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아침 일찍 백제성을 떠나며)
朝辭白帝彩雲閒(조사백제채운간) 아침에 붉게 물든 구름 낀 백제성에 이별을 고하고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천 리길 강릉에 하루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양 기슭에 원숭이 울음소리 계속 들리는 가운데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만 겹의 산을 이미 통과하였다
*이백[李白, 701 ~ 762,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은 중국 당나라 시인으로 시성(詩聖)으로 불린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으로 불렸고, 소년시대부터 검술을 좋아하여 협객 속에 끼어 방랑생활을 보내는 일이 많았으며, 42세 때 현종에게 그 시재를 인정받아 궁정시인이 되었으나 자유분방한 성격 등이 화근이 되어 장안에서 쫓겨나 다시 방랑하였는데, 두보가 인생과 사회에 관심을 기울인 데 대해서 이백은 자연과 술을 사랑하면서 절구에 뛰어났고, 작품으로는 “청평조사(淸平調詞)”, “장진주(將進酒)”, “월하독작(月下獨酌)”, “상삼협(上三峽)”, “협객행(俠客行)” 등이 있습니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고,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으며,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었다고 합니다.
*위 시는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본 것입니다.
*이백은 만년에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거병에 가담하였다 이린의 거사 실패 후 구이저우성(貴州省) 서북부의 야랑(夜郞)으로 유배되었고, 야랑으로 가는 도중에 백제성(白帝城)을 지나면서 자신의 사면 소식을 접하였고, 자유의 몸이 되어 강릉으로 돌아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고 하며, 이백의 칠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고, 자유의 몸이 된 기쁨을 빠른 물살처럼 경쾌하게 묘사한 작품이라 합니다.
*형식 : 오언율시(五言律詩)
*白帝城(백제성) : 쓰촨성(四川省) 펑제현(奉節縣) 동쪽의 백제산(白帝山)에 있는 산성
辭(사) : 이별을 아뢰고 떠나다
彩雲(채운) : 아침 노을진 구름
江陵(강릉) : 후베이성(湖北省) 장링현(江陵縣), 백제성과 강릉 두 곳의 거리는 양쯔강의 물길로 약 300㎞로 그 사이를 양쯔강은 급류를 이루며 산등성이를 돌아 흐르고 있다
啼不住(제불주) : 끊임없이 울어대다
萬重山(만중산) : 몇겹이고 겹쳐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