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씨! 나예요. 조용히 하세요.”
미자르가 경진의 입을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
이자 그녀가 그의 입에서 손을 풀었다.
“반가워요, 미자르! 고생 많았죠? ... 하하! 올 줄 알고 기다
렸어요.”
“호호! 알기는 해요? 무려 8일이나 쫒아 다녔는데...”
“그러게요. 몹시 힘들었겠어요.”
경진이 그녀에게 진심으로 노고를 치사했다.
“우선 그 얘기들은 나중에 하고, 우리가 계획한대로 실행에 옮
기는 얘기해요.”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경진에게 탈출계획을 일깨웠다.
“그래요, 지금이 적기예요. 지금, 저녁 식사 이후인데다, 명나
라 지역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 칙사와 군사들의 긴장이 다소 풀
어져 있거든요.”
경진 역시 굳은 표정으로 미자르의 말을 받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우선 이것 받아요. 전자총이에요. 사용법은 저번에
가르쳐 준대로 하세요. 잊어먹지 않았죠?...그리고 이 언덕 정상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 미루나무 서너 그루가 있어요. 그 중에 가
장 큰 미루나무 뒤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기다리고 있을 거에
요. 잘해야 해요. 이번 기회 놓치면 무척 힘들어질 거예요.”
그녀의 말에 경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 미자르 이것 받아요. 자동차 킨데요. 리모콘으로 문 열지
마세요. 소리가 나니까요. 차에 덮여진 천을 들추고 뒷좌석의 문
을 여세요. 뒷좌석에 아세톤이 조금 실려 있거든요. 차에 불이 붙
기만 한다면 삽시간에 다 탈거예요. 폭발도 일어나고요. 그리고
차 유리문은 10센티 정도씩만 열어놔요. 완전히 밀폐가 되어 있으
면 불이 덜 붙을 수 있거든요. 나올 때 차문은 잠그고 나오고요.
알았죠?”
“예, 알았어요. 의외로 쉽게 풀리겠네요. 그럼 나는 지금 곧바
로 차로 갈게요!”
미자르가 대답과 동시에 투명인간화 되어 밖으로 나갔다.
경진은 휘장을 조금 열고, 칙사일행과 명나라 군의 동태를 살폈
다. 칙사일행은 여러 군데 불을 지펴놓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
며 즐기고 있었다. 경비병들은 추위를 피해 마차 사이나 이불을
덮고 있었다.
일단 그들의 경계가 풀린 것을 확인한 경진은 시선을 옮겨 긴장
한 채 차에 고정시켰다.
잠시 후, 차에서 연기가 미세하게 피어올랐다.
그는 이제 움직일 때라고 생각하고 마차에서 슬그머니 내려, 칙
사 일행을 주시하며 천천히 언덕을 향하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 불이야!...
차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차에서 나온 불길이 덮어놓은 천에
붙기 시작했다. 마침 센 바람으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
다.
“불을 꺼라! 불을 꺼!...”
칙사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군관들과 병졸들이 차로 몰려가 발
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나 칙사는 그들이 차로 몰려간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경
진의 수레로 다가갔다.
“황 대인, 황 대인! 큰일 났소!...”
다급히 소리치며 달려가 빈 수레를 확인한 그는 재빠르게 주위
를 살폈다.
“저자!...저자를 잡아라! 저놈을 잡아라!”
경진이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칙사는 옆에 있는 통
역관과 교위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은 경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여봐라! 저놈을 잡아라! 여봐라!”
교위가 경진을 향해 뛰며, 불을 끄고 있는 병졸들을 향해 소리
쳤다. 그러나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그의 외침은 묻혀 버리
고, 비교적 가까운 병사 몇 명만이 합류해서 경진을 쫒았다.
경진도 죽어라고 달렸다. 발걸음 보다 마음이 앞서서인지 두 번
이나 넘어졌다. 그리고 뛰면서 마른가지에 살이 찢기는 통증을 몇
차례 느끼긴 했으나 그런 것에 신경이 가지 않았다.
“빨리 와요! 조금만 더 와요!”
미자르의 외침이 경진의 귀에 들어왔다. 경진의 눈이 소리 나는
곳을 쫓았다. 산 정상 조금 못 미치는 곳에 타임머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자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곳까지는 100여
미터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펑!..펑!.”
경진이 폭발음을 듣고 뒤를 돌아보자 엄청난 폭발음에 이어 불
기둥이 솟았다. 그리고 100여 미터 조금 더 되는 지점에서 자신을
쫓던 예닐곱 명의 시선이 폭발음을 따라갔다. 경진도 그들의 시선
을 다시 쫒아갔다. 차 속에 있는 아세톤이 먼저 폭발했고, 뒤이어
연료통이 폭발한 것이다. 컴컴한 밤하늘에 수없이 많은 시퍼넌 불
꽃이 수를 놓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들이 아우성을 쳤다. 쫓
는 자들과 쫒기는 자 모두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차
주변에서 미친 듯이 뒹구는 병사들을 거센 불길이 지켜보고 있었
다. 아비규환이었다.
“저놈을 잡아라! 저놈을!...”
사태 파악을 끝낸 칙사가 악에 받쳐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경진도 정신을 차리고 옆걸음질하며 그들을 주시했다.
그들 중에 창을 가진 병사가 한 명 있었다. 다른 병사들은 경황
없이 쫓아오느라 무기가 없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교위가 칼을
뽑아들었다.
사태를 파악한 경진은 긴장하며 전자총을 꺼냈다. 그리고 미자
르가 가르쳐 준대로 조그만 모니터에 들어온 교위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퍽!...”
칼을 뽑아들고 기세등등하던 교위가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무너
졌다. 이어서 경진은 창을 가진 병졸에게도 버튼을 눌렀다.
“그 자리에서 꼼짝 마라! 움직이면 저들처럼 죽여주마!”
경진이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칙사는 들어라! 통역관과 너만 남고, 병졸들은 보내라!”
경진은 조금 전과 달리 목소리를 낮추고 무겁게 명령했다.
“대인어른! 살려 줍쇼!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는 대로 모든 것
을 하겠습니다. 제발!...”
불과 2,3초도 안되어 두 명이 맥없이 쓰러진 것을 목격한 그들
은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이 가득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칙사는
경진의 말대로 병졸들을 보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
라고 애걸복걸했다.
“알겠다! 나는 너희들을 해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신중히
내말을 들어라. 나는 조선 땅의 미래인이다. 해서, 가끔은 조선시
대에 시찰을 다니고 있다. 이번에는 시찰도중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너희에게까지 노출이 되었다마는 그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런 실수는 없을 것이다. 나 혼자로도 명나라를 망하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역사는 물 흐르는 대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서 참견은 안한다. 또한 이번 일에 대하여, 너희들이 조선을 귀찮
게 한다면, 내가 너희를 꼭 찾아가 저 밑에서 일어난 참상의 수백
배가 넘는 고통을 주겠다. 알겠느냐?”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꼭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앞으로 조
선인들에게 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진의 단호한 주문에 칙사와 통역관은 머리를 땅에 묻기라도
할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또한 내가 너희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겠노라! 하늘로 올라
갈 터이니 잘 보거라!”
경진의 말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못 믿겠다는 듯 칙사와 통역관
이 눈을 서로 확인했다.
“미자르!”
경진은 타임머신에 대고 소리쳤다. 타임머신은 기다렸다는 듯
소리 없이 경진에게 다가왔다. 타임머신은 지면과 20센티 정도 떨
어져서 대기했다.
“내가 하늘에서 안 보일 때까지, 너희들 두 눈으로 잘 보고,
죽을 때까지 내말을 명심해라!”
칙사와 통역관은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린 채, 경진의 말에 대답
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넋이 나갔다.
경진은 타임머신에 올랐다. 문이 닫히며, 그 자리에서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갔다.
칙사와 통역관은 미동도 하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자신들의 시야
에서 벗어난 타임머신을 찾고 있었다.
경진은 자신이 그토록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타임머신을
타고 있으면서도 침울하게 시커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경진 씨! 왜요?...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미자르가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건넸다.
“여기 있어요. 전자총. 오늘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게다
가 닭 한 마리 잡아본 적이 없는 내가 이 총으로 사람을 둘이나
죽였고요. 아무리 명나라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담담히 말하고 있는 경진을 보며 미자르가 웃음을 참았다.
“차 폭발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내 손으로 두 명이나 죽였잖아요.”
“후후! 그럼 살려주러 갈까요?”
“예?...그게 무슨 말이죠?...”
경진이 어리둥절해서 미자르를 쳐다보았다.
“호호! 그 사람들 지금쯤이면 깨어나 있을 거예요. 이것 전기
충격기거든요. ”
“아!...그래요? 다행이네요. 에휴! 나는...내가 사람을 죽인
줄만 알고 죄책감이 들었거든요.”
경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크크! 휴머니스트가 따로 없군요.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걱정까
지 다 하시고...”
미자르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으나 그는 그 의미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자르! 내가 지금 타임머신타고 날아가고 있는 건가요?”
“무슨 말이에요? 아까는 칙사 일행에게 잔뜩 무게 잡고 하늘로
올라갈 테니 잘 보라고까지 엄포까지 해놓고요.”
“맞아요!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호호! 뭘 그래요. 평소보다 더 의젓하게 잘 하던데요. 빠진
것 없이 할 말 다하던데요.”
“하하하! 내가 그랬어요? 이해할 수 없네요. 정신없었는데...
내 안에 또 다른 똑똑한 나가 있나보죠?”
“후후! 자기 칭찬하는 법도 여러 가지네요”
“하하하하하!...”
경진이 민망한 듯 너털웃음을 길게 펼쳤다.
“미자르,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글쎄요. 조선 땅으로 가고는 있는데...무인도 어때요?”
“무인도요? 거기에는 먹을 것 구하기도 힘들 텐데요? 무인도
라!...”
두 사람은 타임머신 안에서 갈 곳을 몰라 방황했다.
“미자르, 이제 겨울도 시작되고 헸으니, 따뜻한 남쪽 지방이
어때요? 거기는 섬도 많고 경관도 수려하거든요.”
경진은 몇 해 전에 여름 피서를 다녀온 진도를 떠올렸다.
“진도요. 조용하고 주위에 섬도 많아요.”
두 사람은 그 곳으로 가기로 정했다.
그는 그렇게 말해놓고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어 미자르의 얼굴
을 쳐다보았다.
“미자르! 세종대왕님께서 하사하신 서찰하고, 금붙이 들어있는
주머니 있지요?”
“예, 자기가 내게 맡겨놓았잖아요.”
“됐어요. 그것만 있으면 일이 아주 쉽게 풀릴 것 같아요.”
경진은 웃으며 그녀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아, 그 방법을 쓰면, 내년 추석까지 아주 편하게 살겠군요?”
“그렇죠?...”
경진은 자신의 생각이 그녀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자, 어린애처
럼 가볍게 웃으며 확인하듯 물었다.
경진과 미자르는 자신들이 묵기에 아담한 무인도를 찾아 타임
머신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옥주(진도) 군수를 찾았다.
동헌에는 경진이 혼자 갔고, 동헌하고 거리가 떨어진 후미진 곳
에서 미자르가 타임머신을 타고 기다리기로 했다.
동헌의 문은 열려있었고 정문을 지키는 포졸이 보초를 서고 있
었다.
“한양에서 왔다고 일러주시게!”
경진은 젊은 포졸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포졸은 동헌에 들어갔다가 관리와 함께 나왔다.
“한양에서 오시었소?”
“그렇소! 영상 어른께서 보냈소.”
“영상어른이라고요?...”
관리는 놀라는 눈치를 보이며, 경진을 공손히 군수에게 안내했
다.
군수는 제법 풍채가 있는 중년의 인물이었다. 경력이 제법 있는
듯 노련해 보였다.
“영상께서 무슨 일로 보내시었소?... 서찰이라도 있소?”
그는 경진을 향해 공손했으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여기 있소! 읽어 보시오. 전하의 어지가 들어있는 친필이
오.”
“예?...전하의 어지...친필?...”
군수가 놀라며, 경진이 내어준 서찰을 공손히 받고 펼쳐보았다.
임금의 필체를 확인한 군수는 비단을 찾아 그 위에 서찰을 올려놓
고 예를 올리기 위해 절을 했다. 예를 마친 군수가 공손히 서찰을
읽어나갔다.
‘짐이 써준 이 서찰을 지닌 자는 나라의 큰 동량이도다. 지금
서찰을 보고 있는 지방관은 그가 요구하는 말을 모두 들어줄 것이
며, 시행에 착오가 없으면 후에 큰 상을 내리리라.“
서찰을 읽은 군수는 사색이 되어 경진을 상석에 앉혔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하명만 하시오. 성심껏 챙겨드리리
다.”
군수가 공손한 어투로 말을 하고, 경진의 답을 기다렸다.
“나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것이 있소. 내 스스
로의 큰 죄를 범했다 이 말이오. 해서, 스스로 유배를 온 것이오.
그러하니 이 군에서 멀리 떨어진 섬을 하나 찾아주시오. 사람들이
근접하기 힘든 곳이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소이다. 허면, 제당도 필요하겠구려?”
경진은 미자르와 자신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목록을 비교적 자세
히 주문했다. 그리고 옷소매에서 금붙이들을 군수 앞에 내놓았다.
“약소하지만 내 성의니 넣어두시오!”
군수는 당황해 하며 경진이 내놓은 금붙이를 사양했으나 경진이
젊잖게 설득을 했다.
“이렇게 황망 할 데가!...고맙소이다. 우선 말씀하신대로 그러
한 섬을 찾고, 집을 지을 동안 계실 곳을 안내해드리리다.”
“고맙소! 명년 중추절 무렵, 내가 한양에 올라가면 크게 보답
하리다. 그리고 당부의 말이 하나 더 있소. 내가 전하의 서찰을
가지고 왔다하면, 별의별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군수를 귀찮
게 할 것이요. 군수만 알고 계시오. 아무에게도 발설해서는 아니
되오.”
“명심하겠소. 그 점은 염려 안하셔도 되오.”
경진은 군수의 안내를 받아 객사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객사에
머물면서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미자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졌으나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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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샘터
콩다칸 팥다칸(장편소설) - 대탈출(34회차)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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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30 18:2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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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을 쓰시는군요 이 여름에 상상의 나랠 펼수있다는게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이고 또 좋은 재산이 되겠지요 건필하세요.
매번 읽지만......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완필 하시길.... 그래야 저도 소감을 적을 수 있지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