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신> '시의 눈'에 관해서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시의 눈'― 곧 '시안(詩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시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지(詩誌)도 요즘 나오고 있습니다만 일찍이 동양의 시관(詩觀)에서는 이 말을 자주 거론해 왔습니다.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다음의 글을 읽어가면서 이해해 보도록 하십시다.
시안(詩眼)
'시안(詩眼)'이면 '시를 보는 눈'이란 말인가, 아니면 '시의 눈'이란 말인가? 전자의 경우라면 그 '눈'은 시를 식별하는 관찰자의 것이 된다. 시인이거나 독자거나 간에 좋은 시를 판별해 낼 수 있는 능력, 즉 시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眼目)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그 '눈'은 작품이 지닌 것이 된다. 절구(絶句)의 작시법에서는 오언(五言)인 경우는 셋째, 칠언(七言)인 경우는 다섯째 글자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는 절구에서 그 위치에 오는 글자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동양적 시관(詩觀)에서 시안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도대체 '시의 눈'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시에 무슨 눈이 있다는 것인가. 눈이란 곧 생명체의 요처라고 할 수 있으니 시안이란 시의 요처를 이르는 뜻으로 짐작된다. 청(淸)의 오대수(吳大受)는 『시벌(詩筏)』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묘처(妙處)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 전체를 생동감 있게 살려내는 경이로운 한 구절이 시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바둑의 눈에 비유해서 말하기도 한다.
바둑에 눈이 있다는 말은 한 수 한 수마다 최선의 요처가 있다는 것이리라. 한 수 잘못으로 대마(大馬)를 죽이기도 하고, 한 수를 잘 놓음으로 해서 기세를 얻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게도 한다. 바둑의 명인(名人)들은 바로 그러한 요처를 찾아내는 눈을 지닌 사람들이다. 명국(名局)은 그러한 요처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진행되는 긴장된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요처들 가운데서도 국면 전체를 탱탱하게 거머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석(要石)이 놓인 자리를 '기안(碁眼)'이라고 할 만하다.
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어들도 하나 하나가 다 최선의 것들로 선택된 것이어야 한다. 만일 한 편의 시가 최적의 시어들로 이루어진 완벽한 구조물이라면 그 작품에서 시어들의 경중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옥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자재들 가운데서도 대들보가 가장 소중한 것처럼 작품이라는 하나의 구조물 속에서도 핵심이 되는 부분이 없을 수 없다. 아니 그러한 부분이 없다면 그 작품은 긴장감이 없는 느슨한 구조가 되고 말 것이다. 소설에 클라이맥스가 설정되는 것처럼 시에서도 작품을 이루고 있는 제요소들이 어느 한 곳으로 응집되는 긴장된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리라.
청의 유희재(劉熙載)는 『예개(藝槪)』에서 시안을 상대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劉)의 지론은 범주의 설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시안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작품 전체의 시안이 있고 또 각 부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요처인 시안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라 전체를 놓고 본다면 수도인 서울이 요지(要地)지만 어느 한 지방만 놓고 본다면 그 지방의 행정도시가 요지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시안은 시의 한 행 안에서, 혹은 한 연 안에서, 혹은 작품 전체에서 각기 달리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한 작품은 부분은 부분대로 전체는 전체대로 어느 한 요처에 탄력적으로 모아지는 유기적 구조들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시안의 이론은 시어(詩語)의 연찬(硏鑽)이라는 수사학적 입장을 넘어서서 시의 역학적 구조론(構造論)을 지향하는, 더 나아가서는 시심(詩心)의 응집 곧 시정신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는 시관(詩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목월(朴木月)의 「청노루」를 예로 삼아 시안을 살펴보도록 하자.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 청노루
이 작품의 전개는 원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대상에 접근해 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시는 두 개의 점강(點降) 구조로 되어 있는데, 첫째는 제1연이 '먼 산→ 청운사→ 기와집' 등으로 점점 하강 이동하는 것이 그렇고, 둘째는 제1, 2, 3, 4연의 전개에서 '먼 산→ 자하산→ 열두 구비(능선)→ 청노루→ 눈' 등으로 대상의 범위를 점점 좁혀 가는 것이 또한 그렇다. 첫째 구조가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면 둘째 구조는 전체 작품의 중요한 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정황을 카메라 동영상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먼 산을 배경으로 시작하여 대상인 한 마리의 노루에 서서히 접근해 간 다음 드디어 노루의 눈동자를 클로즈업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눈동자로부터 새롭게 펼쳐지는 구름과 창공의 무한 공간을 제시하게 될지 모른다. 제4연에서 제5연으로의 이동은 순간적 확산이다. 제1연에서부터 제4연에 이르기까지 점점 축소 응결되어 가던 시상(詩想)이 제5연에서 갑자기 확산 소멸하고 만다. 노루의 '눈'은 이 지상의 만상(萬象)을 삼키는 블랙홀이며,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열리는 하나의 신비로운 문이다. 그야말로 묘처 중의 묘처다. 이를 일러 시안이라 할만하다. 이 짧은 시가 단순한 서경시에 그치지 않고 한 생명체의 우주적 조응(照應)을 담고 있는 수작(秀作)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작품의 시안인 '눈'의 역동적인 작용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졸저『엄살의 시학』pp.125-8
로메다 님, 작품에는 핵심이 되는 부분의 설정이 필요합니다.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흥미가 고조에 달하는 절정의 부분이 있듯이 시에서도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요처가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시에서의 감동은 그 요처인 시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설정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시안 설정의 방법은 무엇인가? 동일한 작품을 놓고 구성과 표현을 여러 가지로 달리 하면서 스스로 찾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작품은 제 각기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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