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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 희상 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다.
계주가 희상이 그동안 식모살이를 하면서 계를 부어서 탈적 마다 이자를 주겠다고 꾸어간 돈과 그동안 부은 곗돈을 태워 주지도 않고 잠적을 해버린 것이었다.
하늘이 노래지고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울면서 일을 하지 못하고 알아 눕고 말았다.
아무리 몇 년을 내 집 식모로 있어 언니 동생처럼 살았어도 주인이 식모 간병을 하게 생겼다.
죽어도 여기서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희상은 의정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방학리에 내려서 언니 근상이네 집을 찾았다.
다 죽어가는 희상을 본 근상은 깜짝 놀랐다.
“희상아 너 몰골이 왜이래 어디 많이 아픈 것 같은데.”
희상은 대답 할 기운도 없어서 고갯방아를 찧었다.
“애 안 되겠다. 어서 누워야지.”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 할 정도로 쓰러지다 시피 누웠다.
학교에서 돌아온 조카들이 이모 왔다고 반가워했지만 만사가 귀찮고 이대로 숨을 거두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늘이 이토록 무심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근상이 부추를 넣고 죽을 쑤어 가지고 들어와 먹으라고 했지만 희상은 낯놀림만 해댔다.
그렇게 희상은 물 한 모금 넘기질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잠들었다 깨어나면 다시 울고 다시 울 기운이 없어지면 잠들고 사흘이 지나고 있었다.
근상으로서는 저러다 저 애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상아, 희상아 물이라도 넘겨라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니?”
‘아 그렇다 언니네 집이지 언니네 집에서 죽으면 언니가 시부모를 어떻게 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살아서 나가자 그리고 죽더라도 언니네 집에서는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미움을 받아마셨다.
바짝 마른입에 미음이 들어가자 모래알을 넘기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삼켜야 했다.
그렇게 반 대접의 미움을 비웠다 그리고 한 대접 다시 죽으로 그러면서 근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서 물었다.
“희상아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몇 번의 낯놀림 끝에 그동안 모은 돈을 계주가 가지고 잠적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상으로서는 속이 상했다.
그 놈의 자식이 뭐 길래 수동이 하나를 키우겠다고 저리도 이를 악물고 사는 동생이 안타깝다 못해 화 까지 났다.
그러나 당장은 동생이 몸을 추스르게 하는 게 급선무였고 다음은 딴 생각을 못하게 하는 거였다.
“그래 다시 시작 하면 되는 거야, 정 안되면 어디 가서 사글셋방에 좌판을 벌려서라도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야 네 모자 살길 없겠니. 여태껏 고생을 했는데 보란 듯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
하면서 수동이를 끼워 넣어 삶에 대한 애착을 불어 넣었다.
그래서 그런지 차츰 생기를 찾아가고, 이주일이 가까워서 다시 회현동으로 돌아 왔다.
희상의 안위가 궁금해진 근상은 일주일 후 남대문 까지 와서 희상을 만나고 가면서 생각을 해 봤다.
아무래도 저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짝을 지어주자 짝을 지어주어 남은 생을 행복하게 지내게 해 주어야 지 저대로 둘 수는 없지 암 저대로 둘 수는 없어.
집으로 돌아온 근상은 그날 저녁 남편 광수에게 희상의 짝을 찾아주어야겠다고 운을 띠웠다.
입맛을 다시던 광수는
“글쎄 처제가 시집을 가려고나 할까?”
“그래도 그냥 늙게 둘 수는 없잖아요. 이번 기회에 아주 보내는 게 났겠어요.”
“적당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 처제가.”
“그래 뭐하는 사람이 예요. 애들은요?”
“이 사람아 급하긴 이북사람으로 빨치산으로 있다가 잡혀서 감옥살이 하고 나온 사람인데 이북엔 가족이 있는데 이남엔 아무도 없지.”
“빨갱이 아네요.”
“이 사람아 빨갱이는, 전향을 하고 문밖 성동역 앞에서 목재상에서 일하고 있다지 아마.”
“딱 이네요. 애도 없겠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래 몇 살이래요.”
“나보다 한 살인가 더 많다고 들었는데.”
“나이야 무슨 상관이에요. 나이 많으면 이해심도 많겠지요.”
근상은 적당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을 하고 희상을 설득해 보리라는 생각으로 이틀 후 회현동을 찾아갔다.
“언니가 웬 일이요.”
“응 모처럼 나왔다가 네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하면서 희상을 살펴보니 조금은 회복 된 듯 해 보였다.
“그냥 그렇게 지내지 뭐.”
“그래 다 잊어버리고 힘내서 살아야지. 그래 때 거르지 말고 건강이 최고야.”
희상이 고갯방아를 찧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근상은.
“너 이 번 기회에 팔자를 고쳐보는 게 어떻겠니?”
하면서 희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희상은 근상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응당 들었다면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던지 아니면 입을 열기 어려우면 낯놀림이라도 하련만 먼 산 바라기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애 너 좋은 사람이 있는데, 팔자를 고쳐보는 게 어떻겠니?”
“언니는 내가 뭔 영화를 더 보겠다고 팔자를 고쳐요.”
“네 나이 이제 서른넷 이야 더 늙기 전에 좋은 사람 나왔을 때 팔자 고쳐 이것아.”
“난 수동이 하나면 됐어요.”
“다 자식도 품안에 자식이다. 벌써 떨어져 산지가 얼마냐 벌써 육년이 넘었어, 이것아 작년에 갔을 때도 심심했다면서 그게 다 품고 살지를 않아서 그래.”
“이제 부터라도 품고 살면 되지.”
“언제 뭐로 어느 세월에 네가 데리고 온다고 해도 너 애비 없는 자식 잘 키울 수 있어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원망은 어떻고, 행여 잘못 되기라도 해봐라 수동애비 성질에 그냥 있겠다. 넌 넌덜머리도 안 나냐?”
희상은 입을 다문 체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만나나 봐 나이 많은 게 흠이지만 이북사람이어서 전실 자식도 없으니 걸리는 게 하나도 없어.”
“나중에라도 자식이 없으면 수동이 데려다 공부 가르치면 되잖아. 그렇게 하는 사람 여럿 봤어.”
“그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수동 아버지가 수동이를 내 준대.”
“행여 아니 지금 딸이 줄줄이 셋이니까 그렇지 거기서 아들이라도 낳으면 어떻게 변할 런지 모른다. 수동이만 찬밥 되다 보면 네게 보넬 런지.”
“그러기야 하겠소,”
“모르는 법이다, 베갯머리송사라는 말도 있어 이것아 다 그 여우가 소삭거리기에 달린 거야. 여태 당하고도 몰라.”
희상이 잠시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고.
“네 모래 저녁에 네 형부하고 그 사람 데리고 올 테니 그런 줄 알고 있어.”
희상이 대답이 없자.
“괜히 네 형부 실없는 사람 만들지 말고 말 들어, 나 이제 갈께.”
하면서 근상을 완전히 말뚝을 박아놓고 집으로 돌아와 광수에게 내일 모래 만나기로 했다고 그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이틀 후 희상과 석두만은 다방에서 선을 보았다.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을 하는 희상에 가정적이고 북에 두고 온 마누라를 생각하게 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둘이는 좋다 싫다 이야기도 없이 헤어 졌다.
다음날 저녁 근상이 광수에게 신랑감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뭐 싫지는 않은 모양 입디다.”
“그럼 됐어요.”
사흘 후 근상은 다시 희상을 찾아와.
“애 그 사람이 아주 좋단다.”
“그래도 좀.”
“뭘 네 형부 생각도 해야지 네 형부가 어렵게 만들었는데 생각해 보고 자시고 할 것 없어, 바로 가서 이혼도장 찍어 이것아.”
“그래도 수동아빠가 해 줄까?”
“아마 그 년 놈은 얼씨구 할 꺼다. 걱정 말고 당장 다녀와.”
“그래도 좀…….”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가 없어 넬 당장 갔다 와, 나, 간다.”
근상은 희상이가 다른 말을 할 곁을 주지도 않고 바로 총총걸음으로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틀 후 주인아주머니에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쉰 것도 미안하지만 한 이틀 물골안에 다녀오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고 나서려는데 아랫배에 사르르 통증을 느꼈다.
달거리를 그동안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다른 날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다음 날 그러니까 4월 23일 오후에 희상은 재덕과 이혼을 하려고 물골안으로 내려왔다.
수동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부드러운 풀이 돋아난 물막골 가는 개울가에서 소꼴을 한 지개 베어서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집에는 희상이가 막 도착해 있었다.
“어머니 오셨어요.”
수동이가 절을 하고 나와서 가마솥에 불을 때 소죽을 끊여서 두 함지박을 소구유에 퍼다 주고 화로에 불을 담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수동아”
희상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 앉아 있었다.
“내”
“내말 잘 들어라 이제 엄마는 멀리 떠난다. 그러니 엄마 찾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어느새 희상은 훌쩍이고 있었지만 어느 때 보다했다.
희상의 울음 섞인 소리를 듣고 있던 수동이도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 할 수가 없어 대답조차 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남아 있는 소죽을 갈퀴로 여물박에 글어 담아 함지박에 담는데 소죽에서 올라오는 김이 눈물 콧물이 뒤엉켜 쏟아지고 있었다.
소죽 두 함지박을 퍼다 준 후 그는 뜨물 그릇이 있는 부엌으로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정순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함지를 들고 우물로 가서 물을 떠서 몇 번을 얼굴을 훔쳐내고 나서 물을 한 함지박 떠다 가마솥에 부은 후 부엌에 뜨물을 가지러 갔다
정순은 저녁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수동은 정순에게 운 모습을 보일세라 고개를 숙이고 뜨물을 들어다 가마솥에 붓고 났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또 흐르기 시작 했다.
흐르는 눈물을 주채 할 수 없던 수동을 터덜터덜 걸어서 개울가로 나와 돌 위에 앉아 한참을 더 흐느끼고 있었다.
‘졸졸졸 흐 흐 흑. 졸졸졸 흑 흑.’
수동의의 흐느낌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잠겨들어 조금씩 잦아들어 한참 후에는 ‘훌쩍 하’ 콧물 들이키는 소리로 변해 있었다.
수동이는 냇물에 남아 있는 슬픔을 씻어 보내 듯 두 손에 물을 모아 얼굴을 씻어내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수동이 슬그머니 사랑방으로 가고, 무거운 침묵이 흐른 다음 희상이 입을 열었다.
“수동 아버지 저 좀 봐요.”
하면서 희상이 건넌방으로 들어가자 재덕이 뒤따라 들어왔다.
“할 말이 뭐야”
“저 이혼해 주세요.
“언놈이 생긴 겨 뭔 소리야”
이 때 문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순이 만삭의 배를 쑥 내밀고 방으로 들어왔다.
재덕은 더 이상 채근해서 물어 보지 못했다.
“동세 나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더 이상은 이렇게 살수가 없네. 그러니 서방님 모시고 잘살게”
정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렷다.
“형님 그러지 말고 수동이 생각해서 이곳에 집하나 마련하고 같이 살아요.”
“말은 고맙네만, 그럴 생각이 없네.”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수동 아버지 내일 춘천 가서 이혼 해 주세요.
재덕은 두 사람 을 번갈아 보았다.
이혼을 간절히 바라는 희상과 얼른 이혼을 해주고 늦게나마 면사포를 쓰고 싶어 하는 정순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도장이 큰집 용동이 한 테 있으니 가서 맘대로 해”
이렇게 그 날 재덕은 반승낙을 받아내자 더 이상 채근을 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수동이가 있는 사랑방으로 건너갔다.
잠시 후 정순은.
“뭔 미련이 남았우.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순 없잖아요.”
“수동이 때문에 그러지.”
“여태 내가 어미 노릇을 못했단 말이 예요.”
“아 그래서 승낙을 했잖아, 화 풀어 어디 우리아기 잘 있나 보자.”
정순은 눈을 흘기며 배를 내어주고 재덕은 배에 귀를 대어 본다.
“이번엔 꼭 아들이겠지?”
정순이 끄떡였다.
사랑방에서 앉아서 잠든 수동이를 내려다보던 희상은 또 다시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이 어미가 너무나 못나서 너 하나를 지켜주지 못 하는 구나 어린것이 구박 덩이로 천덕꾸러기로 여태 잘 버터 가며 살았는데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할꼬.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를 수 없이 되뇌며 눈물을 훔쳐냈다.
이튿날 수동이는 ‘엄마 잘 가“ 라는 인사도 없이 아랫입술을 윗니로 암 다물어 물을 체로 고개를 숙이고 대문을 나섰다.
다른 말을 하다 보면 눈물이 나오고 울 것만 같아서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체 걸었지만, 대문을 나서자마자 눈물이 나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학교를 향해 걸었다.
희상이도 사랑 문틀을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론 연신 눈물을 찍어내며 흐릿하게 멀어져 가는 수동이를 봐라 봤지만 녀석은. 녀석은 끝내 고개를 숙인 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조금 후 희상은 석고개 버스종점으로 향하면서 몇 번을 학교가 있는 꽃재 언덕을 돌아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황골에 도착한 희상은 선뜻 윤희가 있는 큰집으로 바로 가지를 못하고 우선 사촌 오빠네 집으로 들어갔다.
사촌 올케 미진이 희상을 반겨 맞았다.
“웬일 이유.”
“그냥 다니러 왔어요. 다들 평안 하시지요.”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늘 하는 일이 그렇지요 뭐. 근데 무슨 일이셔.”
“그나저나 올케 나 급해서 그러는 거시기 좀 빌려줘요. 내가 준비를 해가지고 왔는데 다 쓰고 없어서 그래요. 지금 내 꺼 빨아서 널어놓고 내일 빨아주고 갈게요.”
“들어와요.”
희상이 준비를 해가지고 온다고 왔지만 이달에는 좀 늦게 오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물골안에 들락거려서 그런지 양이 많았다.
그런데다 그걸 물골안에서 빨아서 말리기도 그렇고 해서 꿍쳐들고 왔는데 떨어진 것이었다.
“그나저나 뭔 급한 일이어서 달거리 할 때 내려와요.”
하면서 두 장을 내어 주었다.
“나 저위 큰집에 좀 다녀올게요.”
하고 윤희내로 향했다.
일을 나갔는지 온 집안이 조용 했다 조금 있으려니 윤희가 뒷밭에서 돌아 왔다
“아이고 동세 오래간만에 왔네.”
하며 두 손을 꼭 감싸 쥐며
“그래 자내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잘 왔네. 반가워 어서 들어가세”
하며 윤희는 한손을 꼭 잡고 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언제 만나도 친정어머니 같은 형님을 대하니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
“그래 점심은 했나, 잠시만 기다리게 내 밥 줌 앉히고”
하며 쌀을 퍼 가지고 부엌으로 나간다.
희상도 따라 나섰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때며 윤희가 말을 꺼냈다.
“참 수동이가 올해 몇 살이지”
“열세 살이요”
“힘들게 참았네. 그런대로 몇 년 만 참고 있으면 자네가 보람을 느낄 때가 있을 걸세, 그래 수동이는 언제 만나 봤는가.”
“어제 물골안에 다녀서 지금 오는 길이 예요”
윤희는 언뜻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아니 이보게 무슨 일이 있는가. 서방님 하고 …….”
윤희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겠는가?
번번이 말대꾸 한 번도 못하는 인사가 다툴 일은 없었을 터이고 …….
“형님 저 이혼하기로 했어요.
“이혼”
“네 그래서 물골안을 들렸더니 수동아버지가 도장이 큰조카 한태 있다고 가져가서 찍으래요.”
“이혼 은 무슨 여태 잘 참아 왔지 않았는가. 자내 수동이가 불상 하지 도 않은가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게”
이때 연행이 들어 왔다
“작은어머니 오셨어요.
희상이 고개를 끄떡여 인사를 받았다.
“어멈아 글쎄 작은엄마가 이혼을 한다는 구나”
“작은어머니 수동이 도련님 어쩌시고요 안 돼요.”
“어멈아 가서 애비 좀 불러 오너라”
“여보게 동세 내 이날 이때 까지 자내를 내 식구 내 동기로 살았지 꿈에라도 저것을 동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네, 그러니 조금만 더 지나면 옛 예기 하며 살날이 오지 않겠나, 그러니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처 먹을 수 없겠나.”
잠시 후 들어온 용동은 가벼운 목례를 하면서
“작은 어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불상한 수동이를 보아서라도 이럴 수 는 없는 거예요.”
“나도 많이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이내 그러지 말고 조카님이 이해하고 도장을 내어주게나”
“꼭 이러셔야 하나요, 너무 하세요.”
“부탁이네 조카님,”
일어나서 나왔다 붙잡지도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멀어지고 결심이 굳어진 것 같았다.
“그래 애비야 이일을 어쩌면 좋으냐.”
“걱정 마세요 어머니 작은어머니가 몰라서 그러지 이혼은 당사자 두 사람이 가야 해 줘요.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이구나.”
“작은아버지 나름의 생각이 있으시겠죠.”
희상은 오빠 광상의 집으로 왔다.
미진이가 밥을 차려와 먹으며 내려온 이유를 이야기 했다.
“수동이가 불상하긴 해도 어쩔 수 없잖아요. 잘 결정하신 일인지 모르지만”
조금 있으려니 오빠 광상이 들어왔다.
미진의 이야기를 들은 광상은
“그래 새로 만나는 사람은 있고”
“네”
“어떤 사람인데”
“육이오 때 인민군 포로로, 북에는 가족이 있는데 못 넘어 가서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요.”
“잘 됐구나, 딸린 자식도 없고 혼자라니 잘했다 잘했어, 이제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희상이 다시 무거운 발걸음으로 윤희의 집으로 향했다.
“동세 저녁은 어떻게 먹었나.”
“형님 저 아래 오빠내서 먹었어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용동이가 입을 열었다.
“작은 아버지가 승낙을 하셨다니 제가 어쩔 수 없어 드리긴 하는데 다시 한 번 생각을 바꾸셨으면 하내요.”
하며 도장을 내어 줬다.
“조카님 미안 해, 형님 죄송해요.”
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더는 앉아 있을 수 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오빠네로 내려 왔다.
이튿날 희상은 새벽 일찍 일어나 미진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부지런히 걸어서 소주 고개를 걸어 넘었다.
팔년 전 수동이를 업고 살아보겠다고 넘다가 고갯마루 저기 저 나무 아래서 쉬어 가던 때가 생각나 잠시 머뭇거리다.
내처 걸어서 강촌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아홉시가 조금 넘었다.
희상이 호적계라고 쓰인 곳에 다가가 면서기로 보이는 사람에 다가가 인사를 하자 면서기로 보이는 사람도 인사를 하면서.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저 이혼신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그러세요. 그러면 법원 판결문 가져 오셨나요?
”아니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이혼 하려고 하는데요.“
“아주머니 잘못 오셨네요. 이혼이란 게 그렇게 쉽게 되나요. 아무나 살기 싫다고 혼자 도장 두 개 들고 와서 이혼해 주세요. 하면 해주는 게 아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아 합의이혼을 하시려고 하시나 본데요. 협의 이혼이라는 것은 당사지 두 분이 오셔서 두 사람이 이혼할 의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제가 알아야 신고를 받는 거예요.”
희상은 맥이 확 풀렸다.
할 수 없이 수동아버지를 찾아가 사정을 해야 하나하고 생각하니 혹시 알면서 혼자 가라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떡하나 오늘은 토요일이라 내일도 안 될 테고 황골로 돌아가 내일 다시 물골안에 가서 수동아버지를 졸라 볼 수밖에.
희상은 다시 걸어서 황골로 돌아와 보니 미진은 마을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빨아 널은 거시기를 걷어서 개어서 새로 차고 나머지를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어제 미진에게 서 빌렸던 거시기를 빨아서 울타리에 널고 있는데 미진이 들어 왔다.
“벌써 다녀 온 거유, 일찍 왔네, 일을 다 본 거유.”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서 수동이 아버지하고 같이 와야 한데요.”
“면서기 예기가 아무나 도장 두 개 들고 와서 이혼하러 왔다고 하면 되는 게 아니고 둘이 와야 한다고 하면서, 두 사람 중 한사람 이라고 동의를 안 하면 재판을 걸어야 한데요.”
“그게 쉬운 게 아니군요.”
“시집 장가가는 건 쉽고요.”
오랜만에 농을 던지고 나니 픽 웃음이 났다.
“혹 수동아버지가 이혼 안 해 주려고 일부러 혼자 보낸 것 아닐까?”
“그래서 내일 가서 정순이 있는데서 아주 다짐을 받아가지고 모래 같이 와야 갰어요.
다음날 희상은 물개에서 배를 타고 다시 물골안으로 향했다.
물골안에 해질녘에 도착해 보니 또 수동이는 소꼴을 베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꼴도 보기 싫지만 정순이
“형님 오셨네. 저녁 드셔야죠.”
하면서 배를 쑥 내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정순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쌀을 뜨러 가는 척 하면서.
“형님 가신 일을 잘 됐어요.”
희상이 낯놀림을 하며.
“아니 제대로 안 됐네.”
“아니 뭐가 문제래요.”
그저께 같이 살자던 태도하고는 영 달랐다.
“수동아버지 하고 같이 와야 해준데.”
“어머 그래요.”
하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한참 후 꼴 지개를 지고 수동이가 들어왔다.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고, 완전히 풀이 죽어있었다.
찐한 마음에 울꺽 했지만
“공부는 언제 하고 소꼴부터 벼 오냐.”
“아버지가 소 크면 중학교 갈 때 입학금으로 쓴댔어요.”
“그래,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
“네.”
어슬녘에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수동이가 사랑방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에 희상은 재덕에게 면서기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들은 정순도 이해가 되는 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내일 꼭 같이 가셔야 갰어요.”
재덕이 정순의 눈치를 슬쩍 본 다음 .
“알았소, 내일 일찍 갑시다.”
그리고 희상은 사랑방으로 나와서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수동이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수동아! 수동아! ”
재덕이 수동이를 급하게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내”
“네 엄마가 아이를 낳으려나 보다 가서 외할머니 모셔 오너라.”
희상은 기분이 묘했다.
내가 옆에 있는데 계모를 네 엄마라 칭하고 용단을 외할머니라니 이제 모든 것이 다 빼앗겨 버린 것 처참한 모습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동이는 열닷새의 하얀 달빛 속을 뛰어 용단을 부르러 가고.
재덕은 순자와 경자를 사랑방으로 안아다 눕혔다.
수동의 이야기를 들은 용단은 옆에 끼고 자던 정자를 밀어놓고 수동이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부산한 가운데에 수동이는 숙제를 다 했는지 책을 보자기에 돌돌 말아서 싸서 밀어 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 올적에 마석서 수동이 책가방이라고 사가지고 올 걸’ 그걸 생각하지 못하다니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정신이 나갔어.
한참의 진통이 있었는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재덕이 얼굴이 환해 가지고 들어왔다.
보아 하니 아들을 낳은 모양이다.
“아들이요”
재덕이 고갯방아를 찧었다.
꽤나 좋은 모양이었다.
좋기도 하시겠소. 그나저나 수동이는 뒤로 물러나는 처지가 되지 않을는지?
그리고 첫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재덕과 희상은 첫차를 타기 위해 넓게 쪼겐 비닐 비료포대를 하나 씩 머리와 윗몸을 가리고 종종걸음으로 길을 나서고 있었고, 수동이는 경자를 등에 업고 사랑방 툇마루 기둥에 기대어 서서 희상이가 창복이네 마당을 지나 순복이네 마당가를 지날 무렵 기둥에 머리를 쿵 쿵 찧으며 이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고, 희상의 모습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내 수동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멀리 논둑길 사이로 두 사람의 비닐이 펄럭이며 시야에서 살아지고 나서도 수동이는 한참을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첫댓글 칠년 오래 기다렸는데.
세상이 두 모자에게 시련을 주네요.
마지막으로 엄마를 떠나 보내면서 소리처 울지 못하고 기둥에 머리를 찧는 수동이 거기서 한동안 눈물이 막 쏟어저 나와서 한참 동안 더는 읽을 수가 없었는데 벌써 다 읽고 끝이네요.
다음 편에서 잘 해결이 되어서 참 고 잘 견뎌온 수동이에게 모자 상봉의 길이 열리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별 새로운 만남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위로의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픈겁니다.
다만 수동이가 굳세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