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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귀옥
· 삼척 미로초교 교사 |
급식시간에 옆에 앉은 성원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성원: “선생님 저 게임 다 지웠어요.”
선생님 : “그래? 평소에 게임 얼마나 했는데?”
성원 : “어떤 때는 10시간 넘게 한 적도 있어요.”
선생님 : “우와 게임을 모두 지웠어? 대단한데…. 그럼 그 시간에 뭐해?”
성원 : “책 읽을 거예요. 집에 있는 책 다 읽을 거예요.”
선생님 : “넌 정말 멋지다.”
독서동아리를 4월에 시작한 후 6월 정도에 우리반 아이랑 나눈 이야기다.
2011년도에 미로초등학교에 발령받아 왔을 때 학교 운동장은 천연 잔디에 학교는 파스텔톤으로 색이 너무 예뻤고 도서관 또한 포근하고 아늑했다.
전에 독서를 담당하시던 선생님도 독서 교육에 열의가 아주 높으신 분이었고 그런 거름이 바탕이 되어 프로그램을 덧붙이고 살을 붙여 만든 것이 책열아프로젝트이다. 그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 학생 독서동아리이다. 저학년은 도서관에 다니고 책도 읽는 모습이 보이는데 고학년, 특히 5∼6학년은 책보다는 게임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미로초등학교는 면단위 한적한 농촌이라서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려 땀 흘리며 뛰어다니면서 자연과 함께 마음껏 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현실은 달랐다. 서점, 학원, 문구사 등 기본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교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했다. 집에 돌아가 부모님 일손을 돌보거나 동생을 돌보거나 아니면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다면 어떤 추억이 있을까?’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는 그리 즐거운 추억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란 도란 책모임’을 쓰신 백화현 선생님은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결핍과 그리움이 없어서라고 하셨다. 결핍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리움은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2011년도에 처음 북적북적 아이누리라는 학생 독서 동아리를 개설하여 매주 화요일 늦은 7∼9시 학교에서 활동을 한다.
그런데 아이들과 1년을 활동하다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왔다.
처음 4학년 때까지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5학년 아이에게 학기초에 나는 따로 불러 독서동아리 활동을 함께 할 것을 권했고 그 아이는 지금 “선생님 저는 독서동아리에 들어온 것이 정말 행운이에요” 했다. “넌 훌륭한 사람 되어서 날 찾아와야 한다”하고 농담도 건넸다. 그 아이가 서점나들이가 끝나고 월요일에 책 두 권을 들고 우리 반 교실에 수줍은 듯 들어온다. “선생님 주말에 이 책 두 권 다 읽었는데 둘 다 재미있어요 .선생님도 읽어보세요. 어떤 것 먼저 빌려드릴까요?”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책을 통하여 즐거운 활동을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은 분명히 어른이 되어 책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가지고 책과 평생 친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