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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자료실 스크랩 花王 모란 / 한국의 화목(花木)
Bliss Kim 추천 0 조회 69 18.02.14 10: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국의 화목(花木)

 

 

 

 

花王 모란, 부귀영화의 기원을 담은 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中-


벌써 봄이 그립다. 여름이 언제 왔나 싶더니 장마가 한창이다. 만발하던 모란꽃은 이제 지고 없다. 왠지 여름에 만개할 것 같은 모습을 지닌 꽃이지만, 모란을 볼 수 있는 시기는 겨울을 이겨낸 봄, 그 잠깐이다. 5월 한 달여 그 모습을 드러내고는 이내 사라져버린다. 진 자색 꽃잎은 겹겹이 벌어져 풍성히 층을 이루고 그 안으로 노랗게 총총히 모인 꽃술들이 새색시처럼 수줍게 앉아 있다.

 

‘花中王’. 예부터 탐스럽고 화려한 자태로 인해 꽃 중의 꽃으로 손꼽혀 불리던 이름이다.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어 부귀와 영화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모란(牧丹)은 ‘牧(수컷모)’와 ‘丹(붉을 단)’이 합쳐져 된 한자어이다. ‘牧丹’이 유음화하여 ‘모란’으로 발음된 것이다. 모란을 목작약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모란이 작약과 비슷하고 목본(木本)이기 때문이다.

 

모란이 ‘花中王(花王)’이라면, 작약은 모란 다음이라는 의미에서 ‘花相’이라고 했다고 한다. 1)

 

 

 

모란_ⓒ 중앙대학교 문화산업연구소, (주)누리미디어

 

 

작약_ⓒ 최민정

 

 

모란은 당 현종의 귀비(貴妃)를 노래한 이백(李伯)의 청평조사(淸平調詞)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조는 당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침향정(沈香亭)에 심어진 모란꽃을 보고 이백에게 시를 지어보라고 명했을 때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지은 것이다. 이백은 시조에서 ‘구름을 보면 귀비의 의상을 상상하고, 모란을 보면 귀비의 용자(容姿)를 생각한다.’ 하여 양귀비의 미모를 모란에 비유했다. 이러한 연유에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여인을 모란꽃에 비하기도 한다.

 

모란은 『화암수록』의 <화목구품(花木九品)>에서 1품인 송(松)ㆍ죽(竹)ㆍ매(梅)ㆍ연(蓮)ㆍ국(菊)과 구분하여 2품으로 되어 있다. 모란은 중국에서 진평왕 때에 신라에 들어왔다.

『삼국사기』 선덕여왕조에 보면,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얻어온 모란꽃의 그림과 종자를 보고 선덕여왕이 말하기를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으리라"라고 하였다. 진평왕이 웃으며 말하되 "네가 어떻게 아느냐" 하니, 선덕여왕이 답하기를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기 때문에 압니다. 대개 여자로서 국색(國色)이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으로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라다니는 까닭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모란종자를 심어보니 과연 여왕의 말과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유사』선덕왕(善德王) 지기삼사(知機三事)조에 보면 당나라 태종이 홍(紅),자(紫), 백(白)의 모란 그림과 그 씨 석 되(三 되)를 보내왔다고 하였다.

 

이 사실들은 모두 당태종이 즉위한 627년부터 진평왕이 죽은 631년 사이의 일로 모란이 중국에서 신라에 들어온 것임을 알려준다. 중국에서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이 꽃을 좋아하여 궁중에 심은 이래 당대의 상하가 모두 이 꽃을 좋아했다고 한다. 주돈이는 그의 『애련설(愛蓮說)』에서 “당나라 때부터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심히 사랑한다.”라고 한 바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랑을 받은 모란은 중국에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널리 심어졌으며, 전통 예술작품에서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민예품에 나타난 목단문양 연구(안동숙, 1980)2)에서는 모란문양이 민화, 능화판, 도자기 등에 쓰여 부귀의 상징으로 길상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하였다. 모란은 결혼식 등에 쓰이는 병풍과 도자기, 의복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보인다. 이는 꽃의 아름다움과 형태가 예술품에 그려 넣기에 좋은 소재가 되고 빛깔이 화려하고 고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모란 병풍은 일반 사가(私家)의 행사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왕실에서의 종묘제례, 가례(家禮, 왕실의 혼례), 제례(祭禮) 등의 주요 궁중 의례 때 사용되었다. 이렇듯 궁중에서는 모란을 ‘부귀영화(富貴榮華)’의 의미에서 나아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원하는 상징으로까지 여겼던 것으로 여겨진다.

 

 

혼인식에 쓰인 병풍에 모란꽃을 그려 넣은 것이 보인다. ⓒ한국회화대사전

 

 

 

모란도 4폭 병풍, 위와 같은 큰 규모의 모란 병풍은 궁(宮에)서 애용되어 궁모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청자상감모란문주자(靑瓷象嵌牡丹文注子) 몸체 골마다 모란 문양을 그려 넣었다.

ⓒ ㈜누리미디어

 

 

 

모란문양은 기와에도 사용되었다, 청자모란꽃새김무늬막새_ⓒ ㈜누리미디어

 

 

또한, 상징성을 중심으로 본 중국융단의 문양 연구(한은혜, 1984)3)에서는 모란문양을 부귀한 기품과 부, 사랑과 호의, 희소식을 가져다주는 사자(使者)의 상징이라 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사랑의 상징으로 모란이 다양한 길의 상징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허연(許鍊)의 묵모란첩 8폭 중 네 번째와 두 번째 그림.(출처: 한국회화대사전)

 

 

분청사기 문양의 상징성(홍찬효, 1993)4) 에서는 모란은 화목한 가정을 의미하고 이 모란이 넝쿨과 결합하게 되면 부귀, 출세, 명예 등의 기원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또한, 민간신앙요소로서는 현실적인 기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결혼식 예복에도 모란을 수놓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모란이 부와 고귀함, 그리고 봄을 상징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5)

 

 

 

활옷모란문 ⓒ 이화여자대학교 색채디자인연구소, (주) 누리미디어

 

 

모란은 문학작품에서도 눈에 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모란은 왕족과 귀족들의 꽃으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고려 사대부의 노래인 『한림별곡』에서도 ‘홍모란, 백모란, 정홍모란’을 꽃 중에서 첫째로 꼽고 있으며, 이규보도 『절화행(折花行』에서 모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牡丹含露眞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청빈과 절의를 표방한 조선 사대부 정신에 따라 선비들은 모란을 내치고 사군자를 추구하였다. 조선의 대표적 사대부 가운데 한 사람인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은 ‘눈 온 뒤의 한매(寒梅)와 비 온 뒤의 난은, 보기는 쉬우나 그리기는 어렵다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들지 못함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차라리 연지를 가지고 모란이나 그릴 것을()’이라고 하여 부귀와 권세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모란을 빌어 통탄하였다. 이처럼 일부 사대부들에게는 배척당하던 모란이었지만 세속인들에게 모란은 여전히 화왕으로 받들어지며 사랑을 받았다.

 

모란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해왔다. 이렇게 우리네 선조들의 사랑을 받은 모란꽃이었는데 지금은 서양 꽃들에 밀려 그 인기가 삭으러 들은 것 같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모란을 예술의 소재로 사용한다. 모란만의 긍정의 기운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다양한 모습으로 풀어낸다. 모란이 만개할 때쯤인 지난 6월에는 청담동에서 모란을 주제로 한 전시도 열렸다. ‘부귀와 길운의 기원, 모란 祭’라는 이름으로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모란을 이야기한 전시회이다.

 

 

 

한옥란, The life of flowers, Plitinum & palladium print_봄갤러리 제공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우리의 꽃, 모란. 그 꽃을 전통과 맞물려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회는 오는 18일까지 청담 봄갤러리에서 계속된다고 하니 이번 주말 모란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봄이 금세 지나버린 여름인지라, 모란꽃은 더 이상 지고 없다. 당장 눈앞에서 꽃잎을 활짝 펼쳐낸 모란의 자태를 감상할 수 없음이 아쉽다. 그러나 김영랑 시인의 시 구절처럼, 찬란한 봄을 기다릴 수 있는 기다림의 미를 선물해주는 모란에게 새삼 고맙다. 기다린 끝에 맞게 될 내년 봄에는, 주변 사람에게 모란꽃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모란, 그 길운의 기원을 담아서 말이다.

 

 

1)『한국문화상징사전 2』, 동아출판사, 1995

2) 안동숙, 『이조시대 민예품에 나타난 목단문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80

3) 한은혜, 『상징성을 중심으로 본 중국융단의 문양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4) 홍찬효, 『분청사기 문양의 상징성』,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5) 박영진, 『한국문양의 주제분류를 통한 변천연구』,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글 오소미 기자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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