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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02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더욱 궁금했고 그것을 확인하기가 더욱 두려웠다. 에드는 더는 그곳에 있기가 힘들었다. 가슴이 뛰었고 야릇한 흥분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감을 느꼈다. 좀 더 생각이 필요했다. 내가 뜯지 않으면 이 물체는 없는 그대로 세상은 잘 돌아가고 평화로운 하루는 전과 같이 펼쳐질 것이었다. 에드는 포치로 나와 흔들의자에 앉았다. 불붙은 담배를 끼우고 있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자 어떻게 한다?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그도 필연적으로 느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에드는 흥분된 마음을 진정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마룻바닥을 뜯어 확인하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그는 끝이 날카로우며 못 대가리에 끼울 수 있는 끌과 망치를 들고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갔다.
2.
마미가 된 갓 난 아기가 신문 종이에 싸이고 다시 솜으로 된 담요에 쌓여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밀봉된 채 2층 천장과 다락방 마루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낡아서 손으로 건들기만 하여도 곧 삭아 부스러질 것 같은 그 신문의 날짜는 1945 년 5 월 4 일 자였고 다른 한 장은 1946 년 4 월 10 일자였다. 에드는 더 이상 손을 대서는 안 됨을 직감하고 전화 다이얼부터 눌렀다. 경찰이 오고 검시관이 오고 뒤를 이어 신문기자들이 오고 텔레비전 카메라가 셔터를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이 층은 온통 그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이 현장 곳곳을 사진 찍고 인터뷰를 하려 하자 능숙치 못한 영어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에드는 최근 사립탐정 자격을 따고서도 비교적 금전적 수입이 좋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상류층과 직장인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슈샤이너로 다운타운에서 구두를 닦으며 추리 소설을 쓰고 있는 친구 제임스를 떠 올렸다. 지금 당장 그가 필요했다. 그리고 놀라서 우왕 좌왕하며 떨고 있는아내와 아이들을 침실로 모아 절대 함구령을 내렸다. 경찰과 신문은 탑뉴스로 시시각각 전문가를 동원하여 흥미꺼리로 DNA 조사다, 혈통 조사다, 감식이다 를 요청하여 결과도 얻기 전 추측기사로 신문 일 이면을 그 짧은 시간에 번갈아 돌아가며 장식하였고 텔레비전은 수시로 현장과 전문가의 견해를 방송하였다. 미디어는 매번 그렇게 초기에는 요란하게 사회면 장식을 몇 번 하다가 사용 효능이 바래면 잊혀지게 되고 경찰 또한 매일 일어나는 총기사고와 교통사고 등으로 60 여 년이 넘은 갓난아기 마미의 죽음에 대한 원인규명을 하려는 노력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살인사건 분류에서 단순한 마미 발견으로 옮겨 살인과에서 검시 연구과로 옮길 것이었다.
제임스는 옥빌에 있는 에드워드 강의 집 잔디 정원 앞에 차를 주차하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은 이제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한 주의 일을 마치고 금요일은 밤 늦게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글도 쓰고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사람 사는 것들을 보며 한 주의 피로를 풀고는 한다. 그러다 보면 보통 새벽 4 시나 5 시에 자게 되며 오전 11 시에 일어나게 된다. 어제 토요일은 한 주의 피로가 겹쳤던지 종일 방안에서 먹고 자며 하루를 무념으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 새벽 3 시가 되어서야 읽던 ‘미래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좀 황당한 내용의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 수있었다. 잠결에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침대 옆탁자에 놓아 둔 여행용 알람시계는 10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한국은 지금 저녁 11 시가 좀 넘었을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들었다.
“제임스? 나야. 에드워드. 일어났으면 급히 우리 집으로 와 주겠나?”
옥빌 부자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 에드몬드였다. 에드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며 다른 한 손은 침대곁에 둔 텔레비전 리모컨에 손이 닿자 바로 잡고는 본능같이 맞은 편 벽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검은 물체를 향하여 방아쇠를 눌렀다. 검은 물체는 지체없이 환하게 살아나며 24 번 채널의 복잡한 화면을 쏟아내고 있었다. 라저스(Rogers)는 모든텔레비전 첫 화면에 24 번을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누구든 24 번을 피해서 넘어 갈 수는 없었다. 시작이 24 번이었다. 나쁜 회사였다.
좌측 상단은 일요일인데도 야외로 빠져 나가는 차량 행렬을 쉴 새 없이 번갈아 가며 보여 주고 있었다. 우측 상단은 눈길이 피할 수 없는 위치에 광고가 계속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광고 위는 현재 시각과 날짜 요일 그리고 현재 기온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자막이 좌에서 우로 흐르며 현재 시각 세계의 중요 뉴스를 간단히 전하고 있다.
보고 읽든 말든 계속해서 지나간다. 아마 텔레비전을 꺼도 그들은 지나 갈 것이다.
나는 왼손으로는 에드와 통화를 하며 오른손으로는 샤워한 후 입어야 할 옷들과 챙겨야 할 것들을 침대위에 가지런히 옮겨 놓고 있었다.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한 방수 방진과 내충격이 완벽하게되고 HDTV 화면 주사율인 1080p 크기의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최고급 컴팩트 디지틀 카메라를챙겼다.
“에드. 무슨 일인데… 급한 일이야? 오후에 가면 안 될까?”
“안돼. 지금 바로 달려와 주게. 자네가 올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겠네”
그의 목소리는 뭔가에 놀란 듯 흥분하고 있었다.예감이 좋지 않았다. 24 번 화면의 자막은 일본의 정부기관 산하의 한 연구기관이 개발하고 있는 사이보그가 완성 단계에 와 있다고 하였다. 화면이 바뀌며 일본군 군복을 입은 사이보그가 사격을하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가는 다시 볼까 봐 사라져 버렸다.
전화를 받은 지 30 분이 채 되지않아서 옥빌에 있는 에드워드 강의 집 잔디 정원 앞에 말리부를 주차하였다. 잔디가 깔려 고르게 잘 정리된 정원 넘어 2 개의 게라지를 가지고 있는 독일풍의 집 앞은 골프장 홀 주변처럼 부드럽고 보기 좋았다. 포치 앞 현관 입구에는 오래된 듯한 나무판자가 깔려있고 그 위에 2 인용 나무의자가 고색이 창연하게 놓여 있었다. 80 세 정도 되었을까 보이는 할머니가 한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앞에 놓인 흰색 마블로 된 둥근 테이블에 인쇄잉크가 피어오를 것 같은 갓 찍어 낸 신문을 뒤척이고 있다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좋은 일요일입니다. 하늘도 푸르고 공기가 상쾌해서 아주 좋아요.”
나는 특히 노인들에게는 언제나 더 겸손하고 공경스런 마음으로 대한다. 그들 노인들은 그런 나를 누구든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 좋은 일요일이군요. 젊은이는 친절해 보이는군. 좋은 날에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오늘은 종일 즐거울 거야.”
“예 그러셔야지요. 맴(Ma’am)~”
할머니와 인사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드의 집과 4 미터 정도 옆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잘 다듬어져 있는 연녹색 잔디가 역시 깔렸고 중간에 경계선인 양 축구공만 한 돌로 두 집을 갈라 표시를 해 놓았다. 돌들은 모두 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오래되어 군데 군데 이끼가 끼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이! 제임스. 왔으면 들어오지 그랬어?”
밖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릴 듣고 에드가 포치에 서서 인사를 하였다. 그는 한 손은 포치의 나무 기둥을 잡고 한 손으로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듯한 부은얼굴이었다.
내가 에드를 따라 그의 집으로 들어가 거실 정면에 걸려 있는 둥근 시계를 본 시각은 11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이 층 계단으로 끌었다. 그의 말 없는 동작이 평소와는 다르며 나를 부른 이유를 먼저 말해주지 않는 것에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이 층에서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서 가서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제임스! 지금부터 주변과 상황을 잘 느끼고 내려가서 나에게 말해주게. 어쩌면 단순할 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서 자네에게 뭐든 듣고 싶어. 이미 경찰과 신문기자들 그리고 관계 기관 요원들이 다녀갔네. 그래서 지금은 조용해.”
“결국 보고 안심시켜 달라는 말이로군.”
나는 입을 통해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흐트러진 주변을 보자 다시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그와 중요할 것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그가 보여 주려는 현장으로가서 그가 들춰낸 마룻바닥과 주변을 살펴보던 중 약간 떨어진 한쪽 나무판자 끝 바닥 부분에 붙어 있는 손바닥 반쪽 크기의 낡은 신문 쪼가리를 주웠다. 아마도 비닐을 뜯어 낼 때 신문 끝 부분의 찢어진 조각이 그곳으로 날려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그 누렇게 바랜 작은 쪽지를 조심스럽게 주웠다. 뭔가가 희미하게쓰여진 자국이 있는 그 신문쪽지는 구기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나는 우선 그 자리를 옮겨 햇볕이 비치지않는 어두운 복도 구석으로 가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청색 형광등에 비추었다. 그 쪽지에는 연필로 쓴 한글이 있었다. 이미 글자도 색이 바래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식별 기기가 없이도 읽을 수는 있었다. 한자로 쓴 것은아니었다. 한글임이 틀림없었다.
“박인서. 가회동 44 번지”
그것은 한국 서울의 주소였다. 우선 가져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다시 드러난 바닥을 다 뒤졌지만, 그외 새로운 단서는 없었다. 에드는 흥분하여 말소리가 떨렸다.
“제임스! 그렇다면, 여기에 감추어졌다 발견된 아기마미는 한국인의 피가 섞였을 수도 있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은가? 도대체 쉽게 이해할 수가 없네.”
“가능하지. 1945 년 5 월 4 일 이후에 만들어진 사건이라고 확언할 수가 있네. 그런데 어떻게… 그 주소가 이 신문에 적혀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는가… 이제 우리는 그것을 밝혀내야 하네. 그래서 진실을 알려야 할 운명적인 것을 자네와 내가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신문에 쓰인 주소 하나로 관여 여부를 확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전혀 무관하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글쎄. 아직은 어떤 그림도 머릿속에 그릴 수는 없지만, 이 일에 손을 대면 그 순간부터 혼란과 복잡 속에 있게 될 것은 확실하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시간적 경제적 이유 때문에 선뜻 뛰어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네가 이 문제를 알아서 처리하도록 방관하기도 그렇고…”
에드는 내 이야기를 듣고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담배는 이럴 때 정말 필요하다. 나는 담배를 피운다. 누가 내 앞에서 담배의 해악만 말할 것인가. 나는 포치로 나가 매달려있는 의자에 앉았다. 건너편 할머니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심각한 고민 꺼리나 문제가 생겨서 머리를 써야 할 때는 우선 머리를 먼저 비운다. 부엌에 있는 엘지 로고가 붙어 있는 우유같이 흰색으로 표면을 마무리한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콜라는 안 되고 캔커피도 안 좋고 우유도 싫어할 것이고 마침내 브이에잇(V8야채쥬스)을 찾았다. 2 개를 집어들고 에드가 내려오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가 내가 다시 나오자 얼굴에 만족함을 옅게 드러내었다. 나는 마음도 시선까지도 비운 채 V8 주스를들고 할머니 앞으로 갔다.
“Would you take this.Ma'am.”
“What’s that?
“This stuff is so good for your health. Please take this.”
“A ha~. V8. I know that. Why not? Thank you so much.”
할머니는 스스로 캔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여 입에 물고 다시 포치의 의자로 왔다. 마음도 시선도 비운 채. 오후 1 시가 되어서야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 조경순의 얼굴 표정은 밝지가 못했다. 화사한 휴일 오후 하늘은 높고 푸르며 쾌청한 기온에 잔잔하고 맑은 호수를 코앞에 둔 연초록 잔디 위에서 돼지고기 바비큐를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경순의 표정을 보는 순간 꿈에서 깨었다. 아침부터 참 많이도 시달렸을 것이다. 우리는 흰 쌀밥에 고등어조림 그리고 난데없는 미역국과 김치로 허기를 때웠다. 모두가 침울하고 말이 없었다. 아이들 둘은 밥 먹기가 끝나자 곧 인사를 하고는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
조경순이 테이블을 치우고 커피를 끓여 탁자에 놓고 앉자 에드가 말문을 열었다.
3.
“제임스. 내가 모든 경비를 부담할테니 이 일을 맡아 끝까지 파헤쳐 주게. 즉 내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자네에게 정식으로 의뢰하겠네. 나는 이 일을 모른척하고 넘길 수 없는 어떤 운명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느꼈네. 아내도 자네가 그렇게 해 주길 바라고 있네. 부탁하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제임스. 그래야 우리가 캐나다에서 편히 살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관계에 빠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명확히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이 저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디서부터 그림을 그려봐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를 그려서 시작하여야 한다. 박인서. 아마 그때 나이가 20 세에서25 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한국은 어떤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었는가. 1945 년 한국이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었고, 공산당이 태동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그 정치적 경제적 혼란기를 틈타 1948 년 1 월 23 일 UN 이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을 파견하여 정치적 혼란을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충칭시기(重慶, 1940-45) 중의 1943 년에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 년 프랑스·폴란드·소련정부는 주중 대사관을 통해 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 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이전과 후로 해서 임시정부의 각료 몇몇은 외교활동에 주력하였는데 그 중 중요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 당시는 경제의 거시적 안목으로 한국의 미래발전을 위하여 외국과 교역을 생각할 경험적 인재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연필로 메모한 가회동은 그 당시 명문대가 및 부유층 집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곳이 아닌가. 박인서. 1925 년에서 1920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1946 년에서 1 년후까지 사이의 신문을 사용했다. 그녀의 나이는 21 세에서 26 세 사이.
직업은?
유학생-한국에서 그 당시 캐나다에 올 수 있는 위치라면 부유층 자식이고 대학을 다녀서 영어를 배웠다. 그 당시 이상화 같은 사람은 일본 대학농구부 주장으로 대회를 치르기 위하여 미국을 다녀왔을 정도이다. 이미 한국 초기 대학에서도 영어 등 외국어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가정부-가정부라면 그 당시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영어는 어떻게 배웠고?
북미 외교관의 자식이라면, 그 당시 국가적 체계를 바로 갖춘 한국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으며, 양국의 외교관계가 설정되어 영사나 대사를 파견할수 있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해방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후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왔다. 그렇다면, 그녀의 나이는 적어도 20 세에서 25 세일 것이다.
아직은 그 당시에 가능했을 방법을 다 생각하고 고려해 봐야겠지만,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남겨진 메모가 실마리를 풀어 주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에드와 헤어진 후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도 만족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느 정도 박인서에 대한 가시적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뭔가 운명적인 힘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늘 어떤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에는 발생 가능한 문제를 중요도에 따라 열거한 후 하나하나 지워가는 방법을 썼다. 그렇게하여 여러 장의 찢어버린 종이로 지불한 댓가가 어렴풋이 나타난 거다. 휴대폰 벨이 울린 건 마지막 종이를 두 손바닥에 놓고 막 구기려는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