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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환에게는 그만 둔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그냥 내려온 것이었다.
내려오면서 옷만 받아 입고 도망을 쳤다고 쫓아올 까봐 마음을 졸였다.
재덕은 수동이를 이해했지만 아쉬워했다.
조금만 있으면 보리 쌀 이라도 두어 가마 올려 보내려 했었는데 수동이가 기술을 배워서 제 밥벌이라도 하면 이곳을 정리하고 서울로 가서 살아 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그럴게 아니라 다시 가서 일을 배우라고 보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수동이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동이가 내려와 보니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안 그러니까 건넌방 옆 여름이면 선샘이 나던 곳 아래에 화단이 있던 곳에 펌프를 박아져 있었다.
재덕이 우물을 파고 바닥에 커다란 돌을 놓고 두레박 우물처럼 돌을 쌓는데 우물에 물이 이정도 고이겠다고 생각하는 곳까지 쌓고 펌프파이프를 사다가 아래에서 한자(33cm)쯤 되는 곳에 구멍을 파이프 굴기만 하게 옆으로 구멍을 내고(구멍이 작으면 흙물이 올라옴)세우고 위에는 구들장처럼 생긴 돌을 덮고 위에 잔 돌을 넣다가 흙으로 덮고 위에 펌프를 설치했는데, 이는 수동이가 물 길어 오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정순과 정자를 위해서 아니 식구들이 편하자고 한 것인데 조금 께름칙한 게 상동이가 빠져죽은 우물에서 10m도 되지 않는 곳 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펌프를 박아서 수동이네 집 외양간 아래에 있던 우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져 매년 추석을 앞두고 하던 우물 청소도 안하고 자동으로 매워지고 말았다.
하긴 일부러 매워도 매워야 할 우물이었다.
상동이가 빠져죽은 우물처럼 안전장치도 없이 두 길이 넘는 깊이에 두레박이 아니 바가지로 물을 떠낼 만큼 물이 많이 나왔으니 현용 아버지가 그 아래에 연못을 팔 만도 했는데 끔찍한 기역은 어른들이 몰라서 그렇지 연못을 판 그해 겨울 창복이가 썰매를 타다가 빠져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 적도 있었는데 다행히 물이 깊지 않고 많은 물을 가둘 수가 없어서 다음 해 부터는
벼를 심는 논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답답하지 않은 것은 얼마 전 정순이가 청량리시장에 거금을 주고 사온 라디오가 있어서 노래도 듣고 연속극도 들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석고개 삼순의 아들 영철은 소아마비를 알아 다리를 저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소아마비 예방주사를 맞혀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그리 된 것이었다.
용단은 며느리 삼순과 아들 만석에게.
“너희들은 먼저 할 일 나중에 할 일을 구분하지 못 해서 애를 병신을 만들어.”
원망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가끔씩 들리는 평락을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지만 외삼촌으로 깍듯이 대했다.
평락은 그런 수동이에게 18금반지를 하나 주었다.
그리고 충남 성환에는 동생이 산다고 해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편지를 보내고 받았다.
그리고 몇 칠 후 석고개에서 도림개말 까지 도로 개통식이 가양교 다리에서 있었다.
국회의원 이진용이 와서 공사를 한 토건회사 염태운 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어서 그 아래 덜러소 개울가에 솥을 걸어놓고 밥을 짓고 고기를 삶아 잔치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초여름 무렵 성규의 결혼식이 있어서 동생인 용분이 하고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태희와 태희가 형이라고 따르는 사람이 카메라를 메고 같이 내려왔다.
둘은 피부가 하얀 게 촌티 나는 수동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둘은 칙사 대접을 받아가며 성규의 결혼사진을 찍어주었다.
오후에야 수동이는 오랜만에 만난 태희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는데
“야 수동아 인사해라.”
“내가 형으로 모시는 분이야.”
“김수동입니다.”
“그래 반갑다. 나 조태성이야.”
그리고 셋이서 덜러소로 산책을 갔는데 용분이도 동행을 해서 넷이서 갔다.
그리고 셋이는 수동이가 눌러주는 셔터에 포즈를 취하며 몇 장의 사진을 박았다.
그리고 얼마 뒤 쉬는 날 한성실업에 취업해 있던 창복이가 내려왔는데 하나 사가지고 왔는데 안마당 툇마루에 놓고 크게 틀어 놓았다.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을 걸은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그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라디오로 중개방송을 들었다.
그렇게 올 여름도 수동이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콩밭에서 바랭이 달개비 방동사니를 뽑아내며 여름을 보냈다.
평락이 파견 근무를 마치고 본대로 복귀를 하게 되었다.
복귀가 결정된 날 평낙은 눈물을 글썽이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추석날 저녁 방골서 청년회 주최 노래자랑을 하려고 준비를 사는데 낮에 학교에 앰프를 빌려서 설치를 하려고 하니 마이크가 고장 이었다.
마침 추석을 맞아 태희가 의형제를 맺은 태성와 같이 내려 왔는데 태성이가마이크를 분해해서 납땜이 떨어진 곳을 찾아서 인두를 숯불에 달구어 때워서 마이크를 고쳤다.
그날 저녁 수동이도 노래를 불렀는데 박수를 치며 손을 흔드는 낮선 사람이 있었다.
지둔리 진숙이네 와 친척인 배경환 사장의 조카들이 내려왔다가 구경을 하면서 가게에서 몇 번 본 얼굴이라 반가워 손을 흔든 것이었다.
막간을 이용해 태희는 초대 가수처럼 등장해 방구타령을 해서 어른들의 환호를 들었다.
그리고 창복이가 노래를 했는데 일등을 했다.
이튿날에는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덜러소 개울가에서 초등학교 동창회를 했다.
대부분이 취직을 해서 서울로 가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두 살 더 먹은 길민이가 첫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윤희의 작은 딸 옥자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 재덕은 화장대 하나를 해 주었고, 결혼식에는 황골에 혼자 갔는데 재덕이 후황을 갔는데 그 곳이 공교롭게도 육이오 전쟁 때 재덕이 숯가마에 숨어 있다가 중공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곳이어서 감회가 새로웠지만 무엇보다도 그 깊은 두메산골에 어린 조카를 혼자 두고 떠나려니 눈물이 났다.
조카사위 창진이 배웅을 나왔는데 눈물을 들키고 말았다.
황골로 온 재덕은 영동이를 불러서
“영동아 웬만하면 서울에 자리를 마련해 옥자 내외를 불러 올려라.”
“네 작은 아버지.”
그리고 정순이는 의동생 평락이와 병숙이의 언니 민숙이사이에 중매를 해서 결혼식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가고 가을걷이가 한참일 때 저녁 무렵 지난해부터 옷가지를 팔고 다니면서 가끔씩 나일론 파사도 곡식과 바꾸어 가던 아주머니가 들렸다.
“저 아줌마 아들한테 이 짐 좀 버스 차부까지 부탁하면 안 될까요.”
도림개 말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부탁을 했다.
“오십 원 드릴게요.”
“그러세요.”
“그럼 돈은 아드님을 줄까요?”
“저 주시면 되요.”
하며 돈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아드님 취직할 생각 없는지?”
“그래요 어디 자리가 있어요?”
“실은 내 동생이 세타 짜는 공장을 하는데 알아볼게요.”
“그럼 잘 부탁해요. 그리고 이돈 도로 받으세요.”
하면서 아까 받았던 오십 원을 도로 내 놓았다.
“이러시면 내가 미안 한데,”
하면서 못이기는 척 돈을 도로 받았다.
“수동아! 수동아!”
“네.”
“이짐 좀 차부에 져다 드려라. 너 취직 시켜 주신 덴다.”
“네.”
그리고 몇 칠 후 장사 마친 그 아줌마는 수동이네 집에 들려 내일 아침에 수동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아줌마는 그날 저녁을 수동이내서 먹고 자고 아침에 조반까지 먹고, 수동이에게 보따리를 대신 둘러메게 하고 도림개말 버스차부에서 첫 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수동이는 그렇게 신설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숭인동 청룡사 아래에 있는 스웨터 만드는 가내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 집에서는 장사하는 아주머니를 이모로 통했다.
이모가 일 할 사람이라고 하니 사장 김영덕이 물었다.
“성이 뭐지,”
“김가입니다.”
“김군 월급은 이천오백 원을 주고 노는 날을 첫째 셋째 일요일이다. 그리고 자 이 돈으로 세면도구를 사와라,”
하면서 오백 원을 주었고 가게에 가서 치약 칫솔 세수 비누를 사고 남은 돈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공장에 올라가 보니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맨 처음 실 감는 일을 가르쳐 주었다.
아가씨 둘이 실을 감고 있었고 영덕의 부인 윤옥도 와서 실 감는 일을 도와주면서,
“실타래를 이렇게 양손에 넣고 탁 탁 털어서 문래에 끼우고 이렇게 펴서 이렇게 중간에 묶어 놓은 실을 끊어 내고 이렇게 여기에 묶인 것도 끊어내고 이렇게 여기다 깡통을 끼워서 놓으면 돌아가잖아 그리고 실 끝은 위에 올라온 것을 잡고 문래를 돌리면서 이렇게 윗실을 잡으면 이렇게 끝이 나오면 이쪽 끝에다 처음 감 따가 이렇게 깡통 쪽으로 옮겨서 이사이로 넣어서 여기다 걸면 되.”
두 번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었고 그 다음 실이 끊어지면 이렇게 매듭을 지어야 풀리지 않는다고 매듭짓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실감은 것을 횡편기(요꼬, Flat Kitting Machine)로 스웨터 짜는 곳에 갔다 주러가니 거기에 태성이 스웨터를 짜고 있다가 수동이를 보더니.
“네가 새로 왔구나.”
“내.”
“어떻게 알아.”
옆에 사람이 물어보니
“응 태희 친구야.”
“자 인사 하고.”
“잘 부탁 합니다.”
“그래 잘해 봐라.”
태희가 그만두고 남대문 대도상가에 점원으로 가서, 수동이가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실을 감다가 감은 실을 날라다 주며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서 아래서
“식사 하자우.”
하는 영덕의 소리가 들렸고, 모두 내려가 식사를 하는데, 남자가 일곱 명이였는데, 식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올라가서 횡편기를 돌려서 스웨터를 짜기 시작 했다.
밥 먹고 쉬지도 않고 바로 일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원인이 있었다.
한 장을 짜면 앞판은 얼마 뒤판은 얼마 소매 부분은 얼마씩 값이 정해져서 한 장이라도 더 짜면 돈이 되므로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스웨터를 짜는 것 이었다.
그리고 감아 놓은 실이 떨어지기 전에 갔다 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매듭을 잘못 지어 실이 끊어져서 짜다가 중간에 떨어지는 오동포가 나면 화를 내면서 심하면 깡통을 집어 던지기 까지 하였다.
조금만 더 짜면 되는데 화가 나서 그러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짜는 시간보다 덜 걸리게 생겼으면 다시 바늘에다 일일이 코를 꿰어서 다시 짜지만 코를 꿰는 시간이 다시 짜는 시간보다 길면 해사(실 감는 사람)가 다시 풀어서 깡통에 감아야 하므로 일이 많아진다.
점심을 먹고 실을 감고 있는데, 김 군 하고 사장이 불러서 시장을 따라가게 되었다.
62번 좌석 버스를 타고 평화시장 이층에 올라가서 단추가계에서 단추를 고르는데, 조금씩 끊어간 실로 색상을 맞춰 열 상자를 삼천 원을 넘게 주고 사고, 동신상가아래에 있는 실 가계 협진상사에 들려 실을 주문하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 은사(빤짝이실)를 이십 상자를 이만 원을 넘게 주고사서 수동이에게 들려서 따라오게 하였다.
수동이가 물건을 들고서, 졸졸졸 따라 가는데, 사장 영덕의 발걸음은 엄청 빨라서 부지런히 쫒아가야만 했다.
방산시장을 지나서 중부시장에 가서 스웨터 세팅 폼(철사로 만든 옷 모양의 본)을 맞추는 가계에 들려서 주문을 해놓고 세팅 품이 만들어 질 동안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계 귀퉁이에서는 장기를 두고 있어서 수동이가 자연스럽게 드려다 보게 되었다.
장기는 전임가경으로 치달아 한쪽이 몰리고 있었고 옆에서는 훈수를 는 사람이
“저 포 죽는다.”
“아냐 그 포 가 차한테 죽으면 마장에 상한테 차가 죽어.”
“차로 상 멱을 막으면 되지.”
“거긴 이쪽 포 길 인데.”
그렇게 장기 한판이 끝나고 옆을 본 수동이는 주저앉을 만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옆에 있던 물건이 없어진 것이다.
수동이의 낮 빛은 흑 빛으로 변해 버렸다.
수동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주의를 살펴보고 있는데.
“너 왜 그래.”
사장 영덕의 목소리는 천둥소리 보다 더 컸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잠깐 이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야, 너 물건 어드렇케 됐어.”
그 말은 듣는 순간은 수동이는 벼락을 맞은 느낌 이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정신은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수동이가 정신을 차리고 계산을 해보니 소 한 마리 값에 가까운 물건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장 집으로 내려가 소를 팔아서 변상을 할 생각을 하니 세상이 온통 노래졌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다.
또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야 너기는 눈 감으면 코 벼가는 세상이야 알간. 그러니 끼니 무슨 예기나 하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어드러케 될지 모른다는 네기야 알았어, 저기 데켠 방에 가 보라우.”
사장이 턱으로 가르치는 곳을 가보니 방안에 물건이 놓여 있었고, 그 제서야 낮 빛이 제대로 돌아오기 시작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물건을 절대 손에서 놓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한참 후 세팅 폼이 다 되어서 수도예식장 뒷골목으로 해서 을지로로 나와서 택시에 짐을 싫고 돌아왔다.
그리고 사온 단추를 재봉실에 가져다주라고 시켜서 재봉실에 가보니 방골사는 성숙이가 보였고 용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둔 모양이었다.
여자들은 미싱사 시다 실 감는 해사 까지 열 명이였다.
다시 실 감는 일을 한참을 하고 있는데, 또 식사 하자 하는 소리가 들려서 내려가서 밖을 보니 벌써 어두워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도 어김없이 쉬지도 않고 횡편기를 돌리러 갔고, 그리고 삼촌이라고 불리는 영덕의 동생이 있었는데, 이름이 공교롭게 수동이의 증조할아버지인 영린과 한자 까지 똑같았다.
그 사람은 (자카드)환편기(다이마루, Circular Knitting Machine흔히 메리야스를 짜는 기계)를 보는 기술자였다.
그렇게 한참을 해사기가 돌아가고 환편기와 횡편기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없이 한참을 지나고, 이제 그만 하자라는 사장의 소리가 나자 영린은 퇴근을 했다.
수동이가 횡편기를 돌리던 방을 쓸어내고 걸레질을 할 동안 실을 같이 감던 해사가 떨어진 실 뭉치들을 쓸어내고 있었다.
수동이가 환편기가 있는 공장 바닥을 쓸어내어 해사와 같이 쓰레기통에 담았다.
해사 아가씨 둘은 잽싸게 수돗가로 달려갔다.
해사 하나는 재봉 뒷일을 하는 방꼴 성숙이의 이종 사촌이라고 했는데. 얼굴이 동글동글한 게 용숙이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수돗가에 제일 늦게 가서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어서 자명종 시계를 보니 열시 반이 이였다.
따르르 릉, 따르르 릉, 사발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모두일어 났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모두 수돗가로 달려가 양치질을 하고 수동이가 어제 청소한 쓰레기를 버리러 대문 앞에 나가 보니 오늘 새벽에 쓰레기를 쳐가서 그런지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쓰레기통 앞은 온통 깨어진 연탄재와 쓰레기가 흩어져 있었다.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기통에 담고 들어와 세면도구를 가지러 가니 태성이를 비롯한 꼬쟁이(횡편기로 세타를 짜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들이 옷을 짜고 있었고, 길섭이라는 수동이보다 두 살 더 먹은 사람은 환편기를 돌리고 있었다.
수동이가 치약을 묻혀서 이를 닦으며 제일 늦게 수돗가에서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올라가니 벌써 해사들이 실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정애라는 가사도우미는 벌써 그 대 식구들의 밥과 반찬을 만들어서
사장내외 중학생 아들 석채와 초등학생 딸 석화 와 정채 까지 밥을 차려 주고 공장식구들 밥까지 해내는 걸 보니 대단했다.
“식사 하자우.”
사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 내려가 상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고 올라와 보니 사장동생 영린이 와서 벌써 횡편기를 돌리고 있었다.
한 시간 쯤 지나서 김군, 하고 부르는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동이 내려가 보니 포장지에 싼 옷 세 뭉치가 있었고 희자라는 한 살 더 먹은 재봉보조 아가씨가 와 있었다.
“김군 이 물건 겠고 따라 갔다 오라우.”
희자는 한 뭉치를 들고 수동이가 두 뭉치를 들고 버스를 타고 평화시장으로 가서 세군데 가계에 물건을 주고 인수증에 서명을 받아 왔고, 다시 올라가서 실을 감았다.
오늘은 사장의 아내 윤옥은 봉재 실에서 일을 하는 지. 올라오지 않았다.
한참 후 김 군, 하는 소리에 내려가니 이번에는 어제 짠 원단을 뒤집는 일을 했다.
철사로 1,5m쯤 되는 기다란 고리를 집어넣고 원단 끝 부분을 묶어서 뒤집어 넣고 원단 한쪽 끝으로 빼어내서 둥글게 다시 말았다.
그렇게 다섯 개의 원단을 정리하니 점심때가 되었고 다시 오후쯤 김군하고 불러서 가보니 세팅을 해온 원단이 있었다.
“이 원단 줌 들어다 주라우.”
하면서 아까 뒤집어 놓은 원단을 가리켰다.
그리고.
“박 군.”
하면서 원단을 가져온 사람에게 팁으로 오백 원을 주었다.
박군이란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고 원단 세 개를 들고 수동이는 원단두개를 들고 골목 끝에 세워진 자전거에 가서 원단 한 개를 받아가지고 오니 어제부터 틈틈이 재단해놓은 옷감을 세어서 장부에 기록한 영덕이 재봉실에 갖다 주라고 해서 두 번에 거처서 갖다 주고 나니 이번엔 연탄불을 붙여서 세팅 가마에 넣으라고 시켰다. 세팅 가마는 화덕이 두 개인데, 연통으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연통이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이번엔 세팅을 해야 한다고 봉재 실에서 꿰매놓은 스웨터를 가지고 와서 어제 중부시장에서 만들어온 세팅 폼에다 입히고 모양을 잡아서 다섯 개를 세팅 가마에 넣는데 사장이
“이렇게 잡고서 이럴게 얹어 노라우, 기래야 자욱이 나지 않아. 알간?”
하면서 넣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부지런히 둘이서 옷을 입히고 모양을 잡는데 서 수동이가 두 개를 입히는 동안에 사장은 세 개를 입히고 수동이가 입힌 것을 점검 까지 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고 다 되었으니 꺼내 와야 한다고 하면서 세팅 가마를 열라고 했다.
세팅 가마를 여니 연탄가스 냄새와 열기가 확 덮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꺼내다 늘어놓고 식을 동안에 아까 입혀놓은 세타를 가마에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가마의 문은 닫고 나오니 세팅 폼에서 옷을 벗겨서 개고 다시 옷을 입혔다.
아까는 조금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하는 일이 많아서 바로 가마를 열고 세팅된 옷을 꺼내왔다.
때가 가을이니까 할 만 하지 여름에는 더 힘들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세팅을 하고 나서 불을 빼다가 다른 방에 옮겨 넣고 올라와서 다시 실 감는 일을 했다.
한 시간 정도 했고, 불은 빼다가 다른 방으로 옮겨 넣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 실을 감았다.
실 감는 해사기는 물레 수를 가지고 크기가 정해지는데 물레가 열세 가락짜리 이었는데 세 사람이 감고 있었다.
그리고 링구사 라는 별도로 모양을 내기 위해서 꼬아온 실은 수동해사기를 일일이 돌리면서 감아야 해서 해사 둘이 링구사를 감으러 가면 길섭이와 수동이가 실을 감았다.
모터로 돌아가는 환편기는 8 게이지(1인치에 바늘이 여덟 개)가 있고 링구사 여섯 개 36수(실의 굵기)의 아크릴 사 여섯 개 그리고 70데니어(나일론실이나 테트론(폴리에스터 원사)실의 굴기로 가느다란 실(분사) 70 개가 합쳐진)의 필라멘트(열을 가해 가공하지 않은 원사 열을 가하면 탄력성이 생기는 나일론이 되고 테트론을 열을 가해 가공하면 폴리에스터가 됨)사가 12개 들어가는데 필라멘트 사는 공장에서 감겨 나온 그대로 쓰고,
횡편기는 6게이지로 아크릴 사(일명 화학사)두 겹에 어제사온 은사 한 올을 쓰는데, 그것도 해사가 일일이 수동으로 옮겨 감았다.
또한 실이 매끄럽게 들어가라고 실에 초칠을 하거나 좌 우 운동 때 실을 당겨주는 텐션 위로 천으로 된 심지를 늘이고 밑에다 등유 병을 매달고 등유가 조금씩 묻혀 들어가게 하였다.
그러니 환기시설이 없이 스웨터를 짤 적마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아크릴사의 먼지와 석유 냄새를 코로 맡으며 일을 신나게 하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해사도 마스크 하나 없이 아크릴 사 먼지며 염색 할 때 쓴 염료의 냄새를 맡으며 하루 열다섯 시간을 일을 했다.
그리고 수동이는 하루일이 끝나고 봉재실로 가서 내일 세팅 할 것 있느냐고 물었다.
없어 하고 화를 냈다.
실은 저녁에 연탄을 갈 때, 미리 조정을 하려고 물었는데, 실례 한줄 도 모르고 지났는데, 몇 칠 후 두 살 더 먹은 덕자가
“예 김군, 세팅 할 거 있는가는 낮에 물어 봐.”
눈치 없는 수동이는 그제야 왜 화를 냈는지 알았다.
일을 끝내고 세수를 하고 봉재실에 이불을 펴고 잠들 준비를 할 때 문을 두드려 물어보니 화를 낸 것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식사 후 실을 감고 있는데, 사장이 김 군 하고 불러서 내려가니 포장지를 사오라고 시켜서 포장지를 문방구에서 사고 영수증을 끊어다 주고 어제 나온 물건을 포장을 하는데, 가나상회에서 이군이 물건을 가지러 와서 포장을 도와주고 물건을 두 뭉치를 가져가는데 이군 수고 했어 하면서 오백 원을 주었다.
그리고 두 뭉치를 어제 배달 한 미림상회에 갖다 주고, 명세서에 서명을 받아오라고 해서 버스를 타고 평화시장에 가서 물건을 주고 왔다.
점심 후 환편기를 보고 있던 영린이 수동이를 불렀다.
“김 군 이 손잡이가 크러치 요걸 앞으로 당기면 기계가 서는 거야, 그리고 여기 이 피댓줄(동력을 연결하는 평 벨트)에 조심하고, 여기에 손들어 가면 다처, 그리고 실이 다 들어가면 세우고 실을 올려서 잇고 다시 크러치를 넣어 알았지, 그리고 기계에 무슨 이상이 생기면 바로 세우고, 나를 불러,”
하고 영린은 길섭에게 횡편기로 고무단을 짜는 걸 가르치러 방으로 들어갔다.
수동이는 속으로 아니 온지 사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기계 세우고 돌리는 것을 가르쳐 주다니 벌써 기술자가 다 된 기분이 들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길섭은 수동이보다 사흘 먼저 들어온 것 이었다.
기계에 꼼짝 않고 붙어서 기계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실이 다 되면 세우고 실을 이어주고 다시 돌렸다.
그리고 오후에는 스웨터 세팅을 하고 올라가니 다시 기계를 보란다.
그리고 실이 다 되기 전에 이렇게 꽁무니에 실을 연결하면 기계를 세우지 않고 계속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서 실을 연결하는 방법을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실을 연결하고서 잘 이어졌는지 당겨 보라고 했다.
얼마 후 쉬는 날이 와서 아침 일찍 내복은 삶고 작업복을 빨아 널고 아침을 먹고 나서 누군가 남산 구경을 하자고 해서 수동이는 길섭이 태성이 연선이
따라 걸어서 장춘단 공원을 지나서 남산팔각정을 지나 남대문을 걸쳐 공장에 도착했다.
연선이는 태성이와 동갑으로 조실부모하고 횡편기 기술자 인데 외가가 물골안이 이라고 하면서 외삼촌 이름을 대 주는데 보니 새창벌 준기 아버지였다.
어려서 여섯 살 때 가보고 한 번도 못가 봤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서 한 달이 되어서 첫 월급을 받아서 천팔백 원은 적금을 들었다.
그런데 겨울상품으로 준비한 스웨터는 시장반응이 영 신통치 않은지 다시 담담사를 사서 신제품 구상을 다시 했는데 반응이 별로였다.
그리고 수동이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요꼬교본 이라고 하는 책을 사다가 보았으나 스웨터를 짜던 사람들이 보고는 씩 웃어 넘겼는데 짜는 방법에 대하여 만 나왔지 짜다가 왜 코빠짐(하네drop)이 어떨 때 일어나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없었다.
그리고 기본인 코의 크기가 다르면 올의 고르기 가 틀려서 이중무늬(무라가 간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아마 초보가 글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한참이 지난 후에 들었다.
그러자 스웨터를 짜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더니 태성이와 연선이도 해방촌에 일자리가 있다며 떠나고 길섭이와 수동이 둘만 남았다.
그러니까 횡편기 기술자 들은 모두 다를 일자리를 찾아서 떠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횡편기 기술자는 월급제도 일당제도 아닌 도급제로 한 장 짜는데 얼마 이렇게 사장하고 정해서 일을 하고 식대도 한 끼에 얼마라고 정해서 식대를 공제한 돈을 찾아가는 것으로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보세 공장에서부터 하청을 받아서 하는 가내 수공업을 하는 데 까지 모두 같았다.
한편 가을상품이던 자카드(jacquard)환편기[편면(single).후라이스(flice)]티셔츠의 판매가 끝나고 이번에는 가을 티셔츠 원단에 스펀지를 붙여서 점퍼를 만들었는데, 시장반응이 별로 였다.
그래서 다시 이번엔 (자카드)환편기에 뚜껑을 올려 양면(interrock) 으로 짜도록 기계를 손을 보아야 했다.
위판에는 고 저 바늘 두 가지가 꽂히는 데 고 저가 번가라 가면서 나와서 바늘머리가 실을 걸면 베라가 닫치면서 코가 벗겨지면서 짜 지는데. 아래는 원판이 돌아가면서 원판은 바늘의 답브(버드)에 물려서 기어처럼 돌아가다가 원판에 핀이 꽂힌 부분이 바늘의 답부(버드)를 밀고 올라가 바늘이 실을 먹고 내려와 짜여져 무늬를 형성하는 방식이었다.
그 제서야 기계를 잘 돌아 가게 손볼 줄 알아야 기술자가 되는걸 알았다.
그리고 사장이 모눈종이에 그림을 디자인해서 올려 보냈고 그 그림을 보고 한 사람이 숫자를 불러주면 한사람이 종이에 옮겨 적었다.
삼 빼기 오 이 빼기 사 3⓹2⓸5⓶6⓸2⓺ 한 줄의 합이 삼십 일곱 줄의 합은 이 백 십 그런 다음 그 종이에 적힌 숫자를 기계에 붙어있는 접시 모양의 이백열 개의 톱니가 파여진 위 뚜껑을 열고 핀을 기준점을 표시한 곳부터 세 개 건너 다섯 개 꼽고 두 개 건너 네 개 꼽고 다섯 건너 두 개 꼽고를 하는데 판 세 개가 한조로 네 개조 열두 개를 꼽는데 저녁에 둘이서 저녁 먹고 시작해서 열시가 넘어 사장의 그만하고 자자는 소리가 들린 지 한참을 지나서 열두시가 넘어서도 둘이 집착을 해서 세시가 넘어서 끝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영린이 출근을 해서 접시를 부착해서 돌려보니 모눈종이에 그린대로 무니가 짜여져 나오지를 않아서 분석을 해보니 시작점이 틀린 곳이 여려 개 나와서 기준점을 흰 페인트로 다시 하고 기계에 부착했다.
기계에 바늘 숫자는 600개 기계가 한 바퀴돌때 접시는 세 바퀴를 돌고 삼십 바늘 뒤가 기준점이 되고 기계가 일곱 바퀴를 돌아야 원래의 기준점에 온다고 했다.
다시 기계를 돌려보니 삼색 컬러 무늬가 제대로 나왔는데 두 군데를 잘 못 꽂힌 것을 발견 했고 그곳을 그림을 보고 수정하려고 하는데, 영덕이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아냐 다시 그려야지 안 되겠어 하고 서너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그림을 가지고 올라 왔다.
이번에 입체로 어제보다 숫자를 적는 종이가 적었다.
한조가 세 개의 판은 맞는데 이번에는 1번 판은 바탕이라 핀이 조금 꼽히고 2번 3번 판 핀은 일번의 반대로 튀어나오는 분분이라 동일하지만 많이 꼽혔다.
오늘도 어제 그맘때 핀 꼽는 일을 시작했는데 오늘은 2시쯤 끝나고 다시 다음날 영린이 부착해서 돌려보니 코가 빠지고 터지고 해서 기계를 다시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나왔는데, 또 별로여서 다시 수정을 가해서 다음날 다시 부착을 하고 시운전에 들어갔는데 영기계가 말썽이어서 바늘을 파는 삼신상사에 부탁을 해서 기술자를 불러다 한나절 손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영린도 완전한 기술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티셔츠를 생산을 해서 시장에 내놓았는데 반응이 별로 여서 이번엔 다시 여러 날 두고 고심 끝에 무니를 바꾸고 이번엔 가디건(니트 가디건)을 만들었는데 그래도 먼저보다는 반응이 괜찮았지만 썩 잘나가지는 않았다.
또 다시 쉬는 날 이번 쉬는 날에는 동시상영이라는 영화 두 편을 보는데 60원 하는 노벨극장을 가서 하루를 보냈다.
영덕은 고심을 하다가 어차피 내년 봄에 나일론 수영복을 할 텐데 양면 기계를 활용해 나일론으로 아동용 바지를 만들기로 하고 양면기계를 손을 보기로 하고 기계를 손은 보는데 자리가 협소해 사단이라는 기계를 옆으로 미어 내고 그 자리에 양면 환편기(interrock)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첫 날은 기계를 세우고 나무로 된 밑판에 못으로 고정을 시키고 수평기로 기계의 수평을 보아놓는 걸로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은 바늘이 꽂히는 가마(침상, Needle-Bed)를 앉히고 다이얼게이지를 보면서 가마의 중심을 잡아서 너트를 조였다
영린이 이 부분이 집을 짓는 것으로 치면 기둥을 세우는 것으로 가장 잘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데스리라고 가마의 윗부분을 줄로 갈아내고 가마 윗부분은 일일이 작은 줄로 쓸어내고 짚으로 꼰 새끼줄로 연마를 하고 나서 위판은 조립하고 하는데 이번에는 세 기둥 위에 위판을 고정 시키는 커다란 삼발이가 있는데
다시 말해서 커다란 원형 가마에 다시 위에 원형 가마를 올려놓는데 위 가마를 다이얼게이지로 맞추는데 상하 좌우를 정밀하게 맞추어야 했다.
가장 핵심은 원안에 원을 0.1mm의 오차도 없이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맞추고 나서 영린은 길섭에게 바늘을 꽂으라고 하는데 아래로 답부가 달린 바늘을 하나 건너 하나씩 꽂으라고 하면서 한 바퀴를 다 꽂고 그 사이에 위로 답부가 달린 고 바늘을 꽂고 위 가마의 바늘은 아래 가마의 바늘 답부가 고면 그 사이에는 답부가 저인 바늘을 꽂아서 바늘이 서로 부딪쳐서 싸우지 않게 꽂아야 한다고 하면서 퇴근을 했다.
길섭은 열두시가 넘도록 바늘을 꽂으며 몇 번을 틀려서 다시 꽂으며 아래 밖에 못 꽂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바늘을 꼽기 시작해 영린이 출근하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나서 바늘을 다 꽂았다.
그리고 작년에 쓰다 남은 나일론실을 찾거나 감아서 24개의 깡통에 감아서 실 고리에 걸어서 유리 구멍으로 된 사도에 실을 끼워서 기계에 달고 솔을 달았다
기계 아래에 얇은 원단을 끼워서 올려서 아래 바늘에다 오동포를 거는데 원단이 두꺼우면 바늘이 많이 부러진다고 했다.
원단은 헌 바늘을 이용해 아래 가마와 위 가마 사이로 끌어 올려 바늘에 촘촘히 거는데 아래 고 바늘에만 걸었다.
그리고 아래 고 바늘만 올라오게 해서 실을 먹게 해서 손으로 기계를 돌려가면서 원단이 짜지는데 이때 거는 원단을 두텁게 걸면 바늘이 부러지거나 바늘에 혀(베라)가 구부러져서 못쓰게 되는데 바늘 한 개의 값이 17원이라고 했다.
그렇게 두 바퀴를 돌리자 바늘은 정상적으로 실을 먹으며 단면 짜기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위판에 고 바늘을 나오게 해서 실을 먹여서 양면 짜기를 서너 바퀴 돌려서 바늘이 빠짐없이 먹자 이번에 저 바늘도 실을 걸어서 사도를 통하여 실을 먹였다.
그리고 아래 바늘과 위 바늘이 실을 먹는 점을 조정해야 원단이 곱게 짜지고 짜지는 도중에 코가 빠지는 일이 없게 상판과 하판의 실 먹는 차례를 조정하는데 지난번 자카드는 바늘이 실을 물고 들어갈 때 아래 바늘의 혀(베라)가 닫히면 다음에 위판 저 바늘 혀(베라)가 닫치고 아래바늘 혀(베라)가 닫치고 또 하나의 아래 바늘이 혀(베라)가 닫치면 바로 위 저 바늘 혀가 닫치게 조정을 하고 그 다음 사도에도 바늘이 실을 물고 아래 바늘 두 개의 혀가 닫치면 상판 고 바늘 혀가 닫치게 조정을 해가며 12개를 조정하고 원단이 코 빠짐 없이 잘 짜 지면 아래에 밤새 꽂은 판을 달고 아래 판에 임시로 바늘을 올려주던 산모양의 침도를 내려서 핀이 꽂힌 부분만 실을 먹게 해서 무늬가 나오게 했는데, 이번엔 방법이 달랐다.
기계의 구조가 위판의 바늘이 조금 올라오고 나서 아래 바늘이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위 저 바늘이 올라오고 아래 저 바늘이 바로 올라와서 코를 벗을 때 거의 동시에 위 저 바늘도 코를 벗고 아래 저 바늘이 실을 물고 들어가면서 위 저 바늘 혀(베라)의 중간부분을 누르고 들어가면서 혀(베라)가 닫치고 코가 완전히 벗을 때 위 저 바늘이 혀(베라)를 닫고 아래 저 바늘이 적당히 코가 형성된 다음에 상판 저 바늘이 코를 벗으면서 아래에 짜여 형성된 코를 작게 해서 원단이 곱게 되는 원리로 다음 고 바늘이 나와서 저 바늘이 먹던 식으로 짜지는데 바늘이 고 저가 교대로 나와서 짜지므로 저 바늘이 나와서 짜지는 동안 고 바늘이 원단을 잡고 있고 고 바늘이 짜지는 동안에는 저 바늘이 잡고 있어서 코가 조밀해도 바늘이 올라올 때 원단이 딸려 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저 12개 고 12개 24개의 실을 걸어서 원단이 50cm쯤 짜였다.
아래 원단을 당겨주는 로러(마끼도리 Take-Down)의 메뚜기도 처음에는 닫았다 열었다 반복을 해가며 돌렸는데 이젠 두 개 다 작동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먹은 코의 크기가 똑같이 맞추는 작업을 하는데 30cm정도 철사에 아래 부분을 유리 사도위에 올려놓기 좋게 구부려 놓고 손잡이도 둥글게 말고 위 부분을 구부려서 실을 감아서 기계의 가마아래 톱니에서 시커먼 기름을 묻혀서 돌아가며 찍고 천천히 돌려서 표시한 부분이 유리사도 가까이 가게해서 빨리 들어간 곳은 조금 풀러주고 늦게 들어간 곳은 조여주어 코의 크기를 맞추었다.
그래야 원단에 이중무늬(무라)가 생기지 않는다.
거기까지 하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고 그동안 사장은 실 가게에 전화를 걸어서 감색과 자주색 110데니어 나일론 실 400파운드를 들여왔다.
그러는 사이에 해사들을 깡통에 거친 부분에 나일론실이 걸리지 말라고 사포를 사다가 해사기에 돌리며 사포를 대고 깡통을 닦았다.
물레도 나일론을 감기 위하여 둘레가 작은 것으로 바꿔서 실을 감는데 나일론이라 질겨서 잘 끊어지지 않고 잘 감겼다.
그리고 실을 바꾸어 달고 짜기 시작했다.
제품은 고무줄이 들어간 아동용 나일론 바지를 대 중 소 세 개를 만들어서 내 놓았다.
그리고 몇 칠 후 수동이를 소개 시켜준 이모가 왔는데 실을 감으며 끊어낸 나일론실을 주어갔다.
그렇게 한 뭉치 주어다 옷을 팔러 다닐 때 팔거나 덤으로 주고 곡식과 바꾸었는데 작년겨울 정순은 나일론실을 여러 겹 합해서 수동이 양말을 떠 주기도 했다.
그 무렵 물골안에서는 용분이 아버지 호문은 도연이로부터 사들여 유일하게 마련한 물막골 쪽 야산 자락에 위치한 밭 400평을 재덕에게 송아지 한 마리 값에 팔고 포천 가산으로 이사를 갔다.
재덕이 이 밭을 산 것은 병세가 나빠진 용단의 산소를 쓰기 위한 것이었다.
용단에게는 매년 정초에 늦게나마 찾아 갔어도 세배 한 번 하지 않은 재덕이었지만 그래도 관을 짤 널과 영면에 들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정순으로부터 전해들은 용단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옛날 희상 아버지 제철의 큰 집 몸종을 한 자신에게 세배 한 번 한 적이 없는 재덕의 대한 한구석에 남아 있던 미움이 눈 녹듯 살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또 한 번의 뇌출혈로 쓰러져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의 어릴 적 신분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야심은 양반 사위를 보아서 이룬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여 그리 된 것이었다.
재덕과 정순은 수동에게 용단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장사를 지냈다.
12월 11일 KAL기 납북사건
그리고 입동이 돌아오자 윤옥은 배추를 밭에서 앞 바퀴가 하나인 2.5톤 트럭으로 한 트럭 들여다 공장 아가씨들을 동원해 김장을 했다.
그리고 몇 칠 후 새벽에 골목에서는
“변소 처!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군 아! 김군 아!”
부르는 윤옥의 소리에 쓰레질을 하던 수동이
“네.”
하고 달려가니 .
“가서 변소 치는 사람을 불러와 뒤에 공장 변소하고 앞에 변소 치게.”
“네.”
“그리고 몇 지게나 퍼 가는지 세어라.”
“네.”
수동이가 내려가 분뇨 트럭이 있는 곳에 가서 한사람을 불러다 아침밥을 먹기 전 까지 변소 뒤에서 몇 지개를 퍼 가는지 세어야 했다.
나일론 바지는 구정대목을 목표로 내놨으나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70년 구정을 앞두고 봄 상품을 구상했으나 마땅한 게 없자 기계를 정비하면서 사단기계를 분해하면서 영린이 문제를 낼 테니 맞혀 보라고 했다.
“수동아 원둘레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알아.”
“ 네 지름 곱하기 3.14 아닙니까.”
“지금 뜯는 4단 기계에 바늘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지름이 32인치에16게이지이거든 한 번 계산해봐.”
계산을 해 보았다 32×3.14=100.48
100.48×16=1,607.68 개 즉 1,608개의 바늘로 4단 기계이므로 402조의 바늘이 꽂힌다.
사단 기계는 가는 실로 4개의 바늘이 번가라 가면서 짜여져, 두터워서 겨울내복용 으로 쓰던 것이라 내복을 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별 볼일 없는지 수동이가 온 뒤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차라리 중고 기계를 파는 곳에서 팔아서 다른 기계를 들여 놓았으면 좋았으련만 그리고 겨울 동안 쓰던 자카드 기계를 분해하면서.
“삼춘 이 기계는 언제 만들어 졌을 까요?”
“글쎄다 아마 어디엔가 제조 일자가 찍혀 있을 거야.”
해서 살펴보니 1943.9.23. 이라고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해방되기 이년 전에 만들어진 기계라는 이야기로 수동이 보다 9살이 나 더 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단면 메리야스를 짤 수 있는 기계를 조립해서 시운전 까지 해 놓고 나니 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첫댓글 드디어 30회가 되었군요.
그리고 수동이도 사회인이 되어서 일을 하고요.
그 힘들고 힘든 환경을 잘 버텨 왔군요.
촌놈상경기 라고 할수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