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 일주일 전에 창덕궁에서 열린 마지막 어전 회의에 윤덕영과 민병석은 고종을 모시고 참석했으며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중 옥새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 친일파가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병풍 뒤에서 숨어서 몰래 듣고 있던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들고 울면서 도망치다가 앉아서 치마 속에 숨기는 등 온몸을 던져 항의했고 그 누구도 황후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자 큰아버지 윤덕영이 나서서 빼앗았다. 이로써 조선은 공식적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고종과 순종을 협박해 왕실을 움직여 조선의 식민지화에 일조한 윤덕영은 그 대가로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그 때 받은 것 중 하나가 벽수산장이다.
윤덕영은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마자락에 숨겼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치마를 들춰 옥새를 빼앗음.
그렇게 조선은 공식적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됨
친일파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윤덕영인데 옥인동의 약 54%, 지금의 서촌 부지, 수성동 계곡, 배화여자고등학교, 인왕산 자락까지 모두 다 윤덕영의 집터였으며 아직도 그 곳에는 흔적이 조금 남아있다. 집 안에는 능금나무밭, 자연숲, 한옥 99칸, 하천이 있는 총 "2만평"의 대저택이며 이완용 땅의 4배인 "19,467평"(축구장 8개의 면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백성들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진 곳. 1921년 6월 23일에 보도된 <동아일보> 기사에 '조선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집'이라고 소개된 곳이 바로 이 '벽수산장'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에는 그의 자택인 벽수산장(碧樹山莊)이 있었는데 프랑스식으로 건축한 호화 대저택이었다. 1945년 8.15 광복 후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사무실로 사용하였다가 1966년 4월 5일 화재로 전소되어서 1973년 철거되었다. 철거되기 전까지 약 7년간은 철조망으로 둘러 막아 놓았지만 뚫어놓은 개구멍으로 동네 어린이들 놀이터로 쓰였으며 건물 터를 거쳐 가면 지역 관할 서울청운초등학교까지의 통학로가 100여 m가 단축되어서 학생들은 자주 들어가고는 하였는데 밤에는 스산해서 아무도 안 들어갔다.
나라 팔아먹은 돈으로 벽수산장을 지어서 수많은 첩을 거느리며, 죽을때까지 떵떵거리며 살다가 갔다고 해
첫댓글 윤씨 얼굴은 처음봐
헐.. ? 누가 생각나네
어라? 어라라? 관상이..?
아니.. 똑같이 생겼어
윤?
미친 후손으로 환생했나? 얼굴이나 하는짓이나 똑같은데
어???
아무리 봐도...
어? 잠깐만 얼굴도 닮았어
본관은 해평이라네...
하지만...!!!
윤...
뭐지… 똑같아
오호라...
어어...?
똑닮았노
...!
씨발 나라를 팔어??
족보 까봐야 하는 거 아냐? 생긴 게 너무 닮았는데?
헐?
시발롬
어 ㅁㅊ 소름
나 어제 이거 1일1페이지 조선사365 책 읽었는데 거기서 봄; 보면서 윤덕영 윤ㅡㅡ 이랬는데...ㅁㅊ
오..
이거 천일야사라고 역사프로에서 봤는데 개빡치더라... 개새끼 지옥 유황붛에서 평생 팔팔 끓여져라
오
얼굴부터가 시핥 존나 그런 상이야
맞을걸??생긴거봐라
윤...
개새끼들
ㅈㄴ 닮았다..
근데 윤석열을 파평윤씨고 윤덕영은 해평윤씨라 혈통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