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는 얼마입니까?" "공짜입니다!" "아 네!" 공짜라는 단어를 특히 힘주어 발음한다. 사람들은 수수료가 무료라는 말보다 공짜라는 말에 대부분 행복한 미소로 화답한다. 무료라는 말에 별 반응이 없다가 공짜라는 말에 즐거워하는 것을 보노라면, 미소짓는 것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는 앳된 얼굴의 젊은이와 기업체의 근무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창구에서 나란히 수수료가 얼만지 물었다. 학생은 대학 졸업 증명서, 기업인은 부가가치세 표준증명원, 소득금액증명원을 신청했다. 순간 나의 양심이 송사를 했다. 한사람은 분명 소득이 없을 법한 취업준비생이고, 한 사람은 수억원을 버는 기업인이었다.
"수수료는 천원입니다" 젊은이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 당황해 한다.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난감한 얼굴로 다시 민원창구를 쳐다본다. 그들은 전자화폐에 익숙할 것이다.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등. 현금이 없다는 경우 젊은이에게 통장계좌로 입금해달라고 하면 표정이 밝아진다. "수수료는 없습니다. 공짜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공짜라는 말에 수억원을 버는 기업인도 활짝 웃으며 반가워하고 즐거워한다.
백의종군 1개월째다. 현대자동차에 응시하는 민원들이 한차례 지나갔다.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를 신청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날은 말할 힘이 없을 만큼 진해질 때도 있다. 민원창구 업무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경력 이십년이 훌쩍 지났지만 말이다. 앞에 버티고 선 민원이 조급하다든가, 짜증을 부리면 정말 진땀 난다. 마음이 급해진다. 항상 초보를 면하지 못하는 직장생활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거의 4년 공백기를 가지고 복귀한 행정복지센터에서 나는 `어디서나 민원 처리`라는 업무를 받았다. 생소하다. 20여년 전 보았던 민원 처리시스템과는 다르다.
어디서나 민원은 종류가 다양하다. 마치 뷔페식 민원창구라고나 할까. 민원 종류는 129가지나 된다. 교육부, 국세청,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소관부서도 다양하다. 내용도 성적증명, 납세증명, 소득 금액증명, 농업경영체 등록확인서 등 각양각색이다. 기업인은, 소득인은, 사회 초년생에 비해 비교적 수입이 많은 사람은 공짜, 직업이 아직 없는 학생은 1천원이다.
처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업무절차나 처리 과정이 팩스, 복사기, 인증기를 사용하는 등 비용이 발생하고, 세금으로 주는 인건비 등 소요경비를 감안할 때 무료는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소득의 학생이 1천원을 내면 몇억 대의 소득인에게는 5천원 정도나 1만원 받아야 형평에 맞다는 생각은 무리한 것일까? 서비스료 즉 업무처리비, 수수료를 말이다. 아니 사업가는 이미 세금을 많이 내고 있어서 공짜인가? 이런 취지인가?
나는 의문을 가지고 지침을 찾아보았다. 수수료 및 업무처리비, 수수료는 관계 법령 또는 교부기관 조례 등에서 정한 금액으로 하되, 달리 정함이 없는 경우는 받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조례에 달렸다고 보면 된다. 이 아이러니한 경우는 말이다. 부지런히 조례를 만들어 가장 약한 자가, 저소득자가 자가 가장 많이 부담하는 이 사태를 적어도 양심이 부끄럽지 않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센터 청사의 앞뜰은 훤하고 좋다, 벤치를 몇 개 벽 쪽에 바짝 붙여 설치하면 오가는 주민들이 눈부신 오월의 햇살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고 힐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영우 변호사처럼 고래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벤치 디자인을 떠올린다. 또 체육공원에 안전 바비큐장이 머릿속으로 지나간다. 호주의 시드니 공원에 있는 것과 비슷하고도 더욱 안전한,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이 공원에서 고기를 마음껏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장. 스텐 불판, 가스 화덕, 넉넉한 지붕이 주는 그늘과 그 아래 식탁, 넉넉한 벤치, 수십 명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떠올린다.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소리가 있다. 4년 전에 근무했던 면 소재지 어떤 유지의 말이다. "유 주사님 같은 사람 3명만 있으면 울주가 바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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