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女팝스타, 파격 의상입고 무대 등장하자 '환호'
비욘세·마돈나 … 톱스타 30인 '변화의 벨' 누르다
인권 사각지대의 여성·소녀를 위한 ‘차임 포 체인지’ 런던 콘서트
1985년 에티오피아 난민 구제 기금 마련을 위해 마이클 잭슨이 앞장선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프로젝트는 일대 ‘사건’이었다. 스티비 원더, 폴 사이먼, 케니 로저스, 신디 로퍼, 밥 딜런 등 세계적인 뮤지션 21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1일(현지시간) 런던 트위커넘 구장에서 열린 ‘사운드 오브 체인지 라이브(THE SOUND OF CHANGE LIVE)’ 콘서트도 그 못지않았다. 비욘세 놀스 카터, 제니퍼 로페즈, 엘리 굴딩, 제이 지, 플로렌스 앤드 더 머신, 존 레전드 등 30명의 톱스타와 유명인사들이 장장 4시간 동안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특히 콘서트를 총괄 기획한 비욘세는 45분간 단독 공연을 펼쳤다. 별 중의 별들이 나선 이유는 이 무대가 세계 여성과 여자 어린이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기금 마련 무대였기 때문. 비욘세와 구찌 디자이너 프리다 지아니니, 케어링 그룹(구찌·생로랑·보테가베네타 등을 소유)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의 부인이자 배우인 셀마 헤이엑 등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3명이 주축이 돼 이들을 규합했다. 서로 친분이 있던 파워 우먼 셋은 1년 전 “뭔가 특별한 일을 해 보자”며 의기투합했고, ‘여성’에 주목했다. 그 결과가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이하 CFC)’라는 캠페인이었다. 이번 콘서트는 그 첫걸음이었고, 비용은 전액 구찌가 후원했다. 일반 티켓 값이 55~95파운드(약 9만~16만원), VIP 티켓은 360파운드(약 62만원)에 이르는 만만찮은 수준임에도 3월 초 판매 개시 직후 매진됐다. 이날 하루 공연의 티켓 수익금만 430만 달러(약 48억원)가 넘었다. 1일 트위커넘 구장을 찾았을 때 열기는 이미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제시 제이, 리타 오라에 이어 제니퍼 로페즈까지 캠페인을 위한 콘서트라는 주최 측의 의도는 공연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벽마다 붙은 포스터엔 ‘교육·건강·정의. 모든 여성들을 위해, 모든 소녀들을 위해. 모든 곳에서(Education, Health, Justice. For every woman, For every girl, Everywhere)’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그라운드에 설치된 무대 정면에선 끊임없이 전자 스크롤이 돌아갔다. “우리 중 절반만 뒤로 물러서면 우리 대다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More of us can forward if half of us are held back).” 무대 오른편 멀티비전에서도 짧은 동영상이 흘러 나왔다. 14살에 결혼하고, 15살에 임신하고, 살기 위해 몸을 팔고, 결국 에이즈에 걸리는 아프리카 소녀의 인생을 애니메이션으로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친구 둘과 콘서트를 보러 왔다는 케이트 보워(15)는 “이들을 도우려고 콘서트를 보러 온 건 아니지만 좋은 일까지 할 수 있다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오후 6시10분.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영국 팝가수 제시 제이가 등장하자 바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삭발을 한 채 배꼽이 보이는 검정 톱과 레깅스를 걸친 차림이 강렬했다. 히트곡 ‘Price Tag’ 중 후렴구인 “머니, 머니, 머니”가 나오자 관객들이 다같이 따라 부르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Nobody’s Perfect’‘Wild’를 열창한 그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자신의 트위터에 “영광스럽고 고맙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 이기 아질리아, 리타 오라, 라우라 파우지니 등이 나와 각각 2~3곡을 연달아 불렀다. 특히 ‘제2의 리한나’로 불리는 리타 오라는 브라톱과 반짝이 레깅스에 농염한 댄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 곡 ‘R.I.P’을 부를 땐 관객들을 향해 “Put your hands up!”을 외치면서 떼창을 유도하기도 했다. 시작부터 스탠딩 아닌 스탠딩을 해야 했던 관객들은 ‘플로렌스 앤드 더 머신’이 나오면서 잠시 한숨 돌렸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OST곡을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른 그에 이어 존 레전드와 하임이 무대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번 공연에서 비욘세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가수가 나타나자 관객들이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니퍼 로페즈였다. 당초 라인업 확정이 늦어졌던 그였지만 무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21분이나 공연을 이끌었다. ‘Get Right’ 등 6곡을 연달아 메들리로 뽑아내는가 싶더니 비장의 무기까지 선보였다. 깜짝 등장한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Come Together’를 듀엣으로 소화했다.
비욘세 45분간 단독 공연 … 남편 제이 지와 합동무대도 팀발랜드, 엘리 굴딩으로 이어진 콘서트는 어느새 9시를 넘어갔고 트위커넘 구장에도 어둠이 깔렸다. 하지만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비욘세의 무대만이 남았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A Change Gonna Come’으로 등장했다. “비욘세, 비욘세….” 노래가 끝나자 관중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감격한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비욘세 놀스 카터다, 오늘 변화를 위한 벨을 누를 것이다”라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다음 곡 ‘Who Run The World’를 시작하며 이렇게 외쳤다. “누가 세상을 이끄나? 여자들!” 비욘세는 전날 벨기에에서 ‘미세스 카터 월드 투어’ 공연을 마친 직후였다. 하지만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보디수트를 입고 파워풀한 댄스를 추는 그의 모습에는 빈틈이 없었다. 팬들을 위한 깜짝 선물도 빠뜨리지 않았다. 남편 제이 지와 ‘Crazy in Love’를 부르는 합동 무대였다. 이어 ‘Single Lady’와 신곡 ‘Grown Woman’을 소화한 그는 마지막 곡으로 ‘Halo’를 골랐다. 도입부를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로 편곡한 노래는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마돈나 “나의 사랑의 혁명에 동참하라” 이날 공연에선 따로 사회자가 없었다. 대신 가수가 무대를 준비하는 사이 유명 인사들의 짧은 스피치가 있었다. 일부는 직접 무대에 나왔고, 일부는 동영상으로 ‘차임 포 체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보냈다. 셀마 헤이엑이 “차임 포 체인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며 처음 마이크를 잡은 뒤로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 제임스 프랭코, 프리다 핀토 등 레드 카펫에서나 볼 수 있었던 톱스타들도 줄지어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말을 남긴 사람은 마돈나였다. 그는 3분이 넘는 스피치를 통해 “교육은 사치가 아니라 인권”이라며 교육 받지 못하는 소녀들을 돕자고 호소했다. “나의 사랑의 혁명에 동참할 텐가”라는 그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한편 해리 영국 왕자,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 등은 화면으로 캠페인에 동참했다.
가수들 코러스·백댄서도 구찌로 입어 이번 공연은 역사상 가장 스타일리시한 자선무대가 아닐까 싶었다. 콘서트에 나선 유명 인사들 대부분이 구찌 옷을 입고 등장했기 때문. 비욘세가 입은 무대 의상들 역시 구찌였다. 어깨에 시퀸이 장식된 검정 가죽 보디수트, 파이톤 무늬가 들어간 보디수트, 스커트에 구슬 장식이 동물 모양으로 자수 처리된 세 벌 모두 그랬다. 비욘세의 코러스와 댄서들 역시 모두 구찌였다. 브랜드 측이 이번 공연을 위해 맞춤한 옷들이었다. 남자 중엔 존 레전드의 의상이 눈에 띄었다. 그는 더블 브레스트 수트와 화이트 셔츠, 감색 구두를 짝지어 입고 나타났는데 이는 모두 2013년 봄·여름 컬렉션 그대로였다. 또 블레이크 라이블리 역시 같은 컬렉션의 흰색 실크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이 밖에 백스테이지와 애프터 파티에서 유명 인사들은 모두 구찌로 빼 입으며 레드 카펫을 방불케 하는 스타일을 과시했다.
“여성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 지금, 우리가 나섰다” 이날 공연은 150개국에서 생중계됐고 10억 명이 지켜 봤다. 430만 달러의 티켓 수익으로는 70개국의 200여 개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차임 포 체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했다. 왜 세계를 주무르는 여자 셋은 지금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여성에 관한 별다른 이슈가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연 전 사전 인터뷰에서 밝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나선 이유다. 세계 곳곳에 혜택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것에 관해 얘기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비욘세) 아기를 낳다 죽는 여성이 매일 800명이나 되고, 문맹자의 70%가 여자이며, 세계 노동의 66%를 담당하면서도 남자보다 평균 임금은 20%나 덜 받는 현실이 여전한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말이었다. 비욘세는 특히 지난해 딸을 낳은 이후 여성에게 관심을 더 쏟게 됐다고 했다. 남들이 갖지 못한 목소리를 이용해 세상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자가 된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한 롤모델이 될 필요가 있어요.” 캠페인을 콘서트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찌의 디자이너 지아니니가 여기에 답했다. “캠페인을 통해, 콘서트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어요.” 단, 고통과 슬픔이 아닌 그들의 꿈을 행복하게, 즐겁게 전달하고 싶어했다. 음악을 희망의 도구로 삼은 이유였다.
런던 글 이도은 기자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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