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재량활동
지난 토요일 아침 끝물 장맛비가 흩날린다 싶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후 연일 폭염 특보가 내려지면서 야외 활동을 자제하십사는 안전 문자가 날아든다. “강수량 편차 심한 장마는 종적 감춰 / 보내기 아쉬운데 여운도 남지 않아 / 한낮은 불볕더위에 열대야로 지샌다 / 자고 난 아침이면 동녘에 비친 구름 / 모였다 흩어졌다 소나기 기대 못해 / 중천에 솟구친 해로 복사열만 뜨겁다”
앞 단락 ‘한여름 적운’은 사진과 함께 지기들에게 안부를 전한 아침 시조다. 올해 장마 기간 국지성 호우로 피해를 안겨준 곳이 있다지만, 우리 지역은 비가 좀 더 내려주어도 될 만큼 강수량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장마 틈새 내가 잠시 다녀온 불모산이나 장유계곡은 물이 적어 바닥만 깔려 흘러가는 정도였다. 내가 사는 동네와 가까운 도심을 흐르는 창원천도 마찬가지였다.
칠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은 주중 수요일이다. 공단이 밀집된 창원에서는 여름휴가로 가동을 중단한 공장이 다수지 싶다. 그와 함께 시내 상가들도 철시에 들어 덩달아 며칠 쉬어 도심 거리에 오가는 차량이 한산할 정도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이른 시간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불모산동을 출발해 월동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소답동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근교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에는 몇몇 승객들과 같이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을 지났다. 용잠삼거리와 행정복지센터를 거치면서 승객을 더 태워 주남저수지에서 들녘을 거쳐 대산 산업단지에 이르니 거의 내렸다. 나는 어제와 같이 가술 거리를 지나 제1 수산교를 앞둔 신성주유소에서 내렸다. 연이틀 다다기 오이를 따내는 농장을 찾아 선별에서 제외된 처진 오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모산리 현지 농장주가 스마트팜 영농법 수경재배로 가꾼 오이 수확은 거의 끝나는 즈음이다. 어제 들렀더니 주인장이 오후에 마지막으로 수확하니 한 번 더 다녀가도 좋을 듯하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포장에서 제외된 오이들은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작을 뿐이지 영양으로나 먹는데 정품 오이와 비교해도 모자람 없다. 내가 챙겨간 오리는 우리 집은 물론 지기들과 나누어 잘 먹고 있다.
모산리는 벼농사보다 비닐하우스로 특용작물을 더 많이 가꾸는 들녘이다. 여름 이후 풋고추를 따려고 고춧대가 한창 자라는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들녘 농로를 따라 걸어 오이 농장을 찾으니 수집 상자에는 하품 오이가 채워져 있어 그 가운데서 일부를 가려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슨 작업을 하다가 나타난 주인 내외와 인사를 나누었더니 더 크고 반듯한 오이를 챙겨주어 고마웠다.
보조 가방과 비닐봉지에 오이를 가득 채워 양손에 들고 들녘에서 죽동천 천변 따라 가술까지 걸었다. 아침 햇살이 퍼지는 즈음이라 볕이 뜨거워 땀을 좀 흘리긴 해도 일과가 시작되기 전 창의적 재량활동으로 여겼다. 미력이나마 나의 작은 힘으로 지기들에게 싱싱한 오이를 안겨주는 설레는 기대감이 앞섰다. 가술에 닿아 오이는 편의점에 맡겨두고 아침나절 정해진 과제를 해결했다.
아동안전지킴이 역을 수행하면서 방학을 맞아 정적이 감싼 시골 학교 교정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일손이 미치지 못해 제초와 전정이 제대로 안 된 뜰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왔을 미국미역취가 노란 꽃송이를 밀어 올렸다. 둥근 화분에 심어져 피어난 부처꽃은 뙤약볕에도 시들지 않았다. 조경수로 낮게 자란 망종화는 거의 저물어 몇 송이만 달려 있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들린 마을도서관에서 앞서 수집한 오이를 사서에게 안겼더니 반가워했다. 열람실에는 내 말고 다른 이용자가 아무도 없어도 에어컨은 가동되어 오후까지 시원한 곳에서 독서삼매에 빠져 김훈이 예전에 남겼던 ‘남한산성’을 완독했다. 날이 저물기 전 아침에 맡겨둔 오이 봉지를 챙겨 시내로 들어와 꽃대감을 만났다. 친구는 밀양댁 안 씨 할머니한테도 보냈을 테다. 2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