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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학교에서는 앞에 새로운 교실이 다섯 개의 교실이 지어지고 해방과 더불어 지역 유지들이 추렴을 해서 지은 교실을 헐자 마룻바닥 밑에서는 그동안 잊어버렸던 책받침 자 연필 면도칼 등이 나왔다.
더구나 유리문을 떼어내 쌓아둔 곳에서 아이들은 너나없이 도르래를 하나씩 떼어가지고 가서 석유를 부어서 녹을 벗겨내고 재봉틀 기름이나 몰래 들기름을 처서 돌리며 가지고 놀았다.
수동이는 도로래 뿐 아니라 겨울에 썰매를 만들려는 속셈에서 저녁 늦게 문틀에 박혀있던 도르래 레일을 빼서 가지고 왔다.
도둑질임에 틀림이 없 것 만 누구하나 제제 하는 사람도 충고 하는 사람도 없이 군중심리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다시 늦가을 인순이 장사를 내려와 정순을 위로 해 주다가 이야기 끝에.
“방꼴 윤 생원 댁에 새 며느리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며.”
“그렇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근데 윗방 시렁에 기저귀로 목을 맺는데 무릎을 꿇고 죽었데.”
“그렇게 무릎을 굻으면 못 펴나 보죠.”
“그렇다나 봐 무릎을 꿇으면 펴고 싶어도 못 핀데 글쎄.”
“정말 그럴까요?”
“그래서 염 할 때 퍼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다네.”
그 이야기를 수동이도 옆에 앉아서 들었다.
그해 겨울은 순복이네가 도자를 불러와 파묻혀 버린 논보다 더 넓게 밀어내어 논을 만들었다.
그리고 돌을 주어다 방천을 쌓고 논을 만들고 머슴을 두고 겨우내 산자락에서 흙을 파다가 넣었다.
그리고 재덕은 부지런한 이웃집 처녀 기님이를 조카 영동이에게 중신을 하려고 병욱을 찾아가 조카며느리를 삼고 싶다고 했으나, 이미 선을 보기로 한 서울 총각이 있다고 했고 얼마 후 급속도로 일이 진행되어 갈 무렵 재순이 친정에 다니러 왔고 서울 살림이 궁금해진 기님은 재순을 찾아와
“언니 서울시집 살림은 어떻게 해야 해요.”
“응 애교를 잘 부려야지 내가 신랑한테 오빠라고 했다가 엄청 혼났다.”
“그래요 음 그렇군요.”
그러나 재순은 요즈음 남편 교현이 예전 같지 않고 약간 멀어진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니 시집살이가 가시방석이었다.
재순은 벼르고 별러서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서 내려온 것이었다.
벌써 결혼 한지 오년이 넘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순례에게 하소연 했고 순례의 이야기를 들은 양묵은 생각 끝에 경이라도 한번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순과 재덕에게 재순을 위해서 충묵에게 부탁해서 경을 한번 읽어 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럼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세요. 준비는 저의가 할게요.”
그래서 점심 무렵 충묵이 안마산에서 북을 매고 와서 우선 떡을 한 시루 하라고 하고 낫자루 하려고 잘라다 놓은 버드나무를 한자 정도 되게 자라 끝 부분에 홈을 파고 창호지 석장을 사방 한자가 되게 잘라서 홈을 판 부분에 단단히 묶고 위로 뒤집어 신장대를 만들어 다듬잇돌을 내어다 그 옆 놓고, 쑥대를 재순의 나이숫자인 스물아홉 개를 자반 길이로 잘라 수수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쑥대를 꽂아 놓고 활을 만들었다.
쌀 한 말에 북어 한 마리를 실 한 타래 묶어 꽃아 놓고 떡시루를 그 옆에 놓고 그리고 소반에 창호지로 사람 모양으로 된 조그마한 인형을 만들어 엽전 위에 세워놓고 그 위에 숟가락으로 들기름을 부어놓고 불을 붙이고 북을 둥둥 울리며.
“오방 신장 북방에는 을지문덕 서방에는 계백장군 동방에는 김유신 남방에는 장보고 오방의 장군들이시여, 오호 신들이시여 오늘 이집에 있는 모든 악귀들을 장군의 힘을 빌려 치려 하니 그래도 나가지 않는다면 관운장을 모셔오고 그래도 아니 되면 장비 여포 마초에 조자룡을 부를 찌니 썩 물러갈 지니라 어 오신다.”
그리고 다듬잇돌 앞에 놓여 있던 신장대를 병묵이 두 손으로 꽉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떡시루 옆에는 재순이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양묵이 앉았고 동내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분이 넘어가니 신장대를 잡은 병묵의 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하게 흔들리자 병묵은 신장대의 아래 부분을 다듬잇돌에 딱 딱 낫자루 박듯이 때려 박았다.
마치 신장대가 병묵을 일으켜 세운 듯이 병묵이 서서 대가 이끄는 데로 흔들리며 쫓아다니고 충묵의 북을 치고 경을 읽는 소리는 계속되어 갔다
“적토마를 올라타서 청룡 언월도를 비껴들고 관운장이 나서신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양묵을 시켜 경단으로 만든 화살을 재순에게 쏘라고 하고 화살을 쏠 때마다 북소리와 동시에 기압가지 넣어가며 경을 읽어 갔다.
병묵은 집안에 여러 곳을 신장대에 흔들리며 계속 돌아다니며 귀신을 몰아서 경을 읽는 대청으로 와서 충묵이 창호지로 만든 손가락 크기의 종이인형에 귀신을 몰아넣고 그 인형을 신장대에 창호지 부분으로 병에다 밀어 넣어서 병을 마개로 닫고 재덕이 양초를 녹여서 밀봉을 하고나서야 경 읽기가 끝났다.
그러는 동안에
상 중앙에 켜두었던 엽전 세 개도 상의 끝 부분에 도착해 있었고, 재덕과 병묵이 경단으로 만든 화살과 병을 개울로 가지고 가서 띄워 보냈다.
경 읽는 과정과 모든 것을 지켜본 수동이는 참 신기했다.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고 충묵 할아버지는 일자무식인데 역사에 나오는 장군들의 이름이며 싸운 것 하며 그것도 모자라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을 줄줄 외울까?
충묵 할아버지 말로는 열대여섯 살 때 소경이 경 읽는 것을 구경 갔다 왔는데 그 후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술술 경이 읽는 소리가 나와서 경을 읽게 되었다고 했고 세배를 하러 해마다 가 봐도 북을 벽에 걸어 놓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경도 일 년에 한두 번 불려가 읽을 뿐이고 농사를 지으며 마당가에 대장간을 지어 놓고 숯이나 코스코를 넣고 풀무질을 해서 낫 괭이 호미 등을 벼려서 용돈으로 생활을 하며 전 처 소생으로 과년한 딸이 재희가 몇 년 전에 덕말로 시집을 가고 수동보다 서너 살 적은 아들 하나를 낳고 혼자 사는 과부를 후처를 맞았는데, 늦게 딸을 둘이나 낳아서 하나는 정자와 동갑 또 하나는 경자와 동갑이라도 재당 고모가 되어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리고 수해구호 물자가 와서 나누어 주는데 누군 주고 누군 안주고 할 수가 없다며 물건을 한 가지 놓고 제비뽑기를 했기를 해서 물건을 나누어 가졌는데 재덕이 등산화가 두 개나 당첨이 되었고. 진승이 아버지 정제는 아래위가 붙은 내복이 당첨 되었다.
진승이가 등산화를 가지고 싶어 해서 재덕이 등산화 하나를 내복과 바꾸어 가지고 왔는데 이런 화장실을 볼 때마다 뒤에 단추를 풀어내고 일을 보아야 해서 불편을 느끼던 재덕은 한번을 입고 걸레로 써 버렸다.
그리고 통조림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따고 보니 콩 껍질이 잔뜩 들어간 이상한 것이었는데 결국엔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지저서 먹었다.
얼마 후 기님이는 시집을 갔는데 신랑은 서울에서 가구점을 하는 부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초겨울 11월에 영동이가 재덕을 찾아 와서 절을 하고 나서
“작은아버지 저 날 받았어요”
“그래 축하 한다. 그래 언제야”
“동지 달 스무닷새 날 이예요.”
“규수는 어디 사람이냐.”
“홍천사람 이예요.”
“그래 서울 작은댁에도 다녀오는 길이냐”
“네.”
“작은댁도 다들 무고 하시지.”
“네.”
“작은댁에선 무었을 하시기로 했냐.”
“구두를 맞추어 주셨어요.”
“내가 그러면 우린 채단을 맞기로 하지.”
“감사 합니다 작은아버지.”
형수가 혼자 잘 키우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도 수동중학교에서는 예술제가 있었고 올해는 구슬아기를 공연했고 찬조출연을 나간 길민이와 종례는 밀양아리랑에 맞춰서 율동을 했다.
그리고 곳 중학교 시험이 다가와 입학원서를 써야 하는데 전형서류에는 호적초본을 첨부하라고 해서 수업을 두 시간 일찍 끝내고 중학교 가기로 한 사람은 모두 면사무소를 호적초본을 떼러 가기 위하여 아이들이 방과 후 재잘거리며 운수리를 향하여 걸어갔다.
다행이 수동초등학교를 지날 때에는 수업에 들어갔는지 조용했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여 보니 청룡말에서 면사무소 호병계장으로 다니는 양재 아버지가 있었다.
진승이가
“아저씨 저의집이 몇 번지예요.”
“마 너의 집 번지도 몰라 너의 집은 수산리 1번지다.”
그렇게 조잘 거리며 면직원이 모두 동원되어 호적초본을 필사를 해서 거의 다 떼었지만. 수동이는 번지를 대었는데 없다는 것이었다.
시무룩하게 있다가 다른 들은 신나게 나오는데 힘없이 터덜터덜 따라서 임시로 놓은 다리를 건너서 중학교 앞을 지나는데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아이들은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동이도 시무룩하던 것을 잊어버리고 뛰었다.
제일 먼저 달려가 트럭에 적재함을 움켜쥔 용주가 트럭에 올라타고 다른 아이의 손을 잡아 주기위하여 손을 내밀었다.
다음 진성이가 할딱거리며 달려들어 용주의 손목을 잡는 순간 트럭이 지서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조수가 내려서 용주의 멱살을 잡고 반짝 들어서 지서 문을 열고 안에다 밀어 넣고 트럭을 그래도 가 버렸다.
순간 밖에 있던 20여명이 넘는 아이들은 모두 얼음이 되어 있다가
“용주 제 큰일 났다. 어떡하니?”
“그러게 어떡하니.”
그러나 어린학생들은 누구도 지서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고 있는데 지서의 문이 열리고 용주가 나왔다.
걱정하고 기다렸던 아이들이
“야 뭐라고 그러데.”
“차올라 탔다가 들어 왔어요. 했더니 나가 인마, 해서 나왔어.”
“야 그나저나 수동학교 앞에 가면 애들이 몰려나올 탠대 걱정이다.”
“그러게 말야”
“제일 작은 창훈이는 앞에서 가고 그리고 너 용주 그리고 수동이가 그 다음에 서고, 중간에는 다른 애들이 서고 제일키 크고 힘이 쌘 만기가 뒤에 서서 부지런히 대꾸하지 말고 지나가자.”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수동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야 가양 똥통학교 애들 간다.”
하는 소리와 함께 애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또래보다 두 살이나 많은 만기가 맨 뒤에 서고 모두 뒤 처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걸었다.
만기의 덩치에 겁이 났는지 가까이 따라오지는 못했다.
그들의 기세는 탁거리를 지나면서 불당골과 전자동으로 가는 애들이 갈라지고 나니 아이들의 숫자가 반으로 줄어서 쫓아오는 애들이 적어졌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호적초본 이야기를 했더니 호적이 남면에 그대로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입학원서를 쓰고 안마산 명국이는 서울에 있는 학교 입학원서를 가지고 와서 신종희가 당황해 하며 아버지를 모셔오게 해서 명국이 아버지가 왔다 갔다.
그리고 나영균 선생이 균명중학교 입학원를 가지고 와 진승이와 복기가 써 가지고 가기도 했지만 복기는 수동중학교 입학원서를 써 냈다.
수동이도 입학원서를 써 내고 시험 날이 되어서 새벽밥을 먹고 눈이 내려 질퍽거리는 길을 걸어서 수동중학교로 시험을 보러갔다.
두 개의 교실로 나누어 시험을 보았고 수용인원이 모자라 2개 반으로 나누어 학생을 다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가운데 이주일 지나서 신종희 선생이 석차를 발표했는데 복기가 2등 수동이는 24등 이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얼마 전 학교 뜯을 때 훔쳐온 창문 레일을 구부려서 썰매를 만드느냐고 끙끙대고 있었는데 재덕이 보기 좋게 구부려서 썰매 굽에 대서 못까지 처 주었다.
그렇게 해서 썰매가 완성되었다.
재작년 삼태골 영식이가 논배미 아래 도랑에 감춰놓은 썰매를 훔쳐다.
타다가 돌려준 적이 있는 수동이에게는 아버지가 생전 처음 만들어준 썰매를 타면서 무척 좋아했다.
아마 재작년 가을 운동회 때 학교에서 곤봉체조를 한다고 곤봉을 깎아오라고 해서 깎을 때 애를 먹었는데 그때도 아마 재덕이 마무리 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수동이 방학을 얼마 앞두고 재덕은 석고개 정씨를 불러서 팥 다섯 말 서릿태 두 말 흰콩 다섯 말을 팔아서 돈을 챙겨서 서울로 가서 동대문시장에서 채단을 해왔다.
12월 27일 먼동이 틀 무렵 양묵 재덕 정순은 상동이를 업고, 수동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운수리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마석에서 갈아탈 바에야 그냥 대성리까지 걷기로 하고 넷이서 부지런히 걸어서 11 시경 대성리에서 버스를 타고 가평에서 내려서 점심을 먹고 얼어붙은 북한강 위를 걸어가니 남이섬을 지나니 가평읍 사람들이 나무를 두 짐 씩 해서 발구에 실어서 끌고 길게 행렬을 지어 돌아오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스러니 고개를 넘어 가정리를 지나 한참을 걸으니 가정초등학교를 지나 강기슭으로 난 길을 한참을 걸어 물개 지서 앞에서 양평단월서 오는 장동이 일행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 그래 자내들 오랜만일세, 인사 올리게 우리 아버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 장회에요.”
“오 그래 자내가 주묵 형님의 손자란 말이지.”
“예.”
“이쪽은 우리 집 사람.”
“안영하세요. 아주머니.”
“수동아 인사드려라 형님 벌 되신다.”
“안영 하세요”
“벌써 자내하고 예하고 팔촌이내 그려 잠깐 동안에 팔촌이 났네.”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벌써 동내 입구에 들어서고 있고 느티나무가 보였다 누구보다도 감개무량한 것은 정순이었다.
이게 얼마 만에 오는 고향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팔년이 넘어서야 오니 느티나무위에는 정순이 낳고 자란 옛집에는 대춘이내가 산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자꾸 눈이 그 쪽으로만 갔다.
윤희의 집에 들어서니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맞아들였지만 정순을 대하는 눈길은 곱지가 않았다.
특히 윤희는 뭣 하러 왔을까 하는 눈치를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재덕은 어느 방으로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양묵 또한 집안의 어른대접을 받으며 사랑방에 들어가고 옆에 있던 수동도 벌써 사촌 누이 옥자가 데리고 가서 먹을 것을 챙겨 먹이고 있었는데, 정순만 뻘쭘이 서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순의 생각으로는 희상이 이혼을 하고 떠난 마당이고 아들까지 낳아서 등에 업고 혼수로 채단 까지 해가지고 왔는데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잖아. 괜히 왔어 괜히 왔어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잔치음식을 만들고 있던 친정 작은엄마 음단이가
“아이고 이게 누구야 정순이 아니야.”
“네 작은 어머니 작은 아버지도 안영 하시지요.”
“그래 잔치 보러 왔구먼, 이리와 저녁 먹어야지.”
“경석이와 영석이도 잘 있고요.”
“그래 잘 있지 잘 있고, 말고.”
하면서 손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가 상을 차려주어서 먹는데. 그래도 낮 익은 몇 몇이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눈총을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식사를 마치자 눈치 빠른 음단이가
“아침 일찍 떠나고 애 업고 오느냐 피곤 할 텐데 우리 집으로 가자.”
하고 같이 샘물 구덩이 도랑을 건너서 음단의 집으로 데리고 안방으로 가서 앉으며
“그래 아버지 어머니 안녕 하시지.”
“네”
“만석은 은 여태 어린애 소식 없지.”
‘네.“
“얼른 생겨야 할 텐데.”
“경석이는 아직 색시 없죠.”
“그래 걱정이야 어디 마땅한 색싯감 있으면 중신 줌 서.”
“네”
“그럼 쉬어 건너갔다가 이따 올게.”
음단이 다시 윤희내 집으로 와 부엌에 들어가니 누군가 정순이의 예기를 하고 있었다.
“정순이도 많이 망가졌네, 어려선 그렇게 예쁘더니.”
“그러게 말이야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은가봐.”
“그만한 얼굴이면 좋은데 시집을 갔을 텐데.”
“누가 아니래 남한테 못 할 짓하고.”
이튿날 새벽 일찍 영동와 후황을 가기로 한 재운을 비롯한 가마꾼들 그리로 친구 몇이 동행하여 신부 집을 향하여 길을 나섰다.
아침이 지나자 손님들이 모여 들어서 일상내 사랑방 대춘내 안방 모두 손님들이 차지하고 앉았고, 마당 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국수를 삶아 내고 건너방에서는 떡과 과일 을 그릇그릇 담아서 상을 차리게 하고 부엌에서는 반찬을 담아내어 상위에 올려놓고 다 차려진 상은 손님 숫자에 맞추어 방으로 향했고, 아이들을 모두 대문 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상에 둘러 앉아 먹게 한 다음 밖으로 나갈 때 떡과 과일이 담긴 그릇을 하나씩 주면서 수건에다 싸가지고 가고. 그릇은 한 군데 놓고 가게 했다.
한편 정순은 음단이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잔칫집으로 가려다, 이내 주저앉았다.
누구하나 작은 어머니로 대접해주는 조카들도 없고 더욱이 윤희나 연순은 냉담하기 까지 하니 쉽게 발길을 향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인사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코배기도 볼 수가 없고 수동이 그 녀석조차 보이질 않았다.
괜히 왔어 괜히 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는 건데 후회해도 소용없고, 점심이 한참지난 후 음단이가 쟁반에 먹을 것을 챙겨 들어오며.
“배고팠지 왜 건너오지 그랬어.”
“가 봐야 복잡한데 앉아있을 자리도 없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물개 강을 건너서 신랑일행이 가마에 신부를 태우고 돌아오고 있었고, 누군가 달려와
“새색시 온다. 새색시 온다.”
가마가 당도하면서 집안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솥뚜껑, 솥뚜껑, 솥뚜껑 빨리 가져와.”
안방 방문 앞에 솥뚜껑이 엎어지고
“이걸 왜 놓는데.”
“이렇게 하는 거래.”
“새 색시가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하는 거래.”
“난 홀딱 타넘어 왔는데.”
“난 손잡이를 밟으려다 문지방이 있어서 망설이다. 문지방을 밟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결국은 손잡이를 살짝 밟고 깡충 넘어서 왔지.”
마루 끝에 가마가 놓이고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서 머뭇머뭇 하더니 솥뚜껑 가까이 한발을 딛고 문지방 까지 한발에 넘어서 아방으로 들어와 안방에 자리하고 앉았다.
곧 신랑 신부를 위하여 상이 차려져 나왔고, 신랑 신부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신랑이 밥을 김에 싸서 색시 좀 먹여줘.”
“나 장가들러 갔다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나 여태 굶었어요.”
하면서 영동이는 너스레를 떨며 혼자 밥을 먹고 구경하던 아낙들이 한마디 했다.
“그러지 말고 한입 싸서 먹여줘요 나중에 후회 하지 말고”
그러자 김을 한 장 들어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밥을 싸서 신부 입에 가져갔고 그걸 새색시가 입을 크게 벌리고 받아먹을 수는 없었고, 도로 자기 입에 넣고 먹으며
“집에서 많이 먹고 와서 안 먹는다잖아요.”
“색시 배고플 텐데 조금이라도 들어요.”
하며 새색시에게 밥 먹기를 권했지만 새색시는 몇 수저 들지를 않았다.
그리고 조금 후 폐백을 드리려고 준비를 하자 재덕은 얼른 정순을 찾아서 불러왔고, 순서대로 윤희가 맨 처음 절을 받고 대추와 밤을 던져주며.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아라.”
하고 일어나 나가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 기뿐 날 그이가 같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벌써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다음은 재운 부부가 절을 받은 다음 대추와 밤을 던지며.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아라.”
그리고 다음은 재덕 부부의 차례가 되자, 윤희가 정순을 가로 막았다.
처첩이 폐백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였고, 재덕은 난감 했다.
같이 받을 수 없다는 윤희와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나도 안 받겠다고 좋은 일에 재를 뿌릴 수 없고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절을 받았다.
그 다음 용동이 부부가 폐백을 받는 동안 재덕은 나와서 음단의 집으로 향하는 정순을 쫒아가고 있었다.
“그래 이런 대접 받게 하려고 오자고 그랬어요.”
“형수가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시니 어쩔 수 없잖아.”
“아유 이년의 팔자는, 우리 내일 당장 가요.”
애초에 재덕은 사당제도 올리는 것 보고 사흘 근친을 다녀온 후에 가려고 했었다.
“여보 아무래도 폐백을 못 받아서 간다고 하면 모두수근 대겠지.”
“난 체면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내일 나 혼자라도 갈 테니까, 당신은 여기서 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내일 아침이나 먹고 떠나자고.”
그러는 동안 시누이 옥자 시동생 연동 수동이가 맞절을 하고 나서 폐백이 끝났다.
건넛방이 깨끗이 치워지고 윗목에는 병풍이 처지고 상하나가 차려졌다.
상위에는 세 개의 뚜껑 덮인 밥주발이 놓여 있고 간단한 안주와 술이 한 주전자 그리고 촛대에 윤희가 불을 붙여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신랑 색시가 방으로 들었고, 풍속대로 밖에서 신방을 지킨다는 구실로 문을 손가락으로 뚫어서 구경을 시작했다.
맨 처음 신랑의 잔에 술을 한잔 따라 주면 신랑이 마시고 신랑이 한잔을 따라 주면 신부가 조금 마시는 척하고 신랑에게 잔을 넘겨 신랑이 마신다.
그 다음 상위에 주발 뚜껑을 여는데, 맨 처음 빈주발이 나오고 다음에 연 주발에는 쌀이 가득 세 번째 주발에는 돈이 들어 있자,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부자 되겠네 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의 족두리를 벗긴 다음 저고리를 벗기고, 병풍을 가까이 둘러치고 초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조상에게 이집 귀신이 되겠습니다.
하는 사당제가 있고나서 춘천에서 사진을 찍으러 사진사가 와서 집을 배경으로 한 장을 찍고 뒤에 밭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한 장 찍는데 재덕부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용동이가가 몇 번을 가서 오시라고 하였으나 오지를 않고 수동이만 참석하여 사진을 찍었다.
조금 후에 재덕이 집으로 가겠다고 했고 용동이가
“작은아버지 몇 칠 더 묵어가세요.”
했지만
“그냥 가려내.”
“섭섭한 게 있으세요.”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아닐세.”
“아니면 지금 바뿐 때도 아닌데 섭섭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이렇게 섭섭한 마음으로 보내드리면 제가 마음에 걸려서 어떡해요. 그러면 저하고 등을 지실 거 아니잖아요.”
말을 듣고 보니 무언가 구실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질부가 시동생인 수동이를 수동아 밥 먹어라 하더라. 어디 시동생을 이름을 불러.”
“그러시다면 제다 불러서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간 용동이는 연행을 불렀다.
“여보 막내 작은아버지가 당신이 수동아 밥 먹어, 했다고 섭섭해서 간다고 하시는데 가서 잘못 했다고 해야겠소.”
“그래요 전 기억이 없는데.”
“그래도 잘못 했다고 하시오 내 생각으론 아마 폐백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소 그렇다고 어머니가 하신일이 잘못된 일은 아니고, 내 어머니께 잘 말씀 드리리다.”
연행이 나와서
“작은아버님 제가 실수로 말을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래 됐다.”
하고서 재덕과 정순이 수동이를 불러서 길을 나섰고 양묵도 할 수 없이 따라서 길을 나서자 봉선이라고 해서 가방에 떡과 과일 산자와 고기 그리고 술 한 병을 넣어주며 모두 나와서 배웅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가평에서 마석까지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운수리에 내려서 어둑해질 무렵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끝나 가는데 수동이는 창복이와 어울려 매일 썰매 타는일에 열중을 하느냐고 방학숙제라고는 방학책에 나와 있는 문제만 겨우 풀고 선생이 내준 숙제는 아예 건들지도 않고 놀기만 했다.
드디어 개학날 신종희 선생이 방학숙제 해온 것을 내 놓으라고 했는데 6학년 전체 학생이 모두 숙제한 것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실망한 신종희 선생은
“유종의 미 라는 말이 있다. 졸업을 앞두었다고 학생의 본분인 숙제를 하지 않는 것은 본분을 잊은 것이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거나 상급학교에 가서도 마지막을 잘 마무리 짓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이상.”
“차렷 경례.”
반장 복기의 구령에 따라 인사를 받고 교무실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재덕은 설을 앞두고 소를 살찐 소를 팔고 마른 성귀소로 개비를 했다.
그리고 정순은 상동이가 커가는 속에서 순자를 잃은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동지섣달 설한풍이 몰아치는 갓밝이 무렵에 구들장이 식어지면 상동이가 추울세라 배위에 얹고 느슨해진 고무줄을 당겨서 녀석을 잠옷 속에 넣고 배위에서 잠을 재우다 배가 따듯해지면
‘에이고 귀여운 내 새끼가 오줌을 누셨네.’
하면서 손을 뻗어서 머리맡에 개어놓은 기저귀를 꺼내어 배위에서 갈아주며 행복에 겨워하며 재덕이 소죽을 쑤어서 아랫목이 따듯해지면 내려놓으며.
재덕이 소죽을 끓이기 위해 땐 불기운에 구들장이 따듯해지면 재덕이 화롯불을 담아서 들어온다.
그제야 정순은 상동이를 옆에 뉘이면 재덕이 녀석의 옹알이 보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행복은 무엇에 견줄 수 없었다.
그 무렵 서울에 희상이도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형욱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몇 칠 후 운동장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검은색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몇 몇은 벌써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애들도 있었다.
수동이가 작년에 사 입은 초등학교 교복은 얼마나 장난이 심했는지 단추가 두 개나 떨어져 나간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중학교 시험을 치룬 아이들에게는 입학금통지서를 나누어 주었다.
입학금은 1,500원이었다.
졸업식 연습도 있었고, 졸업식 전 전날에는 오학년과 육학년 학부모 들이 한집에 한 가지씩 음식을 해가지고 학교에 모여서 사은회를 가졌다.
정순은 메밀을 갈아서 무나물을 넣은 전병을 해 가지고 학교에 가서 교실 두 개를 튼 임시 강당에 길게 늘여놓은 책상위에 선생님과 학부모의 상이 차려지고, 또 한쪽으로 오학년 육학년 학생들의 상이 차려져 모두 둘러 앉아 먹었다.
전병이 맛있었다는 말을 재덕으로부터 전해들은 정순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졸업식이 지나고 종업식이 있고 봄 방학 기간 중에 조원영 교장선생님이 전근을 가고 계병훈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고 학교일을 돕는 소사도 새로 왔다.
소사는 박운영이라는 사람인데 이혼을 하고 정자와 동갑인 2 학년이 되는 딸 금옥이를 데리고 사는데, 재덕이 양묵의 허락도 없이 사랑방을 빌려 주었다.
운영은 사랑방에서 살림을 했는데 술을 좋아해서 매일 술을 사가지고 와 재덕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어린 금옥이게 밥을 하라고 시켜서 2학년에 올라가는 금옥이가 고사리 같은 손을 호호 불면서 밥을 지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술이 떨어지면 어린 금옥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켜서 어린 금옥이 초봄 쌀쌀한 밤공기를 마시며 도림개 말까지 가서 술을 사오곤 했는데 이웃에 있는 술을 좋아하는 만석도 가끔 와서 술을 마시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님 저는 동두천에서 색시 집을 했는데 돈을 잘 벌었는데, 그때는 예 엄마가 금반지 닷 돈에 열 돈짜리 목걸이를 하고 다녔는데 그만 사기를 당하고 그 바람에 예 엄마 하고 이혼을 하고 술에 졌어 사니까, 예 고모부가 군 교육청장인데 시골에 가서 맘 잡고 살라고 소사로 내려 보냈어요.”
“그래 자내는 동생하나 잘 두었네 그려,”
술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재덕은
“여보 김치 금옥이내 김치 좀 줘, 고추장도 주고.”
덧 부쳐서 자기가 밀양박씨 인데, 대통령의 먼 친척이 된다고 뻥까지 쳤다.
어느 날은 교육청에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않는 날이면 수동이 정자 금옥이와 같이 사랑방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는데 금옥이와 정자는 서로지지 않으려는 듯이 아는 동요란 동요는 있는 대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만석과 술을 마시던 운영이 훌쩍이며 울기시작 했다.
“어 박 씨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최 형 실은 오늘이 돌아가신 아버지 대상인데, 어흐 흑 흑.”
“그래 그냥 지나가면 안 되지.”
만석은 그 길로 도림개말에 가서 북어포와 사과 세 개 배 세 개 초 두 개 사가지고 와서 정순에게 대추를 달래서 잘라 놓고 밥을 화로에다 짖고 무와 다시마를 넣고 탕을 끌이고 마당 구덩이에 지난 가을에 수동이가 주어다 모아 놓은 밤을 여 나무 개 꺼내 깎고 지방을 써서 붙이고 금난 할아버지에게 가서 대상축을 적어 와서 운영아버지의 대상을 약식으로 지냈다.
얼마 후 아침 모두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는데, 세수 대야에다가 대변을 누어서 밖에다 내놓았고, 모두 놀라서 있는데 재덕이 불러서
“아니 한두 살 먹은 것도 아닌 어른이 뭐하는 짓인가.”
“형님 죄송해요, 제가 술에 취해서 그런 실수를 했네요,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용서해 주세요.”
양묵은 재덕이 하는 일이 몹시 못 마땅했다.
저인사가 하는 일이라고는 술이라면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니 원, 에이그 내 속이야 저걸 양자라고 들여서 내 속을 끓이나 에이그 하면서 가슴을 쳐야만 했다.
그런 운영이도 쓸모가 있었다.
교장 병훈은 식구가 많아서 서울서 미대 다니는 큰아들 둘째 아들은 고등학생 큰딸도 고등학생에 작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 순찬이 셋째아들 5학년 기찬이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일학년 까지 여덟 인데 세 명을 빼도 다섯이나 되었다.
그래서 마땅히 아는 사람이 없는 운영이 재덕에게 학교 교장사택 중 집무실을 방으로 개조 하는 일을 맡아서 해 달라고 했다.
몇 칠 후 양묵의 형수인 황갑순이 다니러 왔고 양묵은 저넠 무렵 평소대로 꽃재 순례의 집으로 올라가고 갑순이 안방에 아랫목에 앉아 있는데, 평소처럼 양묵이 없을 줄 알고 술에 취한 운영이 화롯가에 앉아서 불을 쬐다가 보니 웬 할머니가 앉아서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뭘 봐,”
“뭐, 뭐 뭐라고 뭘 보다니 야 이놈아 너 뭐하는 작자야”
“뭐라고 이 할망구가.”
갑순은 기가 막혔다 아니 아들도 막내아들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이 손님 있는 안방에 들어와서 화로를 끼고 앉아 하는 짓거리가. 술먹은 개라고 해도 세상에나 이런 변이 있나 이가 떨리고 손발이 떨려서 부들부들 떨렸다.
“애 어멈아, 어멈아,”
“내 큰어머님,”
정순이 달려오고
“아범 불러 오너라 원 세상에 살다 살다 보니 별 희한한일을 다 보내, 이 물건 뭐하는 작자냐, 당장 내보내.”
“아 뭘 해 수동아 가서 애비 불러 오지 않고,”
“아니 박 씨 아무리 술을 마셔도 그렇지 이게 무슨 경우요.”
일이 잘 못되어진 것을 안 운영은 얼른 밖으로 나와 사랑방으로 가버렸고 수동이는 급히 일을 마치고 도림개말에서 술 한 잔 하고 있는 재덕을 불러 왔다.
“애비야 너는 정신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어디서 저런 인간을 들여놔.”
“큰어머니 죄송합니다. 당장 내보낼 테니 진정 하세요.”
“됐네, 이 사람아 나 갈래내.”
하며 옷을 주섬주섬 입는 갑순을 간신히 진정을 시켰다,
하긴 차도 떨어지고 아는 집이 몇 있어도……. 마지못해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고 이튿날 아침을 끝내고 갑순은 서울 집으로 돌아갔고, 운영은 그 다음날 바로 쫓겨났다.
그런데 재덕은 중학교 입학할 날이 다가오는데도 수동이의 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덕과 정순은 교복도 입학금도 내 주지 않았다.
재덕이 일을 다니면서 보니 수동이와 같은 반에 다니던 수동이 그리고 안마산 영주가 학교를 또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 수동이도 일 년 더 다니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재덕은 입학식 전날에야
“수동아 올해는 지난번 순자 죽을 때 돈을 많이 써서 내년에 중학교에 보내 줄게,”
“네”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수동아 내년에 중학교에 보내 줄 테니 올 일 년 초등학교를 더 다녀라. 객깨말 두현이도 안마산 영주도 일 년 더 다니기로 했단다. 내가 신종희 선생에게 이야기 했으니 다니도록 해라.”
“내.”
“그리고 오늘은 외갓집이 석고개로 이사를 한다고 하니까. 동생들 잘 보고 있어.”
그 무렵 만석은 집을 팔고 석고개에 국수 뽑는 기계를 놓고 국수를 뽑아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집을 사서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입학을 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다음날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 했는데 모두가 아는 아이들이라 따로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일 년을 더 다니는 게 수동이 혼자만이 아니어서 수동이는 별로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그동안 위축되고 눌려 지내던 것에서 활로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런데 재덕이 교장사택 공사를 하고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운영은 돈을 주지 않았다.
몇 번을 독촉해도 돈이 아직 안 나왔다고 만 할 뿐 언제 주겠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재덕은 몇 번을 망설이다.
교장 병훈을 찾아가서
“아니 교장 선생님 일한 품삯은 언제 주시려는지.”
“아 그거 아직 안 받으셨어요. 그 돈 벌써 열흘 전에 박씨에게 주라고 줬는데요.”
“예 알았습니다.”
대답을 하는 재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뭐 이따위 자식이 다 있어 남의 품삯을 가운데서 떼 처먹고 안 나왔다고 거짓말을 해 하면서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운영을 찾아다닌 끝에 교실 귀퉁이에서 운영을 만났다.
“자내 나 좀 봐, 아니 사람이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지 중간에서 떼 처먹고 안주는 경우가 어디 있어.”
“아 몇 칠 기다려요 나오면 줄 테니까.”
“아니 교장이 너 한태 줬다는데 왜 떼 처먹고 안주는 거야.”
“떼 처먹다니 누가 떼먹어.”
“떼먹은 게 아니면”
“됐네. 이 사람아 봉급 나오면 줄 거니까 걱정을 붙들어 매.”
얼마 전까지 형님, 형님 하던 놈이 반말에 신경질 까지 부리니 재덕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너 일루 와봐 남에 돈 떼먹은 놈이 뭘 잘했다고 반말이야.”
“그래 반말 좀 했다 어쩔래,
“이 자식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하면서 재덕은 운영의 멱살을 잡았다.
“어디 맘대로 해봐.”
“어유, 이 자식을 자유당 시절만 같았으면 그냥 이걸.”
하면서 밀어 버렸는데, 운영이 넘어지면서 뒤로 돌아서며 손으로 땅을 짚으며 넘어 졌는데 어께 부분을 계단에 부딪쳐서 쇠골이 부러지고 말았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아이고”
운영은 때굴때굴 굴렀고 재덕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다 보니 엄살이 아닌 것 같아 다가가 보니 어께를 움켜쥐고 아이고 아이고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피가 나오고 있어서 일이 벌어진 것을 알고 부축을 해서 석고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며, 친정이 국수 빼는 기계를 놓아 매일 친정에 오다시피 하여 와있던 정순에게 돈을 구해서 다음 차로 신설동 차부로 오라고 하고 차를 타고 아파 죽겠다는 운영을 데리고 서울로 향하며.
“참 저기 낙현이 누이가 시집을 간다고 하니 거기서 사정을 이야기 하고 다음 장날 소 팔아서 갚는다고 꾸어봐.”
정순은 부리나케 꽃재 정순내로 가서.
“정순엄마 나 좀 봐요.”
“아랫말 정자 엄마가 여긴 웬일이세요.”
“다름이 안이고 우리 애 아빠가 일을 쳐서 그러는데 정순이 고모 결혼식에 쓸 돈 좀 몇 칠만 빌려 줘요, 다음 장에 소 팔아서 갚을게요.”
“잠깐 우리 정순아빠한테 물어보고요.”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여보 저 아래 수동이아버지가 학교 소사하고 싸워서 소사가 다쳐서 병원에 갔잖아요, 그래서 수동엄마가 돈을 빌리러 왔어요. 다음 장에 소 팔아서 준다고 하네요.”
“그 형님 참 안됐네, 어쩌겠소, 빌려 드려야지 다음 장 지나서 서울로 채단 하러갈 꺼라구 해.”
그렇게 급히 돈을 빌려 가지고 다음 버스를 타고 신설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재덕을 만나 남산아래 접골원으로 가서 치료비를 내고 입원을 시키고 내려왔다.
그리고 금옥이는 재덕의 집으로 와서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고, 장날에 소를 끌고 삼십 리 길을 걸어 마석서 소를 팔아 우선 낙현이 돈부터 갚고 서울로 올라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운영에게 로 갔다.
운영은 기브스를 한 상태로 누이동생과 앉아 있었다.
재덕은 쭈뼛쭈뼛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많이 놀라셨죠. 본이 안이게 이렇게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 어떻게 했기에 사람을 이 모양을 만들어 놉니까?”
“죄송합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아 몰라요 우리 애 아빠 하고 예기하세요.”
“참 금옥이는 잘 있어요?”
“저의 집에 잘 있습니다.”
그렇게 저녁때가 되어서 재덕은 퇴근하고 온 운영이 매제를 병원 밖 복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송구스럽습니다.”
“어떻게 하실 의향이십니까?”
“치료비는 물론 다 해드려야지요, 그리고 시골 사는 사람이 가진 게 뭐 있겠습니까? 처분만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입원해서 계속 있어봐야 병원 돈 벌어 주는 일 밖에 더 됩니까?”
“알았습니다. 들어가서 형님하고 의논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병실을 을 나온 운영이 매제가 합의금 만 삼천 원을 요구 했고 재덕은 저간에 지난이야기를 했고, 간신이 만원을 주고 밀린 병원비 이천 원을 주고 퇴원을 시켰다.
운영은 제 누이동생내로 가고 재덕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참 허무하게 이만 원이 넘는 돈을 써 버린 꼴이 되었다.
아끼다 똥 된 것인지 아니면 수동이 중학교 안 보낸 게 잘못인지…….
하긴 뺨 한데에 벌금 30만원을 생각하면 다행 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소 팔아 날리고 남은 돈은 만 원 도 안 남았다.
그리고 신종희 선생은 작년에 가르친 제자 중 성적이 나았던 수동이를 반장에 앉히고 가끔씩 자율학습을 시켰다.
여태껏 눌려 지내던 수동이에게 완장을 채워주니 우쭐해진 수동이는 아이들을 나폭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불을 집힌 것은 신종희 이었으나 그런 것을 눈치체지 못하고 있었다.
수동이는 작년에 배운 대로 학습을 진행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수동이에게 친해지려는 애들이 많아지고 우쭐해진 수동이는 작년에 신종희가 아이들을 동원하여 만들어 놓은 씨름장을 손본다는 명목으로 잔디를 떼어다가 심는 일까지 시키고, 완장을 차게 되니 아이들에게 벌 까지 주었다.
구타하는 일에다 같은 처지의 영주를 왕따를 시키고 괴롭혀서 얼마 후 영주는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되었고, 어느 날 밤 도림개말 원기할아버지 소상에 떡 받아먹으러 온 수동이를 구타를 당한 성숙이 오빠가 눈물이 나도록 혼 을 내주었다.
그 일이 있고 수동이는 근신을 하는 것 같았으나 이제는 패거리를 모아 몇 몇 을 더 괴롭히다가 동주와 싸우고 교무실에 불려가 벌을 서고 나왔는데, 같이 어울리던 두현이가 이제 우리 모두 친하게 잘 지내자고 한 것이 동기가 되어 마음을 고처 먹었는데 하루는 체육시간에 두현이와 말다툼을 심하게 하게 되었는데 이때 화가 난 두현이가 교실로 들어와 수동이가 재미있는 화학이라는 책을 도서실에서 빌려보고서 정성을 다해서 정리해 놓은 공책을 찢어서 교실 바닥에 휙 던져 버렸다.
뒤에 들어와 이를 발견한 수동이는 화가 나서 두현이의 새로 산 표준전과 책을 찢었다.
두현이가 달려들어서 둘이는 교실바닥에서 치고받고 뒹굴며 싸우다 또 교무실에 불려갔다.
이번에도 또 불려온 수동이를 보고 이홍규 선생이
“너의 아버지 소 팔아 날리는 것 보고도 화를 잘 참지 못하면 이다음에 어떻게 올바른 어른이 되겠어, 그러니 다음부터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그리고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두현이 전과는 새로 사다주어라.”
걱정이다 어떻게 전과를 새로 사준단 말인가 수동이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텅 빈 마구간 을 바라보다가, 아무도 없는 건넌방으로 들어가 재봉틀 의자에 올라서서 둘러서 매는 아기 띠를 시렁에 매어놓고 끝은 오라를 지었다.
그리고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제는 의자를 발로 차 버리거나 얼마 전 들은 대로 무릎만 꿇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첫댓글 수동이가 죽는걸로 시련이 끝이 나는 건가요?
너무 불상하지 않아요
우리 수동이
기다리는 묘미를 살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