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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상제(有如上帝)
하늘이 내려다볼 것이다
有 : 있을 유(月/2)
如 : 같을 여(女/3)
上 : 윗 상(一/2)
帝 : 임금 제(巾/6)
제나라 명재상 안자가 탄식하며 한 말이다. "내가 만일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내려다볼 것이다(嬰所不惟忠于君利社稷者是與, 有如上帝)."
丁丑, 崔杼立(景公)而相之, 慶封爲左相.
정축일에 최서는 경공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재상이 되고 경봉으로 좌상을 삼았다.
盟國人于大宮, 曰: 所不與崔, 慶者 ―.
나라 사람들을 대궁에 모아놓고 맹세하기를 "우리 최씨와 경씨의 편에 서지 않는 자는"이라고 말할 때에,
晏子仰天嘆曰: 嬰所不惟忠于君利社稷者是與, 有如上帝. 乃歃.
안자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만일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내려다볼 것이다"고 하고는 삽혈(歃血; 맹세할 때 희생의 피를 들이마시는 일 또는 그 피를 입가에 바르는 일)했다.
위 문장은 '좌전(左傳)' 양공(襄公) 25년에 나온다. 공자의 '춘추'를 해설한 주석서인 좌전은 모두 30권 약 20만 자로, 노의 은공 원년(기원전 722)부터 노의 애공 27년(기원전 468)에 이르는 254년 동안의 춘추열국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최서는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과 장공(莊公) 시기 권신이다.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장공이 자신의 후처를 계속 농락하는 데 원한을 품고 기원전 548년 난을 일으켜 장공을 시해한 후 경공(景公)을 세워 전권을 휘둘렀지만, 경봉(慶封)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
위 문장을 보면 최서는 경공을 옹립했다. 맹세의 말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점에 임금(國君)에 충성하던 안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면서 맹세를 중단시켰다. '慶者' 뒤에 사용된 표점(標點)인 '-(말늘임표)'가 상황을 반영한다.
안자 역시 제나라 정치가로 관중(管仲)과 함께 훌륭한 재상으로 이름을 떨쳤다.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이름은 안영(晏嬰)이다. 안자는 그를 기리는 존칭이다.
안삽혈이란 맹서의 표시로 개나 돼지, 말 따위의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시거나 입에 바르는 일을 일컫는다.
중국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모 스님이 어제 목압서사를 방문해 표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가 오랫동안 공부해도 아직 오류가 많은 표점은 한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부호를 표기하는 것을 말한다.
春秋(춘추) 襄公(양공) 25年
二十有五年春, 齊崔杼帥師伐我北鄙.
25년 봄, 제(齊)의 최저(崔杼)가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의 북쪽 변방을 쳤다.
夏五月乙亥, 齊崔杼弑其君光.
여름 5월 을해(乙亥), 제(齊)나라의 최저(崔杼)가 그 임금 광(光)을 시(弑)했다.
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
우리 양공이 진후(晉侯), 송공(宋公), 위후(衛侯), 정백(鄭伯)과,
曹伯莒子邾子滕子薛伯杞伯,
조백(曹伯), 거자(莒子), 주자(邾子), 등자(滕子), 설백(薛伯), 기백(杞伯)과,
小邾子於夷儀.
소주자(小邾子)와 이의(夷儀)에서 모임을 가졌다.
六月壬子, 鄭公孫舍之帥師入陳.
6월 임자(壬子), 정(鄭)의 공손(公孫) 사지(舍之)가 군대를 거느리고 진(陳)에 들어 갔다.
秋八月己巳, 諸侯同盟於重丘.
가을 8월 기사(己巳), 제후(諸侯)들이 중구(重丘)에서 동맹(同盟)했다.
公至自會.
우리 양공이 모임에서 돌아 왔다.
衛侯入於夷儀.
위후(衛侯)가 이의(夷儀)에 들어 갔다.
楚屈建帥師滅舒鳩.
초(楚)나라의 굴건(屈建)이 군대를 거느리고 서구(舒鳩)를 멸망시켰다.
冬, 鄭公孫夏帥師伐陳.
겨울, 정(鄭) 공손(公孫) 하(夏)가 군대를 거느리고 진(陳)나라를 쳤다.
十有二月, 吳子遏伐楚, 門於巢, 卒.
12월, 오자(吳子) 알(遏)이 초(楚)를 쳐서, 소문(巢門)을 칠 때, 졸(卒)했다.
(解說)
25년 봄에 제나라의 최저(崔杼)가 우리의 북쪽 변방을 쳐들어 온것은, 효백(孝伯)의 싸움에 보복하려는 것이다. 우리 양공이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보내어 진(晉)나라에 알리려고 했다.
맹공작(孟公綽)이 말하기를, "최저(崔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힐 의도가 아니니, 반드시 속히 돌아갈 것입니다. 무엇을 근심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그가 쳐들어 올때 난폭하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는 것도 엄하지 않아서 다른 때와 달랐다(백성의 환심을 살 의도가 있는 것이다). 제(齊)나라 군대는 아무런 성과도 얻은 것 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제(齊)나라 당공(棠公)의 아내는 동곽언(東郭偃)의 손위 누이 였으며, 동곽언은 최무자(崔杼)를 섬기고 있었다. 당공이 죽었을 때, 동곽언이 무자의 수레를 몰아서 조상을 갔었다.
최저(崔杼)는 당강(棠姜; 당공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고 동곽언(東郭偃)을 시켜서 데려오게 하였다.
동곽언이 말하기를, "부부는 성(姓)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께서는 정공(丁公; 최저의 조부가 齊나라 丁公)에게서 나왔고, 저는 환공(桓公; 동곽언의 조부는 제환공)에게서 나왔으니, 같은 강성(姜姓)이어서 안 됩니다"고 했다.
최저(崔杼)가 시초점을 쳤는데, 곤괘(困卦)에서 대과(大過)의 괘로 가는 상(象)이 나왔다.
복자(卜者)는 모두 길하다고 했으나 진문자(陳文子)에게 보였더니 말하기를, "남편이 바람을 따르고 있으니 아내를 날려보낼 상(象)이다. 장가를 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곤괘 63 효사(爻辭)에, '돌에 막혀서 곤란을 받고 질려(蒺藜; 가시돋힌 풀)에 몸을 의지한다.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한다. 흉하다(困于石據于蒺蒺, 入于其宮不見其妻, 凶)'라고 했다. 돌에 막혀 곤란을 받고 있으니, 가도 걸을수 없는 것이며, 납가새(蒺蒺/질려)에 의지하고 있으니, 의지하는 것에 찔리게 마련이다.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한다. 흉하다 했으니, 이는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고 했다.
최저가 말하기를, "과부를 데려 오는 것이다.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죽은 남편이 이미 그 괘(卦)에 맞았다"하고, 마침내 맞아 들였다.
그런데 제장공(齊莊公)이 당강(棠姜)과 정을 통하여 자주 최저(崔杼)의 집에 가고, 최저의 관을 남에게 주기도 했다.
시자(侍者)가 말하기를, "안됩니다" 하고 이를 말렸으나, 장공이 말을 듣지 않고 말하기를, "비록 최저 자신은 아니지만, 사람이 어찌 관(冠)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최저는 이번 일로해서 장공을 원망하게 되었으며, 또 장공이 내란이 있음을 틈타서 진(晉)나라를 쳤다고 하여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하며, 장공(莊公)을 시(弑)하여 진(晉)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장공이 시자(侍者)인 가거(賈擧)를 초달질 했는데, 그러고도 측근에 두었다. 이 가거(賈擧)가 최저(崔杼)를 위해서 장공(莊公)을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여름 5월에 거(莒)나라가 차우(且于)의 싸움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거자(莒子)가 제(齊)나라에 왔기 때문에, 갑술(甲戌)에 북쪽 성곽에서 향연(饗宴)이 있었다. 최저(崔杼)는 병이 있다는 핑계로 공무(公務)를 보지않았다.
을해(乙亥)에 장공이 최저와 당강의 뒤를 따랐다. 당강이 방으로 들어가서 최저와 함께 옆문으로 가버리니, 장공이 기둥을 두드리며 노래해서 당강을 불렀다. 시자(侍者) 가거(賈擧)가 종자(從者)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아 버렸다.
무사(武士)들이 장공을 습격했다. 장공이 높은 대(臺)에 올라 가서 살려주기를 청했으나 듣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지 맹세한다고 했으나 역시 듣지 않았다.
나중에는 태묘(太廟)에서 자인(自刃)하기를 청했으나 모두 말하기를, "주군(主君)의 신하인 최저(崔杼)는 병이 나서 명(命)을 받지 못합니다. 이 곳은 공궁(公宮)에 가깝기 때문에, 최씨의 가인(家人)이 야순(夜巡)을 돌다가 괴한(怪漢)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괴한을 찾고 있습니다. 다른 명령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고 했다.
장공이 담을 넘어서 달아나려 하는 것을 누군가가 활로 쏘아서 다리를 맞혔으며, 담에서 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죽여 버렸다.
가거(賈擧), 주작(州綽), 병사(邴師), 공손(公孫) 오(敖), 봉구(封具), 탁보(鐸父), 양이(襄伊), 누인(僂堙) 등이 모두 죽었다.
축타보(祝佗父)는 고당(高唐)의 별묘(別廟)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돌아와서 제복(祭服)도 벗지못한 채로 최씨의 집으로 달려가서 죽었다.
신괴(申蒯)는 어업(漁業)을 맡아보는 신하였는데, 변(變)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 가재(家宰)에게 말하기를, "너는 가족들을 데리고 달아나라. 나는 죽을 것이다"고 하니,
가재(家宰)가 말하기를, "제가 도망 간다면 이는 주인을 위해 죽는 의리에 어긋납니다"하고, 함께 최씨에게로 가서 죽었다. 최저(崔杼)는 종명(鬷蔑)을 평음(平陰)에서 죽였다.
안자(晏子; 晏嬰)가 최씨의 집 문밖에 섰다. 종자가 물었다. "죽으려는 것입니까?" 하니, "나만이 신하이겠는가. 내 어찌 죽으랴?"고 하여 다시, "떠나실 것입니까?"하니, "내게 죄가 있단 말인가? 내 어찌 도망하랴?"고 했다.
종자가 "집으로 돌아가실 것입니까?" 하니, "임금이 죽었는데 어찌 돌아가랴? 임금된 자는 백성을 업신 여기지 말고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신하된 자는 녹(祿)만을 먹지 말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나라를 위해서 죽었다면 신하도 죽어야 하고, 나라를 위해서 달아난다면, 신하도 달아나야 한다. 그러나 임금이 자기 개인을 위해서 죽고, 자기 개인을 위해서 달아났다면,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더구 나 신하가 임금을 시(弑)한 이번의 경우에 내가 왜 죽으며 또 달아나겠는가? 그러나 어찌 이대로 돌아가랴?" 했다.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가서 장공의 시체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곡(哭)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삼용(三踊)한 뒤에 나왔다.
사람들이 최저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하니, 최저가 말하기를, "백성의 신망(信望)이 있다. 그를 죽인다면 백성의 마음이 떠나간다"고 했다.
노포계(盧蒲癸)는 진(晉)나라로 망명 하고, 왕하(王何)는 거(莒)나라로 망명했다. 일찍이 숙손선백(叔孫宣伯; 교여)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성공 16년 제나라에 망명했음), 숙손환(叔孫還)이 선백(宣伯)의 딸을 영공(靈公)에게 바쳐서 경공(景公)을 낳았다.
정축(丁丑)에 최저(崔杼)가 경공(景公)을 세웠다. 자기가 수상(首相)이 되고, 경봉(慶封)으로 좌상(左相)을 삼았다.
나라 사람들과 태궁(太宮; 강태공의 묘)에서 맹세했다. "최(崔)와 경(慶)에 편들지 않는 자는..."라고 했는데, 안자(晏子)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서 말하기를, "내가 만일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이롭게 하는 자들에게 편들지 않는다면, 하늘이 내려다 본다"하고 삽혈했다.
신사(辛巳)에 경공(景公)이 대부 및 거자(莒子)와 맹약했다. 태사(太史)가 간책(簡策)에, 최저(崔杼)가 그 임금을 시(弑)했다고 기록했는데, 최저가 이를 죽였다.
그 아우가 태사(太史)가 되어 또한 마찬가지로 썼다. 이처럼 해서 죽은 자가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아우가 또 이처럼 썼다. 이번에는 놔두었다.
남사씨(南史氏)는 태사가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간책(簡策)을 가지고(태사가 다 죽어서 기록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가 기록에 올리려고) 가다가 이미 기록됐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 갔다.
여구영(閭丘嬰)이 그 아내를 휘장으로 묶어서 수레에 싣고, 신선우(申鮮虞)와 함께 망명의 길을 떠났다.
신선우가 여구영의 아내를 수레에서 내려놓으며 말하기를, "임금의 마음이 흐렸을 때 이를 바로잡지 못했고, 위태로웠을때 구(救)하지 못했으며, 죽었는데도 따라죽지 못했으면서, 이제 그 사랑하는 아내는 숨길줄 안다. 그 누가 받아 들이겠는가?"라고 했다.
엄중(弇中) 좁은 길에 이르러 노숙(露宿)을 하게 되었는데, 여구영이 말하기를, "최(崔)와 경(慶)의 무리가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까?"라고 했다.
신선우가 말하기를, "좁은 길 위에서 1대 1인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하고 말고삐를 베개삼아 누워서 잤다. 아침에 말을 먹이고, 사람도 식사를 끝낸 뒤 길을 떠났다.
엄중을 벗어나자 신선우가 말하기를, "이제는 빨리 달려야 한다. 최(崔)와 경(慶)의 무리는 수효가 많다. 넓은 길위에서 당해낼 수 없다"하고 급하게 달려서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왔다.
진후(晉侯)가 반수(泮水)를 건너 이의(夷儀)에서 제후(諸侯)들과 모여서 제(齊)나라를 쳤다. 조가(朝歌)의 싸움에 대한 보복이다.
제(齊)나라에서는 장공을 죽였음을 내세워서 습서(濕鉏)를 보내어 화평을 청하게 하고, 경봉(慶封)을 진(晉)나라의 군중(軍中)으로 보냈다.
진후(晉侯)를 비롯해서 지방의 수령(守令)에 이르기까지 모두 후(厚)한 선물을 보냈다. 진후(晉侯)는 이를 허락하고, 숙향(叔向)을 보내어, 제후(諸侯)들에게 알리게 했다.
우리 양공이 자복혜백(子服惠伯)을 보내어 대답하기를, "귀군주(貴君州)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고, 작은 나라를 진정시키셨습니다. 이는 귀군주의 은덕입니다. 과군(寡君)은 명(命)하시는 바를 알았습니다"고 했다.
진후(晉侯)가 위서(魏舒)와 완몰(完沒)을 보내어 위후(衛侯)를 맞이하여 오게 했다(위헌공은 14년에 이미 제나라로 망명해 왔음). 위(衛)나라로 하여금 이의(夷儀)를 위(衛) 헌공(獻公)에게 주게 하려는 것이다.
최저(崔杼)가 위후(衛侯)의 가족을 머물러 두었는데, 오(吳)나라의 오록(五鹿)을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 처음에 진후(陳侯)는 초자(楚子)와 함께 정(鄭)나라를 치고 군대가 지나가는 곳에 우물을 묻어 버리고 나무를 베어 버렸으므로, 정나라 사람들이 이를 원망했다.
6월에 정(鄭)나라에 자전(子展; 공손 사지)과 자산(子産)이 수레 700승(乘)을 거느리고 진(陳)나라를 쳐서 진(陳)의 도성(都城)으로 돌입했다.
진후(陳侯)가 태자(太子) 언사(偃師)의 손을 잡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달아 났다. 사마(司馬) 환자(桓子)를 만나서 말하기를, "나를 태워라"하니, "성(城)을 순찰하고 있는 것입니다"고 했다.
가획(賈獲)을 만났는데 수레 위에 실었던 어미와 아내는 내려놓고 수레를 진후(陳侯)에게 드렸다.
진후(陳侯)가 말하기를, "그대의 어머니는 태우라"고 하니, 가획이 대답하기를, "상서롭지 못합니다(남녀의 구별이 있기 때문에 한 수레에 태울 수 없다는 뜻이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부축하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달아 나서 죽음을 면했다.
자전(子展)은 군인들에게 공궁(公宮)에 들어가지 못하게 명령을 내리고, 자산(子産)과 함께 궁(宮)의 모든 문을 막았다.
진후(陳侯)가 사마환자를 보내어 종묘의 기구(器具)를 선물하고, 자신은 상복(喪服) 차림으로, 사(社)의 신주(神主)를 안고 섰다(항복하는 뜻을 보이는 것). 그리고 시종(侍從)들은 남녀별로 새끼줄로 몸을 묶어 줄을 지어서 조정위에서 기다리게 했다.
자전이 말고삐를 잡고 진후(陳侯)에게 뵈었다(신하의 예로 대하는 것). 두 번 절하고 나서 술잔을 들어, 진후(陳侯)에게 올렸다. 자미(子美; 자산)는 조정으로 들어 가서 포로의 수(數) 만을 계산하고 나왔다(포로를 데리고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
신관(神官)을 시켜 사(社)의 사기(邪氣)를 털어 버리게 하고 진(陳)나라의 벼슬아치로 하여금 각기 부서(部署)로 돌아가게 한 뒤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가을 8월 기사(己巳)에 제후(諸侯)들이 중구(重丘)에서 동맹했는데 이것은 제(齊)나라가 진(晉)나라에 따랐기 때문이다.
위(衛) 헌공(獻公)이 이의(夷儀)로 들어 갔다. 초나라에서 위자풍(薳子馮)이 졸(卒)하고, 굴건(屈建)이 영윤(令尹)이 되었으며, 굴탕(屈蕩)이 막오(莫敖)가 되었다.
서구(舒鳩)의 사람이 초나라를 배반했으므로, 영윤 자목(子木; 굴건)이 이를 쳐서 이성(離城)에 이르렀다. 오(吳)나라가 서구(舒鳩)를 구원했으나 뒤에 크게 패하였다. 초나라 군대는 서구를 포위하여 8월에 이를 쳐서 멸망시켰다.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이 진(陳)나라를 쳐서 얻은 포로를 진(晉)나라에 바쳤다. 겨울에 자서(子西; 공손 하)가 다시 진(陳)나라를 쳤다. 진(陳)나라가 아직도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陳)나라가 마침내 화평을 청하여, 두 나라 사이에 화평이 성립 되었다.
12월에 오자(吳子) 제번(諸樊; 이름을 알遏)이 초나라를 쳤다. 주사(舟師; 水軍)의 싸움에 보복하려는 것이다.
소(巢)를 공격했는데 소(巢)의 우신(牛臣)이 말하기를, "오나라의 왕은 용맹하지만 경솔하다. 만약 문을 열어 준다면 앞장서서 들어올 것이니, 그때 내가 반드시 쏘아 죽일 것이다. 이 임금이 죽는다면 우리의 지경이 좀 편안해 질 것이다"고 하므로,
모두가 이말에 따랐는데, 정말로 오자(吳子)가 앞장서서 문을 들어 왔다. 우신(牛臣)이 담 안에 숨어 있다가 이를 쏘아서 죽였다.
정(鄭)나라의 자산이 연명(然明)에게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연명이 대답하기를, "백성보기를 자식같이 하고, 불인(不仁)한 자를 벌하기를 마치 매가 참새를 쫓듯 해야만 합니다"고 했다.
자산은 기뻐해서 이것을 자대숙(子大叔)에게 말하면서, "이제까지 나는 연명의 얼굴을 보았을 뿐인데, 이제는 그 마음을 알았다"고 했다.
자대숙(子大叔)이 정치에 대하여 자산(子産)에게 물었는데, 자산이 대답 하기를, "정치란 농사와 같은 것이다. 밤낮으로 생각하여 그 처음을 생각 했으면 반드시 끝을 이루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이를 행하고, 또 행하는 것이 생각한 것(計劃)을 벗어나지 않아서, 마치 전지(田地)에 두둑이 있는 것과 같이 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고 하였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上(윗 상)은 ❶지사문자로 丄(상)은 고자(古字)이다. 上(상)은 一(일)위에 짧은 一(일)을 쓰기도 하고, 또는 긴 一(일)위에 (ㆍ)을 쓰기도 하여 어떤 위치보다도 높은 곳을 나타낸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본디는 무엇엔가 얹은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며 下(하)에 대한 上(상), 위에 얹다, 위쪽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❷지사문자로 上자는 '위'나 '앞', '이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上자는 하늘을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上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二(두 이)자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만 아랫부분은 오목하게 윗부분은 짧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다. 上자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위'나 '윗'을 뜻하고 있다. 다만 소전에서는 二자와의 혼동을 피하고자 윗부분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上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上(상)은 (1)상감(上監) (2)위나 상부 (3)등급이나 차례 따위를 상(上), 중(中), 하(下) 또는 상, 하로 나눌 경우의 맨 첫째 , 중(中), 하(下) (4)무엇에서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따위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위, 윗 ②앞 ③첫째 ④옛날 ⑤이전 ⑥임금 ⑦군주(君主) ⑧사성의 일종 ⑨높다 ⑩올리다 ⑪드리다 ⑫진헌하다(임금께 예물을 바치다) ⑬오르다 ⑭탈것을 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隆), 밝을 앙(昻), 귀할 귀(貴), 무거울 중(重), 높을 고(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위로 올라감을 상승(上昇), 토의할 안건을 회의에 내어놓음을 상정(上程), 윗 등급이나 계급을 상급(上級), 높은 지위나 윗자리를 상위(上位), 위와 아래를 상하(上下), 정부에 세금을 냄 또는 진상품을 윗사람 에게 받침을 상납(上納),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오름을 상륙(上陸),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의 부근을 상류(上流), 높은 하늘이나 어떤 지역에 수직되는 공중을 상공(上空), 윗자리의 관원을 상관(上官), 위쪽의 부분을 상부(上部),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손을 상객(上客), 퍽 오랜 옛날을 상고(上古), 아래쪽으로부터 위쪽으로 향함을 상향(上向), 가장 좋은 대책 또는 방책을 상책(上策), 보통 사람보다 아주 많은 나이 또는 그 사람을 (上壽), 가장 좋은 계교를 상계(上計), 지붕 위를 옥상(屋上), 맨 위나 정상을 최상(最上), 책상이나 식탁 등 탁자의 위를 탁상(卓上), 상품을 사들임을 매상(買上),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위를 지상(至上),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끌어 올림이나 물건값을 올림을 인상(引上), 한 집안이나 한 민족의 옛 어른들을 조상(祖上), 위나 앞을 향해 발전함을 향상(向上), 산꼭대기나 그 이상 더 없는 것을 정상(頂上),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부상(浮上),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 오른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비유하는 말을 상루하습(上漏下濕),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괸다는 뜻으로 몹시 꼬이는 일을 당하여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맞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상하탱석(上下撑石),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당치 않은 데 가서 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는 말을 상산구어(上山求魚),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따름을 이르는 말을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에 있는 땅으로 곧 천지를 이르는 말을 상천하지(上天下地),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을 천상천하(天上天下) 등에 쓰인다.
▶️ 帝(임금 제)는 ❶상형문자로 하늘에 제사지낼 때 제수를 올려 놓는 제상의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천신', 또 '황제'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帝자는 '임금'이나 '천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帝자는 巾(수건 건)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帝자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를 엮어 만든 선반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선반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帝자의 본래 의미는 '제사'였다. 帝자는 정월에 천자가 하늘에 드리던 제사를 뜻했었지만, 후에 천자와 관련된 것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천자'나 '임금'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후에 示(보일 시)자가 더해진 禘(제사 체)자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帝(제)는 ①임금, 천자(天子) ②하느님 ③오제(五帝)의 약칭(略稱) ④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왕(王), 임금 황(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손 객(客), 손 빈(賓), 백성 민(民), 신하 신(臣)이다. 용례로는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제국(帝國), 황제나 임금의 자리를 제위(帝位), 황제나 국왕의 총칭을 제왕(帝王), 황제의 지위를 제조(帝祚), 제왕이 행하는 인의에 따른 공명정대한 정도를 제도(帝道), 천자나 황제나 제왕의 명령을 제명(帝命), 제왕의 업으로 임금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제업(帝業), 대한제국 때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을 황제(皇帝), 중국에서 시조로 섬기는 옛날의 전설 상의 임금을 황제(黃帝), 어린 임금을 유제(幼帝), 어린 황제를 동제(童帝), 임신 자궁을 절개하여 인공적으로 성숙 태아를 만출하는 수술을 일컫는 말을 제왕절개(帝王切開), 아기 낳는 일을 맡은 삼신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삼신상제(三神上帝), 도가에서 하느님을 일컫는 말을 옥황상제(玉皇上帝), 덕이 높고 지혜가 밝은 임금을 일컫는 말을 성제명왕(聖帝明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