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무더위 앞에
장마가 물러가고 더위가 맹렬한 기세를 떨치는 칠월 끝자락이다. 보름 전에 초복이 지났고 지난주 중복을 넘겼다. 24절기에 속하지는 않지만 초복으로부터 열흘 간격으로 중복과 말복이 다가온다. 말복의 경우는 입추가 지난 ‘경(庚)’일이어야 하는 규정에 따라 해에 따라 스무날 만에 오기도 한다. 그런 말복을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올해가 그에 해당해 더위를 더 오래 타지 싶다.
연일 한낮은 폭염이 예상되는데 아침 일찍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배낭에는 얼음 생수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한 권 챙겼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불모산동에서 오는 첫차 102번 버스를 타고 소답동으로 나갔다. 거기서 창원역을 기점으로 낙동강 강가 대산면 신전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 첫차로 갈아탔다. 소형 버스에는 근교 일터로 가는 몇몇 승객과 같이 용강고개를 넘었다.
용잠삼거리에서 탄 한 아낙은 엊그제 인사를 나눈 분으로 강변 초등학교 환경미화원이다. 비정규직은 방학이라도 출근해야 적은 액수나마 급여가 나가게 되는 모양이었다. 매일같이 자연학교 등굣길에 내가 타는 마을버스는 첫차를 이용해서 무척 일찍 출근하는 편이었다. 도중에 들녘 한 초등학교로 나가는 미화원은 창원역에서부터 탔는데 거기는 요일제 근무라 오늘은 쉬는 날이다.
가술 국도를 앞둔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지날 때 승객은 거의 내려 강변 초등학교로 가는 아낙과 둘만 남았다. 어제는 신등에서 내려 들녘을 1시간 걷고 카페에서 땀을 식히며 책을 읽다가 오전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 이후에는 마을도서관에서 내내 보냈다. 날이 바뀌어도 오전 일과는 반복되는 일상인데 아침 이른 시간 싱그런 들녘으로 산책하면서 수행할 창의적 활동이 기다렸다.
25호 국도가 낙동강 강심을 가로질러 수산으로 건너는 수산대교 근처는 대산면 모산리다. 예전 국도 다리는 ‘제1 수산교’라 불리면서 소형차와 여객 버스가 통행하고 있다. 모산리 일대 들녘 벼농사 지대는 추수 이후 겨울 작물로 비닐하우스에 당근을 심어 키웠다. 지역민들에게는 벼농사보다 뒷그루 당근이 더 수익이 좋은 작목으로 종전엔 수박을 많이 가꿨는데 근년에 바뀌었다.
여름이라도 비닐하우스에 키우는 몇몇 작물이 있었다. 풋고추인 청양고추는 연중 생산이라 요즘도 외국인 인력으로 수확하고 있다. 수박이나 토마토는 당근처럼 수확을 끝내고 벼를 심어 놓았다. 초가을 추석 차례상에 올리도록 출하 시기를 조정해 기르는 멜론은 지금 비닐하우스에서 넝쿨이 한창 나가는 중이다. 그다음으로 한 스마트팜 농장에서 다다기 오이를 대규모로 가꾸었다.
올여름에 현지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가꾼 토마토로 선별에서 제외된 하품을 두 차례 챙겨와 잘 먹었다. 그 농장과 이웃한 다다기 오이 농장 주인 내외와도 인사를 트고 지내면서 처진 오리를 가져와 이웃과도 나누어 잘 먹고 있다. 지난주는 그 사례로 제과점의 과자를 한 봉지 안겨 드렸다. 그 다다기 오이 농장을 찾아가니 수확 후 선별에서 제외된 하품이 있어 가려 봉지에 담았다.
다다기 오이 수확은 거의 끝물이라 동남아 청년 둘이 지게차와 비슷해 보인 장비로 철거가 시작되었다. 한 구역은 아직 남아 주인장이 오후에 마저 따니 나중에 다녀가십사고 했는데 그럴 시간이 나질 않아 어쩌면 내일 아침 한 걸음 더 할까 싶었다. 오이 봉지를 양손 가득 들고 아침 햇살이 퍼지는 들녘을 더 걸어 가술에 닿아 편의점에 맡기고, 아침나절 주어진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동료 아동안전지킴이와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도 나는 곧장 귀가하지 않고 마을도서관을 찾아 시내 도서관에서 빌렸던 조선 후기 정조 때 일어난 영남 선비들의 ‘만인소’와 관련된 서책을 읽었다. 때가 되어 국숫집에서 콩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마을도서관을 찾아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을 펼쳤다. 당쟁으로 보내던 왕조는 오랑캐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당한 뼈저린 역사였다. 24.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