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릉과 장릉]
ㅡ대체 휴일ㅡ
오늘 '코로나 19' 확진자 1515명이라는 보도다. 백신 접종자가 늘어도 확진자가 들쭉날쭉이다. 22개월에 접어드는데 좀체로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를 피하는 게 방법이다. 가능하면 혼자 다니는 습관을 익히고 있다.
왕릉마다 '한방향 걷기' 코스가 있어 청명한 날은 왕릉 숲길이 제격이다. 흐린날은 도성길이 편리하다. 아침 하늘을 올려다 보니 심상치 않다. 서쪽에서 검은 구름이 계속 밀려온다. 비소식이 있어 왕릉 관람에 갈등을 느낀다.
서울 의릉懿陵과 파주 장릉長陵은 개천절 대체 휴일이어서 월요일도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먼저 서울 의릉으로 나선다. 6호선 들곶이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의릉으로 향한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에 가린다. 능 입구에 들어서면서 정자각이 가까이 있어 많이 걷지 않는다. 능이 바로 뒤에 있다. 우측에 비각만 있고 재실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다.
능 뒤로 '한방향 걷기' 코스가 환상이다. 코로나 방지 효과의 방편이다. 햇빛이 없어 사진 찍기가 좋다. 이슬비가 내려 다시 돌아 내려왔다. 숲과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어 관리팀에게 박수를 보낸다.
ㅡ동원상하릉ㅡ
경종은 숙종과 옥산부대빈(장희빈)의 아들이다. 36년을 살다 떠난 경종이 우여곡절로 20번째 앉은 왕의 자리는 4년이다.
경종이 묻힌 의릉은 동원상하릉이다. 경종은 위에 있고, 17년 어린 두 번째 왕비인 선의宣懿왕후는 바로 아래에 누워있다. 흔히 보기 드믄 왕릉이다.
동원상하릉이 또 있다.
인조의 아들인 17대 효종(봉림대군)과 인선왕후 장씨가 묻힌 여주 영릉寧陵이다. 보통 가로 놓인 능과 달리 세로형이다.
왕릉은 쌍릉과 합장릉, 단릉 등 다양하다. 의릉 관람을 마치고 파주로 가기 위해 점심 때 쯤 전철에 올랐다. 휴일 전철은 한산한 편이다.
ㅡ파주 장릉으로ㅡ
공덕역에서 경의선행을 갈아 타고 금촌역에 내리니 오후 2시다.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흐른다. 부근 신촌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장릉삼거리로 향한다. 차로 15분 거리다. 버스에서 내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을 10여 분 정도 걸었다. 장릉 가는 길은 한산하다. 산모퉁이에 들어서니 장릉長陵 정문이다. 조선 제16대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가 잠든 능이다.
변화무쌍한 기후가 마음을 흔든다. 강한 바람은 연신 비구름을 몰고 온다. 습지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오른편에 있는 재실을 지나면서 홍살문이 보인다.
능을 감싸고 있는 장송은 유난히 검푸른 빛깔이다. 깔끔하게 빗은 대장부의 머리가 연상된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강한 바람이 솔밭 사이를 스치니 머리가 휘날리는 모습이다.
새들이 비를 맞으며 능 주위를 맴돈다. 향ㆍ어로가 다른 능에 비해 배가 된다. 양쪽으로 신하들이 걷는 변로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관람 중 다행히 비가 잦아든다. 넓은 왕릉에 관람객이 두 세가족 뿐이다.
ㅡ동명릉ㅡ
장릉은 세 곳이 있다. 영월 장릉莊陵은 단종이 묻혔다.
인조의 부모인 추존왕 원종과 인현왕후가 잠든 곳이 김포 장릉章陵이다.
파주 장릉長陵은 인조와 인렬왕후의 능이다. 부자가 서로 근거리에 있다. 망자끼리 소통도 가까울수록 용이할까.
여주는 세종과 소현왕후 심씨의 영릉英陵(합장릉)과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가 묻힌 영릉寧陵(동원상하릉)이다. 이름이 같은(동명릉同名陵)능은 한문을 잘 살펴야 한다.
어제 신문에 김포 장릉章陵이 기사로 실렸다. 심각한 사연이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문화재가 있는 곳은 반경 5백미터 이내에 높이 20미터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필히 사전에 문화재청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준공을 앞둔 3400여 가구의 아파트 단지다. 문화재청에서 늦게 알게된 후 이의를 제기했다.
파주 장릉이 있는 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주위는 논과 밭이다. 도시가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 두 부부는 파주 장릉에서 편안한 사후 세상을 보낸다.
폭정에 불만스런 서인 세력이 인조반정을 일으킨다. 집권 세력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광해군을 폐위한다.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는 청나라 태종에게 수모를 당한다. 한 나라의 왕이 위기가 닥치자 도성을 비우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머리를 아홉 번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 수치스런 기록을 역사에 남긴 왕이다. 26년간 재위하고 세상을 떠나 파주 운천리에서 이장해 장릉에 누웠다.
"잘못한 선왕 탄핵
정치는 교학상장
스스로 뉘우치면
하늘이 사면한다
역사를
이어온 왕은
민초들의 본보기."
ㅡ심술쟁이ㅡ
비바람을 예측 못해 발걸음을 돌린다. 정남향인 재실 담장 둘레의 규모가 큰편이다. 대궐집 느낌이다.
뜰 앞의 키가 큰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다정스럽다. 붉은 대추가 땅에 수북하다. 멈추던 비가 다시 내린다. 담장 밖 느티나무들은 수령이 상당해 보인다
비바람이 연신 불어 마음이 급해진다. 관람을 마치고 4시 쯤 능의 문을 나선다. 한적한 시골 마을길은 가을 냄새가 난다. 비바람이 제법 우산을 적신다.
곧 베어야 할 벼이삭이 강풍强風에 누웠다.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1km 빗길을 걷는다. 대중교통이 없는 구간이다. 오후 5시가 넘어간다. 서울 의릉과 파주 장릉의 관람을 끝내고 금촌역에서 전철에 올랐다.
체력 단련을 하기 위해서 매일 2만보 이상 걷는다. 어두워서 돌아온 내게 한마디 던지는 아내. "즐김도 좋지만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고 질타한다.
겨울 산행 때 고관절 손상으로 10년의 후유증을 떠울리면 자유롭게 걷는 것도 행복이다. 두 시간 관람, 왕복 아홉시간으로 마무리 한다.
202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