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기적과 표징으로 가득한 우리네 일상!
갑작스럽게 다가온 고통이 너무 혹독할 때, 백방으로 노력해도 그 어떤 탈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 아니면 삶이 너무 밋밋하거나 무료할 때, 우리는 기적 같은 반전이 찾아오기를 원합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이런 저런 기적을 참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빵을 많게 하는 기적,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 이미 죽은 소녀를 되살리는 기적...
그리고 그 기적의 능력은 오순절 날 성령을 가득 받은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처럼 말씀 한 마디로 악령을 추방하고, 죽어가던 사람을 치유시켰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도 없습니다. 너무나 당당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사도들의 설교 말씀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몇천명씩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활발하던 기적들은 이제 어디서? 사실 예수님 공생활 기간, 그리고 사도들의 시대를 끝으로 우리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적과 표징의 시대는 종료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이 시대 기적은 더 이상 불치병 환자들이 안수 한 번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방식의 기적이 아닙니다. 이제는 또 다른 방식의 기적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 기적은 바로 사랑의 기적입니다. 나눔의 기적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항상 엄청나고 대단한 기적을 기대하지만, 사실 수많은 기적들이 우리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도 기적이지만, 호젓한 산책로를 세상 편히 걷는 것도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요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너무나도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 휠체어가 아니라 자신의 두 발로 산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젠가 간암 말기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드리러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복수가 찰데로 차서 숨쉬기조차 곤란했습니다. 그 어떤 음식도 섭취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여러 종류의 링거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계셨습니다. 그 형제의 너무나 간절한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시원한 물 한 컵 원 없이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속이 완전히 뒤집혀서 그 어떤 음식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식 섭취가 안되니, 혈압이며 맥박이며 점점 약해졌고, 나중에는 힘이 빠져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몇주간 입원을 했었는데, 오랜 검진 끝에 의료진이 내린 결론은 일단 금식을 시키고 보자였습니다. 2주 이상 링거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때 정말 간절한 소원이 소화되는지 안되는지 걱정않고, 얼큰한 육개장 한 그릇, 맛있는 떡라면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네 일상 그 안에는 무수한 기적과 표징들로 가득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 하나는 기적처럼, 축복처럼 주어지는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 깊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디 멀리 가서 기적과 표징을 찾을 일이 결코 아닙니다. 기적과 표징은 오늘 내 앞에 펼쳐지는 이 소중한 일상 안에서 부단히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