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자락 장마 여운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을 칠월 하순 목요일이다.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한 강력한 태풍 ‘개미’가 대만을 강타하고 중국 남부로 상륙하면서 커다란 피해를 주는 듯하다. 예년 경우 이맘때 장마 종료가 선언될 시점인데 그곳으로 다가간 먼바다 태풍 진로에 발생한 구름의 파편이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강수 상황에 변동이 생기는 듯하다. 기상은 ‘카오스’의 세계임이 분명하다.
장마 끝물일 칠월 끝자락 목요일 우리 지역은 비는 오지 않을 불볕 날씨가 예상되었다. 이른 시각 창원역 앞으로 나가 근교로 가는 1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눈에 익은 몇몇 승객들과 같이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은 용잠삼거리에서도 한 아주머니가 탔다. 먼저 타고 가는 이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주고받은 얘기를 엿들으니 초등학교 급식소 일을 나가는 분이었다.
버스가 주남삼거리에서 가월마을을 거쳐 판신마을을 지날 때 내렸다. 인가가 멀고 회사도 없는 들녘 가운데라 평소 타고 내릴 승객이 적은 정류소에 하차하니 기사나 승객들은 의해하게 여겼을 테다. 나는 거기서부터 들녘 들길을 걸어 가술로 갈 예정인데 코스가 다른 몇 갈래 길은 각기 시간이 다르게 걸린다. 짧게는 1시간부터 더 두르면 2시간이나 3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도 있다.
판신마을 앞에서 저만치 떨어진 주남저수지 둑이 탐조대와 함께 바라보였다. 들판에서 둑을 넘은 백월산으로는 아침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 장마 여운이 남은 대기의 습도를 보여주었다. 그쪽과 방향이 다른 주천강이 흘러오는 주남마을에서 제방 둑길을 따라 상포로 향해 걸었다. 물길이 흘러가는 들판 끝난 곳은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아침 햇살 역광에도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주남저수지와 수문으로 연결된 동판저수지의 길고 긴 둑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덕산은 높은 아파트가 보였고 정병산은 대암산을 거쳐 용제봉으로 산세가 이어졌다. 주천강에서 남쪽으로도 들판이 드러나 자여 일대 아파트단지를 에워싼 산은 구름이 걸쳐졌다. 주남지와 동판지 배수문을 빠져나온 주천강 물길은 진영을 향해 흐르면서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해가 떠오른 들판 끝에는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일어나고 드러나는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가로수나 그늘막 쉼터가 있을 리 없는 둑길이고 들판이라 뙤약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산책 코스였다. 둑길 따라 천변으로 형성된 상포마을에서 25호 국도 갈림길부터 가술로 가면 3시간도 걸린다. 도중에 들녘 복판 화훼연구소를 지나면 2시간 걸리는 코스도 있으나 더 단축 코스를 택했다.
농수로 언저리에 고추와 땅콩 농사를 짓는 한 할머니는 새벽같이 나와 작물을 돌봤다. 거리가 제법 떨어진 마을에서부터 밀고 나왔을 노인용 유모차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 채워 놓았더랬다. 할머니는 부지런도 했지만, 농사 기술이 좋아 싱그럽게 자란 작물의 결실도 좋았다. 참깨는 꽃을 활활 피워 꼬투리가 여물고 언덕으로 올린 호박넝쿨엔 꽃과 함께 달린 호박이 영글어 갔다.
드러나는 햇살이 뜨거워 들녘을 지나 지름길로 신등마을로 갔다. 골목길을 지날 때 텃밭 울타리로는 보라색 나팔꽃이 꽃잎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아침 일찍 꽃을 피워 낮이 되면 꽃잎을 오므리는 나팔꽃이다. 시골 학교를 지난 들녘에는 한 농부가 등짐으로 진 분무기로 논두렁에 심은 콩 주변에 제초제를 뿌렸고, 드론을 날려 벼 논에 농약을 뿌린 농부는 트럭에 싣고 현장을 떠났다.
판신마을로부터 1시간 걸려 가술 거리 닿으니 이마에 땀이 살짝 날 정도였다. 일찍부터 문을 열어둔 카페에 들어 커피를 한 잔 받아 얼음조각을 녹여가며 마을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정한 시간이 되어 열람실로 들어 책장을 넘기다 점심때가 되어 국숫집에 들어 요기를 때웠다. 오후는 햇살이 뜨거워도 주어진 임무 수행에서 지역민의 문화생활에 도움이 될 현장을 둘러봤다. 2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