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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창철강 회장 유재성
▶ 직업 기업인
▶ 출생 1946년
▶ 소속 태창철강(대표이사회장)
▶ 학력 영남대학교 경영학 학사
▶ 경력 티시테크 대표이사회장
신라철강 대표이사회장
태창철강 대표이사회장
♣ "끊임없이 도전…" TC그룹 유재성 회장 경영철학 화제 ( 2010.9.7. )
TC그룹 유재성 회장은 메세나 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사내 사야갤러리에서 재즈콘서트를 가진 후 외국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한 철강회사 회장이 '소통'을 위해 2년에 걸쳐 매일 직원들과 가족에게 들려주는 메시지 형태로 작성한 글을 모아 책으로 발간해 화제다.
주인공은 태창철강㈜, 신라철강㈜ 등 9개 계열사를 두고 총 6천178억원의 매출액을 올린 TC그룹 유재성(65) 회장이다. 그는 최근 '아름다운 경영을 위한 유재성 회장의 1분 메시지'(이하 1분 메시지)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2007년 9월 3일부터 2009년 10월 21일까지 779일(2년 49일)에 걸쳐 매일 유 회장이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 중 (www.tc.co.kr)에서 500개 메시지를 선별해 엮었다.
유 회장은 "1분 메시지는 원래 직원 및 가족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즉, 경영철학, 소신, 경험, 인문학적 지식, 여행, 아픈 과거나 숨기고 싶을 만한 개인사 등을 회사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2년 동안 이를 읽은 사람들이 삶의 지침서로 충분한 가치가 있어 책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감히 책으로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 자신의 명예나 개인사의 기록이라는 차원을 넘어 임직원,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삶의 지향점과 선대가 지니고 추구했던 철학과 인생관을 유훈처럼 남기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각 메시지에 따라서 서간문과 일기, 자서전, 평론(음악·미술·문학 등), 때로는 어록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연대기적인 서술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 기업오너의 자서전과는 다른 형태다. 특히 유 회장 스스로 치열한 삶을 통해 체득한 직관력과 수사적(修辭的) 연출을 싫어하는 진솔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픈 과거나 숨기고 싶을만한 일들까지도 거리낌 없이 드러내 글을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 회장이 1분 메시지를 쓰게 된 동기는 자신의 영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고문으로 있던 이재규 전 대구대총장이 유 회장의 이름으로 글을 대신 쓰는 것을 무심코 허용했다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
그는 이 책을 통해 '속살 드러내듯'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는 이 글들을 '나의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직원들이나 그 가족들이 읽게 되는 글임에도 점잔을 빼지 않은 것은 물론 대구사람들에게 내뱉는 독설은 물론 읽는 이들이 오해를 할 만한 거칠고 절제되지 않은 표현들, 너무나 '적나라한' 여성의 신체를 그려낸 미술작품 등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글'이라는 평과 '너무 표현이 거칠고 민망한 부분이 있다'는 평이 엇갈린다.
"나는 기업가로 여러분들께 내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 부끄럽고 아픈 과거사, 숨기고 싶은 치부, 나의 경험과 경영철학, 음악 미술 문학 등 인문학적 지식 등을 모두 진솔하게 드러냈습니다. 나의 이 같은 경험을 간접 경험하거나 익혀 배움을 넓힌다면 이 또한 나의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유 회장은 비매품으로 이 책을 발간한 이후 '건방지게' 책 한권 주지 않는다는 원망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책을 전하고 싶은 몇몇 지인들에게 직접 전달한 것을 제외하고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는 "책 내용의 진의를 모르고 일부 거친 표현이나 수록된 미술작품 등을 보고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받을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해 신청한 사람들에 한해 책을 발송하고 있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창조'다. '조직원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최고의 승부로 요구되며 예술가적 마인드를 임직원들의 열정으로 어떻게 끌어 낼 것인가가 우리의 고민이다'라고 적을 정도로, 1분 메시지 책에서도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창조란 단어다. 그는 "현상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투쟁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창조이며 주인정신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또 소통, 직면, 도전, 윤리를 강조했다. 이런 화두들을 본인은 평생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핵심가치로서 전 직원들이 'TC DNA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체험하고 교육받도록 하고 있다.
그는 문학, 미술, 음악,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적 식견과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1994년 건물 설계를 시작해 2년 뒤 준공된 TC그룹 본사 건물을 보고 일부에서는 '괴물'이라고 욕한 사람들도 있다. 이 건물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박종석 건축사에게 색다르고 튀는 건물을 주문해 지은 것이다.
한 때는 사진 촬영에 미쳐 바닷 속을 찾아다니고 아프리카 원주민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떠나기도 했다. 사진집과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2006년 7월 TC사옥 정원에서 대구상고 37회 동기생 150쌍의 부부 합동 회갑연을 하면서 까까머리와 튀는 안무로 유명한 무용가 안은미를 초청해 '젊음의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1개월에 3, 4차례는 세종문화회관 등을 찾아 오페라 등을 감상하고,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유 회장은 "이 같은 문화적 갈증은 '열등감'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예술 발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 메세나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막 기증(9천만원)과 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에 1억원 기증, 영남대 60주년 기념관 건립기금 1억원을 지원했다. 이 밖에도 그룹 본사에는 240석 규모의 '사야홀'을 갖추고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공연을 수시로 열어 임직원은 물론 지인이나 주한미군, 외국인 교수·대학생 등을 초청하고 있다. 또 본사내 1, 2층에는 사야갤러리를 운영,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유 회장의 닉네임을 딴 '별라홀'도 운영중이다.
유 회장은 지역 예술단체에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누구 계열이라는 파벌 싸움을 하는 것 보다는 수준을 높이는 노력을 해 줄 것을 주문했다. "제도권 밖으로 나와 제도권 속을 질타하고 변화하는 자발적인 이방인이 되고 싶습니다." 영원히 자발적인 이방인이자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는 강한 메시지이다.
■ 일본에 팔릴 뻔한 300살 나무 지켰다…
철의 회장 '비밀 정원' [중앙일보] 2021.07.16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수백 년 된 모과나무 108그루가 사유(思惟)하고 있는 수목원이 있다. 언덕을 따라 도열한 나무의 모습이 마치 호령하는 산신령 같다. 굵직하게 뒤틀린 모습이 기기괴괴하다. 한 그루의 나무에 여러 나무의 생명력이 합쳐진 결과다. 분재용으로 오랫동안 연리지를 거쳤고, 여러 그루가 하나로 합쳐지고 또 합쳐져서 2m가 넘는 두께가 되기도 했다.
수목원의 크기는 165만2893㎡. 축구장 231개 규모다. 네 시간을 꼬박 걸어야 다 돌아볼 수 있지만, 어쩌면 무한한 시간이 필요한 곳이다. 수목원 안에는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길 권하는 공간이 많다.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 승효상ㆍ알바로 시자, 조경가 정영선ㆍ카와기시 마츠노 등 당대 걸출한 명인들이 모였고, 15년째 다듬어 가고 있다.
유례없는 조성 기간과 규모, 독특한 공간까지 더해져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수목원”(승효상)이라고 거침없이 명명되는 수목원의 이름은 사유원(思惟園)이다. 이를 끈덕지게 가꾼 이는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다. 일평생 뜨겁게 철을 연마해온 철인의 뜻밖의 외도다. 은둔자라고 공공연히 불릴 정도로 공식 석상에 나서길 꺼리는 유 회장과 건축가 승효상을 지난달 22일 사유원에서 만났다. 멜빵 바지에 주홍색 티를 입은 유 회장은 탁 트인 목소리로 판소리 독창하듯 말했다.
.“이런 데가 세상에 어디 있는교. 나는 어쩌다 복이 없어가지고, (사유원의) 이런 큰 덩치 때문에 내가 팔자에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오토바이로 몽골 사막을 질주하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철인을 땅에 단단히 붙던 것은 30년 전 부산항에서 만난 모과나무 네 그루였다.
경북 김천 출신의 유 회장은 지역의 문화예술 후원자로 유명하다. 대구 성서공단 내에 있는 사옥에는 한국형 정원과 갤러리, 300석 규모의 소극장까지 갖췄다. 이런 유 회장에게 직원이 지나가며 던진 말이 그를 팔자에도 없는 인생을 살게 했다. “모과나무가 일본으로 팔려나가는데 너무 아깝습니다.”
나무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는 말에 유 회장은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무가 있다는 컨테이너를 열었더니 열이 탁 받쳤다고 한다. 둘레 2m의 300년 된 모과나무 네그루가 군용 담요에 덮인 채 켜켜이 포개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나, 했더니 일제강점기부터 모과나무가 일본으로 갔다 하데요. 불법 중 상 불법인 거라. 일본 사람들이 모과나무 분재에 사족을 못 쓰는데 일본에서는 잘 안 되고 우리나라 대전 이남에서 잘 자란다고 합디다. 그런데 저 나무가 일본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좁은 마당에 심어져 나무 위는 다 쳐내 지고 결국 기후가 안 맞아 죽어버려요. 300년 나무 네 그루, 1200년의 세월은 돈으로 살래야 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유 회장은 그 자리에서 모과나무 네그루의 값을 후하게 치르고 샀다. 내친김에 “일본에 못 건너가게 나한테 갖고 오면 값을 더 치르겠다고 말했더니 소문이 쫙 났다. 그렇게 108그루가 모였다. 600살이 넘는 나무도 있다. 물론 불법 채취한 나무가 없도록 모든 나무의 이력을 철저히 관리했다. 나무마다 명찰을 붙여 공개했다. ‘1994년 4월 20일 경북 의성군 김00로부터 매입하다’는 식의 기록이다.
기어이 한국의 모과나무를 지켰다. 그런데 유 회장은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나무가 오래도록 있던 자리에서 결국 옮겨왔기 때문이다. 자목(子木)을 만들어서 있던 자리에 기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목원의 꿈이 시작됐고, 2006년 군위군 부계면에 용지를 마련하면서 현실이 됐다.
유 회장은 오랜 인연이 있는 승효상 건축가와 수목원의 개념부터 상의했다. 땅을 둘러본 승효상은 감탄했다. 고립무원의 땅이었다. 남으로 팔공산, 북으로 도봉산 등 하늘 아래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연 밖에 없었다.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수목원을 만들자”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그 자리에서 ‘사유원’이라 이름 지었다.
승효상은 “이름이 정해지니 수목원의 성격과 갈 길이 명확해졌다”고 소회했다. 자연과 관계 맺으며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되, 형태가 드러나지 않게 파묻고 감추기로 했다. 2014년 첫 공간인 ‘현암’(玄庵)이 완공됐다. 수목원에 모과나무를 이식한 유 회장이 이를 관찰하기 위해 머물 장소가 필요해 만든 집이었다. 산맥이 땅을 따라 흐르다 푹 떨어지는 혈 자리에 매달린 듯 자리 잡은 암자를 지었다. 복층 구조로 위는 삼면이 유리라 뻥 뚫린 정자 같은 공간이고, 그 아래 8㎡가량 되는 잠 잘 방을 뒀다.
별 볼 일 없는 집이라 명명했지만 들어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대한 자연이 눈앞에 펼쳐져서다. 승효상은 “집이 서향에 위치해 동지 때 일몰되는 축으로 맞췄고, 그때 되면 해가 정확히 집안으로 꽂히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둘씩 공간이 만들어졌다. 연못 옆에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인 ‘사담’, 물탱크를 감추기 위해 별을 볼 수 있는 제단 같은 구조물인 ‘첨단’, 3개의 연못 옆에 걸치듯 누워 있는 쉼터 ‘와사’가 들어섰다.
수목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원하는 유 회장의 뜻에 따라, 건축가는 전망대도 만들었다. 그런데 땅속에 파묻었다. 청개구리 같은 작업의 이유는 분명했다. 승효상은 “전망대까지 오는 동안 대단히 아름다운 경치를 봤을 테고, 이를 마음속으로 정리한 뒤 다시 자연 속으로 나설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유원만의 마음 전망대 ‘명정’이 만들어졌다. 계단을 따라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돌의 공간이 나온다. 안에는 촛불 켜고 기도할 수 있는 성소가 곳곳에 있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마음을 살피고 나오면 푸른 수목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목원에는 포르투칼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명상을 위해 만든 건축물도 있다.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이로, 파주 출판도시의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을 설계했다. 수목원 내 자연도 솎아내는 간벌 작업과 무수한 심기를 거쳐 이제 관리 단계로 접어들 때가 됐다. 여기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돈을 땅에 쏟아 붓는, 지난한 여정이기도 했다. 7~8월에 잡초를 뽑는 데만 4000만원가량의 인건비가 든다고 했다. “여기서 일하다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두 번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뇌졸중이라 하데요. 남한테 시키면 신경 쓸 일이 아무것도 없겠지만 하다 보니 사유원은 그냥 돈 주고 만들 수 있는 공원이 아닌 거예요. 미학적인 곳이죠. 일평생 아파트에서 산 적 없는 촌놈이라 가능했던 것 같긴 한데 나중에는 성질밖에 안 남더라고. 으하하”(유 회장)
마스터플랜 없이 시작했지만, 공간마다 분명한 제 이름이 있다. 108그루 모과나무가 있는 곳의 이름은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 바람ㆍ눈ㆍ비 맞으며 어언 천 년이라는 의미다. 이름대로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낸 모과나무가 감동을 준다.
수목원을 다 둘러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든다. 대체 이 공간과 건축물은 무엇일까. 사유원은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것만 추구하던 도시인에게 생경하다.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남다른 공간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축물인데 조형물 같고, 햇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모양새가 흔히 보던 집과 또 다르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사유원은 사람이 만든 자연의 정수”라며 “특히 건축물의 경우 거주의 요건이 적어서 건축가가 햇빛과 바람의 리듬에 몰입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승효상은 이를 ‘제3의 공간’이라고 칭했다. 그는 “서구에는 먹고 자는 생식을 위한 공간, 사회 생활하는 생활의 공간 이 두 가지밖에 없지만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정자나 사당과 같은 생각하게 하는 제3의 공간이 있었다”고 전했다. 살아가고 있지만, 자꾸 잃어버리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공간들이다.
사유원은 민간개방을 위해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낮뿐 아니라 밤의 풍경도 아름다운 수목원을 만끽할 수 있게 방문객이 묵을 수 있는 호텔도 지을 예정이다. 이 역시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50실 규모인데 모든 방이 수도원의 승방처럼 싱글침대 하나만 딱 뒀다. 홀로 사유하고 싶은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 입장료가 5만원이고 사전 예약제가 필수입니다
사유원에 가면 건축가 승효상씨의 건물작품 몇 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첫댓글 태창철강 유재성회장님의 연혁을 알려주시는
이상일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군위는 저의 친척분들이 계시는 곳 입니다.
군위를 찾게되면 '사유원'에 가 봐야겠습니다.
좋은 휴일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