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대한 귀띔
메주 고 제 웅
세상이 온통 코로나19로 도배 되고 있다. 14번째 사망자 A 씨의 딸 B 씨가 “엄마는 신천지가 아니라서 제때 검사나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하고 숨졌다.” 라고 절규했다. 그 원인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신천지를 우선시하던 탓이 아닐까.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이 애통한 일이다. 불이 났을 때는 급한 곳부터 꺼야 마땅하다. 하지만 당국도 완전할 수 없기에 우왕좌왕하다가 위급한 상황을 놓치고 말았으리라. B 씨는 “신천지가 아닌 일반인은 길바닥에서 헤매다 죽어야 하나.” 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인데도 신천지 교회는 비협조적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신도의 일부는 신원이 노출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머리카락이라도 보일세라 꽁꽁 숨어버리려는 것은 아닌지? 정부는 이 비상시국을 어떻게 슬기롭게 수습할지 모르겠다.
결코 쉽사리 사그라질 역병(疫病)이 아닌 것 같다. 얼마나 심각하다고 판단되었으면 종교계의 예배나 미사를 비롯해 법회 따위를 위시하여 여러 사람이 모이는 각종 단체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간곡히 당부를 할까. 이런 일련의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할 요량에서 화엄사에서도 신도들에게 전화를 걸어 초하루(음 2월 1일) 법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기별(奇別) 할까 말까 망설였다. 이때 김 보살이 중심을 잡고 수선 떨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 청을 받아들여 초하루 법회를 조용히 열었는데 한두 신도만 참석했다. 각각의 신도가 스스로 판단하여 불참했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가 지속한다면 고사하고 말리라. 생각다 못해 지출을 줄일 요량으로 위험을 무릎 쓰고 길을 찾아 나섰다.
‘051-468-***8 은 얼마나 삼삼한 전화번호인지 모른다. 그런 전화를 계약해지 절차를 밟으려고 나서니 아쉬움을 감출 수 없어 야릇해진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애마(코란도 투리스모)를 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문득 중화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진제국이 뇌리를 스쳤다. 진나라 승상 범저의 수하였던 뒷간장군(뒷간을 청소하던 하인에서 장군이 된 정안평)의 얘기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전을 잘 만나 출세했다. 하지만 무양산 골짜기에서 항장(降將)이 되어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화엄사 공덕전의 좋은 전화번호인‘051-468-***8 도 정안평 처럼 허울에 불과했다. 휴대폰에 착신하여 사용한 탓에 불필요한 수신료만 지불했었다. 또 이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쓸 수 있도록 계약되어 있어서 별도의 사용료가 부과되어 나왔다. 그 경위를 더듬어 보았다. 전화국에 재직하던 지인이 좋은 번호를 선물하고 싶다며 위임장을 요구했다. 고마움에 신청 절차를 일임했던 것이 천려일실이었다. 뒤늦게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를 따져서 무엇 하랴. 정리하고 나니 매달 25.000원 정도의 손실이 줄었다.
또 다른 지출을 막을 요량에서 H 보험회사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데 방역진이 앞을 막고 체온계를 들이댔다. “높게 나왔습니다, 털모자를 벗고 다시 재봅시다.” 라고 말하는데 왠지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러나 어쩌랴. 얌전하게 재검사에 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체온을 다시 재더니 정상이라며 진입을 허락했다. ‘후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엄중한 시절에는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삼가 하리라’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머리는 항상 미열이 있다. 선방에서 “이뭐꼬(이 무엇일까)?” 하며 화두를 들고 애를 쓰다가 머리에 기(氣)가 막히면서 생긴 증상이다.
이 병증은 하체는 차갑고 상체는 후끈거리는 시답잖은 병이다. 그러나 잘 못 다스리면 후유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소싯적에 도통을 하려다가 수행이 잘못되어 생겼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겨울철만 되면 알레르기가 도진다. 이 둘이 함께 치성하면 체온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어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상기증’을 없애려면 “참선 수행만이 최상의 명약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용맹 정진하여 조사관*을 투득(透得)하면 깨끗이 나을 수 있다. 알겠느냐?” 꾸지람 같은 법문을 큰스님들께 누누이 들어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화두를 타파하고 도인되기가 쉬운 일일까. 더는 수행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불타는 열망이나 의욕은 댓돌 위에 내려놓고 글밭이나 가꾸다가 저 언덕을 넘어가는 것도 행복이 아니랴?
지하 1층에 주차할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좁은 공간에 주차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리를 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내려가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 아닌가 싶었다. 주차장을 헤매다가 지하 5층 끝자락에 숨어있는 명당을 찾았다. 주차를 한 뒤 곰곰이 생각해봤다. 여태껏 화재보험에 납입한 보험액이 얼마나 될까?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어림해 볼 때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하지 싶다. 개미들의 헌신으로 보험회사는 불국사의 다보탑 석가탑보다도 멋진 탑을 전국에 수없이 쌓아 올렸으리라. 다행히 화엄사는 촛불도 전기촛불로 교체하고 숲도 건물로부터 멀리 떨어트리며 화재의 요인을 꾸준히 제거해왔다.
더 이상 우물쭈물 좌고우면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상담실 직원과 마주 앉아 신분증을 제시하고 화재보험 두 건 가운데 한 건을 해약했다. 매달 삼십여 만 원의 절약이다. 그리고 전화 1대를 해지한 것과 합하면 다달이 325.000원의 여유가 생긴 셈이다. 내친김에 화엄사의 씀씀이도 되돌아보았다. 차량이 3대인데 1대면 족하리라. 세렉스(1t 덤프트럭)와 리베로(1t 운송 트럭)는 급한 일만 처리해놓고 폐차해야겠다. 그리고 굴착기도 처분하면 굽었던 허리가 펴지지 않으랴?
6.25 직후에 성장하면서 숱한 고생을 겪었다. 그 가운데 가장 쓰라린 아픔은 배고픔이었다. 보릿고개가 또다시 찾아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감염에 겁먹은 나라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 된다면 국민의 살림살이가 무척 어려워지리라. 우리는 이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며 농악(農樂)이나 농무(農舞)로 지신밟기나 하는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총체적 난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함선은 항해와 정박이 자유로울지 의문이다.
각계각층을 되돌아보면 모두가 각양각색인 것 같다. 위정자들은 위정자대로, 종교인들은 종교인대로인 까닭에 소승부터가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인지 헷갈린다. 넋 나간 좀비들의 행진이 끝이 없는 모양새이다. 건물이나 높이 세우고 신도들의 숫자가 많다고 위세를 떠는 곳에 신의 메아리가 살 수 있을까? 더욱이 신도들을 기만하고 있는 종교라면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이 땅의 불교에도 후고구려의 시조 궁예 왕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미륵이라고 자칭했다. 하지만 뒤에 고려의 왕건에게 폐위되었다. 과연 미륵부처님이었을까?
소승은 고승이거나 종교에 대한 석학이 아니다. 나이만 먹었지 식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이나 모든 생물이 육신으로 영생을 이룬 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인간이나 생물들의 영생은 DNA의 유전뿐이다. 한데도 육신을 가지고 영생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노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아아, 설사 신일지라도 육신으로 영생하는 경우나 사실이 존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신(神), 령(靈), 혼(魂), 식(識), 자성(自性), 불성(佛性) 등의 용어를 대두(擡頭)시켜놓고 차용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신앙은 자유다. 어떤 종교든 스스로 맑아지기를 손 모아 기도드린다.
이제 종심(從心)을 넘어 희수(喜壽)와 산수(傘壽)를 향하는 터수이기에 동공을 먼별에 모은다. 또 인식하고 식별하는 작용이 별나라에 꽃으로 필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엔 들숨 날숨은 태허(太虛)에 돌려주리라. 그리 마음을 정하자 가슴은 텅 빈 충만의 희열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때마침 오장육부 깊은 곳에서 바이러스가 신보다 무섭다는 귀띔이 왔다. 사회적 격리로 답신을 썼다. 차제에 ‘쉬어 가리라’그냥 오는 봄이 어디 있더냐? 차 한 잔 마시며 삶도 죽음도 내려놓고‘쉬어 가리라’
2020년 3월 3일
*조사관(祖師關) : 禪에는 삼종이 있는데 의리선(義理禪)·여래선(如來禪)·조사선(祖師禪)으로 분류된다.
➀ 의리선은 선을 언어나 문자 등으로 그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고,
➁ 여래선은 교에 의지하여 자성(自性)의 본래 청정한 바탕을 바르게 체득 하는 것이며,
➂ 조사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旨)를 곧바 로 체득하는 선이다.
*** 祖師關 : 화두를 참구케 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선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온 수행방법이다. 즉 조사선이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미묘한 깨달음은 요컨대 마음의 길이 끊어져야 한다.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참선수투조사관 묘오요궁심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