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형철의 풋볼스토리 44번째 이야기 : 2013 슈퍼매치의 핵심 키워드는 정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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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슈퍼매치가 끝났다. 한 해 동안 펼쳐진 4경기의 슈퍼매치에서 핵심 키워드로 어느 것을 꼽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FC서울이 9경기 연속 슈퍼매치 무승 징크스를 깨뜨린 것, 무려 8년 만에 서울이 수원을 상대로 상대 전적에서 앞선 채 시즌을 마감한 것, 시즌 초 잠깐 반짝였던 전 수원 감독 ‘윤성효’ 부적의 효과 등 양 팀을 둘러싼 한 해 동안의 다양한 스토리와 이슈 중 어느 것이 올해를 대표할 핵심 키워드인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나는 정대세를 2013 슈퍼매치의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K리그 무대에 데뷔한 이후 갖게 된 첫 번째 슈퍼매치에서 당혹스런 퇴장을 당하며 워스트로 꼽혔지만, 이후 맞대결 경기에서 전화위복하며 단숨에 서울의 공공의 적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핵심 키워드는 FC서울의 놀라운 2013 슈퍼매치 선전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정대세가 서울을 상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활약상과 그동안 불러 모은 인지도 등을 고려해서 정대세 또한 핵심 키워드로 조명 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사다난했던 정대세의 슈퍼매치 첫 시즌, 출전했던 3경기에서 핵심 키워드 정대세의 활약상은 어땠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 2013년 4월 1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 : 첫 번째 슈퍼매치.
“갑작스런 퇴장, 과도한 의욕이 화를 부르다.”
슈퍼매치가 열린 4월, 정대세에겐 다사다난 했던 한 달로 기억될 것이다. 4월의 첫 경기였던 ACL 32강 가시와 레이솔 전부터 정대세는 PK 2개를 놓치며 팀의 2 : 6 패배를 안방에서 지켜봐야 했다. 오랜 시간 염원해왔던 국내 무대 데뷔 골의 기회도 미뤄야했다. 하지만 정대세는 바로 다음 경기였던 대구와의 리그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2012년에 입단한 쾰른에서 1년 가까이 무득점에 그치며 골 맛이 그리웠던 정대세는 이 날의 골로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일주일 뒤 열린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정대세는 의욕이 앞선 과도한 행위로 인해 갑작스레 퇴장을 당하며 또 다시 슬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슈퍼매치를 앞둔 정대세는 차두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슈퍼매치에서 죽을 각오로 열심히 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독일에서도 슈퍼매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 경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였다. 정대세는 서울을 상대한다는 것에 강한 의욕을 느꼈고, 결국 과도한 의욕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 큰 화를 불렀다. 시작부터 정대세는 김진규에게 거친 파울을 하며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경고를 받은 정대세는 이후 서울의 골키퍼 유상훈이 공을 잡은 상태였음에도 뒤에서 다가가 유상훈의 다리를 걷어차 또 다시 경고를 받았다. 결국 정대세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수원 홈팬들의 당황스런 시선을 맞이해야만 했다. 고작 전반 38분에 있었던 일이었다.

(△ 경기장의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정대세가 유상훈 골키퍼를 걷어차는 순간, 경기장 전체에서 당황스런 탄식이 나왔다.)
이 날 경기를 앞두고 정대세를 보러온 팬들의 수는 엄청났다. W석에 앉은 주변에 팬들도 “대세 형! 대세 형!”을 연호하며 정대세를 목청껏 응원했다. 하지만 이 날의 황당한 퇴장으로 인해 경기장에 온 관중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정대세는 이 날 경기의 워스트, 서울 팬들에겐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슈퍼매치에 열정적으로 임한 것은 좋았지만, 열정이 큰 화를 불러 팀 전체에 문제를 끼치게 됐다. 팀은 다행히 후반 종료 직전 극적으로 터진 라돈치치의 헤딩 골로 인해 1 : 1 무승부를 거뒀지만, 경기를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정대세는 팀원들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후 바로 뛰게 된 대전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정대세는 인터뷰에서 동료들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하며 그동안 자신이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을 시원하게 털어놨다. 이렇게 정대세의 첫 번째 슈퍼매치는 정대세에게 큰 상처와 고민을 안겨준 채 끝이 났다.

#. 2013년 10월 9일 (@수원 월드컵경기장) : 세 번째 슈퍼매치.
“‘석고대죄’ 멋지게 전화위복하다.”
첫 번째 슈퍼매치에서 퇴장을 당한 정대세는 아쉽게도 부상으로 인해 8월에 열린 2013 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에 출장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슈퍼매치에서 서울은 수트라이커(아디, 김진규)의 활약에 힘입어 2 : 1 승리를 거두고 9경기 연속 수원전 무승 징크스를 깨뜨렸다. 드디어 수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만큼, 서울 팬들 사이에서는 다음에 열릴 세 번째 슈퍼매치에서도 연승을 가져가자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비록 서울은 ACL 4강 2차전 에스테그랄 원정 경기로 인해 이 날 세 번째 슈퍼매치에서 최전력으로 맞설 수 없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라이벌 전인 만큼 최선을 다해 수원에 맞서 싸웠다.
한 편, 이 날 경기를 기다리던 정대세의 준비 역시 남달랐다. 첫 번째 슈퍼매치에서 어이없이 퇴장을 당한 만큼, 이 날 경기에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지난 퇴장의 아픔과 잘못을 씻고 팬들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이 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팬들에게 ‘석고대죄’ 세레머니를 하겠다는 인터뷰도 남겼다. 마침 부상에 복귀한 이후 포항과의 전 경기에서 홍철의 크로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한 만큼 득점력도 나쁘지 않은 때였다.
정대세는 이 날, 후반전 산토스가 선제골을 터트린 이후 곧바로 교체 투입됐다. 교체 투입된 정대세는 남은 체력을 무기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후반 37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염기훈의 크로스가 굴절돼 곧바로 정대세에 연결됐고, 정대세는 서울 수비진을 등진 상황에서 돌아 나오며 기습적인 오른발 슛을 날렸다. 순간적인 턴 동작과 빠른 움직임, 결정력 이 세 가지가 모두 더해진 아름다운 골이었다. 지난 퇴장을 만회하는 쐐기골을 터트린 정대세는 약속대로 N석으로 다가가 프렌테 트리콜로를 향해 석고대죄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수원 팬들은 환호와 박수로 정대세의 퍼포먼스에 응답했고, 첫 번째 슈퍼매치에서 벌어진 정대세의 실수는 이렇게 깔끔하게 용서됐다. 서울의 서포터즈 ‘수호신’ 입장에서는 드디어 정대세의 참맛을 알게 된 가슴 쓰린 장면이었다. 슈퍼매치 첫 골! 마음의 부담을 모두 떨치게 된 정대세는 이렇게 올 시즌 세 번째 슈퍼매치를 아름답게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