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머문 절집
끝물 장마가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사라졌다. 연일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가운데 팔월이 시작된 첫날이다. 순환하는 계절의 더 작은 나침이 될 절기는 대서가 지났고 일 주 후 입추가 기다린다. 한여름을 열흘 단위로 삼등분하는 복날은 초복과 중복을 넘겼고, 말복은 입추 후 경일이어야 하는 책력 규정에 따라 올해는 중복으로부터 스무날만인 월복이라 입추 일주일 후에 들었다.
주중 목요일 새벽녘 잠을 깨 인터넷으로 기상 예보를 검색해 봤다. 일주 단위로 내다본 주간 예보에는 우산 표시는 그려지지 않고 연일 해만 그려진 채 체온보다 높은 최고 기온에 열대야 기준을 상회하는 최저 기온이었다. 태풍의 둥지라고 일컫는 해수온이 높은 필리핀 근해나 오키나와 제도다. 거기서 태풍이라도 생겨 우리나라로 비바람을 몰아왔으면 싶은 성급한 기대를 해봤다.
날이 밝아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창원이 공단을 낀 지역임은 이즘이 휴가철이라 출퇴근길 도심 거리 차량이 한산함에서도 알 수 있었다. 불모산동에서 첫차로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소답동에서 내렸다. 마산을 거쳐 와 대산을 둘러 본포 강가로 가는 41번 버스를 탔다. 평소 자주 탄 1번 마을버스와 일부 노선만 겹쳐 신선감이 따랐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난 주남삼거리까지는 1번 마을버스와 같았다. 이후는 주남저수지를 비켜 화목과 동전을 거쳐 용산마을 입구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는 저지대 논에 뿌리를 캐려고 키우는 연은 잎이 무성했고 꽃망울은 저물어 갔다. 주남저수지 가장자리 갯버들은 떠오르는 아침 해로 옅은 안개가 걷히면서 원시림 같은 무성한 숲을 연상하게 했다.
봉강에서 용연을 지난 산남마을에서 내렸다. 들녘 가운데 야트막한 산을 등진 남향이라 ‘산남’이라 붙여진 지명이었다. 거기는 청동기를 다뤘던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남은 마을이다. 주남저수지와 수문으로 연결된 ‘산남’ 저수지는 그 마을에서 가깝다고 그렇게 붙여졌다. 마을 앞길을 걸으니 한 할머니가 이슬이 내린 고추밭에서 기온이 선선한 새벽부터 나와 붉은 고추를 따 모았다.
농수로에는 벼들이 자라는 논으로 보낼 물이 넉넉하게 흘렀다. 멀지 않은 곳에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가 줄지은 포장도로가 바라보였다. 용산과 합산을 거쳐온 길을 건너 들판으로 나아가니 특용작물을 가꾸는 대형 비닐하우스단지였다. 얼마 전까지 무슨 작물을 가꾸다가 새로운 모종을 심으려고 준비했다. 나아가던 농로에서 더 이상 길이 없이 막다르게 막혀 논두렁과 밭뙈기를 거쳤다.
시야에 보이던 메타스퀘이아 길에서 윗대방을 거쳐 대방으로 갔더니 대산 일반산업단지와 아파트단지가 드러났다. 아까 버스로 둘러 온 주남저수지가 아스라했고 벼들이 자라는 논이 펼쳐졌다. 대방마을 어귀에는 싸움소를 기르는 공터와 단련시키는 훈련장이 나왔다. 뾰족한 뿔을 드러낸 덩치 큰 황소 세 마리가 고삐 묶여 눈을 껌벅거리며 꼬리로 파리를 쫓으면서 되새김질했다.
대산 산업단지 배후도로를 따라 걸으니 가로수가 드리운 그늘을 지나 더위를 잠시 잊었다. 가술 거리 일찍 문을 연 카페에서 찬 커피를 받아 땀을 식히며 배낭에 넣어간 ‘무정설법, 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를 꺼냈다. 봉사활동으로 정한 시각까지 냉방이 된 카페에서 머물다가 아침나절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등하교하지 않은 거리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정적이 감돈 교정에서 어제 야생화에 이어 새로운 꽃을 두 가지 찾아냈다.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랗게 피어난 금불초가 기특했다. 운동장 가장자리 오래전 조성한 습지 생태학습장은 묵혀져도 벌개미취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순찰 임무를 마치고 마을 도서관을 찾아 유철상의 ‘아름다운 사찰여행’을 펼쳤다. 오후는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사찰 순례’ 편을 읽었다. 2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