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무례한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모두가 약속한 시간에 늦는다거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연기상 약속된 것들을 지키지 않고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행동들이 그 배우만의 매력과 기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고요. 속된 말로 그들이 더 잘 나갑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성실하고 착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하고 약속도 잘 지키는 배우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뒤처져 있습니다. 동료들끼리 이러한 의문에 대해 술 한 잔 섞인 고민을 털어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아무런 답을 못 찾고 ‘결국은 실력이야’ 이러면서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어 집에 가곤 합니다. 이런 괴로움이 내 방식이 맞고 상대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아집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 건지 궁금합니다. 안하무인인 배우들을 볼 때마다 제 마음속에 평온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로 연결을 안 시켜야 될 것을 연결시켜서 그래요.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연결시켜서 마치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어요. 물고기가 많이 잡히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그물이 좋아야 하고, 둘째, 물고기가 많은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아무리 그물이 좋아도 물고기가 없는 곳에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가 안 잡힐 것이고, 아무리 물고기가 많아도 그물이 신통치 않으면 물고기가 안 잡힙니다. 이렇게 물고기가 많은 장소를 찾는 것과 그물이 좋은 것은 물고기가 많이 잡히느냐 적게 잡히느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착하냐 악하냐 하는 것은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과 별로 상관이 없어요. 이해가 되세요?”
“네.”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어제저녁에 마누라를 때리고 왔는지, 마누라를 사랑해 주고 왔는지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제저녁에 부인을 놔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왔다는 사실과도 별 상관이 없고, 그 사람이 공산주의 이념을 가졌는지 자본주의 이념을 가졌는지도 별 상관이 없고, 그 사람이 불교 신자인지 기독교 신자 인지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과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인데 왜 물고기를 많이 잡고, 저 사람은 착하고 주변을 잘 배려하는데 왜 맨날 물고기를 못 잡나요?’
이렇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 연결을 안 시켜야 될 것을 연결시키고 있는 겁니다. 연기는 잘하는데 성질이 더러운 사람도 있고, 연기는 잘하는데 성질이 착한 사람도 있고, 연기도 못하고 성질도 더러운 사람도 있고, 연기는 못하지만 성질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연기와 성질만으로 분류해도 네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착한데 연기가 좀 부족한 사람과 성질은 더러운데 연기는 잘하는 사람, 두 가지 경우만 비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왜 성질이 더러운 놈이 잘 되고, 우리는 착한데 잘 안 되느냐! 그럼 우리도 성질이 더러우면 잘 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연관을 잘못 지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질문자와 같은 사고방식을 ‘인과응보’라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라는 인과응보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착한 일을 했는데도 복을 못 받으면 ‘내생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나쁜 일을 했는데도 벌을 안 받으면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모든 걸 인과응보적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도 힘에 의한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잡던 시기에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권력을 잡느냐 못 잡느냐를 결정하지, 착하냐 안 착하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몰리는 곳에서 일을 해야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많은 곳에 그물을 쳐야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듯이 장사를 해도 돈이 모이는 곳에서 장사를 해야 합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시골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법률사무소를 차리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착해도 돈은 안 벌립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재벌기업들의 탈세를 무마해 주는 일은 수천억이 오가는 일이기 때문에 재판에 이겨서 그중 1퍼센트만 받아도 몇십 억 원을 벌게 됩니다. 이것을 선악의 개념으로 연결 지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똑같은 조건과 상황일 경우 악한 사람이 유리한가, 선한 사람이 유리한가?’ 하고 묻는다면 선한 사람이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사람의 지지, 즉 민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욕을 하면 저 사람이 반드시 나를 욕하고, 내가 칭찬해 주면 저 사람이 반드시 나를 칭찬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늘 칭찬해 주고 베풀며 돌봐줬는데도 나중에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내가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나한테 베풀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욕을 했을 때와 칭찬했을 때를 비교해 보면 욕을 했을 때 보다 칭찬했을 때 칭찬이 돌아올 확률이 더 높습니다. 칭찬하면 반드시 칭찬이 돌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칭찬하면 칭찬이 돌아올 확률이 욕을 할 때 보다 더 높다는 의미입니다. 욕을 하면 반드시 욕이 돌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욕을 하면 칭찬했을 때 보다 욕이 돌아올 확률이 더 높다는 의미입니다.
칭찬을 듣고 싶다면 우리는 칭찬 들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해야 하는 거예요. 욕을 하는 것보다는 칭찬하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칭찬하면 반드시 칭찬이 돌아온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 사람의 성질이 더러운 것과 연기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질이 더러워도 연기는 잘할 수 있습니다. 깡패 출신이 깡패 역할을 맡으면 연기를 잘하겠죠. 그 사람은 폭력 영화에서는 연기를 훨씬 잘합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는 선비를 모으는 것보다 깡패를 모으면 적군과 더 잘 싸웁니다. 이처럼 어떤 성질을 가졌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에요. 상황에 맞게 잘 쓰면 됩니다. 예를 들어 홍범도 장군은 포수 출신이어서 포수들을 모아 독립군을 만들었는데, 농민과 선비들을 모아 만든 독립군보다 전투력이 월등하게 뛰어났어요. 짐승들은 사람보다 예민해서 짐승을 잡으려면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기습을 하거나 몸을 숨기거나 하는 지략이 엄청 뛰어났습니다.
그러니 성질 더러운 것과 연기 잘하는 것을 연결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의 성질이 더러워서 연기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질은 더럽지만 연기는 잘한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첫댓글 맞는데, 사람의 지지라는 부분이 있다는 걸 꼭 염두에 두어야할듯.
이 세상 모든 일들은 사람과의 관계인데.. 그거 무시하면서 살면 안될듯 하다
카르마믿어~
나도 가끔 이런거 생각해 볼때 있었는데 명확한 답을 주셨네 선하고 일 잘하는 사람을 추구하며 살아야지
좋은 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