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역학부터 열역학, 소재 공학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개발과 연관된 학문 분야는 실로 다양하다. 비록 겉보기엔 평범할지라도, 새롭게 출시되는 모든 차에는 수많은 분야의 최신 기술이 동원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조사들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혁신적인 성능 개선책을 만나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얼마 전 토요타는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여 차량 성능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 토요타가 놀라우리만치 간단하면서도 막대한 효과를 발휘하는 성능 개선책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른바 ‘알루미늄 테이프 튜닝’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차량 곳곳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이기만 하면 공력 성능이 향상되고, 그 결과 주행 안정성과 핸들링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연비까지 높아진다는 것이다. 토요타 차량기술개발부서의 야마다 코우지 씨는 발표에서 LFA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이고 뉘르부르크링을 달린 결과, 1랩당 무려 7초 가까이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만약 당신이 이 내용을 처음 들었다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evo 편집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는 토요타의 엔지니어가 직접 발표한 내용이며, 토요타는 이 내용으로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특허를 신청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리프트된 신형 86 등 일부 차종에는 이미 이 기술이 실제 적용되어 있다고 한다.
▲ 토요타는 알루미늄 테이프 효과에 대해 우리나라에도 특허를 신청했다

▲ 토요타가 판매 중인 순정 알루미늄 테이프. evo도 테스트를 위해 구입했다
구체적인 원리는 이렇다. 주행 중 양극으로 대전된 차체는 같은 극성으로 대전된 공기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척력(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힘)이 생겨 차체 표면을 지나는 기류가 불안정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따라서 알루미늄 테이프 같은 도체를 부착해 주행 시 정전기 발생을 억제하고, 그 결과 차체 표면 기류가 안정되어 진동이 감소하고, 조종성 및 안정성이 향상되며, 승차감은 물론 가속 및 감속 성능까지 좋아진다는 것. 특히 속도가 높을수록 정전기가 더 많이 생성되므로, 고속 주행 시 효과가 더 크다고 특허 문건에 명시되어 있다.
▲ 알루미늄 테이프가 공기 흐름을 방해하는 정전기 발생을 억제시키고, 그 결과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준다는 원리다
이쯤 되면 정전기가 자동차 성능을 쥐락펴락하는 숨겨진 비선 실세였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물음표가 따른다. 과연 정전기로 인한 척력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 왜 다른 제조사는 이렇게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정전기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을까? 정말 손바닥만 한 테이프 몇 장으로 성능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을까? 그래서 evo 편집부와 함께 그 실체를 직접 파악해보기로 했다.

▲ 실험 차종은 토요타 86으로 정했다. 일본에서도 86을 테스트 차량으로 사용했다
우선 실험 차종은 토요타 86으로 정했다. 토요타 엔지니어의 발표에서 테스트 차량으로 동원된 모델이 바로 86이었고, 앞서 말했듯 페이스리프트 모델에는 이 알루미늄 테이프를 내부에 기본 장착해 판매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루미늄 테이프와 OBD 송신기, GPS 계측기를 준비했다. 테스트할 항목은 부착 전후의 연료 소비율과 고속 가속 성능 측정이다. 실험 가설은 다음과 같다.
【1】
고속 연비는 차량의 공기 저항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정전기 억제를 통해 차체를 지나는 기류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 결과로 연비 수치도 달라질 것이다. 고속으로 올라가면 정전기 발생도 증가하고 공기 저항이 연비에 미치는 비중도 늘어나므로 속도가 올라갈수록 연비 수치도 차이가 커질 것이다.
【2】
1항과 같은 근거로 정전기 발생이 감소해 차체 주변 기류에 변화가 생긴다면 가속 성능도 향상될 것이다. 토요타 역시 특허에서 가속 성능의 향상을 명시하고 있다. 공기 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하므로 고속 영역에서 부착 전후 가속력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 토요타의 발표에 의하면 공기의 흐름이 급격히 변하는 곳에 붙여야 효과가 크다고 한다
1. 연비 테스트
실험은 최대한 변수를 줄이기 위해 같은 장소, 같은 기온에서 진행했다. 아울러 타이어 공기압을 허용 최대치로 올렸다. 타이어가 구르면서 생기는 저항을 줄임으로써 상대적으로 공기 저항에 대한 민감도를 올리기 위해서다. 연비 측정은 계기판의 트립 미터를 활용했다. 차종이 다르다면 오차가 존재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86 한 차종으로 진행하므로 무관했다. 연비 측정은 약 100km 거리의 구간을 같은 속도로 주행하는 등속 주행을 통해 결과를 얻었다. 더욱 정확한 측정을 위해 OBD 커넥터를 통해 엔진 부하 수치를 별도 모니터에 띄워 일정한 부하를 유지하도록 스로틀 페달을 조작했다.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하는 경우보다 더 일정한 엔진 부하를 유지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 100km 구간을 일정 속도로 주행했으며, OBD 커넥터를 통해 엔진 부하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순정 상태에서 시속 100km 속도로 일정 구간을 달린 결과는 17.9km/ℓ. 동일한 조건에서 알루미늄 테이프를 부착하고 달린 결과는 역시 17.9km/ℓ로 동일했다(공기압은 40psi로 동일). 내심 향상된 연비를 기대했으나 뜻밖의 결과였다.
속도를 올리면 유의미한 차이가 나오리라 믿고 테스트 조건을 변경했다. 두 번째 실험은 같은 구간에서 속도를 높여 시속 130km 등속 주행으로 연비를 측정했다. 시속 100km 테스트 때와 비교하면 주행 시 엔진 부하도 늘어나고 차체 앞부분을 짓누르는 공기 저항도 부쩍 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기대를 엇나갔다. 부착 전 연비는 14.0km/ℓ를 기록했으나 부착 후 연비는 13.9km/ℓ로 소폭 하락한 것. 사실상 동일한 값이었고, 결국 일반 소비자의 가장 큰 관심 대상인 연비 개선 효과는 입증할 수 없었다.
2. 고속 가속 테스트
두 번째로는 정전기 발생 제어 효과가 커지는 고속 영역에서의 가속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시속 110km에서 시속 200km까지 풀 스로틀로 가속하면서 매 시속 10km를 올릴 때마다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비교했다. 순정 상태에서 네 차례 가속 주행, 알루미늄 테이프 부착 후 네 차례 가속 주행을 하여 평균값을 산출해 비교한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시속 110km~200km까지 가속하는 데 평균 시간을 보면 순정 상태가 20.3초, 알루미늄 테이프 조건에서 20.5초를 나타낸다. 가장 고속 구간인 시속 160km~200km 부분만 떼어놓고 비교하면 12.9초와 12.98초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기어 변속 소요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간인 시속 180km~200km에서도 알루미늄 테이프는 특별한 이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균 1% 이내로 아주 약간 느려진 가속을 보여줄 뿐이었다.

▲ 공기저항을 크게 받는 지프 레니게이드를 보충 테스트 차량으로 정했다
3. 보충 테스트
기대가 컸던만큼 냉정한 결과 앞에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험 조건을 바꿔 다시 진행해보기로 했다. 중량 대비 출력이 넉넉하고 공기 저항이 적은 86보다 무게가 무겁고 공기역학적으로 불리한 디자인의 박스형 자동차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토요타에서도 박스카 일부 차종에 이미 알루미늄 테이프를 부착해 판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충 실험 차종은 지프 레니게이드로 정했다. 모든 조건은 86과 동일하게 설정했고, 연비 및 가속력 측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역시 연비와 가속 테스트 모두 끝내 유의미한 수치는 얻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르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시속 100km~130km 구간에서 조금 묵직해진 듯한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이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으며, 계측 장비로 얻어낼 수 있는 객관적 수치 변화가 전무했기에 플라시보 효과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허탈한 마음으로 차체 곳곳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테이프를 떼어내야 했다.

모든 실험을 마치고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서 풍동 시험 전문가로 근무하는 선배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번 알루미늄 테이프 논란을 보는 그의 솔직한 시선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토요타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근거가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풍동 시험을 한 결과에서도 성능 차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토요타 역시 이번 발표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류 정화 효과가 있는지, 얼마나 가속이 빨라지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토요타는 근거 없는 괴담으로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특허까지 받을 수 있었을까? 일단 특허의 경우 그 효과를 직접 검증하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효과가 미약하더라도 출원인의 주장에 논리와 근거가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제품에서는 명확하게 구현되지 않더라도, 개발 단계에서는 엔지니어들이 느낄 수 있는 차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 토요타가 F1 레이스의 노하우로 만들었다고 한 에어로 스태빌라이징 핀
돌이켜보면 토요타 및 렉서스 일부 차종에 적용된 ‘에어로 스태빌라이징 핀’이라는 장치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토요타는 (무려 F1 레이스의 노하우가 담긴) 테일램프의 작은 돌기를 통해 고속 주행 시 안정감을 도모한다는 주장인데, 실제 운전자가 그 유무에 따른 차이를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맥락으로 알루미늄 테이프 역시 간단히 부착하여 전반적인 성능의 변화를 경험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이번 테스트의 결론이다. 물론 이렇게 성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토요타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이런 괴짜다운 시도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몇천원의 비용으로 전방위적 자동차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노벨상을 줘도 아깝지 않을 혁신이 되었을 테니까.
※ 기사 속 사진은 실제 테스트 후 연출용으로 촬영된 것이며, 실제 테스트는 토요타의 테스트와 동일하게 테이프가 부착되었고, 독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글 · 강병휘(카레이서), evo 편집부사진 · 장현우 실장
원문은 아래링크..
첫댓글 외관상 이쁠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