활동을 해서 물막골 복기 남훈이 영선이는 추석 때 만석네 집에 들려서 제사를 지넨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명자는 추석이 지나고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났다.
학교에서도 덕소 신앙촌에 굉장히 볼 것이 많은 줄 알았는지 육학년 김영학 선생은 농번기 휴가 때를 기하여 수학여행을 서울을 들려서 덕소 신앙촌에서 일박 하는 걸로 정하고 오학년 중 희망하는 사람들은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논에서 벼를 베던 재덕이
“수동아 너 이번에 수학여행 보내주마.”
“네 아버지.”
“그래 뭘 얼마나 가져가야 하냐?”
“쌀 두 되요.”
“그래 갔다오너라 그 대신 말 잘 들어야 한다.”
“네 아버지.”
수동이는 뛸 듯이 기뻤다.
그동안 가을 소풍은 애보라는 이유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수동으로서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만나는 애들마다 자랑을 했다.
“야 나 이번에 아버지가 수학여행 보내 준댔다.”
“야 수동인 좋겠다.”
그러나 막상 수학여행 날이 다가와도 쌀을 내어주지 않았다.
수학여행 가는 날이 내일인데도 내어주기 않았다.
당일 날 아침 재덕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좋지 않아서 수학여행 보내면 교통사고가 날는지 모른다. 그러니 내년에 꼭 보내줄게 내년에 가도록 해라.”
순간 수동이는 주둥이가 튀어 나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학년 중 복기 진승이 영선이가 종철이가 신앙촌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기님이와 현용이는 현수의 아내를 위하여 아버지 병욱을 졸라서 안마당에 우물을 파고 마석 장에서 펌프를 사다가 묻었다.
그리고 가을 추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종암동 사는 주인순 이라는 여자가 아이를 업고 물건을 팔러 왔는데 됫박 성냥이었다.
성냥 공장에서 성냥을 만드는데 머리가 두 개 붙은 것은 불량품이라서 그냥 헐값에 가져다 파는데 됫박에 수북이 담아 주는 게 엄청 인심을 쓰는 것에 반해서 정순 이는 성냥 두 됫박에 밥밑콩 한 됫박을 수북하게 주고 되는 될수록 준다고 하면서 한 움큼을 더 주었다.
이젠 정순의 위상도 시아버지 양묵의 눈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모든 게 제 살림이여서 마음대로 사 쓰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가 있었다.
인순은 그동안은 석고개에 얌체 아줌마 구구 새 아줌마 작은 얌체 아줌마라고 불리는 세 여자가 장사를 다녀서 처음 장사를 하러 나온 인순으로 서는 힘이 들었는데, 나름대로 이익이 남는 틈새시장을 잘 공략을 했지만 아이가 셋이나 있는 관계로 여의치가 않았다.
그렇게 인심 좋은 정순에게 자주 들리게 되고. 정순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정순이 딸만 셋이라는 신세 한탄조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딸만 셋이고 했다.
유유상종 이라고 인순이는 내려올 때마다 들렸다.
그리고 자기가 잘 아는 보살이 있는데 거기서 부적을 받았는데 아들이 틀림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자 인순을 아이를 낳을 달이 되어서 오지 않았다.
방학을 얼마 앞두고 수동중학교에서는 매년 하던 예술제가 있었는데 찬조출연을 위하여 5. 6학년 중에서 합창단원을 뽑았는데 수동이는 뽑히고 싶었는데 뽑히지 못해서 육학년 교단에서 김광자 선생의 풍금반주에 신종희 선생이 지휘를 하면서 연습을 시키고 있는 것을 구경하면서 부러워서 따라서 부르며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연습 이틀째 되던 날 육학년 성호가 합창단을 안 하겠다고 했다.
바로 앞에서 따라 부르며 구경을 하고 있던 수동이를 복고 신종희가.
“수동아 네가 대신 나가라.”
해서 연습을 해서 수동중학교 예술제에 합창단원으로 나가서 가곡 글레멘타인 몽금포 타령 등을 합창을 하면서 이중창 까지 불렀다.
그리고 중학교 황석현 선생이 연출한 마의태자를 보고 왔다.
중학교 교장 겸 이사장인 이규복 선생이 아이들이 수고 했다고 과자를 사서 먹으며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설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순은 아들을 업고서 장사를 와서 부적을 사러가자고 해서 배가 불러있는 정순과 함께 서울을 다녀왔고 의형제 까지 맺어서 인순을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동이와 정자 순자 경자에게 이모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수동이는 설이 지나서 열세 살이 되어 있었다.
육학년 졸업식이 있기 전 사은회가 있었다.
육학년 학부모는 잘 가르쳐준 선생님께 보답한다는 의미로서 각각 음식을 해가지오고 오학년 학부모들은 육학년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의미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졸업식 전 전날에 있었는데 정순은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수동이의 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사은회가 끝나고 졸업식이 지나고 졸업장을 받은 육학년 아이들은 무슨 뒤풀이처럼 식장을 장식하기 위해 백지로 예쁘게 붙여서 축 졸업 가양초등학교 제 4회 졸업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찢어버렸다.
종이가 아까워 찢어진 종이가 아까워 책의 겉을 싸려고 주워 모으는데 6학년 담임이었던 김영학 선생이 보고.
“녀석들아 이걸 찢으면 어떻게.”
하면서 야단을 쳤다.
그리고 그가 담임을 맡았던 삼태골 사는 공부 잘하는 영수의 학비를 대어주어서 중학교에 진학까지 시켰으나 바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영수는 반년도 못 다니고 그만 두어야 했다.
수동이가 오학년을 마치고 종업식 날 그렇게 타고 싶어 하던 우등상 받을 사람을 부르는데 수동이 이름은 끝내 불러지지 않았다.
맨 마지막 우등상 받는 사람으로 호명되고 수동이 바로 앞에 앉은 성오의 생활통지표를 넘겨다보고 얼른 제일 잘한 다는 수를 세어 보았다.
열세 개 나는 열다섯 개 그런데 왜 나는 우등상을 안 주고 성오만 줬을까?
수동이는 청소를 하면서도 내내 화가나 입이 나와 있다가 성오의 책상에 자랑스럽게 삐죽이 나와 있는 상장을 보자 앞뒤 가리지 못하고 성오의 우등상장을 빼어들고 학교아래에서 종업식을 마치고 선생님들이 회식을 하고 있는 영구네로 달러 갔다.
그리고 담임인 신종희 선생에게 따져 물었다.
“선생님 왜 성오는 수가 13개 이고 저는 15개 인데 왜 우등상을 안 주셨나요.”
여러 선생들 앞에서 당돌하게 따지는 수동이게 신종희 선생은 적의 당황스러웠다.
“수동아 교실로 가 있어 내가 가서 설명을 해줄게.”
그 말을 듣고 그냥 올라 왔으면 좋으련만 앞 뒤 생각도 없이 수동이는 성오의 우등상장을 북 찢어버리고 학교로 올라와 교실로 갔다.
성오가
“야 인마 남의 상장을 찢는 데가 어디 있어 네가 다 가져.”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바로 신종희 선생이 달려왔다.
“김수동 저기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수동이는 교단에서 무릎을 굵고 손들고 서 있었고. 성오를 달래서 보낸 신종희 선생은 교무실에서 생활통지표 원부를 가지고 와서.
“김수동 이리와.”
하면서 생활통지표 원부를 보여 주었다.
“김수동 잘 봐라. 여기 네 생활통지표에는 수가 13개이고 여기 성호는 15개이잖아. 틀림없지?”
“네.”
“알았으면 집으로 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재덕의 아들 수동이가 선생님 앞에서 다른 애의 우등상장을 찢었다고 작은 시골 동내에 소문이 확 펴졌다.
그러나 재덕은 수동이의 그런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나무라거나 충고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늘 뒷구멍에서 늘 처져 지내던 녀석이 무슨 백장에 선생에게 따지고 들었느냐고 자위하고 있었다.
육학년 담임은 작년에 이어서 신종희가 맡았다.
첫날 신종희 선생이 우등상장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수동이는 또래 아이들에게 샘 많고 질투심 많은 아이로 비춰 지고 있어서 약간 위축되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착한 아이들이어서 이내 웃고 재잘거리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 학년이 시작되자 수련장을 사라고 해서 표준수련장을 샀고 몇몇 아이들은 전과도 샀는데 표준전과를 샀다.
수동이는 수련장을 사고 전과는 설에 다니러 내려온 재순이 책방에서 헌 국민전과를 사서 보내 주었다.
수동이는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신종희 선생은 전원이 수련장을 구입해서 이제까지 골필로 글을 써서 등사기로 밀어서 시험문제를 내주던 일이 줄어들었고 자율학습 시간처럼 학습시간에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 까지 풀라는 일이 많아 졌다.
첫댓글 수련장 오렌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그러나 수련장을 끝까지 풀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 까요?
아마 절반도 못 풀고 버린 경우가 허다 했는데
그 무거운 전과는 어떻구요.
전과 한권 가지면 천하를 가진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숙제해오라면 전과를 베껴서 가지고 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