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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덕은 일을 마치고 막 목욕을 끝내고 기숙사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재운은 차마 아들 상동이가 죽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형님 형님이 어떻게 오셨어요.”
“집에 뭔 일이 생겼단다.”
“뭔 일이라니요.”
“가자 우선 나가면서 애기하마.”
기숙사 문을 나서면서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지요, 뭔 일이래요.”
누가 죽거나 다치는 큰일이 생기지 않고는 형님이 예까지 오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님 누가 죽었어요. 왜 말을 안 해요. 답답하게.”
“아냐 그리 급한 일은 아니니까, 빨리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보자.”
동생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아는 재운은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시골로 내려가는 차를 타러 청량리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보니 막차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형님 저 혼자 마석까지 가는 차를 타고 가서 걸어서라도 집으로 갈께요, 그러니 여기서 형님은 들어가세요.”
“이왕 늦은 거,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일찍 첫차로 가자.”
이 밤에 마석서 걸어서 삼십 리 길을 허둥지둥 달려가 봐야 죽은 자식을 살릴 도리는 없고, 말을 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형님 저 혼자 갈수 있어요. 그러니 형님은 집으로 들어가세요.”
“그럼 같이 가자.”
“저 혼자가도 되니까, 형님은 들어가세요.”
“이보게 고집피우지 말고 집에 가서 자고 내일 나 하고 내려가세.”
지금 이 밤에 내려가 봤자 울고불고 할 동생을 생각하면 더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내 혼자는 않되 그러니 가려면 같이 가고 아니면 형 말대로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낼 첫차로 내려가세”
재덕도 더 고집할 수가 없어 따라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서 안감내에서 내려서 안암동으로 따라 갔다.
집으로 들어서며 재운은 예기하지 말라고 연순에게 눈짓을 보냈고, 연순은 급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서방님 저녁 드셨어요, 아니 안 드셨겠네요.”
“여보 빨리 저녁 차려오지 않고, 옥순아, 옥순아,”
“네 아버지.”
“너 저 아래 가게에 내려가서 소주 두 병만 사 오거라.”
하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 하자 재덕이 얼른 돈을 내 주며 예 있다 하며 주려 하자 재운이 얼른 막아서며,
“이 사람아 쓸 때 없이, 오늘은 내가 사겠네, 이 돈으로 사오너라.”
저녁을 먹고 반주 까지 했지만 재덕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편 털다만 밀은 선복과 수동이 대충 쓸어 담아 사랑 툇마루에 올려놓았고, 땅거미가 질 무렵 양묵이 돌아와서 같이 끌어들여야 했다.
그리고 꽃재 병묵이 내려와 만석과 같이 상동이를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찢어서 염을 해다.
만석이 기저귀로 어께에 멜빵을 걸어 앞으로 안아 들고, 병묵이 삽과 괭이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오빠 묵밭은 피해서 가세요.”
“그래 알았어.”
이미 어두지고 궂은비 까지 내리는 산길을 더듬어 집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구덩이를 파고 꼭꼭 밟아 묻고 위에 큰 돌 서너 개를 놓고 훗날 재덕이 온 산을 헤매도 못 찾게 풀을 삽으로 떠다 덮고 내려 왔다.
정순이 온몸이 녹아내리는 그 고통스런 밤에 궂은비는 하염없이 주룩주룩 내리고, 옆에는 배고파 울던 어린 금자는 수동이가 어떻게 밥을 먹이고 업어서 달랬는지 잠들어 있었고 정자와 경자도 수동이가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자는지 조용한 밤에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내 금쪽같은 상동이가 찬 땅속에 묻혀 있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오빠 만석도 상동이를 묻고 도림개말 원기내 가계에서 소주를 사가지고 와 마셨는지 마루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든 옆에는 소주병이 누워서 딩굴고 있었다.
정순은 소리 내어 울 기운조차 빠져 있는데,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짧고 긴 여름밤은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 시간 재덕은 밤새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아침을 지으러 일어나는 연순의 기척에 다시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둘이서 걸어서 신설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물골안 가는 첫차에 올랐다.
차가 마석을 지나 물골안으로 접어들자 재운이 말을 했다
“동생 놀라지 말고 듣게 어제 상동이가 우물에 빠져서 죽었네.”
“내 애!”
형님이 굳이 따라올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지만 설마 했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억장이 무너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재덕의 흐느낌은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묻혔고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한 삼십분 달려 종점 석고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재덕을 본 석고개 친구 현욱이
“자네 이제 오네 그려 뭐라고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안내”
재덕과 재운은 서둘러 부지런히 집을 향해 걸었다.
집 근처에서 몇 사람을 만났지만 누구와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고 집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쪼르르 달려와 안길 그 녀석이 없다.
그 제서야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 마루 앞 댓돌에 주저앉아 신발짝을 움켜쥐고 땅 바닥을 내리치며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위로의 말을 건 낼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재운이 다가가
“그만 하게 자내 이러다 몸상하내 남아 있는 새끼들 생각해서 진정하고, 다 자네 자식이 안 되려고 그리 되었거니 생각하고 또 낳으면 되지 않는가,”
이 모습을 넋 나간 듯이 앉아서 보고 있던 정순은 또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할 수 가 없었다.
어제 굳이 밀을 떨어야 했는지 또 다시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 왔고 그 조그마한 배를 채우고 가려고 감자 욕심을 냈는지 시아버지 양묵에 대한 원망이,
지난 봄 생일 때 미역국조차 끓여주지 못하고 수동이가 잡아다 벗겨서 말려 놓았던 개구리 국을 먹으며 좋아 하던 모습이 떠올라 못해준 생각만 떠올랐다.
재덕은 재덕대로 작년에 흉년만 들지 않았으면 그리고 왜 양자를 와서 천둥지기 논배미 만 받아 가지고 이 고생을 해서 그나마 새끼마저 잃게 했는지, 이번 간주를 타면 세발자전거를 사다주려 했는데........
재운은 지친 몸을 이끌고 차려주는 제수 정순의 점심을 먹자니 목에 걸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있어 봐야 가시방석 같아서 오후 무렵 재덕에게.
“동생 나, 올라 갈려내, 맘 단단히 먹고 몸 잘 추스르게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수동아 큰아버지 가신 덴다, 모시고 가서 차표 끊어 드려라.”
“네”
“됐네. 사람아 그만 두게.”
그래도 부득부득 수동이에게 돈을 주며 갔다 오란다.
그 고집을 말릴 수 없어 수동이를 앞세우고 석고개 버스종점으로 향하여 길을 나서며 따라 나오는 재덕에게 재운은 다시 한 번
“몸 잘 챙기게 너무 슬퍼하지 말고.”
하며 나오는 눈물을 보이면 또 동생이 울 것만 같아서 고개를 숙인 체 한참을 걸어서 거리가 떨어 졌을 무렵에야 뒤를 돌아보니 재덕은 그 자리 그렇게 서 있었고, 손을 흔들어 보이고 부지런히 걸어가다 다시 돌아보니 고개를 숙인 체 재덕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수동아.”
“네.”
“애비 잘 위로해 드려라.”
“네.”
저녁 무렵 만석이 소주를 사 가지고 와서 처남 매부가 정신을 놓을 정도로 마셨다.
이튼 날 재덕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일어나 집 뒤로 돌아가 성주 항아리 울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석유병과 도끼를 들고 마루에 올라 제 작년 굿 할 때 써서 붙여놓은 부적을 떼어 불을 지르고 도끼로 부적을 붙였던 자리를 몇 번 찍고 석유를 한 모금 입으로 품으며 성냥불을 그어 대니 퍼런 불이 무섭게 품어져 나왔다.
“사람 하나 못 지키는 성주 다 필요 없고 부적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부적.”
뒤로 돌아가 성주항아리가 있던 자리에서도 석유를 한 모금 품으며 성냥불을 그어 댔다.
정순은 홉사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재덕이 가만히 보니 웃지만 않아서 그렇지 미처 가는 것 같았다.
“수동아, 정자야, 가서 네 엄마 좀 데리고 들어와라.”
저거 미처 가는 것 아냐 전에 누구처럼.......
수동이와 정자가 밭 가장자리 길을 울면서 걷고 있는 정순에게로 가서 팔을 잡고 끌다시피 해서 집에다 앉혔다.
마음을 다스리라고 재덕은 정순에게 담배를 피워보게 했는데, 정신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으나 마음의 병은 육체에 파고들었는지 속이 쓰리고 아프더니 무언가 가슴에서 치고 올라왔다.
그런데도 담배를 피웠다.
그런가 하면 재덕은 술이 취하면 양묵에게 그래 어린 것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감자까지 빼앗아 먹었느냐 는 말까지 했다.
양묵은 참으로 어의가 없어서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새끼 잃어 슬픔에 젖어서 푸념처럼 내뱉는 말이지만 고통스러웠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치밀었지만 꾹꾹 참고 살려니 울화가 치밀었다.
뿐만 아니라 재덕은 양묵이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아이들 한번 안아준 적이 없는 쌀쌀 맞은 늙은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정순은 양묵이 꽃재로 자러 올라간 뒤 아이들 앞에서
“할아버지가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다 쏴 죽였을 거야.”
했다.
아주 원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니 눈을 말똥, 말똥 하고 처다 보는 자식들에게 할 말이 아닌데 했다.
그렇게 한 지붕아래서 갈등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긴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되어서 삼순은 딸 희원을 낳았다.
수동이는 추석을 얼마 앞두고 현수 아버지가 버섯을 따러가자고 해서 가는데 용분이도 따라왔다.
방꼴 뒷산을 넘어서 싸리버섯을 한 망태기 따 왔는데 처음엔 맛있게 해 먹었는데 독성이 있는지 설사가 나는데 한 달을 넘게 고생을 했다.
그리고 작은 사건이 있었으니 간신히 마련해 키우던 소를 재덕이 용분이네 밭 가장자리에 고삐에 바를 연결하여 풀을 뜯어먹으라고 매 놓았는데 별안간 소우는 소리가 심각하게 들려서 수수 모가지를 자르다 말고 재덕이 달려가는데 용분 아버지고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달려가고 수동이도 따라서 달려가서 보니 소가 이리저리 밧줄을 끌고 다니다 밧줄이 네 발에 엉키고 작은 참나무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왼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재덕이 서둘러 들고 간 낫으로 밧줄을 끊어버렸다.
그런데도 소는 꼼짝도 못하고 ‘음매, 음매.’ 소리를 질렀다.
뒤 늦게 달려온 현수까지 합세를 해서 왼쪽으로 누워서 꼼짝 못하는 소를 등을 축 삼아 다리를 잡아당기기고 밀면서 소를 반 바퀴 굴려서 오른쪽으로 쓰러진 것이 되게 하였더니 소가 벌떡 일어났다.
소는 일어나자마자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게거품까지 흘렸다.
용분 아버지가
“살이 닷 근은 빠졌겠네.”
하였고 재덕은 수동이에게
“소가 왼쪽으로 쓰러지며 위가 왼쪽에 있어서 못 일어 나단다. 하마터면 소 잡을 뻔 했다.”
면서 소를 끌고 들어와 외양간에 매었다.
그 무렵 물막골 긴내라는 수동이 동갑짜리가 여섯 나이에 벼 한가마니를 졌다고 소문이 났다.
힘이 좋은 것도 자랑 거리가 되기는 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있었으니 진승이의 아버지가 농협 리단위 조합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장을 찍어서 대출을 했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체를 농협에서 정리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보증이 아니라 연대 보증으로 서류를 만들어서 돈을 빼 써서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삼순은 딸 희원이를 낳았다.
추석이 지난 뒤에는 인순이가 성수를 데리고 내려 왔는데 재덕은 옥수수를 아궁이에서 구어서 주었다.
그리고 정순에게 마석엄마라고 하면서 잘 따라서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정순은 인순이 가지고 온 물건을 팔아주고 콩이나 팥을 넉넉히 담아 가지고 와서 됫밑은 되는 될 수로 준다며 덤으로 얹어 주었다.
그런 짓을 이제는 양묵이 보거나 말거나 되는 제 멋대로 했다.
‘이 그 아까운줄 모르고 막 퍼줘 이 그 하는 짓 하고는 집안 들어 먹게 생겼네.’ 하고 속을 끓이며 삭이며 살아야 했다.
그것도 처음에 몇 번이지 이젠 만성이 되어서 네 살림이냐 내 살림이냐 될 때로 되라는 식이 되었다.
가을이 되자 정순은 찬물에 손을 담그고 일을 하다보면 가끔씩 뱃살이 빳빳해지고 가슴을 치올라 오는 덩어리가 있어서 화로에 올려놓은 납작한 돌을 수건에 싸서 배에 대고 한참을 진정 시켜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동이는 정순을 위해서 매일같이 동네 공동우물에서 열 양동이를 넘게 길어 와야 가마솥과 밥솥 노구솥(밥솥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국솥)을 채우고 불을 때서 물을 덥혀야 했다.
그 무렵 성동이는 군을 제대하고 나와서 장가를 들여야 하겠다는 재운의 뜻에 의해 재덕이 창복이 누나 진순이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선을 보게 하려고 내려오라고 했다.
그날도 수동이는 해가 서산마루로 기울자 물을 길어다 솥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 성동이가 선을 보러 내려 와서 수동이가 콩쥐처럼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올라가서 연순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어린 게 모진고생을 하는구나. 쯧 쯧 쯧.
그리고 정순은 딸 은자를 낳았다.
다시 아들을 바랐지만 이번에도 또 딸을 낳은 것이었다.
코가 납작한 게 임신 중 속이 아파서 늘 화로에 돌을 달구어 수건에 싸서 배에 대서 코가 눌려져서 납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겨울이 다가오자 재덕은 다시 서울 석탄 하차 하는 곳으로 일을 나가고 수동이는 본격적으로 나무를 해다 쌓으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동이가 하루에 하는 나무는 두 짐을 했는데 한 짐은 밖에다 쌓고 한 짐은 부엌에 부려 놓았다.
그것도 아까워 해질녘에는 다시 지개를 지고 올라가 썩은 그루터기를 뽑아가 소죽을 쑤었다.
수동이는 그렇게 조그만 어깨로 아궁이 네 개에 땔감을 해대고 조금씩 나무를 여축을 하고 있는데 양묵이 추웠는지 안 방 가마솥에 군불을 때려고 하자 수동이가 못 때게 했다.
양묵은 화가 났다.
손자 녀석이 제가 해 온 나무라고 때지도 못하게 하다니 확 끌어다 아궁이에 끌어넣었다.
“이 늙은이가.”
수동이마저 해서는 안 될 말을 뱉고 만 것이었다.
“이 녀석이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늙은이 라고요.”
하면서 냅다 도망을 쳐 버렸다.
그 동안 재덕이며 정순이가 늙은이 영감태기 하는 말을 듣던 수동이가 해 버린 것이었다.
양묵은 화가 치밀고 떨려서 한참을 울었다.
그날 저녁 차로 설을 쇠러 내려온 재덕이 그 이야기를 듣고서 수동이를 양묵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빌게 하였다.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래 앞으로 그러지 말아라.”
양묵으로서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어린 손자의 반항이라고 하기보다, 년 놈들이 어떻게 나를 불렀기에 저 놈, 마저 저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마산으로 세배를 온 수동에게 지묵은 사람은 사람하기 나름이다. 할아버지에게 잘 하면 할아버지도 잘 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충묵 내외는 수동이에게 떠 보느냐고 그랬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너 엄마 찾아가라.”
했다.
그날 저녁 수동이는 안방 가마솥 깊숙이 나무 등걸을 밀어 넣고 뜨끈하게 군불을 땠다.
그로부터 몇 칠 후 저녁에 재덕은 수동이를 앉혀놓고 한참을 이야기 했다.
“그래 그 늙은이가 엄마 찾아가라고 했다면서. 그 늙은이는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라고 익성이는 학교도 안보내고 일만 시키면서 너보고 엄마 찾아가래 이놈의 늙은이를 그냥, 그래 그 소리를 그냥 듣고 있었어. 그래 달콤하데.”
하면서 수동이를 닦달을 했다.
“그렇게 에미가 좋으면 가서 살아라, 가서 살아.”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어른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뿐인데
그날 밤 수동이는 서러워서 윗방 구석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면서 생각해 보니 정자가 밖에서 듣고 이야기를 했나 아니면? 충묵할머니가 이야기 했나?
하면서서 서러움에 훌쩍거리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순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속아리가 도졌는데 이번에는 좀처럼 낫지를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몇 칠이 지나자 재덕이
“수동아 안마산에 가서 대장장이 할아버지한테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점 봐주세요. 하고 와라.”
수동이가 안마산 충묵에게 가서
“할아버지 점 봐 달라는데요.”
“그래 알았다.”
하더니
“집안에 있는 나무를 베었구나.”
하더니 따라 나서서 집으로 와서 부엌궁둥이 지난 초겨울에 베어버린 수양버드나무 그루터기에 보습 깨어진 조각을 두드려 박고 약쑥에 불을 붙여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장독대 옆에 있던 홍도 복숭아나무 그루터기에도 똑같이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나무 모두 봄에 움이 나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얼마 후 속이 가라앉았는지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고 나면 늘 찬물에는 손도 담그지 않았고 조금만 속이 이상하면 화로에 있는 불돌을 수건에 싸서 배에다 대고 지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구호물자라고 해서 헌 옷가지를 나누워 주었다.
수동이는 머플러를 여자애처럼 둘러쓰고 있어서 여자로 착각을 했는지 여자 오버를 주었다.
그걸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입고 다녔다.
구호물자라는 이름의 헌 옷을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애들도 있지만 그것은 애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철 밴드로 묶여져 온 철 밴드는 아이들 장난감을 만들어 놀기도 했지만 어느 날 구호물자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며 불만을 가진 사람이 철 밴드로 묶인 못 서너 뭉치를 천막교회 뒤에서 굴려 내와 논배미 옆 봇도랑에 처박고 불을 질러 버렸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물을 끼얹어 불을 끄고 옷 뭉치를 묶은 밴드를 풀렸지만 옷은 모두 못쓰게 되어 버렸고 만취대 지서에서 순경이 나와서 불을 지른 사람을 잡아가고 그날 저녁 집회에서 박계숙 간호사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방화를 한 사람은 풀려났고 구호물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설을 열흘 앞둔 68년 1월 21북한의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기도 사건(김신조)이 있었고, 이틀 후에는 푸에불로호 납치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불온 삐라나 문서를 주어오라고 해서 학생들은 산과 들에 떨어져 있는 삐라를 주어다 학교에 냈는데 하루는 북으로 보내는 삐라가 떨어졌는데 내용 중 소정자 간첩이 자수해 잘살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삐라도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수선해서 몇 칠 동안 수동이는 나무를 하러 가지도 못했다.
정월 보름까지는 수동이는 연날리기와 윷놀이를 하면서 보냈다.
그런데 마을에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창복이 아버지가 화투를 쳐서 땅문서를 잡혀가면서 쳤는데 이를 안 창복 할아버지가 작대기를 들고 가서 판을 깼고 창복 아버지는 도망을 쳤다.
다음 날 창복 할아버지가 창복이네 외양간에 매어 있던 소를 끌고 땅문서를 찾으러 가는데 창복 엄마는 행주치마에 눈물은 훔치며 따라갔고, 창복이도 그 뒤를 따라 가서 땅문서를 찾아왔다.
그런가 하면 순복이 할아버지가 순복이를 위해 사랑에 초빙한 서당 선생이 중신을 해서 창복이 막내 삼촌이 장가를 들게 되었는데 전 날 저녁 음식을 장만하며 정순은 용분 엄마에게
“가을에 우리 수동이하고 용분이 하고 결혼 시킵시다.”
하고 농담 삼아 말을 던졌다.
수줍음이 많은 용분 엄마지만
“그럽시다.”
하며 되받아 넘겼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열 살도 정도 된 창복이의 육촌동생 경덕이가
“배꼽장난 하게.”
해서 모여 있던 아낙내들이 까르르 웃었다.
다음날 결혼식에는 그의 형 창복 아버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동생의 결혼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 파위사는 진수를 비롯하여 몇 몇이 창복이네 집에 놀러 왔다.
몇 칠 후 용분 엄마가 용분에게 시집을 가겠느냐고 물어 본 모양인데
용분이가 벌써 무슨 시집이냐고 했다고 전해져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순복이의 사촌동생인 금복이가 헌 교과서를 뜯어서 천자문을 벗겨서 그의 동생인 경훈이 경택이 경구에게 만들어 주었다.
수동이도 만들어 달라고 헌 교과서를 갖다 주었는데 마무리는 서당 선생이 해 주었다.
그러면서 배움에 목말라 하던 성규가 저녁마다 한문을 배우기 위해 서당을 다니기도 했다.
봄 장사하러 내려온 인순은 정순을 위로 하며 이야기 하다가 성주항아리를 부순 일 그리고 가끔씩 적 덩어리가 치밀어 올라와 속이 몹시 아프다고 하자
“그게 다 성주가 노해서 그래요, 그리고 교회나간 때부터 잘 못 된 거야”
“교회 안 나가는지 오래 됐는데”
“그래도 상동이 죽기 전엔 나갔잖아 그게 잘못된 거야.”
“그런가 보네.”
“서울에 한 번 올라와 더 용한 보살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요. 한번 올라갈게요.”
그리고 몇 칠 후 정순이 서울로 올라가 보살할머니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게 남편이 삼재가 들어서 그랬던 거야 이제는 올 부터는 괜찮아 질 거야. 그러니 재수 굿을 하고 성주를 모시는 굿을 해야 해.”
그 말을 들은 정순은 내려와 재덕에게 이야기 했고 다음날 저녁 수동이를 불러서 예수 믿는 것에 대하여 장황한 설명을 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줄고 모두 예수에 미쳐서 일들을 안 하니까. 로마정부가 붙잡아다 십자가에다 못을 밖아 죽인거야.”
“그러니 교회는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그나마 일을 해서 번 돈을 갖다 바치게 해서 먹고사는 거야 알았어, 그러니 교회가지 말아.”
그리고 얼마 후 보살이 인순이와 함께 내려왔고. 떡을 해 놓고 보살은 징을 두드리며 굿을 했다.
그렇게 이틀을 묵고 있는 동안에 정순은 수동이의 취직을 부탁했다.
“문화촌에 사는 신도가 시계방을 하는데, 거기다 부탁하면 틀림없을 테니 이번에 같이 가면 되겠네.”
“그래요 잘 됐네요.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수동이 보살을 따라 떠나는 날 아침 재덕이 이백 원을 주면서 급한 일이 있으면 쓰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와 청량리에 내린 보살은 걸어서 월곡동 소 도살장이 보이는 산 자락에 있는 판자촌으로 수동이를 데리고 갔다.
그러나 수동이를 데리고 온 보살은 문화촌에 연락을 해서 부탁을 해보니 사람을 쓰고 할 형편이 아니라고 해서 우선 월곡동 산자락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보살의 아들 형제가 있었는데 큰아들이 미대에 다닌다고 하는데 계란 껍데기에 색을 칠해서 커다란 도화지에 도자기 그림을 모자이크해서 붙여서 작품을 만들었다며 보살에게 보이며 자랑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방이 두 개 인데 하나는 미대 다니는 아들이 하나는 시집간 딸과 작은 아들 그리고 자신이 자서 비좁았다.
그러자 보살은 조금아래 떨어진 자신의 동생의 집에서 자라고 했는데. 그 집에는 중학교 삼학년인 여자애와 초등학교 오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비록 판잣집에 살지만 남편이 직업 군인이여서 오학년 여자아이는 사립학교인 대광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수동이가 산수공부를 조금 가르쳐 주니 좋아하였다.
그렇게 몇 칠을 보내자니 눈치가 보이고 가시 방석 같아질 무렵 보살은 사위가 경영하는 이발소에 머리를 감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길음동에 있는 이발소에다 데려다 주었다.
물을 서너 지개 길어오고 점심이 되자 라면 하나를 사다가 끌어 먹었고. 손님 머리를 감기라고 하면서.
우선 수건을 이렇게 손님 앞으로 해서 뒤에 찍개로 고정 시키고 가계 중앙에 놓여 있는 연탄난로 위에 물통에 찬물을 담은 조루를 넣고 반 정도 따르고 더운물을 채우면 알맞은 온도의 물이 되면, 들고 와서 이렇게 천천히 물을 머리에 뿌리고 비누질을 하고 손끝으로 이렇게 문지르고 물로 행구고 한 번 더한 다음에 머리에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대아에 세수를 하게 더운물을 담아주고 또 한 번 얼굴을 행굴 수 있도록 물을 대아에 담아주고 수건을 들고 있다가 손님이 얼굴을 닦게 주라고. 했지만 쉽게 손이가지를 않아 머뭇머뭇 하자 자기가 직접 손님의 머리를 감겼다.
그리고 물을 깃는 틈틈이 수건을 빨아서 널었다.
10시가 지나자 그만 문 닫자 하면서 같이 일하는 이발사와 오늘 번 돈은 계산해서 나누고 같이 일하는 이발사가 자는 하숙집으로 가서 자고 이튿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이발소로 갔다.
벌써 주인은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수동이 크게 실망했다.
시계를 고치고 라디오를 고치는 기술자가 되고 싶었는데, 남의 머리를 감겨 주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지 언 듯 손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정능천을 건너서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 오는 일은 정말 싫었다.
물 깃는 일이라면 집에서도 지겹도록 하지 않았던가.
가게바닥을 쓰레질을 하고 나니 새벽 다섯 시가 되었는데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님이 들어와 머리를 깎을 적마다 쓰레질을 해서 머리카락을 쓸어내고 아침을 주변식당에서 시켜서 가계에서 먹고 나서 수동이의 생각은 아침밥을 먹은 만큼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물을 길어다 물통을 채우고 나서
“저 사장님 저 이일 못 하겠는데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잘 가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와서 길음시장 앞에서 고려대학교 가는 길을 묻고, 물어서 안암동 재운의 집을 찾아가보니 재운의 집은 다 철거 되고 없었다.
이틀 전 재운은 땅 소유권 재판에 패소해서 집을 철거당하고 면목천뚝방에 있는 무허가 집으로 이사를 한 뒤였다.
할 없이 종암동 인순내 집을 들려 청량리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서 물골안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당숙모인 천동이 엄마 슬기가 친정인 물골안을 가려고 버스차부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수동아 네가 웬 일이냐?”
수동이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니, 슬기가
“이발은 학원에서 배워야지 그런 대선 일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지.”
“이발은 적성에 맞지를 않아서 내려가는 길에 안암동에 들렸더니 집이 없어졌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저께 비오는 날 리어카에 짐을 싫고 면목동으로 가셨단다, 그러기에 우리처럼 철거 비 조금 받고 끝났으면 나았을 텐데, 아주버니 고집에 돈 버리고 고생하시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서 재덕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했고 재운의 집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하자
“결국은 그리 되고 말았구나. 땅을 이중으로 팔아먹은 놈이 나뿐 놈이지, 시골 땅 팔아 올리면서 삼년을 넘게 재판을 해서 마지막에 그 꼴이 났으니 그걸 찾게 해준다고 한 변호사만 돈 벌었지.”
그리고 몇 칠 후 수동이가 심사가 뒤틀려 있는 날 아침 병숙이가 명순이가 학교를 가면서 수동이를 발견하고 놀렸다.
“야 물동아! 떨어지면 깨어질 물동아.”
“떨어진 동이 물동이.”
하고 놀렸다.
잔득 심통이 난 수동이는 쫓아가서
“이놈의 계집애 아침부터 재수 없게 놀리고 있어.”
하면서 뺨을 때렸다.
병숙이는 주저앉아 울고 지나가던 정선이가 보고.
“야 사내 녀석이 여자를 때리는 데가 어디에 있어.”
하면서 뺨을 한 대 때렸다.
뺨을 한 대 맞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재덕이 물막골로 쫓아가 정선이를 야단을 쳤다.
정선이로서는 약한 여학생을 때리는 수동이를 혼내준 정의로운 일을 했는데 수동아버지가 와서 남의 귀한 아들 뺨을 왜 때렸냐고 야단을 치니 난감했는데 마침 경숙의 시아버지 남국이 와서 재덕을 말려서 돌려보냈다.
재덕으로서는 사돈 남국이 말리자 못이기는 체 집으로 돌아 왔다.
구박덩이 수동이지만 그래도 자식은 자식인 것이다.
수동이는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저녁이면 소꼴을 베러 갈 때면 양을 끌고 산으로 가서 양을 풀어놓았다.
양은 수동이가 꼴을 베는 곳에서 50m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꼴을 다 베서 지개를 지고 수동이가
“매 에 하면.”
“매 에 애 .”
하면서 달려와서 고삐를 잡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젖을 짤 때에는 다리를 붙잡아 매고 더운물로 젖퉁이를 씻어내면서 젖을 마사지를 해주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내고 젖을 짰다.
한번에 2L 가까이 나왔다.
인심 쓰듯 남에게도 주기도 했지만 정순이 젖이 모자라 은자가 많이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수동이가 젖을 짜다가 은자를 안고 가서 양젖을 물렸는데 한참을 맛있게 빨아 먹더니 감이 이상했는지
“으앙.”
하고 울었다.
보고 있던 정순이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 날 정순은 인순과 함께 내려온 만신이 굿을 했다
굿판 마지막에 만신은 마당에 놓인 절구통을 여러 색깔의 기를 흔들며 돌고, 마당가에 재덕 정순 수동이 정자 경자가 차례대로 서 있었고, 재덕 앞에 와서.
“걱정마라 내 모든 것을 안고 가고 덥고 가마.”
“네, 네.”
재덕은 연신 고개를 굽혔다.
그리고 기를 돌돌 말아서 깃대 끝을 내어주며 뽑으라고 했고, 파란색 기를 뽑자 기를 다시 뽑게 하고 빨간색 기를 뽑자.
“어리석은 중생이 어찌 알리요. 걱정마라 이집에 모든 우환 내가 막아주마.”
“네, 네.” 정순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연신고개를 숙였고, 또 기를 뽑게 하고 빨간색 기를 뽑자
수동이앞에 와서도
“불상하고 가련하다 내가 도와주고 살펴주마 걱정마라.”
했지만 고개를 숙인 체 서 있어야 했다.
양묵으로서는 참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뭔 굿이냐고 드러내 놓고 불평을 할 수 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고, 그저 그런대로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쫓겨서 도망을 갔던 창복 아버지는 근 백 일만에 땅거미가 질 무렵 작대기에 몸을 의지한 체 초주검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보리타작이 끝날 무렵 저세상을 가고 말았다.
창복이의 큰아버지 가 농약을 타가지고 들어가 방을 소독하고 장사를 지냈다.
그러고 양묵과 재덕 사이에는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62년에 공포되어 흐지부지 되어있던 주민등록법이 1. 21 사태로 모든 국민은 종전에 발급해 주었던 시민증이나 도민증을 반납하고 주민등록증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재덕은 입양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서 주민등록을 할 수가 없었다.
재덕의 호적은 아직도 춘성군 남면 발산리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속속 도민증을 반납하고 새 주민등록증을 받았지만, 재덕은 주민등록을 발급 받지 못해 속을 끓이고 있었다.
진즉에 입양을 하면서 호적정리를 하지 않은 게 불찰 이었다.
행정이라는 것도 그랬다.
우선 발급받기 쉬운 사람부터 해주고 차 순위 자들에게 해주는 것인데, 성격이 급한 재덕은 그렇지 못했다.
알아본 결과 호적이 수동면에 없기 때문이라는 면서기의 이야기를 듣고 수동이를 황골로 보내서 제적등본을 떼어오게 하였다.
그래도 용동이가 호적은 제대로 정리를 해서 정자서부터 은자 까지 출생신고를 해 놨었다.
물론 재덕과 희상의 자녀로 올려져있었다.
물개에 있는 면사무소 출장소 서기가 한나절을 필사를 해서 도장을 찍어서 다음날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양묵에게 입양신고를 하러 가야 하니 도장을 내어 달라고 하니 양묵은 이놈이 땅 팔고 집 팔아 도망을 가려나 하는 생각에 내어 주지 않았다.
더구나 지난 가을 진승아버지 정재의 사건을 잘 아는 양묵으로서는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게 갈등이 되어서 도장을 달라 거니 못주겠다니 하고 다툼으로 몇 칠을 보내야 했다.
도장만 가지면 땅을 팔아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양묵이나 도장만 가지고 가면 입양신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재덕의 고집으로 말다툼으로 몇 주를 끌던 어느 날 그래도 어디서 제대로 들었는지 양묵이
“그래 이놈아 가자 가서 둘이서 입양신고 하면 될 거 아냐?”
그렇게 해서 양묵이 중절모를 쓰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나왔고 둘이는 식식 거리며 버스를 타고 면사무소에 갔더니 기류 게를 떼 온 날이 너무 지나서 다시 떼 오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되자 조금은 조용해 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석고개에서 도림개말 까지 버스가 올 수 있도록 길을 낸다고 소문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할 사람은 나오라고 하여 소문을 들은 수동이도 도림개말 건너 산기슭에 가보니 재덕의 친구인 차학서가 일을 시키는 반장으로 있었다.
모두 집에서 가져온 괭이나 삽 아니면 능숙한 사람들은 지래대 까지 가지고 와 있었는데 모두 오십 여명이 넘게 몰려들었다.
돌담불을 헐고 힘 좀 쓰고 경험이 있는 사람은 큰 돌을 굴려다 축대를 쌓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 그러다 보니 경험자는 지시자가 되고 무경험자는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돼내 저렇게 해야돼내 하고 말이 많았다.
설계도 하나 없고 경계를 표시하는 깃대도 꽂아놓지 않고 시작부터 하고 난 것이 문제였다.
한참을 일을 하고 점심에 도시락을 먹고. 일을 하는데.
“뱀이다.”
하더니 몽당한 살모사 한 마리가 잡혔는데 재윤아버지 길손은 머리부문을 손가락으로 잡고 목 부분을 손톱으로 뜯어서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머리를 잘라내고 꿈틀거리는 뱀을 아작아작 씹어 먹는데 뱀의 꼬리가 길손의 오른 뺨과 왼 뺨을 차례로 쳤다.
옆에 있던 길손의 친구가
“아이고 징그러워 그러고도 색시하고 입 맞추고 잠자고 하겠지.”
하며 놀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아주 맛있게 뱀을 먹어 치웠다.
공사장 일을 사흘을 못 넘기고 곧 중단이 되고 차학서는 반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몇 칠이 지난 다음 측량을 하면서 깃대가 꽃치고 도자가 와서 밀어서 길의 형태가 된 다음에 비로소 사람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감독도 오고 반장도 와서 체계적으로 일을 시켰다.
수동이는 진승이와 태희 셋이서 가래질을 하면서 길을 고르는 일을 200원을 받고 일을 하는데 조금 쉬다가 감독이 보이면.
“야 십장 온다.”
하면서 열심히 삽으로 땅을 고르는 일을 하는 척 하였다.
그러다 이번에는 반장이 마음에 맞는 사람 서넛이 일정한 거리를 떼어내어 도급을 주었다.
진승이 태희 수동이 셋에 재윤아버지 길손까지 넷이서 떼어 준 일을 마치면 돌아가도 좋다고 해서 태희가 가래장치를 대고 진승이와 수동이가 줄을 당겨서 수로를 만들고 마무리는 길손이 삽으로 다듬는 일을 했다.
그렇게 사흘을 하고 났는데 반장이 모래자갈 질통을 지면은 어른 품삯인 삼백 원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수동이는 논골에서 새창벌로 내려오는 도랑을 가로 지르는 조그마한 다리를 놓는 공사장으로 가서 새창벌 영수와 진기 셋이서 개울가에 모아놓은 모래를 질통에 담아서 200m 달려가 철판위에 부려놓으면 어른 둘이서 시멘트를 붓고 삽으로 비비는 동안에 다시 자갈을 한통 담아서 가지고 가서 부리면 물을 붓고 비벼서 거푸집을 덴 틀에 비벼 넣을 동안 또 모래를 지고 와야 했다.
그런 일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데 때가 여름이라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래서 수동이는 가끔씩 가다가 옷을 입을 채로 물속으로 덤벙 들어가서 몸을 식히고 나와서 다시 질통을 저 날랐다.
어른들은 삽으로 비벼서 넣는 일을 하면서 그것도 기술이라고 400원을 받았다.
그래서 모래자갈을 비벼서 넣는 일을 선호했다.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 모래자갈을 날라서 다리가 완성되었고 수동이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신문에 난 라디오 TV, 기술 통신강의록을 사기위해 운수리 우체국에서 이체번호를 써서 넣고 기다려서 책을 받았다.
그리고 남은 돈은 정순이를 주었는데 정순이는 그때 한참 유행하던 하늘색 면바지를 사다 주었다.
수동이의 생각은 몇 년 전 라디오를 만들어 파는 것을 본 것이 로망이어서 그걸 배우면 괜찮을 것 같아서 책을 샀는데. 재료를 사서 기술을 익히기 전에는 그림에 떡이었다.
그것을 읽었기에 저항이니 콘덴서 진공관 바리콘 트랜지스터니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수동이가 재덕에게 기술학원에 보내달락 말을 했는데 그 말에 울컥한 재덕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수동이는 계면쩍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첫댓글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수동이의 행동을 볼때 걱정이 되내요
왜 그렇게 원수 처럼 지내야 하나요
재덕 그도 몸부림 치며 얼마를 더 불행하게 살아가야 할 까요?
운명의 수래바퀴라 여기고 살기에는 너무 가혹하지만 그 운명에 끼어들어야 했던 양묵과 수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