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전을 보고 있는데 도사지역은 이에야스에게 인정받은 야마노우치계열의 무사와 이에야스에 대항하던 조소카베계열의
무사가 계급으로 나누어져 나중에 정착한 야마노치우 사무라이들이 상급사무라이, 조소카베계열의 무사들이 하급사무라이로 되었는데
이런일이 전국시대 말기에 보편적이었을거 같은데 다른지역은 왜 안보이나요?
이에야스도 간또8주로 이주할때 토착사무라이들의 저항이 거세었던걸로 알고 규슈에 정착한 가또 기요마사나 고니시도 유사한 일이
있었을텐데 유독 유신시대까지 토사지역만 이러한 구조적문제가 부각되는 이유가 뭔가요?
첫댓글 그러한 문제는 토사지역만이 아니라 다 있었지요. 우에스기, 야마우치, 가토 등등 영지가 옮겨진 다이묘들은 다 이런 문제를 겪었습니다.(고니시는 영지에 기독교인들이 많아서 괜찮았지요). 문제는 나머지 번들은 너구리 막부 쇼군의 권위를 빌려서, 그리고 자신들의 힘과 경제력을 눌렀지만 도사지역은 웅번이었다는 것이지요. 웅번들에서 유능한 하급무사들이 상급무사들을 대신하여 정치를 하며 점차 권력을 잡게 되지요.그러나 쵸수번이었던 모리가나 사츠마번이었던 시마즈가랑 다르게 토사번이었던 야마우치가는 전봉된 다이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쵸소카베계열의 하급무사들이 활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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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막말 웅번들 중에서 '전봉'된 사례는 역사 도사가 유일하네요...ㅋ 사츠마-쵸슈는 원래 그동네 살았던 애들이고, 히젠 사가번의 경우도 류조지 이래로 그 동네에서 한주먹 하던 나베시마... 근데 의외로 사가번도 크더군요. 무려 35만7천석에 지번(支藩)을 셋이나 거느린 대번... 거의 죠슈만하네요...ㄷㄷ
암스트롱포 만들고 증기선 띄우던 나베시마 나오마사가 유명하지만서도...ㅋ
어엌...ㄷㄷ 그 나베시마 지번들도 참 ㅎㄷㄷ하군요... 하즈노이케(蓮池)번이 5만2천석, 오기(小城)번이 7만3천석, 카시마(鹿島)번이 2만석... 히젠 1국에서 나베시마 빼고 가장 석고가 많은 시마바라번이 꼴랑 7만석에- 유일한 후다이인 가라츠번이 6만석이니...-_-;
애시당초 도사로 들어온 야마우치 일족의 세력이 그닥 강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도사 초대번주인 야마우치 카즈토요는 도토미 가케가와의 6만석급 영주였는데, 세키가하라 이후 도사 1국 24만석으로 무려 4배나 큰 땅을 받았죠...^^; 유문기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막말 웅번들 중에서 이런 사례는 없습니다. 죠슈나 사츠마의 경우는 대대적으로 감봉당했지만 이전의 가신단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기반세력'이 상당히 크고 강했고, 우에스기의 데와 요네자와 번의 경우도 세키가하라 이전에 유지하던 100만석급 가신단을 꼴랑 30만석의 영지에서 부양하느라 에도 중기가 되면 파산할 지경에 이릅니다...-_-;
상황이 이렇다 보니(간단히 말하면, 야마우치 떨거지들이 조소카베 보다 쪽수가 안된다는...), 도사번의 경우는 아예 구조적으로 조소카베 출신들을 하위신분에 묶어두고 [차별-구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겁니다. 때문에 상사(上士)와 하사(下士) 사이에 수많은 신분계층과 가격(家格)을 복잡하게 만들고 엄청나게 차별하게 되는 것이죠...-_-; 막말 풍운의 도사근왕당 수반이었던 다케치 즈이잔의 경우는 하사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시로후다'였는데도 정치참여가 쉽지 않아 갖은 편법을 찾지않으면 안되었습니다...-_-;;
지배자의 위치가 불안해서 오히려 강한 신분제로 억압했다는 거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