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엽서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 지긋 지긋한 조선총독부와 동본원사 (東本願寺)라고 하는 일본 절이 있던 사진이다. 여기에 뒷날 KBS 남산방송국(라디오, TV)이 세워져 19년간 남산방송 시대를 이어갔다.
KBS 남산방송국 터와 조선 통감부, 총독부, 동본원사(東本願寺) 터
그 자리는 일본인들이 왜성대 倭城臺라고 부르면서 주동, 남학동 이라고 불리던 행정구역도 倭城臺町이라고 바꿔버린 그 자리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점령한 일본이 이 자리에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했던 연유로 붙여진 왜성대에 공사관을 짓고 침략의 마수를 더 해 가면서 통감부 총독부로 키워가면서 조선을 못살게 굴던 곳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두 개의 작은 석비가 세워져 있다. 통감부 터와 김익상 의거 비가 그것이다.
한. 일 수호조약으로 일본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1893년 남산 언저리에 공사관을 세웠고 뒤이어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이겨 조선의 내정에 본격적으로 간섭하면서 1906년 공사관을 통감부로 바꾸고 1907년 2층으로 된 새로운 통감부 청사를 지으면서 이 부근에 통감관저도 새로 세웠다. 1910년 한.일 합방으로 통감부는 총독부가 되어 1893년 공사관으로부터 33년간 조선을 집어삼킬 공작을 벌리고 마침내 자기들 식민지로 만들어 조선 사람들을 옥죄던 그 총독부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경복궁 뜰에 지은 총독부는 1926년부터 이 땅에서 물러날 때까지 19년간 이어졌다. 총독부가 경복궁 앞뜰로 옮겨간 뒤 그 건물의 내부를 개조해서 1927년 5월 은사 기념 과학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우리 땅에서 최초의 과학관이 되었다. 해방 후에는 국립과학 박물관이 되었고 1948년 국립 과학관이 되었지만 6. 25로 불타 별로 쓸모없이 있던 땅에 6.25로 폭파 되어 제대로 된 방송국 청사가 없던 KBS가 1957년 이곳에 방송국을 짓고 1976년 여의도로 옮기기 까지 이곳은 방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남산방송국은 처음에는 위에서 본 사진처럼 오른쪽 건물만 있었다. 아래사진은 1958년 남산방송국 이전과 이승만대통령 생신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 앞에서 이 대통령 양아들 이강석과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이강석은 남산방송국을 자주 드나들었다. 위 사진은 박종세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장기범, 강찬선, 최계환 아나운서가 함께했다.
위 사진의 새로 잫고 있는 건물은 뒷날 KBS 건물이 된 원자력병원을 짛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최세훈, 김정자, 한분 건너 임국희 아나운서다. 뒷날 왼쪽 터에 짛어진 원자력병원 건물은 정동방송국과 교환해서 먼저 짛어진 방송국과 연결 남산 방송촌 (라디오)이 되었다. 지금도 그 건물은 서울시 에니메이션 센터가 되어 큰 틀은 그대로 있다.
남산초기에는 HLKA라고 불리는 제1 방송은 남산에서 했지만 제2방송은 여전히 정동에서 했다. 그러던 중에 먼저 지어진 KBS 옆에 원자력병원이라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이 건물이 들어선 직후에 5.16이 일어나고 곧이어 제 2방송을 하던 제 2방송과가 7월 1일을 기해서 국제방송국 으로 승격했다. 또 곧이어 TV방송국을 실시하게 되어 이 시설들을 모두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오재경장관의 결단이 내려졌다. 서울 중앙방송국과 나란히 있던 원자력 병원은 서울 국제방송국이 있던 정동건물과 교환했다.
1961년 연말이 되어 서울 국제방송국은 서울 중앙방송국과 한 건물 안으로 이사를 했다. 라디오방송국 길 건너 한양교회자리에 TV방송국을 짓기로 해서 한양교회는 인근으로 옮겼다. 새로 TV방송국이 들어서는 자리는 광복이전에 일본 절 동본원사로 꽤 큰 절이었다. 광복후에는 대한 민청(大韓民靑)이 쓰던 건물로 TV방송국을 짓기 직전에는 한양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TV방송국이 들어서 1961년 12월 31일부터 방송을 내 보냈다.
일본은 이곳 남선 왜성대에서 1893년부터 1926년까지 33년간에 걸쳐 공사관, 통감부, 총독부를 통해서 나라를 빼앗고 식민지로 만들어가는 본거지였다. 하세가와, 이또오 히로부미다 우리 머릿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악명 높은 침략 원흉들이 다 이곳에서 흉계를 꾸몄다. 경복궁 뜰의 조선총독부는 1926년에 이곳 남산에서 옮겨가 19년간 있었던 곳이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경복궁 뜰의 총독부만 기억하실 뿐 남산의 총독부는 잘 모르시는듯 하다.
1921년에 있었던 김익상의사 폭탄 투척사건은 이곳 남산 총독부 청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익상의사는 총독을 제거하기 위해 폭탄 2개를 가지고 서울로 들어와 1921년 9월 12일에 전기수리공으로 변장하고 당시의 총독부 건물인 왜성대에 들어가 비서과에 한 발을 던졌으나 불발되고, 다시 남은 한 발을 회계과에 던져 폭발시키고 혼란을 틈타 빠져 나와 그 날 오후에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돌아갔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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