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영성체 교리를 담당하는 어떤 선생님의 고민이다. “신부님, 아이들에게 성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신학적 설명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삶을 인도해주신다는 믿음을 갖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집이나 그릇으로 비유해보면 좋겠네요. 아무리 화려한 집이라도 걸인이 살면 걸인의 집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리 초라한 집이라도
대통령이 살면 대통령의 집이 되잖아요. 같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석이 담기면 보석함이 되지만,
쓰레기가 담기면 쓰레기통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렇듯이 우리 몸 안에 성령이 담기면 우리 몸은 성령의 집(성전)이 되지만,
나쁜 욕심과 생각으로 가득차면 쓰레기통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면 어떨까요?”
레지오 마리애의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 요한 23세께서 우리의 기도가 너무 형식적임을 지적한 적이 있다. “사제와 평신도들이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외우지만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정신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못지않게 ‘성령 청원 기도’를 많이 바치는데,
성령께서 밝혀주시는 신앙진리를 따르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신앙여정에 충실한가를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만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실제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신앙여정이 아니라
자꾸만 세속주의의 늪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면 이는 큰일이다.
언젠가 명품신앙을 강의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사과 씨에는 사과나무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안에는 그리스도라는 정보가 충만하게 들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사과씨앗이 작지만, 자라고 자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신앙여정이 그리스도라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세속화로 치닫는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자주 안타까워하셨는데, 다음의 말씀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탄탄한 교리적 영성적 확신을 지닌 이들마저 선교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헌신하기보다,
흔히 경제적인 안정에 매달리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이나 인간적인 영예를 얻으려는 생활 방식에 빠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복음의 기쁨’ 80항)
성령께서 역사(役事)하시는 신앙여정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령을 청하는 기도가 자신들 안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늘 새롭게 한다는 믿음을 제대로 가지면 좋겠다.
“……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로마 8,14)이고, “하느님의 성전”(1코린 3,16-17)이고,
“성령의 성전”(1코린 6,19)이라고 확신에 차 말씀하셨다.
“대통령의 집”에는 대통령이 거주한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 “성령의 성전”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그래서 다음 두 성경구절이 힘이 있는 것이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 17,14).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1코린 2,12)
그러나 성찰을 통한 우리의 실제 모습은 사뭇 성경구절과 다른 모습니다.
우리의 심보와 생각과 말과 행동의 습관이 ‘세속’ 쪽으로 많이 기울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 집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대통령을 잘 모실까 늘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식주 취향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통령을 잘 알아야 잘 모실 수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 ‘성령의 성전’이라고 말을 한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모른다면 과연 그렇게 “~성전”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요한 14,15)하셨는데,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0-11)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진리의 영”(요한 14,17)의 인도를 받아야 우리는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요한 17,17)을 깨닫고,
아버지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요한 1,14)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알고, 참되게 믿을 수가 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 고백하지 않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있을 수 없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고백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여정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이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1코린 12,3) 불가능하다는 성경 말씀을 깊이 통찰하여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새로운 각성(覺醒)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참고, 요한 17,16)라고 하셨는데, 실제의 우리는 점점 더 세속풍조에 동조하고,
또 동화되어가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 시작기도를 바칠 때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25)
는 사도의 말씀을 늘 마음에 각인시키면 좋겠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삶이 1요한 2,6의 말씀처럼 점점 더 많이 그리스도의 삶을 닮을 수 있다.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속으로 더 많이 기울어지기 전에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신앙여정을 가꾸어야 한다는 각성을 해야겠다.
이렇게 보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라고 바치는 레지오 시작기도는
성령께서 우리의 인생여정을 신앙여정으로 바꾸어주시는 참으로 중요한 기도이다.
“복음에 반대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니,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 말씀의 지혜와 진리의
힘으로 인도되게 하십시오.”(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아시아 청년들과 만남’에서 하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