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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물골안 정순이에게는 상동이가 태어 난지 한 달쯤 지나서 인순이 아들을 업고 장사를 하러 왔다.
“마석댁 아들 낳았네, 축하해.
“언니 고마워.”
“우리가 그 보살에 써준 부적 덕을 본 모양이야.”
“이게 다 언니가 그 보살 소개해준 덕분이지, 그나저나 수동이 엄마가 이혼을 하고 갔거든, 그래서 이야기인데, 내가 그동안 식 못 올린 거 언니도 알잖아 그래서 이야기인데, 그 보살이 다니는 절에서 면사포라도 쓰고 식을 올렸으면 하는데.”
“그래 내가 알아봐 줄게.”
그렇게 해서 한 달 뒤 재덕과 정순은 결혼식을 청량리에 있는 절에서 올리기로 하고 순례에게 같이 가자고 했으나 속이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고
오빠 만석이도 올케도 아버지 선복이도 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올케 삼순에게 아이들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상동이만 업고 용단이와 재덕이 정순이 아침에 일찍 막 피어난 백합꽃 한 움큼을 잘라 가지고 서울로 가서 외사촌 동생 간난이가 유일하게 참석한 가운데 그렇게도 원하던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이라는 걸 올렸다.
정순에 성화에 끌려와 식을 올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얼마나 올리고 싶었으면 그러랴 하는 생각에 응한 것이었다.
밤꽃이 저가는 새창벌 철균이네 밤나무 갓에는 양봉을 하는 사람이 천막을 치고 양을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재덕이 젖이 모자라는 정순 아니 상동이를 위해서 부탁을 해서 보릿겨를 줄 테니 양젖과 바꾸어 먹자고 해서 수동이는 매일 보릿겨 한 됫박을 자루에 넣어 가지고 가서 양젖을 얻어왔다.
양젖은 건넌방 귀퉁이 선샘에 담아놓고 설탕을 타서 젖꼭지를 사다가 상동이에게 먹이는데 잘 먹지를 않아서 2홉 들이 병으로 하나가 반도 못 먹고 버렸다.
그리고 정순은 상동이를 위해 요람도 사서 방에 매어 놓고 매일 밀어주며 행복에 겨워하였다.
그러나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날 재덕을 그동안 가끔씩 붓고 흔들리고 아프던 충치 때문에 손을 뺨에 대고 고통스러워하자 서울서 치과 기공하는 곳에서 몇 달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물막골 선기가. 오만상을 쓰고 있는 재덕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형님 왜 저녁 굶은 시어머니 상이요.”
“이가 아파서 그래”
“그래요 그러면 빼야지 그냥두면 옆에 이도 썩어요. 그리고 새로 해 넣어야지 그래야 튼튼하지 내가 싸게 해줄게요.”
“그래도 여태 괜찮았는데.”
“괜찮기는 다 썩었구먼. 이 아픈 고통은 견디기 힘든 거요 먹을 걸 맘대로 먹나 또 쑤시기는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그걸 참아.”
“그래 얼마에 해주려는데 치과의 반에 반값도 안 되게 해줄게요. 형님하고 나 사이에 돈 같은 것 따지긴 뭘 따져요. 형님답지 않게.”
그렇게 선기는 재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치료만 하면 될 두 번째 어금니를 뺀다고 한 것을 마취주사를 놓고. 가지고 다니던 찍개로 방석니를 용을 써가며 빼냈다.
“자 다 됐소, 시원 할 거요.”
그리고 10분도 되지 않아서 마취가 풀리자 한여름인데도
“왜 이렇게 추워, 떨리네.”
하면서 누웠다.
“여보 이불, 이불, 그리고 불 좀 때.”
정순이 요를 펴고 이불을 덮어주고,
“수동아 나가서 불 좀 때라.”
수동이가 나가서 보릿짚을 아궁이에 끌어넣고 불을 때는데 불타는 보릿짚이 툭툭 터지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 됐다는 것을 직감한 선기는 의료 기기를 챙겨 가지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쳤다.
“으 으 음, 으 으 음 따, 다 닥, 으 으 음 따 다 닥, 여보 이불 더.
정순이 급히 이불을 한 채 더 덮어 주었지만 그 두꺼운 솜이불 두 채가 들썩이도록 떨었다,
그렇게 그날 밤을 떨면서 지내고 아침이 되어서야 온몸이 된 몸살을 앓은 것처럼 기운이 없는 가운데 간신히 일어나 죽으로 아침을 먹고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몇 칠 후 만난 선기가 뒤통수를 끓으며.
“형님 돌아가시는 줄 알았우. 미안하우.”
“아유 나 죽는 줄 알았네. 내 육이오 때 염병 알았을 때도 그렇게 떨지는 않았었네.”
“그나저나 가라앉아야 이를 해 넣을 수 있으니 이번 가을에 합시다.”
그렇게 방석니가 빠진 재덕은 화가 나면 빠지직 빠지직 갈던 이를 갈지 않았지만 오년은 늙은 사람처럼 이가 빠진 부분의 뺨이 우묵하게 들어갔다.
그런데 불행은 혼자서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방학중인 수동이는 여느 날과 같이 앞산에 꼴을 베러가면서 순복이 동생 로마를 데리고 갔다.
지개를 내려놓고 아들매기 갈대 칡 순을 베어서 한 지개 베어서 지개꼬리로 묶어서 지고 일어서려는데 까마귀가 수동이의 머리 위를 정통으로 날아가며.
‘까악’ 그리고 조금 다 날아가다 ‘까악. 하고 또 한 번 까악 하면서 날아갔다.
그런데 꼴짐이 기울어져 왼쪽으로 넘어 가려고 했다.
수동이는 어른들이 능숙하게 넘어가려는 꼴짐을 낫으로 찍어서 잡아당기고 가는 것을 본적이 있어서 오른 손에 쥔 낫으로 꼴을 찍어서 넘어가지 않게 했다.
그런데 까마귀가 두 번째 운 자리에서 낫이 쑥 빠졌다.
수동이는 다시 몇 걸음 옮기면서 다시 낫으로 꼴짐을 찍는다는 게 낫으로 머리를 찍고 말았다.
피가 쏟아져 앞이 안 보이는 가운데 꼴 지개를 벗어버리고 울면서 집을 뛰어 가는데 덕순이 아버지가 보고서 이마를 눌러서 지혈을 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고, 일을 하던 재덕이 급히 달려와 하도 급하니 떨리는 손으로 러닝샤스를 낫으로 잘라내고 덜덜덜 떨면서 약쑥을 비벼서 불을 붙여서 찢어진 머리를 지졌다.
우는 수동이를 달래 가면서 몇 군데를 더 지져서 지혈이 되자 업고서 도림개말 진승이네 가게로 가서 빨간 머큐로크롬을 발라 주는데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이홍규 선생이 혹시 머리를 다쳤나 해서.
“내가 누구냐?”
하고 물었고.
“주임 선생님이요.”
수동이가 대답을 하니
“머리는 안 다쳤어 머리는 괜찮아.”
진승이 아버지가
“병원에 안가도 될 꺼야.”
그렇게 재덕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붕대로 머리를 싸매고 수동이를 업고 오면서.
“수동아.”
“네.”
“머리에 물들어 가면 안 된다.”
“네.”
“그러니 다 낳을 때까지 멱 감지 마라라.”
“네.”
“그리고 이제부터 꼴 베지 말라. 아버지가 벨게.”
“네.”
그러나 수동이는 사흘을 못 견디고 머리만 적시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멱을 감으러 다녔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다시 꼴을 베러 다녔다.
그런데 정순의 둘째딸 순자가 발육이 시원하지 않아서 연년생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그동안 숯검정 이며 진흙을 먹는 게 영양실조 인 것 같았다.
정순이 확신을 가진 것은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해서 앞에 놓인 걸레를 김치인 줄 알고 젓가락으로 집으려고 해서 밤눈이 어두운 것이 영양실조라고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밤눈 어둔 데는 두더지가 좋다는 말을 들어서 마침 채마를 붙이고 얼마 되지 않은 채마 밭에 두더지가 쑤시고 돌아다녀서 재덕이 아침 해뜨기 전에 밭에 나가서 땅이 들썩이며 채마 밭을 파나가던 두더지의 뒷부분을 발로 밟아서 퇴로를 막고 파나가는 앞쪽에서 두더지를 잡아왔다,
순자의 약에 쓴다고 잡아온 것이었다.
재덕이 뒷다리를 끈으로 묶어서 부엌 뒤 마당에 놔두었는데. 수동이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 두더지가 재미있어서 잡아당겨 놓으면 또 땅을 파고 들어가서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었다.
올 봄 땅강아지를 실로 묶어서 가지고 놀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러나 두더지는 그날 수동이가 학교에 간 사이에 정순이 쟁개비에 넣고 끓여서 소금을 처서 밥에 말아 먹이자 그것도 고깃국이라고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어두운 곳을 잘 보는 두더지를 먹었다고 밤눈이 밝아지지는 않았다.
월남 파병이 시작 되었다.
올해는 여느 해 같지 않게 날일기가 좋아서 곡식이 잘 되어가고 있는데 저녁 까지 맑던 하늘이 밤에 바가지로 물을 퍼 붓듯이 비가 쏟아졌다.
재덕의 밭 일부가 산사태로 매몰이 되고 울 넘어 논의 일부가 산사태로 매몰되고 꽃재 삿갓배미 위 도랑이 넘치며 모래가 논 절반에 가까운 벼가 쓰러지고 묻혔다.
만취대와 운수리 사이에 다리가 끊어지고 선둘 길이 다 파여서 떠내려갔다.
지둔리에서 물레방아 간을 하던 명옥이 네는 할아버지가 떠내려고 다행히 명옥이는 야영 중이던 군인이 업고 나와서 살았다.
도림개말 흥기내 물레방아 간도 떠내려갔는데 흥기 할아버지도 떠내려가고 흥기 아버지는 경황없이 소를 끌어내고, 흥기는 라디오를 들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동내 순복이내 논 물막골 남훈이내 논 새창벌 춘하네 논 지둔리 남표내 개울가에 논들이 다 떠내려갔는데, 남표 엄마는 논 가장자리에 앉아서 두 다리를 쭉 뻗고 땅 바닥을 두드리며 울었다.
빌 빌 대면서도 먹는 것은 유난히 밝히던 순자은 어느 날 순례가 끓여서 보넨 미역국을 먹고 체해서 아프기 시작했다.
정순이 엿기름을 갈아서 소화가 되라고 물을 만들어 먹였지만 토하기만 했다.
변변한 약도 사 먹이지 못한데다가 동동 팔월로 접어들어 아이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는지 낳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조반을 드는데 꼬끼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의심했다. 수탉이 회를 지며 우는소리는 길고 구성진데 짧게 꼬끼오 하는 소리가 나고 양묵이
“저 닭 잡아먹어 버려라.”
했다.
암탉이 운 것이다
암탉은 알을 낳으면 꼬꼬댁. 꼬꼬댁 하는데 암탉이 수탉처럼 짧게 꼬끼오 하고 울었다가 그날 저녁 닭곰탕이 되고 말았다.
불안해진 정순은 미련하게 귀신이 씌웠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일요일 상동이와 경자 정자를 용단에게 맡기고 수동이에게 쌀 두말을 짊어지게 하여 시오리가 넘는 파위 건너 탕귀에 있는 무녀를 찾아가서 푸닥거리 비슷하게 굿을 하고 돌아왔으나 소용이 없었다.
몇 칠 후 저녁에는 수동이 상동이를 업고 정순이 순자를 업고 돌모루에 있는 남의원을 찾아가 약을 지어와 먹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을 넘게 아프니 다시 날을 잡아서 덕순 엄마에게서 둥둥 징을 치면서 굿을 하고 끝판에는 빨간 기를 뽑아서 잘 낳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밥을 조금 먹으니 굿의 효험이 있다며 정순은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 한 이밥이니 잘 먹을 수밖에 어린 수동이 눈에는 학교에서 배운 것 하고는 영 맞지 않았다.
그런 판국에서 육학년이던 수동이는 수학여행을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경비도 비슷하게 쌀 두되씩 거뒀는데 이번에도 재덕은 작년과 똑같이 꿈자리가 사납다고 하면서 수학여행은커녕 가을소풍도 가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은행나무가 울었다는 둥 수학여행동안 있었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수동이는 부러운 생각을 품고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가을걷이가 끝나가고 있는데 순자는 낳지를 않고 사태가 심각함을 인지한 정순이 급히 수동이를 불렀다.
“수동아 가서 외숙모 오시라고 하고 너 도 오늘 학교 가지마.”
수동이가 상동이를 업고 정순이와 삼순이가 순자를 번가라 업어 가면서 탕귀에 있는 유일한 의원으로 갔다.
그런데 가보니 의사는 왕진을 가고 없었다.
병원 침대에 눕혀놓은 순자의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으며 벌써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수동아 너 가서 할머니 보고 미음 좀 끓여 달래서 가지고 와라.”
수동이가 용단에게 미음을 끓여서 가지고 가는 그 시간에 의사가 순자를 진단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서는 힘들 것 같으니 빨리 서울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났겠습니다.”
정순과 삼순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가 나와 보니 다리가 끊어져 운수리 임시 차부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 시간 수동이는 용단이 담아준 노란주전자를 들고 탕귀로 향하여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탕귀에서 어리둥절해 있는 수동이에게 간호사가
“너의 엄마 서울로 간다고 갔어.”
할 수 없이 수동이가 선둘을 지나 잣나무고개를 향하여 걸어갈 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수동초등학교 애들과 마주쳤다.
몇 번 얼굴을 본적이 있는 애들이었다.
그 중에 한 녀석이
“야 가양 똥개 어디 갔다 오니?”
잔득 겁에 질려 있는 수동이의 주전자를 본 도식이가
“야 그거 막걸리냐?”
하면서 수동이의 주전자를 빼앗아 입을 대고 먹어 보더니.
“야 단데.”
하면서 만체도 순욱이도 윤기도 모두 한 모금씩 빼앗아 먹었다.
그렇게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모금씩 먹다보니 금세 주전자는 비어지 수동이는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빈 주전자만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 서울 청량리에 도착한 정순을 급히 재순의 집을 찾아가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언니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 있는 성 바오로 병원이 젤 났겠는데요.”
“그래요 그러면 그리로 가요.”
세 여인은 급히 성바오로병원으로 가서 진찰권을 끊어가지고 진찰실에 들어갔는데 의사가
“어떻게 애가 이지경이 되도록 그냥 있었어요.”
“바쁘다 보니…….”
“빨리 응급실로 가세요.”
세여인은 급히 순자를 응급실로 옮기고
“시누 내가 급히 오느냐고 돈을 준비해오지 않았는데 어디서 딸라 돈이라도 얻어야 하겠는데 아는데 없우.”
“내 알아 볼게요.”
재순은 급히 돈놀이 하는 사체업자를 알아보러 나갔고 정순과 삼순은 순자의 입원 절차를 밟아나갔다.
곧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데 피를 뽑을 때에는 자지러지게 울어서 정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순자야 검사해서 아픈 곳 찾아서 낳게 하려고하는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 조금만.”
사진도 찍고 링거액을 꽂고 의사와 간호사가 수시로 드나들며 순자의 상태를 살폈는데 순자는 눈자위가 이상하리만치 돌아갔다.
정순에게서 정을 떼려는 듯이 눈을 맞추지 않았고 얼마나 아팠으면.
“엄마! 엄마!”
하고 계속 보체며 울더니 새벽녘에는 입으로 핏덩어리를 토했다.
정순이 놀라 급히
“여기 좀 봐줘요. 여기 좀.”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오고 커튼이 쳐지고, 다시
“엄마! 엄마!”
하고 두 번의 단발마를 끝으로 조금 간호사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서 들어가 보니 벌써 순자는 숨진 뒤였다.
이어 정순의 흐느끼는 가운데 삼순도 다가와 눈물을 훔치며 정순의 등을 토닥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정순은 급히 안암동 산등성이 판자집 재운을 찾아갔다.
조반을 먹던 재운의 식구들은 정순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조용한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연순이.
“쯧 쯧 쯧 어쩌다 그리 되었어. 어쩌다가.”
재운이라고 별로 할 말이 없이 정순과 함께 안감내 시장 쪽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왔을 때, 재순이 돈을 빌려 가지고 와 있었다.
정순이 병원비를 내고 났을 때, 재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애는 어떡하실 생각이세요.”
딸 정도 나이의 정순이지만 동생의 부인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으로 실고 내려가도 택시비가 만만치 않고 어떻게 해야…….”
“그러지 말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고 나하고 내려가세요. 동생이 봐 봤자 가슴만 아플 테니 그렇게 하세요,”
정순은 대답대신 고갯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재운이 택시를 잡는 동안 정순은 병원 구석에서 상동이에게 젖을 물려서 먹이고 삼순에게 상동이를 업혀주며.
“언니 이돈 가지고 분유하나 사고 젖꼭지 사가지고 시누네 집에 잠깐만 가 있어요.”
“응 알았어요.”
재운이 택시를 잡아오고 정순은 순자의 시체를 찾아서 포대기에 감싸 앉고 택시 뒷좌석에 올라앉았다.
택시기사는 정순이 아이를 안고 타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큰 병원에서 조금 큰 듯한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어서 시무룩한 여인이 타고서 망우리로 가자고 하는데 뻔한 노릇이었다.
“좀 생각해 주십시오.”
“내 걱정마수.”
재운이 대답을 했다.
사실 택시기사들은 시체를 실어 나르면 재수가 있다는 속설이 있었다.
“아저씨 조금 기다려 줄 수 있나요?”
“그럼 1500원에 대절을 하는 걸로 하세요.”
“내 그러세요.”
그렇게 망우리 공동묘지에 도착하여 관리인을 찾아서 다시 천원을 주고 정해 주는 자리에 삽을 빌려서 재운이 땅을 파고 순자를 묻고 조그만 산소를 만들고 났을 때에는 거의 점심 무렵이 한참 지나 있었다.
정순이 재순의 집에 도착하여 내리며.
“아주버니 시장하실 텐데 점심 요기라도 하셔야죠.”
“점심은 뭐 점심 생각 하나도 없어요.”
삼순을 불러내어 차부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 정순을 극구 사양하는 재운을 중국집으로 안내 하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우동 세 그릇을 시키고 배갈 한 잔을 시켜서 들게 했다.
버스를 타고 망우리 고개를 넘는데 정순은 손수건을 움켜쥔 손이 눈으로 가고 자꾸만 순자를 묻은 산골짜기로 고개와 눈이 돌아갔다.
그리로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며 흔들리는 버스에서 눈물을 찍어내었다.
영성이네 보리밭을 갈던 재덕은 일을 하면서도 가평 새창벌로 눈이 갔다.
그렇게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해질녘에 저 멀리 새로 난 바위 위 봇도랑 길로 정순 일행이 오는데 눈에 익은 한사람 이 더 오고 있었다.
형님 재운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재덕은 어젯밤 꿈도 그렇고 형님이 내려오는 것이 보이자 순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 했다.
갈던 밭고랑 끄트머리에서 소를 돌려 세우며 다시 한 번 보니 징검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이 영락없었고 처남댁 삼순의 등에는 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워, 워,”
가려는 소를 멈춰 세웠다.
영생 아버지 선문이 눈치를 채고.
“수동아버지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 먼저 들어가시오.”
“어 수길이 소고삐 좀 끌어주게.”
하며 괭이로 보리씨를 묻던 경옥아버지를 불러서 소를 끌게 하고 쟁기를 넘겨받았다.
재덕이 마당으로 들어서려는 그 때 재운이 앞장서서 창복이네 마당을 지나 우물가로 접어들고 있었다.
재덕이 달려가 인사를 하는데 벌써 눈물부터 쏟아졌다.
“그래 들어가자.”
재덕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봉당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딱 딱 딱 흙 묻은 신발짝으로 댓돌을 후려치며.
“이. 이. 이, 어 흐 흐 흑.”
양묵은 기분이 찹찹하여 장죽에 담배를 눌러서 피우며 사랑 툇마루에 걸쳐 앉아서 애꿎은 담배만 빨다가 꽃재로 향하여 걸음을 옮기였다.
재운 역시 어떤 위로의 말보다 이럴 때에는 실컷 울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루에 걸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한참 후
“다 네 자식이 안 되려는 애물이니 잊어버려라. 불상한 것 이 불상한 거.”
하면서 재덕의 손을 잡아 어린아이를 보듬어 안듯이 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마루에 앉히고 등을 토닥이며.
“이게 다 네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잊어라 잊어 버려 이 녀석아.”
그렇게 재운의 어깨에 기대어 한참을 울고 난 재덕이
“여보 저녁 해드려야지.”
정순이 지친 몸으로 저녁을 지어서 주었지만 몇 숟가락 뜨고 다음날 아침 서울로 올라갔다.
재덕과 정순은 몸과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재순을 통하여 빌려 쓴 딸라 이자 돈이 급했다.
현용이네서 탈곡기를 빌려와 마당에 설치하고 발을 가려서 콩알이 멀리 튀어가지 않게 하고 돼지우리가 있던 자리 얼룩이에 쌓아놓아 마르기를 기다리던 콩 단을 꺼내어 정순과 재덕이 하루 종일 탈곡기를 밟아가며 털어서 다음날 석고개 쌀장사 하는 정씨를 불러서 콩을 팔았다.
재덕은 소매치기가 무섭다며 전대에 옷핀을 촘촘히 꽂아서 돈을 넣어서 정순의 배에다 채워주며.
“조심해서 가지고 가, 그리고 늦으면 재순내 집에서 자고 와.”
정순은 운수리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서 재순을 만나서 돈을 갚았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다시 망우리 고개를 넘어오는데 설움이 복받쳐 올라서 참느냐고 고개를 숙이자 차장 아가씨가 얼른 비닐 봉투를 가지고 달려왔다.
“아주머니 여기다 하세요.”
정순은 맥없이 허탈하게 비닐봉지를 받았다.
수동이는 덕순이와 덕분이를 놀리고 괴롭혔다.
굿은 정순이 했는데 왜 덕순이와 덕분이를 미워하는지 도가 지나치게 괴롭혔다.
재덕은 희상이 떠난 후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많은 고초를 겪었고 10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시련은 재덕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었다.
용동이는 아들 태수와 태관이 형제를 병으로 잃고 말았다.
연행과 윤희을 슬픔 또한 컸다.
속을 끓이던 용동은 위장병 까지 생겼다.
첫댓글 하늘의 벌 인가요?
아니면 운명이랄까?
미우면서도 연민의 정이 솟는 것은 무었대문일까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당하는 군요
생이란 다 그렇게 험난 하담니다 .
우연히 누구를 버려서 꼬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