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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여왕
1492년, 유럽에서도 가장 큰 나라였던 스페인(에스파니아)은 아라곤, 카스티야와, 이슬람 세력에 700년 가까이 지배 받고있던 그라나다 등 여러 나라로 분립돼 있었다
페르디난도 왕과 아내 이사벨라 여왕이었다. 부부는 동등한 왕으로서 서로 우열을 따지지 않고 스페인을 사이좋게 다스렸다. 철저한 카톨릭 신자였던 부부왕의 애정은 어땠는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며 스페인을 당대 유럽의 최강국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같았던 이슬람 세력인 그라나다 왕국을 멸망시킴으로써 지중해를 다시 유럽인들의 품으로 돌려놓는 교두보를 마련한다.
낙원으로 알려진 인도로 가서 많은 보물을 가져와 여왕께 바칠 터이니 비용 달라는 당돌한 사람이었다.
”허풍 끼가 있어보였지만, 여왕은 이 잘생기고 저돌적인 탐험가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주변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항해 비용을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자입니다" 엔리케 왕자는 신중한 사람이라서 저자의 청을 물리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 몽상가 같은 녀석에게 돈을 대 준다 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세상을 개척하며 식민지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이제 나라 안의 복잡한 일들은 거의 해결해 놓았으니 우리도 눈을 먼 바다바깥의 새로운 세상으로 돌려야 하지 않겠나!”
그는 제노바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였다. 여왕은 콜롬버스에게 산타마리아호, 핀타호, 니냐호 등 세척의 특급범선과 승무원들, 특수인력과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120명의 죄수들을 내주었다.
지지 하에돛을 올렸다.그해 가을, 콜롬버스는 지금의 미국과 멕시코만 사이에 있는바하마 군도(群島)에 도착했다. 그는 인도인줄 착각하고 그곳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불렀다. 몇 달후 콜롬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밟았다다.
남,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됐다.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바꿔버리고 만다.
빼앗기게 되지만 멕시코서부터 바하마, 쿠바, 파나마, 칠레, 볼리비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베네주웰라, 페루 등 중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가 수 백년 간 스페인의 식민지 생활을 했거나 영향을 받았다.
감안하면 콜롬버스의 신대륙 진출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이 어떠한 지는 짐작할듯하다. 이 엄청난 인류사적 사건의 중심에는 이사벨라라는 여걸의 판단과 모험심이 작용했다.
네 나라로 갈라져 있던 스페인 카스티야의 왕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이복 오빠인 헨리4세가 왕위에 오르자 이사벨라의 목숨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
비극을 맞기도 했다. 어린 이사벨라는 참고, 견디며, 현명한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힘이 될 만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사람을 만들었다.
공인받는데 성공한다. 그 다음 그녀가 추진한 것은 적대국이었던 아라곤 왕국의 왕세자 페르디난도와의 결혼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왕이 될 페르디난도와 결합해 나라를 통일하고 힘을 키우면 아무도 우리를 견제하지 못하겠지.’당시 그녀의 일차적인 관심은 왕실의 암투를 이겨내고 생존하는 것뿐이었다.헨리4세는 이사벨라가 아라곤의 왕세자와 결혼하자 이를 트집 잡았다.
어떻게 왕위를 물려준단 말인가? 이사벨라에게 왕위계승을 취소하고 대신 내 딸에게 왕위계승권을 물려주기로 한다.”
그로부터 5년 후 숨을 거뒀다. 왕이 숨지자 카스티야 정국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물려받기로 한 헨리4세의 딸. 이 둘을 비호하는 양 세력의 치열한 암투가 시작됐다. 돌아갔고 그녀는 카스티야 정국에 오르게 된다.
왕위에 오른 부부는 사실상 스페인을 통일하고, 남쪽에서 이슬람 지배세력 하에서 신음하던 그라나다까지 병합함으로써 강력한 스페인 시대를 열었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는 애정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정략결혼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수완은 놀라웠다.
잡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부부는 1480년부터 종교개혁을 단행해 스페인 땅에서 미신을 타파하고 무슬림을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땅에 살던 유태인들이 많은 박해를 받기도 했다.
여왕과 남편은 711년부터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와 스페인을 지배했던 무슬림 세력을 몰아냈다 무려 700년간의 지배. 스페인 남부는 사실상 무슬림 제국의 영토였던 것이다.
유럽인들 것으로 가져왔다 ‘레콩키스타’라고 하는데 ‘잃은 땅의 회복 이라는 뜻이다. 이 광활한 땅의 확보는 향후 유럽의 발전과 번영에 결정적이고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사건이다.
영향 하에 있었다. 강력한 스페인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해양으로의 진출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사벨라는 어차피 터키 때문에 막혀있는 지중해를 포기하고 멀리 서쪽의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저 망망대해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다를 점령하는 자만이 승자가 될수 있다 생각하고 있는 이사벨라 여왕에게 콜롬버스가 나타났던 것이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아마도 스페인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인 아메리카대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여행전에 이사벨라 여왕에 대해 찾아봤으나, 너무나 복잡한 유럽사와 왕실의 역사와 이웃 나라와의 분쟁 종교적인 정략적인 헤쳐모임이 난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수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의 끝없는 호기심에 세계사를 다시보게됐다 다행히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쓴, 동서양사 36권을 아들 권유로 읽다 말았는데, 다시 책장에서 꺼내놓고, "게으른 선비 책장 세듯ㅎ" 다 읽으면 책걸이기념! 떡 해 먹어야 겠습니다 ㅋㅋ그때까지 오래오래 만수무강 하세요~ ㅎㅎ
2015 .5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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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세 서양사는 삼국지 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사벨라 여왕이지만 그 가족사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사벨라 여왕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매력적인 여인! 인간적인 연민! 그러나 어려움과 괴로움 속에도
세계를 주름잡고, 미국 인도 유럽 아시아를 주무르는 여걸 제왕
그런 그도 한조각 아픔은 갖고 살았다니,,,,연민도
와~~ 대단한 안순종 여사님!! 덕분에 이사벨라 여왕의 대단함을 다시한번 복습하며 긴 여행 역사공부 잘하네요.
스페인 병정하면 어릴적에 들은 기억이 나네여. 세계에서 제일 강한 군대 무서운 병정들이라고.스페인의 왕궁은 대단하드군.
방마다 대리석색이 다르고 장식의 화려함 등등
유럽, 스페인,,,시끄럽던 역사속에서 몇백년 몇천년의 유서깊고 고풍스러운 유적과 흔적과 역사를 보면서
벽면 한조각에도 길바닥 한귀퉁이도, 천장 아름다운 예술적인 건축물에서도,놀라움과 감탄으로 소중한 여행이였습니다
공주님 덕분에 서양사 공부도하고 눈 여행까지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서야 소중하고 아름다운게 뭔지 보입니다.
예전엔 수학여행 친구들과 수다 아니면 군것질 아니면, 책안보는게 좋았는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