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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 바라밀 25주년 사회복지법인 열린가람 | ||
작고 여린 이들의 마지막 정토를 꿈꾸다 | ||
[법보신문] |
한국 불교가 걸어온 길에는 항상 복지가 함께했다. 사회복지라는 용어와 개념이 법적으로 제도화되기 이전부터,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원력을 세운 수많은 불제자들은 지역사회 구석구석의 소외된 이들을 향해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 덕분에 사찰이라는 종교적 공간은 때론 고아들을 양육하는 아동보호시설이 되었고 때론 나이 든 신도들이 삶을 회향하는 요양원이 되기도 했다.
포항 최대 규모이자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사회복지법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열린가람(대표이사 난승)의 첫발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됐다. 복지법인 열린가람의 모태는 바로 조계종 운흥사, 1986년부터 가난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의지할 곳 없는 고아 12명을 맡아 보육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복지법인 열린가람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제도권 밖에서 사찰이 감당해 온 여러 가지 복지활동들은 제도권 속에 편입되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1994년 12월 사회복지법인 열린가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관 11곳 운영, 불교복지 희망 쓰다 당시 한국사회는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겨우 자리잡기 시작한 시절이었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체계적인 복지사업을 꾸려가기가 쉽지 않았던 때였다. 이러한 가운데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복지사업들을 묵묵히 수행해 나간 결과, 열린가람은 복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포항 지역 구석구석에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며 소외된 이웃들을 한결 같이 보듬어낼 수 있었다.
운흥사 복지사업을 시작으로 꼭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열린가람은 학산종합사회복지관(1996년)부터 학산지역아동센터, 학산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정애원과 한가람, 소규모 노인요양시설 선재원, 포항자활지원센터 등 7개의 산하시설과 4개의 부설기관을 운영하는 대규모 법인으로 성장했다. 산하기관 종사자 수만 100명이 넘는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을 모두 아우르는 열린가람의 복지노하우는 새로운 복지분야를 발 빠르게 개척해 포항지역에 정착시키는 토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인 산하에 장기발전위원회, 직원역량강화위원회, 홍보전략위원회 등 세 개의 위원회를 만들어 사회복지 환경 변화에 따른 분석·연구에서부터 종사자들의 소속감 고취와 전문성 강화, 법인 인지도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뿐만 아니다. 열린가람 산하 시설들은 투명한 운영과 지역사회에 적합한 질 높은 사업 프로그램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학산종합사회복지관은 1997년 7월 전국 최초로 종합사회복지관 유형변경 인가를 받은데 이어 2006년, 2009년에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주관하는 종합복지관 평가에서 최우수 시설로 선정된 바 있다. 1999년 포항자활지원센터를 개원한 이후에는 청소년 자활사업까지 함께 성공적으로 수행, 2004년 7월 부설기관으로 경북지역 최초의 청소년자활지원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명실상부 지역 최고의 노인요양시설로 손꼽히고 있는 정애원 역시 긍정적인 평가와 지역사회 기여도에 힘입어 최근 노인요양시설 한가람을 추가적으로 신축, 개원하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2005년 열린가람의 주최로 개최된 노인일자리 박람회도 이례적인 기록이다. 당시 열린가람은 시니어클럽이나 노인복지관 등 노인일자리 관련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인자리 박람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열린가람은 같은 해 포항시니어클럽 운영에 돌입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노인일자리사업 종합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인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열린가람의 이 같은 저돌적인 성장 배경에는 어떤 원동력이 있을까. 관계자들은 지역 사회 특성으로 인해 법인설립 초반에 겪었던 다양한 어려움이 열린가람의 토대를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초기 운영시설인 학산종합사회복지관과 노인요양시설 정애원의 사례로 열린가람이 거쳐 온 어려움들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학산종합사회복지관은 기존 운영법인이 수탁 2년 만에 운영을 포기하고 신규위탁 공고가 났음에도 신청을 하는 법인이 전무할 정도로 악명 높은(?) 시설로 유명했다. 이유는 지역적 특성에 있었다. 학산종합사회복지관이 설립된 지역은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설립한 영구임대아파트가 자리한 곳이다. 주입주대상은 학산동 판자촌 주민들과 송도동 산 1번지의 무허가 건물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빈곤층으로, 경제적 도움이 절실한 것은 물론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과 폭행 사건이 줄을 이었다.
시설운영 경험이 없는 법인이 맡아 운영하긴 힘든 시설이라는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린가람은 학산종합사회복지관을 수탁했다. 소외된 중생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복지법인의 사명이며, 운영이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대표이사 난승 스님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민의 신뢰받는 복지법인 발돋움 첫 번째 사업으로 방치되어 있던 목욕탕 시설을 철거하고 컴퓨터 기능교실, 요리실습장,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공간을 확보했다. 대신 이동목욕차량을 구비해 지역사회 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주민들의 욕구조사를 실시하고 문제점을 분석한 결과, 무료급식소를 비롯해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복지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점차 학산종합사회복지관을 향한 주민들의 신뢰가 두터워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복지관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는 거점 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됐다. 2001년 별관 건립을 위한 주민동의서는 전체 주민의 95%가 자발적으로 동의, 서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인요양시설 정애원의 경우, 설립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님비 현상으로 고초를 겪었다. 착공식에서 불상에 인분을 뿌리는 등 훼불을 서슴치 않아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도 발생했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13%가 생활보호대상자, 500명 이상이 무의탁 노인이라는 지역 특성상 요양시설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전액 자부담으로 무료양로원을 건립하고자 원력을 세웠지만 혐오시설이라는 지역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열린가람은 포기하지 않고 2년간 지역주민들을 설득했다. 주민들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요양시설의 필요성을 피력해 나간 결과, 2000년 12월 진행된 정애원 개원식에는 지역주민 1000여 명이 참석해 정애원 개원을 축하하는 등 지역주민들의 관심 속에 운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열린가람을 설립하고 운영해 온 대표이사 난승 스님은 지난 25년을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부처님 가르침에 기반한 확고한 복지마인드가 있었기에 이 모든 문제들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방치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품어 냈기에 지금 지역 복지 요람으로 우뚝 선 복지법인 열린가람이 존재할 수 있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복지공동체를 희망하며 한 길만을 걸어온 열린가람은 설립 25년을 기점으로 ‘복지, 새로운 꿈, 도약으로의 초대’를 주제로 새롭게 재도약하는 25년을 설계하고 있다. 12월 10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열린가람 복지 25주년 기념법회를 마련했으며, 이에 앞서 10월 말까지 사회복지활동 사진 및 UCC공모전을 진행, 작품접수를 진행하고 있다. 054)248-6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