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령을 넘어가
끝물 장마가 슬그머니 사라져가는지 강수 기운이 비치지 않은 칠월 끝자락 일요일이다. 어제는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흩뿌려 예정한 산행은 마음을 거두고 새벽 일찍 온천장 대중탕에 몸을 담근 뒤 종일 도서관에서 지냈다. 실내에 머물 때는 몰랐는데 나중 귀로에 길바닥은 젖은 흔적이 없고 하늘은 파랗게 드러났다. 알고 보니 폭염을 대비하십사는 안전 문자도 와 있었다.
날이 밝아온 일요일은 비가 오지 않고 뙤약볕이 예상되었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원이대로로 진출해 월영동을 첫차로 출발해 온 106번 버스를 탔다. 그 버스를 타야 성주동 아파트단지 용제봉 산행 들머리까지 바싹 다가갈 수 있었다. 시청 광장을 돌아갈 즈음 동녘 하늘에는 아침 해가 돋는 붉은 기운이 서렸다. 버스가 대방동 뒷길에서 프리빌리지 아파트단지를 지날 때 내렸다.
등산로 데크를 따라 오르니 건너편 장복산과 안민고개 능선으로는 구름이 걸쳐져 대기 중 습도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삼정자동 마애불상으로 가는 진입로는 한여름에도 제철을 맞아 피는 꽃은 차례를 지켜 임무를 다했다. 선홍색 칸나에 이어 분홍 상사화가 피었다. 마애불상 앞은 한 할머니가 정성 들여 돌봐 늘 정갈한데 당국에서 뒤늦게 일손을 지원해 꽃밭이 더욱 풍성해졌다.
용제봉으로 가는 등산로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산 아래 아파트단지 주민이 산행을 나선 이들이 더러 보였다. 나이가 든 연령층은 드물고 주로 중년이었다. 고령자는 아침이라도 더운 날씨라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듯했다. 내가 생활권과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용제봉 방향으로 산행을 나섬은 이즈음 숲속에 자라 나온 영지버섯을 따기 위함이다. 빈손이면 삼림욕으로 만족해도 된다.
올여름 산성산과 용제봉 기슭을 한 차례 누볐다. 지난주 일요일은 곰절에서 불모산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몇 조각 찾아 숲을 빠져나오다가 멧돼지를 만나 긴장하기도 했다. 마침 그 멧돼지는 젖을 떼지 않은 듯한 새끼를 거느려 모성 본능으로 식솔을 거느리고 스스로 물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제봉도 서식하는 멧돼지가 있기는 해도 산행객이 많이 다녀 깊숙한 곳에 숨어 살지 싶다.
이번에는 용제봉으로 가는 길로 들기는 해도 그곳 산자락을 누빌 생각이 아니다.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산행객들은 불모산 숲속 길로 드는 쉼터 정자를 반환점으로 삼아 되돌아 나간다. 일부는 용제봉 중턱으로 가는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거닐다가 내려올 테다. 나는 불모산 가는 계곡을 건너 임도를 따라 걸어 상점령으로 가서 숲을 누비다 장유 대청계곡으로 내려갈 참이다.
간간이 스치던 산행객이 상점령 임도에 드니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상점 고갯마루에 올라 불모산 정상과 맞은편 산등선에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낙엽이 진 겨울이면 산허리에서 장유사로 가는 등산로가 드러나는데 여름에는 묵혀져 길과 숲이 분간되질 않았다. 돌너덜과 우거진 참나무 숲을 누비니 찾는 영지버섯은 눈에 쉽게 띄지 않고 느타리버섯을 한 무더기를 만났다.
고사목이 된 참나무 그루터기를 유심히 살펴도 영지버섯은 귀하신 몸인지 쉬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갓을 작게 펼친 영지버섯을 몇 조각 찾아내 숲을 빠져나간 마을은 윗상점이었다. 백숙이나 찻집으로 여름이면 외지인이 차를 몰아와 발을 담그는 데였다. 혼잡한 계곡 구간을 벗어나 대청육교 건너편 화산 자락으로 올라갔다. 약수산장에서 가까운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더 찾았다.
아까 상점령에서 기대 못 미친 영지 채집은 화산 기슭에서 일부나마 벌충한 셈이었다. 지난날 다녀본 불모산이 동으로 뻗친 화산에는 공군부대가 있어 산행객은 철조망을 에둘러 굴암산으로 내려서는 길고 험한 등산로였다. 화산 정상부에서 흘러오는 계곡은 시원한 물줄기가 폭포가 되어 쏟아졌다. 인적이 아무도 없는 산중 계곡 물웅덩이에서 잠시 원시인이 되어 땀을 씻고 나왔다. 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