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의교회 장로님들께 드립니다. 그 동안 저는 카페에서 ‘종려나무’란 닉네임을 사용해 왔으나. 장로님들께 이 편지를 드리기 위해 먼저 저를 밝히는 것이 도리인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랑의교회 협동장로이며, 5년 전에 파송을 받아 현재 캄보디아에서 일하고 있는 권일(權一) 선교사입니다. 현재 제가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기에 선교사의 이름으로 장로님들께 이 편지를 올리는 바 입니다.
2. 저는 지금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한 후 고심참담(苦心慘憺)의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새기듯이 글을 씁니다. 선교지 캄보디아에서 한국 땅이 있는 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씁니다. 마치 송강(松江) 정철(鄭澈)선생이 귀양지 담양에서 목욕 재계(齋戒)한 후 의관을 정제(整齊)하고 앉아 ‘님’ 계시던 한양 도성을 바라보며 ‘사미인곡’ (思美人曲)을 썼을 때의 간절한 자세(姿勢)처럼 말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송강선생은 선조의 총애를 받기 위해 사모(思慕)의 정(情)을 노래했지만, 저는 예상되는 비난과 불이익이란 십자가(十字架)를 각오하면서 충정(忠情)어린 고언(苦言)을 드리려고 합니다.
3. 사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담임목사의 무분별한 추종자가 되어 그와 동침하고 있는 ‘명목(名目)뿐인 장로님’들이 아닙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담임목사가 범한 ‘영적지도자’로서의 크고 중한 죄를 인식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순결(純潔)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애를 쓰고 계신 ‘실질(實質)적인 장로님’들입니다. 장로의 직분 앞에 ‘은퇴’니 ‘사역’이니 ‘운영’이니 ‘협동’이니 하는 어떤 글자가 붙든지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장로인지, 아니면 담임목사를 주인으로 섬기는 장로인지의 구분만 필요할 뿐입니다.
4. 이런 편지를 은밀하게 장로님들께만 보내지 않고 사랑넷카페를 통해 공개적으로 드린 것이 불편하시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편지의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성도들이 느끼고 있는 내용들 입니다. 또 이 힘든 시기를 당해, 장로님들을 지도자로 뽑아주셨던 모든 성도들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주제이기에 공개적으로 이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5. 지금 사랑의교회는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기입니다. 35년 전 교회 창립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 아래 놓여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제자훈련에 대한 열정’으로 한 평생 섬기셨던 사랑의교회가 이제 후임목사의 세속적 야망과 죄와 불의로 인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시점에 와 있습니다.
6. 이번 주(週)로 교회 마당에서 매 금요일 열리는 ‘마당 기도회(祈禱會)’가 시작된 지 37주째가 됩니다. 사랑넷총무단이 95개조 질의문(質問書)를 담임목사와 당회에 보낸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장로들과 당회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해 300명에 가까운 안수집사들이 교회당국의 핍박 아래서도 안수집사회를 조직(組織)하여 활동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담임목사와 교회측의 불의를 보다 못한 ‘1,024명의 교회를 사랑하는 여성도’들이 건의문(建議文)을 만들어 8월 초 당회에 제3차로 내용증명을 보낸 지 2개월이 흘렀습니다.
7. 그러나 교회측은 성도들의 합당한 질문을 완전히 무시했고 도리어 ‘불순세력의 음해’로 매도했습니다. 위에 열거된 모든 분들이 불순세력이 아님은 세상이 다 압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이는 사랑의교회에서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사라졌고 교회의 권징(勸懲)과 치리(治理)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담임목사의 추종자 장로들은 당회의 요직(要職)을 다 차지하고 당회를 모두 점령해 버렸습니다. 담임목사가 범법을 행하였으나 이제 그 죄를 묻고 그 죄인을 치리할 기구가 없습니다. 도리어 휘발유통을 들고 나타난 깡패까지 동원하여 의로운 장로들을 길 밖으로 내 몰고 말았습니다.
8. 교회의 담임목사와 관련된 불법들이 ‘대(對)교회적’ 범위를 넘어서 ‘대(對)사회적’ 중죄(重罪)라고 인식한 모 안수집사님은 어떠한 피해도 각오하고 옥쇄(玉碎)하는 심정으로 가산을 털어 담임목사를 검찰에 고발하였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또 뜻있는 성도들은 교회측의 거짓된 언론 플레이를 막고 ‘담임목사의 조속한 사임’을 촉구하고자 일간지 신문에 몇 차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참조- 이 편지 끝의 [첨언]을 보충설명으로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9. 어제 10월14일부터 “더욱 사랑, 끝까지 사랑”이란 주제로 ‘2013년 가을특새’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라지고, 헛되고 거짓된 사랑의 메시지가 사랑의교회 강단을 또 더럽힐 것입니다. 담임목사 복귀 후 강단은 더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는 매 주일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誤用)하며 거짓된 선동(煽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섬김’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기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성도들을 무시합니다. ‘아간’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아간의 죄와 거룩함의 회복’에 대해 설교합니다. ‘율법적 회개와 복음적 회개’라는 용어로 회개를 매우 어렵게 설명하고 본인은 마치 회개를 다 한 사람처럼 위장합니다. ‘뻔뻔함’ 또는 ‘후안무치’- 이런 말로도 표현이 부족합니다.
10. 다음 달 11월 말(末)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SGMC에 드디어 입당(入堂)한다고 합니다. 장로님들도 잘 아시겠지만 SGMC는 절대로 생기지 말았어야 할 건물입니다. ‘세속화된 대형교회의 상징물’인 SGMC는 결코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 받으실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쌍용’(雙龍)이란 이름의 회사가 시공한 이 부정(不淨)한 건물은 영적으로 보면 ‘붉은 용(龍)’ (계12:3) 즉 사탄에게 드려진 헌물(獻物)입니다. ‘입당식’은 그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허구적인 ‘여호수아 프로젝트’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자, 이 ‘동방의 바벨탑’이 비극적 종말을 향하여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11. 또 12월 초에는 그 곳에서 ‘2013년 새생명축제’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성도들을 시험 들게 했고 더구나 수 많은 초신자(初信者)들을 실족(失足)시켜 교회 밖으로 내몰았던 담임목사와 그 추종자들이 또 다시 ‘새생명’을 낳기 위한 축제를 한다고 하는데 앞뒤가 안 맞는 이 모순(矛盾)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새생명’들을 낳아 놓고 또 밖으로 쫓아내든지, 아니면 그 ‘새생명’들로 하여금 차차 거짓복음에 속아 ‘죽은생명’들 즉 자기들 같은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든지(마23:15) -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12. 지금 담임목사와 교회측은 입당을 앞두고 각종 눈가림성 이벤트와 쇼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대하는 성도들을 탄압하고 회유하기 위한 갖가지 입체적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6개월 동안 자숙의 징계를 받고 왔다는 사람이 입으로만 회개를 말하고 행위는 더 교활하고 악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장로와 교역자와 성도들은 마치 승전(勝戰)한 ‘왕의 귀환’을 반기듯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13. 이런 와중(渦中)에 이미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고, 또 남아서 지금까지 버티던 성도들도 소망을 잃고 하나 둘 떠나가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대표(代表)’인 장로들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비통한 아픔을 느껴야 마땅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깨어있는 성도들 중 아직도 남아서 의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분들은 지금 새예배당 입당을 앞 두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따라가야 할 것인가? 가지 말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교회로 옮겨야 할 것인가?” 기억하십시오! 절대 SGMC에 가서는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의 거짓된 설교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이 분들은 누가 어떻게 도울 것입니까?
14. 그런데 이런 중차대(重且大)한 시점에, 이 모든 일의 중심에서 ‘지도력’을 보여주어야 할 장로님들은 다 어디에 계신지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모두 외유(外遊)를 떠나셨습니까 아니면 골방에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용서하십시오. 제가 먼 타국에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장로님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15. 장로님! 이 선교지에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저는 ‘깨어있는 장로님들’께 기대를 걸고 지금 이 시간까지 소망 가운데 기다려 왔습니다. 대다수 성도들의 마음도 저와 같을 줄 압니다. 장로님들은 사랑의교회 기둥이며 대들보요 최후의 보루(堡壘)입니다. 비록 일부 사이비 장로들 때문에 당회가 무력(無力)해지고 장로들의 명예가 실추(失墜)되었지만, 그 동안 보여주신 장로님들의 꿋꿋함과 신중함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16. 그러나 만사(萬事)는 다 ‘때’ 즉 필요한 ‘타이밍’이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경거망동(輕擧妄動)은 삼가야 하겠지만, 때론 지나친 신중함이 비겁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의 때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어떤 경우는 하나님이 주신 상식적(常識的) 판단력만으로도 그 때를 쉽게 알 수 있음을 우리가 잘 압니다. 즉 배고프다 하면 ‘먹을 밥’을 줄 때고 목마르다 하면 ‘마실 물’을 줄 때입니다.
17. 그러면 지금은 어떤 때이며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요? 이 모든 일을 안수집사님들을 비롯한 다른 평신도들께만 맡겨 놓지 마십시오. 심지어 생업을 전폐(全廢)하시더라도 ‘교회 살리기’에 전념(專念)해 주십시오. 혹시 지금 장로님들끼리만 수 개월째 ‘여리고’ 성(城)을 돌고 계십니까? 그러면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모으셔서 같이 돌아 주십시오.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진한 ‘일곱 제사장들’처럼 앞장 서서 돌아 주십시오. 그리고 언제 다 함께 외쳐야 할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18. 장로님! 아직도 밀실(密室)에서 그 하찮은 장로들과 입씨름만 하고 계십니까? 회개하지 않는 그들, 주님을 대적하는 그들을 더 이상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말고 잊으십시오. 그들은 지금 흑(黑)을 백(白)이라 하고 백을 흑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판명(判明)났습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의 종들인 그들과는 주님의 멍에를 같이 질 수 없습니다.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지만, 사랑의교회 당회는 ‘죽은 것’으로, 그래서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하십시오. ‘그 당회’는 이미 범죄를 저지른 조직이요 그 속에서 ‘거짓을 옹호하는 장로’들은 치리(治理)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들은 지금 같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교회를 활보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장로님들 앞에서 무릎을 끓고 빌어야 할 자들입니다.
19. 그들과 교회 개혁을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對象)입니다. 사랑의교회의 개혁은 ‘담임목사의 사임(辭任)’과 그를 추종해온 당회원들의 사임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들이 말하는 모든 개혁 또는 갱신에 관한 이야기는 문제를 호도(糊塗)하고 본질을 흐리기 위한 술수(術數)에 불과합니다.
20.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가 두 쪽이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실 겁니다. 아마 그것이 지금까지 보여주신 장로님들의 인내(忍耐)를 설명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면 두 쪽이 안 나는 방법이 있습니까? 물론 타협을 하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미봉책(彌縫策)일 뿐, 결코 성경적인 방안은 아닙니다.
21. 설마 진리(眞理)가 비진리(非眞理)와 타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진리가 비진리와 타협을 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교회가 두 쪽이 나야 할 때는 나야 합니다. 거듭 말씀 드립니다. 안타깝지만 교회가 두 쪽이 나야 할 때는 나야 합니다. 그것이 공생애 시작 ‘초기와 말기’(요2:15, 마21:12) 각각 한 번씩 성전(聖殿)을 정화(淨化)하심으로 ‘교회의 순결’의 중요성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뜻이었으며, 거짓교사와 거짓선지자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항상 노심초사 염려하며 기도했던 바울의 권면이었습니다.
22. 두 쪽이 난다는 것이 사람의 욕심에 의한 싸움이면 분열(分裂, Division)이지만,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분리(分離, Separation)입니다. 무엇을 위한 ‘하나됨’입니까? 계속 악과 타협을 해서라도 하나됨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하나됨이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이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거룩하지 못한 교회가 어떻게 거룩하신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성결한 교회에서의 ‘하나됨’은; 말씀 안에서, 진리 안에서, 성령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엡4:13-16, 4:17-32, 5:1-14)
23. 주지(周知)하시는 바와 같이 장로교는 전통적으로 당회(當會)를 중심으로 하는 장로회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장로 한 분 한 분은 ‘교인들의 대표’로 뽑힌 공인(公人)입니다. 장로직을 사적(私的) 영광이나 누리는 자리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심부름꾼이나 종이 아닙니다. 물론 담임목사를 존중(尊重)해야 하지만 “주(主) 안에서만”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회원들은 목회자의 후원자 역할도 해야 하지만 잘못된 일에는 충고도 하고 반대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당회원은 장로교 헌법에서 보장되어 있는 고유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24.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동안 사랑의교회 장로님들은 그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점잖게 말하면 근무태만이요 좀 더 강하게 말하면 직무유기(職務遺棄)를 하셨습니다. 비근한 예로 부교역자도 아니고 담임목사를 청빙해 오는데 서류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이력서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25. 저는 사랑의교회 역대(歷代) 당회가 교회창립이래 지금까지 네 가지의 큰 실수(失手)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대형교회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한 실수요, 둘째 2대 담임목사를 잘못 청빙(請聘)한 실수요, 셋째 SGMC건축을 막지 못한 실수입니다. 넷째는 결정적인 것으로서 현 담임목사의 죄(罪)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실수였습니다.
26. 이런 연고로 사랑의교회 당회는 2013년3월17일자로 자폭(自爆)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회에서 담임목사의 사임을 권고(勸告)하든지, 아니면 해임을 결의하고 노회에 해임청원(解任請願)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범했던 명백하고도 중한 죄(罪)를 ‘사랑’이라는 애매모호한 언어로 포용하고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순간, 당회는 스스로 공중분해(空中分解) 되어버렸으며 더 이상 주님의 일을 말할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끝까지 반대편에서 외롭게 싸웠던 당회원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불의한 결정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27. 그러므로 교회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교인들의 대표(代表)’라는 막중한 권한을 위임 받았던 당회원 장로님들의 전적(全的)인 책임(責任)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타 교회에서 오신 협동장로님들은 당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빼 놓고, 현재 당회원이거나 그 동안 당회원의 신분을 한 때라도 거쳤던 소위 순혈(純血) 사랑의교회 장로님들은 모두 그 책임을 통감(痛感)하실 줄 압니다. 따라서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현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책임의식과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임해 주십시오. 장로님들께서는 모두 분연히 일어나셔서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앞장 서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해결을 주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8. 지금은 교회의 비상시국(非常時局)입니다. 진리를 농락하며 주님을 대적하는 무리들과 한가롭게 법과 절차만 따지고 똑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비상시국은 비상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말보다는 ‘보여 주는 행동’으로 말씀을 해야 합니다. “왜 사랑의교회에는 용기 있는 장로들이 없는가? 그들은 모두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강남의 웰빙 장로들인가?”라는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9. 저는 지금 작년 2월에 ‘중국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을 막으려고 중국대사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던 박선영의원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11일 동안 단식 끝에 결국 탈진하여 병원으로 실려갔던 그는 남자가 아닌 여자, 그것도 50대 후반의 여성이었습니다. (참조: 그의 단식은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으며 연인원 10만 명이 참여한 499일간의 릴레이 농성의 불을 지폈습니다. 이 농성은 중국의 획기적 태도 변화, UN의 북한결의안 만장일치 통과, G8정상회담 선언문 상의 탈북자 명시 등 중요한 성과를 거두게 했습니다.)
30. 혹시 시간(時間)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아니면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까?”하고 서로 쳐다보기만 하는 우화(寓話)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검찰 조사가 잘 진행되어 국법(國法)의 심판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길 바랍니다. 진정한 승리는 시간이 가져다 주거나 남이 가져다 주거나 국법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자기 헌신이 없는 부끄러운 승리는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의 목숨을 걸고 얻은 승리만이 온전한 승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1. 지금 사랑의교회는 영적 전시(戰時)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장로님들이 골방에서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도와 함께 자신을 주님께 제물(祭物)로 드려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이 곧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의 삶이요, 우리 주님께서 지금 장로님들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일지 모릅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 초대 교부 터툴리안의 유명한 말이 위기의 때를 만난 지금 우리 교회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2. 장로님! 깨어있는 의롭고 거룩한 장로님들께 거듭 부탁 드립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심한 풍랑을 만나 좌초되기 일보 직전의 배와 같습니다. 갑판 아래 선실에 앉아 비난(非難)하고 탄식(歎息)하고 성토(聲討)만 하는 여유로운 시간은 벌써 지났습니다. 지금 의식 있는 성도들은 ‘새예배당’이라고도 하고 ‘SGMC’라고도 하는 ‘문제의 건축물’ 입주를 앞두고 큰 심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장로님들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장로님들이 하나되어 앞장 서 주시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加重)될 수 밖에 없습니다. SGMC입당을 앞두고 혼란해 하는 이 성도들에게 옳고 바른 행동지침을 주시고, 떠나려는 성도들에게는 그 분들의 손을 붙잡고 만류해 주십시오.
33. 장로님! 모든 홍보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는 교회측에 더 이상 이슈를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동안 담임목사의 많은 불의가 드러나게 해 주셨고 이를 감추고 덮으려고 하는 저들의 자충수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이슈를 빼앗기고 교회측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녀서는 안됩니다. 지금 이 기간이 우리의 영적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the Most Critical Period)입니다. 이슈를 선점하고 단호한 결기(決氣)와 함께 영적 지도력(指導力)을 보여 주십시오.
34. 장로님! 장로님들이 자신을 주님의 제단에 ‘산제사’로 드리시고 ‘관제와 같은 부음’이 되어 주실 때 주님께서는 장로님들의 그러한 헌신(獻身)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 교회에서 악한 세력들이 물러가고, 교회의 거룩함이 회복되고, 한국교회에 소망을 주며 나아가 한국교회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놀라운 기적(奇蹟)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난 후 언젠가, 사랑하는 장로님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올 줄로 믿습니다. 부족한 이 선교사의 외람되고 긴 편지를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후 2013년10월15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권일 선교사 드림
[첨언-1]
한편 고린도전서 6장 말씀을 왜 어기느냐고 묻는 교인들이 있을 줄 압니다. 왜 교회 문제를 세상법(世上法)에 호소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욕되게 하느냐고 따지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현재 교회의 권징 기능이 병들고 마비되었으니 교회 내에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며, 둘째 세상법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인 피해자들을 나무라기 전에, 몸 된 교회를 욕되게 한 바로 그 장본인들인 가해자들을 먼저 나무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첨언-2]
그리고 상황적이고 윤리적인 사항에 관한 성경말씀을 오늘의 현실에 적용할 때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즉 성경이 기록된 당시 초대교회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과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아울러 성경의 다른 부분의 말씀들과 함께 비교하며 고찰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상법이라 하는 국법(國法)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교회 내의 범법자(犯法者)들이 지어낸 개념입니다. 성경은 결코 세상법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법은 하나님의 ‘일반은총’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도리어 세상권세와 법을 존중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롬13:1-7, 벧전2:13-15)
카푸치노님, 님이 너무 흥분하시네요. 문제의 본질을 바로보고 처신하자는겁니다. 당금의 사태를 놓고 갑자기 사탄이다, 거짓선지자 운운하면, 과거 몇년간 열심히 설교듣고 특새하고 봉사하던 것은 다 마귀의 계획입니까? 밑도 끝도 없이 가라지를 불속에 그냥 던지소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바로 보고 교정을 위한 힘차고 단결된 행동을 추구할 때가 아닙니까? 자중하시고 하나라도 행동으로 본을 보이세요. 수정 | 삭제 | 신고
10.22일자 댓글이 임의삭제되어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다시 올립니다. 선교사님께서 현재 우리교회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장로님들에게 보낸 글은 충분히 동감하지만, 너무 앞뒤 없이 흥분하시는군요. 5년전에 파송되셨으면 그 당시에도 우리 교회는 대형교회였습니다. 비록 협동 장로시라고 하더라도 무슨 행동을 보이셨는지요? 지금의 분란의 원인은 당회장 목사의 학위 부정과 교회운영에 책임있는 분들이 연루되어 있는 교회 재정부정 사건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을 석명하고 바로잡을 행동은 하더라도 교리적인 문제로 (사탄이라는 둥) 몰고가는 것은 삼가바랍니다.
31ㄱㅎ, ㅈ ㅂ ㅇ 사건이 일어났을때,,, 당회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한국교계가,,하니 그 교회가,,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ㅇ ㅈ ㅎ 사건이 발생했을때,,,장로들이 일을 제대로처리했다면 문제가 더 이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엔 그 ch 사정을 잘 몰라 혼란스러웠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자신의 비리들로 교회가 혼란스럽다면 자진 사퇴하는게 참 목회자 입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 시간이 되면 잘 되겠지,,혹은 재판결과가 우리한테 유리하게 나와 잘 해결되겟지!! 이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게 어지보면 막연한거 같습니다.
특별한 헌신이 필요한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그저 단순히 기도하고 구호 외치고 이런것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탈북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하는 의원도 있는데요.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신 주님의 교회를 구하는데 어찌 두려워 하리요!! 뜻있는 사랑의 교회 제자들이여!!1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의"를 위해 불같이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교회직분에 매료되거나 오목사와 인간적인 관계내지는 세속적인 이해타산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상당한 질책과 치리의 범주에 속한다 봅니다.isogom님 사안의 본질을 보시는 혜안과 분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입니다.이건 누가 누굴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10번째 재게시하는 글이군요.
바른 길로 가는 교회로 회복되도록 성도들을 깨우쳐주시옵소서!
올려지는 사진들이 위로와 힘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마당기도회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카푸치노님, 님이 너무 흥분하시네요.
문제의 본질을 바로보고 처신하자는겁니다.
당금의 사태를 놓고 갑자기 사탄이다, 거짓선지자 운운하면, 과거 몇년간 열심히 설교듣고 특새하고 봉사하던 것은 다 마귀의 계획입니까?
밑도 끝도 없이 가라지를 불속에 그냥 던지소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바로 보고 교정을 위한
힘차고 단결된 행동을 추구할 때가 아닙니까?
자중하시고 하나라도 행동으로 본을 보이세요. 수정 | 삭제 | 신고
귀한 글 감사합니다. 스크랩해 나갑니다.
10.22일자 댓글이 임의삭제되어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다시 올립니다.
선교사님께서 현재 우리교회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장로님들에게 보낸 글은 충분히 동감하지만, 너무 앞뒤 없이 흥분하시는군요.
5년전에 파송되셨으면 그 당시에도 우리 교회는 대형교회였습니다. 비록 협동 장로시라고 하더라도 무슨 행동을 보이셨는지요? 지금의 분란의 원인은 당회장 목사의 학위 부정과 교회운영에 책임있는 분들이 연루되어 있는 교회 재정부정 사건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을 석명하고 바로잡을 행동은 하더라도 교리적인 문제로 (사탄이라는 둥) 몰고가는 것은 삼가바랍니다.
31ㄱㅎ, ㅈ ㅂ ㅇ 사건이 일어났을때,,, 당회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한국교계가,,하니 그 교회가,,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ㅇ ㅈ ㅎ 사건이 발생했을때,,,장로들이 일을 제대로처리했다면 문제가 더 이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엔 그 ch 사정을 잘 몰라 혼란스러웠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자신의 비리들로 교회가 혼란스럽다면
자진 사퇴하는게 참 목회자 입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 시간이 되면 잘 되겠지,,혹은 재판결과가 우리한테 유리하게 나와 잘 해결되겟지!!
이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게 어지보면 막연한거 같습니다.
이젠 뜻있는 제자들의
특별한 헌신이 필요한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그저 단순히 기도하고 구호 외치고 이런것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탈북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하는 의원도 있는데요.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신 주님의 교회를 구하는데 어찌 두려워 하리요!!
뜻있는 사랑의 교회 제자들이여!!1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의"를 위해 불같이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픔니다. 선교사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에 찬사를 보냅니다
너무나 와 닿는 글 감사합니다
교회직분에 매료되거나 오목사와 인간적인 관계내지는 세속적인 이해타산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상당한 질책과 치리의 범주에 속한다 봅니다.isogom님 사안의 본질을 보시는 혜안과 분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입니다.이건 누가 누굴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