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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01
1.
토론토의 겨울은 해마다 그렇듯 종잡을 수 없이 시작되곤 하였고 너무 길었다. 아마 올해의 겨울도 남쪽 토론토에 단풍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곱게 물들기 시작하면 베리시의 북쪽에서는 낙엽이질 것이다. 낙엽이 지는가 하면 밤새 내린 눈으로 차창에 쌓인 눈을 플라스틱 끌개로 땀을 흘리며 닦아내어야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겨울이 이곳 온타리오인들의 삶의 난제 중 하나였다.
토론토시의 남쪽과 베리시가 있는 북쪽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보면 어느 사이 그런 겨울은 소리소문 없이 와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강은 5 년째 이민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절묘하게 예측의 허를 파고들어 깜짝 놀라게 하는 겨울이 두렵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6 월에서 8 월까지는 밝고 화사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맑고 쾌적한 공기와 시리도록 푸른 호수와 잘 자라서 펼쳐진 잔디 들판 속에서 자연이 주는 평화와 친절한 이웃들에 의하여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급속도로 짧아지고 조석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겨울의 잔인함에 두렵고 불안함을 느꼈다. 맑고 넓은 심코 호수와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경관과 평화로운 거주지의 아늑함들이 아내 조경순의 마음에 들어 이민 첫 해에 하우스를 구입하였다. 영어로 인하여 직장 가지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서는 내노라 하는 유능한 인재들도 결국은 하고야 만다는 컨비니언스를 시작한 곳이 버링턴시의 옥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리로 통하고 있는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다.
비즈니스와 생활하고 있는 집은 가능한 한 최대로 가까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가듣지 못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베리의 집에서 옥빌까지는 하이웨이 400을타고 남쪽으로 40분 그리고 하이웨이 401을 타고 서쪽으로 30분 하여 출근 시간만 1시간10분이 소요되었다.
첫해는 이민 와서 시작한 사업이어서 젊음과 의욕이 불편과 힘듦을 다 상쇄하여 주었다.
한 해를 정말 열심히 일하였다. 가끔 아내가 함께하며, 도와주기는 하였지만, 출퇴근의 시간 낭비와 불편을 제외하면 성공적이었다. 아내와의 부부관계는 컨비니언스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러하듯 에드워드도 컨비니언스를 시작한 후 거의 포기하였다. 사랑할 시간이 없었다. 단지 생존과 아이들의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다는 명분속에 그 중요한 삶의 가치 중 하나를 포기하듯 생활하였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경제적 여유를 되찾았지만 포기했던 생활도 되찾고 싶었다.
아내와 의논한 후 반기는 동의를 얻어 두 달 전에 옥빌의 호수가 바라보이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하우스를 사서 이사를 하였다. 이 집은 전적으로 아내인 조경순이 옮길 것을 제의하였고 2달을 물색하여 선택하였다. 지은 지 80년 정도 되었지만, 눈이 쌓일 시간을 주지 않는 독일풍의 경사진 지붕이 있고 짙은 고동색의 나무기둥과 하얀 회가 칠해져 있는 벽이 잘 어울려 고풍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옥빌 20948 번지. 두 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포치에는 2 인용 흔들의자가 녹슨 굵은 사슬에 매달려 있었다. 다섯 계단을 내려서면 10미터정도 길이의 푸른 잔디가 잘 정돈된 정원이 있고 그 정원 좌측에는 이 하우스를 건축할 때 함께 심은 듯한 우람한 캐나다 메이플트리가 보기 좋게 가지를 사방으로 뻗친 채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정원 앞으로는 2차선으로 포장이 잘 된 채 토론토의 다운타운까지 펼쳐져 있는 간선도로가 있었다. 삼각형으로된 다락방에는 중간쯤에 도로의 반대편인 호수로 난 유리창이 있었고 원목 나무로 깔린 바닥은 밟을 때 삐걱거리는 감미로운 작은 소리가 심야의 숲속에서 작은 암놈의 라군이 우는 소리같이 났다. 그 원목 바닥 위로는 이집트 특유의 검붉고 회색을 띤격자 문양의 카펫이 새로 깔려 있었다.
이 층에는 방이 마스트룸, 서재 그리고 피터 강 즉, 12 살 된 아들 강상현의 방이 있고 16 살 된 딸 그레이스가 다락방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락방의 동쪽 한켠은 조만간 칸막이를 하여 컨비니언스에서 팔 물건들의 재고를 쌓아 두는 창고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일 층은 넓은 통유리 2장으로 잘 마무리 되어 있어서 그 창을 통하여 온타리오 호수의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소파에 앉아서 언제나 볼 수 있으며 다이닝룸에는 전 주인이 남겨 둔 아직 쓸만한 이태리풍 앤티크칼라의 식탁과 의자가 6 개나 있었다. 조리실은 생각보다는 마블과 오크나무로 깨끗하게 잘 마무리 되어 있었다. 그 오른쪽 공간에 한국에서 생산된 냉장고를 사서 채워놓았다. 고전과 현대의 것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앙상블로 싫증을 느끼지는 않겠다고 생각하였다. 개수대에서 눈을 들면 환기가 잘 되도록 천장 가까운 곳에 환풍기를 설치해 놓았고 맑고 밝은 시야를 언제나 볼 수 있게 전면을 창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그 창을 통하여 출퇴근 때의 조금 번잡하게 오가는 차들을 볼 수가 있었다.
차고는 2 대의 차가 들어가고도 여유가 좀 있을 정도로 충분하였는데 이 층 피터의 방 아랫부분과 욕실과 서재의 아랫부분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하우스 전체의 넓이가 2,100 스퀘어 피트이지만 가족 4 명이 충분한 공간을 이용하면서 쾌적하게 살기에는 충분하였다. 이 층 어느 방에서 든지 고요하고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게 창을 만들어 놓았다. 일 층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포치가 있고 그앞으로 40 미터나 되는 잔디 정원이 2 차선 도로까지 펼쳐져 있었다. 옆 집과의 담장은 없었으며 하얀 조약돌로 경계하여 두었다. 아마도이웃과의 믿음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아늑하고 쾌적하였으며 우수한 전망과 평화스러운 주거 환경이었다. 에드는 아내의 탁월한 선택에 만족하였다.
아이들도 에드워드도 탁월한 아내의 하우스 선택에 만족하였다. 가게 또한 10 여 분이면 도착할 수있는 거리에 있고 피터와 그레이스가 다니는 학교도 걸어서 10 분 거리 내에 있었다. 주말에는빽야드에서 바비큐도 할 수 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낚싯줄을 멀리 던져놓고 기다리는 느긋한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도 있었다. 조금 무리하여 구입하였지만 모든 것에 만족하였고, 그제서야 새로운 기분으로 캐나다 이민생활의 보람에 젖어들 수 있었다. 아내 조경순은 가족들의 만족에 즐거워하며 틈만나면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남편 에드몬드는 아침 6 시에 가게로 출근한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도중 담배나 음료수, 자동판매기의 커피, 껌이나 기타 꼭 필요한 것들을 사려고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손님들도 이곳에 오면 헛걸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단골이 되곤한다. 조경순은 아이들마저 등교한 후 집안 정리와 지하실 정리 등 이것 저것을 새로 놓기도 하고 간단한 것들은 직접 고치기도 하였다. 그러다 정오쯤에 에드의 식사를 준비해 가게로 가져와서 함께 먹곤 하였다. 그러한 아내를 보는 에드는 아내의 새삼스러운 집안 구석 구석에 대한 관심에 조금도 이상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누구든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생각하니 유쾌하였다. 당분간은 거들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모든 것이 좋았다.
이제 한 달 후면 서서히 시작될 겨울. 그겨울은 포근하고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 에드워드는 역시 이민 오기를 잘하였구나 하는 안도감이 엄습함을 느꼈다. 그러나 겨울이 오기 전에 몇 가지 직접 손을 봐가며 수리하여야 할 곳을 미리 찾아 늦지 않게 마무리하리라 생각하였다.
에드는 이민 오기 전 중간 규모의 아파트와 고가의 독립가옥을 설계 건축하여 분양하는 한 중견 건축회사에서 수석 건축 설계사로 17 년간을 근무하였다. H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해에 입사하여 한 곳에서만 그렇게 오랫동안 근무하였다. 조금 더 있었으면 부사장직까지 맡을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아이들의 보다 넓은 시야의 배양과 더 좋은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독립이민을 감행하였다. 그런 그에게는 삐걱거리는 2 층 천장과 다락방 바닥을 뜯어내고 새로운 재질의 마감재로 교체하는 일은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락방 칸막이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다음 손 봐야 할 곳들은 주말마다 조금씩 교체 수리해 가면 이 겨울이 시작되기 전까지 만족스럽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오랜만에 부분적이나마 건축 일을 한다는 흥분과 재미에 마음은 벌써 들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헬퍼에게 가게를 맡기기로 하였다.
한여름의 끝. 그리고 초가을의 토요일은 구름 한 점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과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의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한 이른 아침으로 시작되었다. 잠에서깬 에드는 밤늦게 아내와의 오랜만에 치른 뜨겁고 황홀한 정사에서 오는 피로를 느꼈지만, 자리에서 나와 창가에 서니 오히려 몸도 마음도 가뿐하고 상쾌하였다. 아직 침대에서 곤히 자고있는 아내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나섰다. 애드가 입고 있는 옷은 네비블루 츄리닝 면바지와 하얀 면 셔츠였다. 그는 그런 차림으로 복도 우측에 있는 아이들 방을 하나 하나 살며시 문을 열어 잘 자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안도하며 아래층으로 내려와 좌측 창가에 자리하여 있는 쿡샾(Cook shop)에 가서 가스 스토브의 밸브를 틀어놓고 폿트에 물을 담아 스토브에 올리고는 컵에 헤즐럿 커피를 한 스푼 담았다. 그리고 설탕 3 스푼. 에드는 대부분 커피를 설탕의 단맛으로 마셨다. 그러면서 그는 늘 그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촌 넘이라서 어쩔 수없어. 커피는 무조건 달아야 해’ 이것은 그가 커피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첫 번째 말 즉 A 였다.
에드는 커피가 끓는 동안 어슬렁거리며 물안개 피어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스위트 홈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에드는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서 맨손체조를 하며 찌뿌듯한 몸을 풀었다. 헤즐럿 커피를 한잔 가득 만들어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들고 포치의 흔들의자에 앉았을 때는 아침 10 시의 괘종소리가 들렸다.
그는 리노베이션을 하기로 작정하고 하우스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부의 손 봐야 할 곳과 천정의 안전성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 층으로 가서 바닥과 천정을 나무망치로 두드려 보았다. 다락과 이층의 서쪽 끝 천장 사이에서는 둔탁한 소리가났다. 다시 한 번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나무망치로 두드려 보았지만, 다시 그 지점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상하다 생각이 든 에드워드는 다락에 올라가서 둔탁한 소리가 났던 지점을 두드려 보아도 역시 뭔가 있음직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특별히 이상할 것 없이 잘 깔려서 마무리 되어있는 구석의 카펫을 걷어 내었다. 카펫은 지난달 이 집을 팔려고 내놓기 한 달 전에 새 것으로 다시 깔았다고 먼저 집 주인이 말하였다. 다시 두드려 보아도 역시 느낌이 달랐다. 그는 한국에서 캐나다에 이민 오기 전에 다니던 건축회사의 건축기사로 현장 공사 경험을 얻기 위하여 회사의 건축현장에 2 년간 현장 감독을 계획적으로 맡아서 일했었다. 그가 건축 현장에서 망치로 수십만 번이나 두드렸던 그 경험이 지금 이 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게 하였다.
그 소리는 뭔가가 바닥 속에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몇 번 더 두드리며 소리를 음미하였다. 그 소리를 조심스럽게 듣던 에드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 소리는 무엇인가가 이 사이 공간에 있다는 확실한 소리였고,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일말의 야릇한 기대감이 엄습하여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하였다.
이 집을 에드에게 판 전 주인은 현재 구 러시아에서 독립한 러시아의 남부 터키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죠지아의 에쟈리아(AJARIA)에서 70 년 전, 그가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 온 70 대 중반으로 보이는 홀스 스탁톤이였다. 에드가 그 집을 매입하기 전 그의 오픈 하우스 날에 그를 좀 아는 사람이라며 집을 보러 온 중년 부부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중 그는 자랑같이 홀스 스탁톤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집 주인인 홀스 스탁톤의 아버지 발리듀에 스탁톤씨는 그 쏘련의 KGB 출신이었다고 비밀을 털어 놓는 것 같이 조심스럽게 말 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것이 여기에서도 자랑이 되겠느냐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그 이야기가 심각하게 여겨졌다. 혹시 이 속에 있는 어떤 것이 그의 아버지가 숨겨둔 무엇일 수 있지 않을까. 발리듀에 스탁톤 씨는 그의 아들에게 숨겨둔 비밀을 미처 말하지도 못하고 사망하였다면, 홀스 스탁톤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이 집을 나에게 팔았다. 그렇다면…과연 이것이 무엇일까.
에드는 담배가 다 타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쓸데없지 않은 추리에 몰입하였다.
에드는 다시 한번 그곳을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 그 옆의 다른 부분을 다시 두드려 보았다. 울려 느끼는 소리가 달랐다.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 부분을 열 수 있는 비밀 된 문은 없었다. 다만, 나무 바닥 한 조각의 길이가 끝나는 2 미터쯤 되는 곳에 박은 못 3 개 중 하나가 비틀려 박혀 있었으며 나머지 두 곳의 못이 박힌 곳에는 망치로 내리친 듯한 자국이 희미하게 있었다. 길이가 2 미터 넓이가 10 센티미터쯤 되는 나무 쫄 판자 3 개가 다른 곳과는 달리 나란히 놓여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카펫을 더 넓게 걷어내자 그곳은 격자로 깔린 다른 나무 바닥과 달랐다. 벽에 붙은 다른 한 끝은 못이 박히지 않았다. 둔탁한 소리는 벽과 붙은 쪽에서 났다. 에드는 흥분되기 시작하였다.
에드는 조심스럽게 신중을 기하여 주변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감각으로 느끼며 이상함을 발견하려 애썼다. 카펫을 들어내자 그 부분은 소리를 듣지 않고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정도로 전체 바닥과 다른 점이 없었다. 역시 벽에서 반대 편인 나무판자 3 개의 끝 부분은 못 질이 서툰 사람이 마감한 듯한 미세한 거침이 에드의 눈에는 잡혔다. 왜 홀스는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는 자신이 직접 카펫을 깔았다고 했는데...
아마 전문가가 아니라서 소리를 듣지 못하였든가,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