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로 흐르는 느린 음악
정익진
네트 위로 넘어간 희망을 그가 받아쳤다. 심하게 역회전을 먹은 희망이 그의 라켓 면을 떠나 느리디…느리게 솟아올라 구름 속으로 스며든다. 분위기가 잠시 술렁거렸다. 아직도 허공중에 떠 있는… 저 희망은 언제 지상에 닿을 수 있을까. 한참을 올려다보면서, 오늘 밤 약속 장소로는 어디가 좋을까, 혹은 얼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손을 생각했다. 시간이 급정거하고, 무중력 상태가 된 몸이 둥둥 떠오른다. 이제 나는 구름이다. 몸의 형태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여 하늘을 떠돈다. 마침내, 지면 위에 떨어져 튀어 오른 희망을 하나, 둘, 셋, 왈츠 스텝에 맞춰 타격한다, 순간, 네트 너머로 수백 마리의 박쥐 떼들 펄럭이고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종착역은 보이지 않는다. 내 팔뚝 위로 독전갈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간다. 저 어두운 심연에서 들려오는 심해어의 외침, 희망은 휘발성이다. 천천히 피어오르는 신기루였고 앞뒤 맥락도 없이 쿨하게 사라진다. 세상이 침착하고 느릿하게… 연주되는 동안, 또다시 네트 위로 넘어간 슬픔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되돌아온다. 분수의 물줄기도 밤하늘을 향해 천천히 솟아오르겠지. 달빛에 젖은 물방울들은 자정이 지나서야 떨어질 거야. 슬픔에도 속도가 있을까. 느리게 느리게 왔다가 아주 오래오래 내면을 떠돌며 결코 소멸하지 않을 내 슬픔의 무거운 무중력이여. ―《詩로여는세상》 2023년 가을호 ---------------------- 정익진 / 1957년 부산 출생. 1997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