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를 아는 것은 그의 가장 뛰어남에서 중세의 정신을 아는 것이다”라고 현대의 한 평론가가 말했다. 뚱뚱하고 느린 소년으로 나중엔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리운 토마스는 5살 때 역사적인 몬테카지노 대수도원으로 보내졌고 14세엔 나폴리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토마스는 어느 강사의 영향을 받아 도미니크 수도회에 가입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아퀴노 근처에 살았던 그의 가족들은 그를 그곳에서 강제로 끌어내었다. 그리고 그의 형들은 창녀로 그를 꾀었고(이때 토마스는 그들을 향해 불 붙은 통나무를 집어 던졌다) 또, 나폴리의 대주교 자리를 사줄 것을 제안했으나 토마스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다시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 쾰른에서 위대한 알버트의 문하생으로 수학했으며 그의 재능은 곧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평균 연령보다 네 살이나 어린 31세 때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파리와 이태리에서 강연하였다. 그의 작품은 모두 18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그가 기독교 교리의 완벽하고 조직적인 철학적 분석을 위해 시도했던「신학대전」과 「반(反) 이교도(Contra Gentiles)대전」이다.
그러나 1272년 12월 찬양 미사 중 그에게 찾아온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체험으로 그는 더이상 쓰기를 포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적었던 모든 것들이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위에 성령의 강한 임재가 부어지길 기도하라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장함 본문 : 롬8:26
믿음의 성장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성령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고 때가 되매 약속대로 성도들에게 찾아와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이 시간 성령이 하는 일에 대하여 상고해 보겠습니다.
1.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성령(요14:26)
1)영원히 내주 하시는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주님과 제자들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준다는 사도 요한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떠난 이후에 보혜사 성령님께서 주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26). 결코 예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심령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님의 소리에 늘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성령의 임재는 관유를 붓는 기름부음의 예식처럼 한 순간의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유의 향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소멸되지만 한 번 임하신 성령은 영원히 변치 않고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같은 위력과 같은 권능을 지닌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능력을 가르치시는 성령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항상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주님 말씀대로 성도들이 살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또한 성령의 가르침은 이론적인 교훈뿐만 아니라 그 교훈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성도에게 가르치십니다. 성령이 지니신 능력은 실로 무궁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능력 있는 역사를 많이 나타냈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연약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받으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이후에는 담대해져서 어떠한 고난이 자신에게 닥쳐오더라도 복음을 뜨겁게 전파하였습니다. 성도들은 능력받기 위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2. 성도를 돕는 성령(엡2:18)
1)인간을 위한 성령의 중재 우리의 연약함은 기도하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함으로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기력하며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 연약성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약함을 벗을 길은 바로 성령과 합일체가 되어 사는 삶 속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진정한 이해의 판단을 잃어 버렸고, 자아 구원을 위해 택정할 길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성령의 중재가 없이는 참된 기도도 드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중재하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2)성령의 도우심 우리는 험악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계속 보이지 않는 상태에 있으므로 세상에 보이는 부귀, 영화, 쾌락 등은 항상 우리에게 유혹이 됩니다. 성도가 연약하여 심중에 탄식할 때에 성령은 그 약함을 분담사시며 성도와 함께 탄식하십니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힘으로는 하늘의 영광을 확실히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자인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 아래 모든 연약함을 극복하게 됩니다. 또한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 아래 새 힘을 공급받아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주력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방파제며 촉진제입니다.
3. 성령과 영생(요14:16)
1)영원토록 성도와 함께 하심 주님께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도의 심령속에 내주 하시며 언제나 동행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미천한 우리 인간 심령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인 모습보다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이 더욱 중요합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매를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더욱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환난과 곤란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기쁨과 평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의 가장 값진 보화는 성령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날마다 승리하는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우리는 지금도 그렇지만 성령을 받아 새롭게 시작한 뒤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그분과 관련을 맺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관련을 맺기를 원하시며, 또 반드시 맺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또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여기에서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지 사람들의 선택에 의존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너희들에게 좋은가?"라고 사람들에게 묻고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결정을 내리셨고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결론 험악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기에는 모든 인간은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계속 보이지 않는 상태에 있으므로 세상에 보이는 부귀, 영화, 쾌락 등은 우리에게 항상 유혹이 됩니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 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하기를 갈망하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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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복된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