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산(柏峰山)의 멋
(기행 수필)
루수/김상화
남양주는
유명한 산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등산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고부터 모든 산악회가 정기
산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몇 명의 산울림 가족이 번개팅 산행 한다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가 오늘 등산하며 즐길 산은
남양주시에 있는 백봉산(柏峰山)이다. 필자는 집에서 나오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시 한 수 읊으며 떠돌아다니는 김삿갓이 되어볼까? 또는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장편소설이면서 풍자 소설로 평가받은,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돈키호테가 되어볼까? 여하튼 아무래도 좋다. 김삿갓이든
돈키호테든 혼자서 흉을 내보고 싶다. 그래, 그렇게 해보자꾸나!!
일행과 함께 8시에 롯데백화점 환승 게이트에서 110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 50분 정도 달리던 버스는 남양주 시청 정문 앞에 멈추어 내렸다. 바로 그곳에 백봉산 등산로가 있다. 우리는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솔길의 양지바른 곳에는 쑥을 비롯해 이름 모르는 풀들이 자기네 세상을 만들어 낸다. 흙을 비집고
다투어 올라오는 새싹들은 생명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다. 아무리 보아도 신비롭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부드럽고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려앉았다.
우주의 공전으로 인해 우리는 봄을 맞이해 뾰족뾰족 돋아나는 새싹도 볼 수 있고, 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향기까지 내주는 꽃들을 본다. 그들은
인간을 위해 태어났고 우리를 위해 자기 몸에 지니고 있는 향기까지 기꺼이 토해 내준다.
우리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도중 알림판에서
뜻밖의 문구를 보았다. 이곳은 유네스코( UNESCO)에서 지정한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사적 제207호로
남양주 홍릉과 유릉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보호합시다. 라는 글을 써 놓았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깜짝 놀랐다.
그때서야 홍릉과 유릉이 이 산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홍릉(洪陵)= 홍릉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으며 제26대
고종(1852~1919)과 명성황후 민씨(1851~1895)의 능이다.
*유릉(裕陵)= 조선 왕조 마지막 왕릉인 제27대
순종(1874~1926)의 능이 유릉(裕陵) 황제 능으로 조성되었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났고 광무 1년(1897) 대한 제국이
수립되면서 황태자가 되었으며 1907년 일제의 강요와 모략으로 고종이 물러나자 황제가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다.
필자는 등산할 때마다 동행하는 분들께 신세를 진다. 그래서 신세를 덜 지고 싶어 되도록 혼자 가는 것을 이참에 연습하기로 했다.
일행이 쉬고 있을 때 혼자서 걸었다. 비록 흙산이지만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경사가 심한 깔딱고개로 이어져 힘이 든다. 몸에서는 정신없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거기다 혼자 걷다 보니 무엇보다 말벗이 없어 외로웠다. 외로움을 달래며 한참을 걸었을 때 능선이 나오면서 진달래꽃이 길
양옆으로 도열해 있다. 마치 궁중에서 임금님이 행차하실 때 신하들이 도열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감히 필자가 잠시 임금이 되어
신하들의 도열을 받는 기분이다. 참 이상야릇한 기분이 샘솟는다. 연분홍 옷을 입은 진달래꽃의 방긋 웃는 모습에 필자는 반하고 말았다. 왜 이리도
예쁘고 아름다울까?
잠시 임금이 되어 진달래꽃의 환영을 받으니 피로가 한순간에 녹아내린다. 몸에서는 엔도르핀이 흐르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흥얼거린다. 이렇게 환상적인 기분으로 필자는 걷는다. 걷다 보니 큰 바위가 길옆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바위를 바라보는 순간 금세 나에게 넘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바위가 희한하게 나에게 웃기는 광경을 보인다. 그 육중한 바위가 왜
넘어진다고 생각을 했을까!! 곧 넘어질 것 같은 착각이~^^ 그래서 등산객들이 지나가다 부지깽이 정도 되는 나무를 꺾어 받침대를 만들어 바위가
넘어가지 않도록 바치는 시늉을 하였다. 얼마나 우수 꽝 서러운 착각인가! 이 광경을 혼자 보기가 아까웠다. 사랑하는 임이 옆에 있었다면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재미있게 웃었을까? 신께서는 우리 인간이 심심할까 봐 별의별 것을 다 만들어 놓으셨나 보다.
고독을 달래며
혼자서 걷는 것도 재미있다. 가는 곳마다 진달래의 환영을 받으니 필자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비록 혼자지만 싱글벙글 미친 듯
웃어도 본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그때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향기로운 새소리도 들려온다. 그래도 걷는 것이 힘은 든다. 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린다. 이렇게 행복을 한 줌 쥐고 걷다 보니 드디어 정상까지 왔다. 자그마한 정상석을 보았다. 앙증맞게 생긴 돌에 백봉산이라고 쓴
돌덩어리를 세워 놓았다. 크든 작든 앙증맞던 필자의 눈에는 보물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첫사랑 애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옆에는 외롭게 보이는 정상석을 보듬어 주듯 팔각 정자가 동무 되어 서 있다.
역시 정상은 아름답다.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예봉산과
천마산이 보인다. 백봉산(柏峰山)은 200대 명산에 속하는 산이라고 한다. 이 산의 높이는 589.9m이다. 백봉산(柏峰山)은 한북정맥이
천마지맥을 일군 다음 마치고개로 이어진 뒤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빚은 봉우리다. 높이는 낮으나 산세가 아름답고, 동쪽으로 한강을 끼고 있어
전망이 뛰어나며 교통편이 좋은 산이다. 예전 이곳에는 잣나무가 많아 잣봉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땐 잣나무 백(柏)을 써서 백봉산으로
바뀐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병충해, 벌목 등으로 잣나무도 많지 않은 곳이지만, 원시림 같은 울창한 숲길이 일품이다.
남쪽 골짜기
아늑한 곳에는 아담한 묘적사가 있다. 묘적사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절이다. 묘적사가 있는 곳은 행정구역으로는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이다. 남쪽에서
들어가야 할 묘적사 골짜기는 협곡이며 개울을 따라 꼬불꼬불 휘돌아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별천지를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무술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이 사찰은 조선 세종대왕 때 학열대사가 중건했으며 그 후 남북군영을 세워 무과시험을 보다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켰던 곳이다. 묘적사 경내 한가운데에는 7층 석탑과 2백 년 수령의 보리수나무가 서 있다.
백봉산도
묘적사도 참 기품있는 곳이다. 천마산에 눌리지 않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백봉산의 위엄이 아닌가 싶다. 묘적사는 제법 널찍하고 백봉의
주릉이 북쪽을 감싸고 있는 아늑한 곳에 남향으로 개울가에 자리 잡고 있다. 골짜기가 길어서 가뭄에도 물이 많고 절 바로 옆에 폭포도 있는 등
경관도 좋은 곳이다. 이 절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주변의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휘어진 통나무 기둥으로 되어 있고 제법 넓은 못과 잔디밭이
있으며 군사훈련을 하며 활터로 썼다는 널찍한 터도 있다.
이 산의 서쪽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의 끝자락엔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유산 사적 제207호인 홍릉과 유릉이 나란히 있다. 이곳은 남양주시 금곡동, 산행기점이 되는 46번 국도변의 금곡중고교 뒤편에 있다.
홍릉은 한말 비운의 황제와 황후인 조선조 고종과 명성황후를 모신 능으로 침전과 재실 홍살문이 있으며 병풍석과 난간석이 화려하게 봉분을 감싸고
있고 봉분 앞에 상석 장명등 망주석 등이 있다. 유릉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순명효황후 계후 순정효황후를 모신 동릉 3실의 능이다.
여기에도 역시 침전재실 홍살문이 있고 상석 난간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이 있으며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 등 각종 동물을 조각한
석물이 있다. 이 홍릉과 유릉은 산행기점과 종점도 될 수 있어서 산행 전 또는 산행 후에 둘러보면 유익한 산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참으로 향기로운 산행을 했다. 함께한 산울림 회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20년 4월 5일
─━☆그대가 머문자리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